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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혁

last modified: 2015-04-14 15:29:11 Contributors


2009년 WBC 출정식 때 모습.


kt 위즈로 이적한 후.

kt 위즈 No.16
박기혁(朴基赫)
생년월일 1981년 6월 4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수창초-성광중-대구상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롯데 자이언츠 2차 2라운드 15순위 지명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0~2014)
kt 위즈 (2015~)
등장곡 Clubhunter - 《Dangerous(Turbotronic Extended Mix)》
응원가 코요태 -《I Love Rock&Roll》[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5번
이동욱(1997~2001) 박기혁(2002~2003) 유택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번
우드(2000) 박기혁(2004) 연수(2005~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6번
박정태(1993~2004) 박기혁(2004~2010) 박준서(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6번
손용석(2012) 박기혁(2013~2014) 손용석
KT 위즈 등번호 16번
김민준(2014) 박기혁(2015~) 현역

2008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진만(삼성 라이온즈) 박기혁(롯데 자이언츠) 손시헌(두산 베어스)

개그욕심?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2.1. 2008 시즌
2.2. 2009 WBC
2.3. 2009 시즌
2.4. 2010 시즌
2.5. 2011 ~ 2012 군 복무
2.6. 2013 시즌
2.7. 2014 시즌
3. 별명
4. 기타
5. 역대 성적

1. 개요

kt 위즈 소속의 야구선수.

그의 더블 클러치.gif

준수한 주력과 번트 등의 작전 수행 능력, 그리고 어려운 공을 아크로바틱하게 잡아내는 화려한 수비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타석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과 그다지 잘 맞춘다고 하기는 힘든 타격능력, 그리고 쉬운 공을 종종 놓치는 집중력과 더불어서 호리호리한 체격에 의한 낮은 체력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너무 까일 거리가 많다보니까 여타 다른 롯데 내야수들 처럼 종종 잊혀지거나 저평가받지만 사실 박기혁의 수비능력은 매우 우수하다. 사실 3루에 거대한 터널이 존재하던 관계로 수비범위가 훨씬 넓어진 문제도 있다. 오죽하면 그를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척 소중한 산소같은 남자라 표현하기도 한다. 2010년 시즌에 부상으로 자주 결장하면서 롯데팬들은 박기혁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다행히 문규현이 박기혁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특히 어깨는 유격수 중에서 강정호와 원톱을 다투는데 예전 스피드 킹 대회에서 손시헌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145km/h를 기록했는데 박기혁은 실실 쪼개면서 던졌는데도 144km/h이 찍히는 위엄을 뿜어내었다. 그렇다고 송구가 최상급은 아닌 것이 포구 이후에 글럽에서 공을 뺄 때 실밥을 제대로 못잡는 경우가 많아서 송구 미스가 종종 일어난다. 허나 실밥 잡히면 게임 끝이다. 오죽하면 WBC 해설을 했던 기요하라가 박기혁의 송구를 보고 한국 유격수들은 어깨가 엄청나다고 감탄을 했을 정도였으니.

포구 스타일은 기존의 원 바운드를 기다리는게 아닌 공이 한 번 떨어지기 전에 캐치하는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을 구사한다. 소위 선진형 포구라 불리지만 워낙 까이다 보니까 이런 건 아무도 인정을 안 해준다.

2. 커리어

대구상고 시절에는 스위치로 들어서서 양쪽 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친 역사가 있다.

입단 당시에는 백업수준이었지만 2루수 박정태의 기량 급하락과 더불어 2001년을 마치고 롯데의 주전 유격수였던 김민재의 이적으로 기회를 잡고 그 이후 신명철과 롯데의 키스톤 콤비를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롯데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2004년부터 신임 롯데 감독으로 부임한 양상문의 집중적인 푸쉬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수비는 좋았으나 시즌 내내 1할 중후반을 맴도는 타율로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경기장을 빠져나가다 아재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카더라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흠좀무. 어쨌건 시즌 막판 크레이지 모드(?)를 보이며 2할은 아주 간신히 넘기긴 했다.(...)

유격수로써 2할 5푼 정도는 꾸준히 쳐주고, 수비에 있어서는 상당한 강점을 보여줬기 때문에 중용되었지만 매번 체력적으로 약해서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정신줄 놓은 에러 작렬로 까이기도 무척 까였다.

실책 쪽에서는 두 가지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2003년에 기록한 5경기 연속 실책, 다른 하나는 2006년에 기록한 유격수 최고 수비율(0.989)이다. 극과 극이다. 흠좀무.

타격 능력도 2005년 2할 7푼 8리로 만개하나 싶더만 다음해에 다시 2할 5푼, 2007년에는 이원석과 더불어 유격, 2루로 번갈아 나오면서 타격감까지 잃었는가 2할 2푼대를 찍어버리질 않나, 수비에서도 시즌 후반에 갈수록 많은 실책을 범해서 엄청 까였다.

2.1. 2008 시즌

2008년 새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게 08시즌 롯데의 키포인트 플레이어로 꼽히며 '흑인천의 황태자'라는 이명도 얻었다. 그 덕인지 호성적을 거뒀으며 결국 유격수 부분에 타격 1위에, 수비율 2위로 골든글러브 까지 수상.[3]좀 더 일찍 야구에 재미를 가지고 08시즌 만큼만 했다면 베이징 올림픽에도 나가서 병역면제를 받았겠지만 이미 배는 떠나갔으니...[4]

여담이지만. 2005년 당시 타격에 죽을 쑤고 있을 그 무렵. 스프링캠프에서 허구연 위원과 박기혁이 내기를 했다. 박기혁이 3할을 치면 500불, 2할 9푼 이상 치면 300불, 2할 8푼 이상 치면 200불을 허구연에게 받고, 그 이하면 박기혁이 허 위원에게 100불을 주는 내기였다. 결과는 박기혁의 승리. 이로써 박기혁은 허구연의 내기를 이긴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08시즌은 타율 0.291, 홈런 1, 타점 36, OPS 0.706으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2. 2009 WBC

2009년 WBC에서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었다. 유격수 백업은 최정, 정근우 등등이 있었지만, 두 선수 모두 원래 유격수가 아니어서 WBC 내내 박기혁 혼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주전 유격수로서 수비에서 무난하게 활약해 주고 있지만, 여전히 박진만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지라 만약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한기주 이상으로 인터넷에서 욕을 먹을것으로 예측되었다.

2라운드를 앞두고 벌인 2차례 연습경기에서 실책을 범하자, 언론매체에서 박진만을 들먹이며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깠었다. 그저 지못미. 현 상황에서 박진만 운운하는것은 박진만의 선수 생활만 갉아 먹을 뿐이며, 유격수는 포수를 제외하고는 수비 압박이 제일 심한 포지션이다.

그의 우월한 수비범위.

여기까지만 들으면 좀 안습이지만 실제 2회 WBC에서의 활약은 상당했다. 연습경기에서의 실책이야 뭐 별 상관 없고 실전에서 견실한 수비를 보여주면서 국대에도 어울리는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결승전에서 한국팀의 주역이라는 해설까지 나왔을 정도. (미국ESPN 인터넷 중계) 결승전 본 사람을 알겠지만 안타를 10개도 넘게 맞고도 3점으로 9회까지 막은 수비는 한국팀의 가장 큰 힘이었고, 그 한 축을 박기혁이 담당했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격에서는 뭘 했냐고? 아니, 박기혁한테 안타라도 기대했는가?

2.3. 2009 시즌

09시즌은 WBC 후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규정 타석(346 타석)도 채우지 못하며, 타율 0.217, 홈런 0 [5], 타점 21, OPS 0.541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09 시즌 이후에 입대 예정이었지만, 10 시즌까지 뛰기로 1년을 미뤘다. 10년 11월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 면제가 되기 때문. 나이 제한 때문에 상무 도전 기회도 없는 박기혁은 이 때문에 10시즌에 사활을 걸어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군 미필 유격수에는 강정호라는 신성과 호타준족 나주환이 있고 09년도의 신인 내야수 3인방 중 오지환을 제외한 김상수안치홍은 각각 소속 팀에서 2루수와 유격수를 오고가며 신인치고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된다. 거기다 현역 유격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는 군필자 손시헌. 결국 박기혁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셈. 하늘은 박기혁을 내고 또 그 앞에다 박진만을 냈다.[6]

2.4. 2010 시즌

시즌 초 부상으로 2-3주 결장해서 다시 복귀했지만 6월말 복사뼈 골절 부상으로 2개월 결장 예정이다. 동군 올스타로 선발되긴 했지만, 이 부상으로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고, 결국 사상 최초로 군 미필 FA가 탄생하는가 했지만 FA 계약 상대는 구청.

10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타율 0.216 홈런 0 타점 13 OPS 0.484

그러던 중 11월 8일 음주운전으로 입건이라는 난데없는 소식이 들려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해당기사

01년, 03년에 이어 삼진아웃인 세번째인데다가, 같은 시즌내에 김명제-이용찬 등의 사건이 있었고, 롯데 내에서도 노장진-정수근 사건이 있었기에 일단 구단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음주운전이 세번째란건 상습적이라는 이야기니.

2.5. 2011 ~ 2012 군 복무

2010년 시즌이 끝난 후 FA 신청을 포기하고 2011년부터 공익요원으로 근무하였다. #기사

공익요원으로 복무하는 사이 문규현이 주전 유격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고, 대어급 내야수인 신본기도 들어오면서 복귀하게 되면 이들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FA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는데 안습.

2012년 시즌이 끝난 후 병역복무를 마치고 제대. 팀에 복귀했다.

2.6. 2013 시즌

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로서 경기에 출전하였다. 국대급 수비의 위엄을 보여주는데다 의외로 득점권에서 괜찮게 타점을 올려주고 있었으나 타율은 뭐 부상으로 2군행. 그 동안 롯데는 문규현의 난에 힘입어 7위까지 수직하락하였고 많은 팬들이 박기혁을 기다렸다. 그런데 신본기가 유격수 자리를 먹더니 그대로 주전으로 눌러앉았다. 김시진 감독은 문규현을 대타나 대수비로도 안 쓰면서 그냥 엔트리 낭비만 하고 있는 바람에 2군에서 4할을 치지만 올라오질 못하고 있다...

롯데가 이기든 지든 박기혁 떡밥은 팬들을 광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떡밥거리. 그나마 설명을 해본다면 김시진 감독은 백업 유격수가 누가 있든 주전으로 신본기를 쓸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신본기의 백업으로 박기혁이 있다면 그건 뭔가 이상하다. 따라서 박기혁 쓰기는 좀 그런데 그러면 문규현밖에 없다, 라는게 팬들이 추측한 가장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사실 롯데팬들이 이토록 박기혁을 올리고 싶어하는 것은 문규현을 2군에 떨구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6월 13일자로 문규현강점기가 끝나며 1군에 올라왔다.만세 만세 만세 신본기가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백업으로 출장중이지만 경기 후반 신본기 타석에 대타를 내도 안심이고,전경기출장으로 체력이 떨어진 황재균을 스타팅 제외하고 내야 전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소화가능한 신본기를 3루에,박기혁을 유격에 쓰는 등 내야를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뭐가 됐든 그놈보단 낫다

그러나 6월 21일 SK전에서 9회 말 이명우가 등판했을때 유격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저지름으로써 김성배의 시즌 2패에 엄청난 공헌을 하여 문규현과 동급이라며 까였다. 덕분에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는 신본기로 확정되었다. 다음날 엔트리 말소되었다. 문책성 말소는 아니고 담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잊혀졌다(...) FA는 어떻게 하려고... 시즌 후 결국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2.7. 2014 시즌

6월 24일 부상당한 문규현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되나 싶었지만 하필 본인역시 부상으로 3군으로 내려가 있던 상태였다. 자리는 2자리가 비었지만 일단 황진수만 콜업된 상태. 오승택을 따돌리지 못한다면 천금같은 기회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6일에 오승택이 콜업되며 안습상태가 되었다.

이후 7월 15일에 콜업되었다. 이후 16일 경기에서 신본기의 대타로 나와 안타치고 출루한 박준서를 대신해 대주자로 나온 뒤 9회말 오랜만에 타석에 들어섰지만 1루주자 용덕한이 도루자를 당하며 뭘 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7월 23일 경기에선 신본기를 대신하여 수비에 투입되었고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으나 하필이면 마운드에 있던 투수가 이었다. 그리곤 맥없이 투수 땅볼을 쳐버리는 바람에 병살타가 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이날 박기혁의 안타 구걸송도 참 조용히 들렸다고 했다.

시즌 후 11월 26일 FA 우선협상 마지막 날 롯데의 3년 10억 제안을 거저하면서 우선협상이 결렬되었고, 11월 28일 kt 위즈와 3+1년 총액 11.4억에 계약하였다. #

3. 별명

별명은 마른 체격때문에 뼈기혁이라고 불리며, 그냥 라고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그가 치는 적시타는 '뼈시타'라고 불러주고, 그가 볼넷으로 출루할 땐 '뼈구안'으로 출루했다고 하는데다가, 그가 치는 홈런은 '뼈포'라고 부른다. (참고로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아예 해골로 묘사한다.) 만약 실책하거나 부진하면 '뼈레기'로 격하된다.

일부 롯데팬들에겐 안정적인 수비와 2005년의 타격감을 기억하며 '데릭기혁'(데릭 지터에 비견해서), '니시오카기혁' 혹은 '뼈시오카'(니시오카 츠요시에 빗대어)라고, 대다수의 타팀 팬 및 롯데 팬들에겐 '바퀴혁'이라고 까인다. 호리호리한 몸매 때문에 '멸치'라고도 불렸으나 이 별명은 김수완이 가져갔다. 최근에는 대구출신이고 몸이 말라 비틀어져 썩은 과메기를 연상시킨다하여 '박과메기혁'이란 별명을 얻었다.

4. 기타



이범호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아주 친하다. 야빠들에게 꽃과 뼈라고 불리우며 다정한 사진들이 많아서 동인녀들과 부녀자들이 하악거린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박기혁이 살이 점점 빠지는 이유.jpg

노는 걸 좋아해서 부산 벨라지오 나이트 클럽의 죽돌이(VIP)이기도 하다. 참고로 롯데 주전 포수 강모씨와 롯데에서 가장 발이 빨랐던 김모씨도 이 나이트 VIP다. 어딘가로 링크가 걸려 있는 듯한데 신경쓰면 지는거다 체격이 그리 호리한데 나이트까지 죽어라 다니니 몸이 남아나냐면서 엄청 까였고, 아직도 까인다. 하지만 곱상한 외모 덕에 이모팬들이 많은 롯데 선수.



박기혁~쑥좀 그만 뜯어요 박기혁~

5. 역대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수상
2000 롯데 자이언츠 5 3 .333 1 0 0 0 1 1 0 .333 -
2001 47 56 .143 8 3 0 1 7 10 2 .250 -
2002 66 136 .243 33 6 0 0 8 15 6 .287 -
2003 95 281 .246 69 10 2 4 32 34 7 .338 -
2004 131 340 .203 69 7 2 6 35 33 11 .288 -
2005 114 335 .278 93 13 3 3 27 44 8 .361 -
2006 117 310 .252 78 14 0 0 25 26 8 .297 -
2007 108 266 .222 59 8 1 1 24 26 5 .271 -
2008 113 351 .291 102 13 1 1 36 47 16 .342 골글
2009 109 299 .217 65 10 1 0 21 32 7 .258 -
2010 48 153 .216 33 3 0 0 13 10 2 .235 -
2011~2012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
통산 - 953 2530 .241 610 87 10 16 229 280 72 .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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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빰빠빠빠빠빠빰 박기혁! 안~타하나 쳐주세요 박기혁! 안~타한번 쳐주세요 박기혁! 볼넷도 괜찮아요!
  • [2] 많은 사람들은 안그래도 잘 치지도 못하는 놈한테 저렇게 부른다고, 일명 안타구걸송이라고 한다. "볼넷도 괜찮아요"가 아닌 좀 도와 주십시오 혹은 홈런도 괜찮아요로 부르는 버전도 굉장히 널리 퍼져있다.
  • [3] 다만 이 수상과정이 좀 놀라웠던 게 당시 부상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못 보였던 박진만이 박기혁과 겨우 2표차였다는 것. 애초에 박진만 자신도 골든 글러브 못 탈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 [4] 세대교체를 위해서 박진만, 김민재 둘 중 하나를 빼고 백업으로라도 박기혁이나 나주환이 갔어야 했다. 당시 박진만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골골 거렸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이였다.
  • [5] 그런데 포스트시즌 준PO 3차전에서 뜬금없이 솔로홈런을 하나 만들었다. 오죽하면 해설자가 "전혀 의외의 선수가 홈런을 날렸다." 라고 했을까..이때 정말 박기혁 혼자 야구했다. 그래서 야갤러 曰: 뼈격자이언츠 라고...
  • [6] 09 WBC 감독 선임에 대한 분란으로 이후 국가대표 감독은 1순위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 2위가 준우승팀 감독, 3위가 KBO 총재가 지명하는 인물로 되도록 못 박아졌다. 따라서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우승했다면 로이스터가 데려갈 확률이 올라갔겠지만,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은 KIA 타이거즈의 조범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