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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last modified: 2015-03-04 17:58:18 Contributors


뻥성화, 세계의 벽은 높았다.[1]

경남 FC 감독
박성화 (朴成華 / Park Sung-Wha)
생년월일 1955년 5월 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울산광역시
포지션 수비수
신체조건 178cm
유스팀 고려대학교 (1974~1978)
소속팀 포항제철 (실업) (1978~1979)
육군 축구단 (군복무) (1980~1982)
할렐루야 독수리 (1983~1985)
포항제철 아톰즈 (1986~1987)
지도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1988~1989)
현대 호랑이 코치 (1989~1991)
유공 코끼리 코치 (1992)
유공 코끼리 (1992~1994)
포항 스틸러스 (1996~200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0 (2001~200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3~2004)
부산 아이파크 (200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2007~2008)
다롄 스더 (2010~2011)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 (2011~2013)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 U-22 (2012~2013)
경남 FC (2015~)
국가대표 92경기 28골

1983년 K리그 MVP
리그 창설 박성화(할렐루야 독수리) 박창선(대우 로얄즈)

198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기
FW
이길용
FW
춘석
FW
용세
MF
조광래
MF
박창선
DF
박성화
DF
김철수
DF
장외룡
DF
강조
GK
병득
198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순호
FW
이태호
FW
종철
MF
박창선
MF
허정무
MF
영증
DF
용환
DF
박경훈
DF
박성화
DF
종수
GK
연교


Contents

1. 선수 시절
1.1. 클럽
1.2. 국가대표
2. 지도자
3. 여담

1. 선수 시절

1.1. 클럽

부산 동래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8년 포항제철 실업 축구단에서 직업 축구선수로 시작하였다. 이후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육군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1983년 할렐루야 독수리에 입단하였고, 팀 창단 원년 우승에 공헌하였고, 초대 MVP를 수상하였다. 할렐루야에서 3시즌 동안 37경기 9골을 기록하였다. 1986년 포항제철 아톰즈로 이적하여 1986년 리그 우승과 1987년 리그 준우승을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포항제철에서 2시즌 동안 32경기에 출장하였고, 1987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1.2. 국가대표

1975년 성인대표로 발탁 된 후 1980년 AFC 아시안컵,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예선, 1984년 AFC 아시안컵 등에 출전하며 92경기 28골을 기록하였다.

2. 지도자

은퇴 후 1988년 포항제철고등학교에서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9년 현대 호랑이, 유공 코끼리에서 코치 생활을 했으며 1992년 김정남 감독 사퇴 이후 후임으로 3시즌 동안 유공을 지도하였다. 1996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였다. 1996년 FA컵 우승, 아디다스 컵 준우승, 1997년 프로스펙스 컵 준우승,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아시아 슈퍼컵 준우승, 그리고 1998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아시아 슈퍼컵 준우승 등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쥐며 지도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2000년 여름 들어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

2001년 대한민국 20세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2년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부임하자 수석코치로 선임되어 청소년팀 감독과 대표팀 수석코치를 겸직하였다.[2] 이후 코엘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자 임시로 감독대행을 맡아 지휘하였다. 2004년 6월 국가대표팀 감독대행직을 사직하였고, 청소년팀 감독직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2003년 U-20 월드컵에서 미국, 파라과이, 독일과 함께 F조에 편성되었다. 1차전에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독일을 맞아 51분 이호진, 70분 이종민의 골을 앞세워 2-0으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2차전 파라과이에게 0-1로 패했고, 3차전 미국에게 0-2로 패하며 조3위로 내려앉았다. 각 조 3위간 순위결정에서 6개조에서 3위를 차지하며 16강에 진출하였다. 그런데 16강에서 만난 팀이 하필 일본이었다. 최성국이 39분 선제골을 넣으며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에 이어 무난히 이기고, 8강에 진출하는 듯 싶었으나 82분 사카타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연장에 돌입하였고, 105분에 또 사카타에게 골을 먹히며 1-2로 패하고, 16강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2004년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2005년 U-20 월드컵에 진출하였다. 이번에는 브라질, 나이지리아, 스위스와 F조에 속하였다. 1차전 스위스를 맞아 신영록이 25분 선제골을 넣었으나 불과 3분만에 안티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33분 폰란텐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1-2로 패하였다. 2차전 나이지리아 전은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18분 아부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0-1로 끌려갔고, 시간은 계속 흘러 지는 듯 하였다. 그런데 89분이 되어 박주영이 동점골을 넣었고, 3분뒤 백지훈이 역전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였다. 2차전을 이기며 16강 진출에 희망을 가졌으나 3차전에서 브라질에게 0-2로 패하면서 또다시 조3위로 내려앉았다. 각 조 3위간 순위결정에서 6개조에서 5위를 차지하며 이번에는 16강 진출에도 실패하였다. 이 실패로 박성화 감독은 감독직을 자진 사임하였다.

2007년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런데 올림픽 대표팀 제의가 오자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된지 2주도 되지 않았는데 그만두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버렸다. 이 과정에 대하여 많은 축구팬들은 비판을 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통과하였고, 이탈리아, 카메룬, 온두라스와 D조에 편성되게 되었다. 1차전 카메룬과의 경기는 박주영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겼다.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0-3으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암울한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3차전에서 김동진의 골로 0-1로 이겼지만 2승 1무인 이탈리아, 1승 2무인 카메룬에 밀려 조3위를 차지하였고,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탈락 이후 올림픽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중국 다롄 스더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하였고, 2011년 물러났다. 이후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2012년부터는 미얀마 22세 이하 대표팀도 함께 지휘하였다. 2013년 12월 어이없는 실수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7회 동남아시안게임에서 2승1무 승점 7점 골득실 +5을 기록하며 조2위에 있었다. 조3위 인도네시아는 1승1무1패 승점4점 골득실 -2를 기록하였고, 이변이 없는한 조2위로 4강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마지막 경기인 두팀간의 맞대결이 남았다. FIFA 대회는 승점이 같을 경우 골득실이 우선시 하지만 이 대회는 유로컵처럼 승자승이 골득실보다 우선시하는 대회었다. 박성화 감독은 이 부분을 착각하였다. 그러니까,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참가한 대회를 규칙도 몰랐다는 뜻이다! 크게 지지만 않으면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주력선수들을 엔트리에서 빼버렸고, 이는 경기결과에서도 드러나 0-1로 패하게 된 것이다. 박성화 감독 혼자만 4강 진출이 확정된 것으로 기뻐하였고, 미얀마의 축구팬과 관계자들은 분노하며 소요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박성화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014년 12월 26일 경남 FC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망했어요!!

박성화라면 이를 가는 부산 아이파크팬들이 많지만 다행이도 리그가 달라서 1년간은 만날일이 없다 하지만 FA컵에서 만나면 어떨까? 뭘 어떻게하긴? 욕 한사발 하면서 기가막힌 디스 현수막 걸어야지. 계란은 옵션이고!!

3. 여담

2007년 AFC 아시안컵 당시 엑스포츠에서 해설을 맡았으며, 2009년 FIFA U-20 월드컵 당시에는 SBS에서 해설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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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U-20 월드컵 일본과의 16강전에서 패하고 난 후 그가 한 말
  • [2] 이 당시 최강희 코치와 함께 대놓고 코엘류 감독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듯 월권을 행사해서 국가대표팀을 개판으로 만들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