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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

last modified: 2015-04-15 12:43:0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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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민정당의 엠블렘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진.
과연 악의 조직다운 엠블렘

  • 존속기간 : 1981년 ~ 1990년

    Contents

    1. 개요
    2. 광주특위
    3. 3당 합당
    4. 정당 이미지
    5. 민주정의당 출신 정치인
    6. 역대 선거결과
    7. 관련 문서
    8. 관련 항목

1. 개요

한국의 제5공화국 시기 집권 여당이었다. 약칭 민정당이라고 한다. 통일민주당, 민주공화당(1963년)과 더불어 현재의 새누리당의 뿌리 중 하나였던 정당.

민주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은 당. 현재 대한민국 국회 원내 정당인 정의당과는 당연히 아무 상관이 없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이 1980년 공화당, 신민당 등 기존 정당을 강제해산하고, 구 정치인들(특히 야당인사의 거의 대부분)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가운데 1981년 1월 15일 창당하였다. 사실상 전두환의 집권을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은 대체로 박정희 정권 때의 집권당이었던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 인사(김윤환, 박준규[1])였고, 여기에 신군부 인사들 (전두환을 비롯한 노태우, 정달, 화평, 이춘구 등등)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외에 신군부가 새인물 발탁을 명분으로 검찰 출신들(한동, 희태)과 신군부에 협조적인 관료(고건 등), 대학교수(김종인 등)들을 상당수 영입하였다. 소수지만 유신시절에 야당을 하던 인사들이 - 변절하여 - 민정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재형[2], 채문식, 윤길중이나 김정례 같은 경우)

1980년 9월 유신헌법하에서 치러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서 전두환의 득표율은 99.9%였다. - 김일성과 타이기록 - . 아무래도 유신헌법은 너무나 악명높았기 때문에 "새시대를 열겠다는 " 신군부 세력은 이를 폐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했지만 7년 단임으로 제한한 제5공화국헌법으로 개헌해서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 지난번에 99.9%는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낮춰 이번에는 90.1 %의 지지율. - 그래도 김일성과 비슷한건 마찬가지 -.[3]

그 해 3월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곧이어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제5공화국의 집권여당이 되었다. 당시 초법적인 국보위의 입법회의에서 만든 정치규제법때문에 대부분의 야당인사들은 출마조차 할 수 없었으며, 국군보안사령부가 신군부에 협조적인 야당인사들을 대상으로 공작하여 만든 관제야당만이 있을 뿐이었다. 제 1야당인 민주한국당은 2중대, 제 2 야당인 한국국민당은 3소대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여기서 1대대가 민정당이었다. 민정당에 공천신청한 인사를 보안사가 조정하여 야당 후보로 출마시킬 정도였으니, 이 때의 야당이 얼마나 있으나마나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4]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시 망명중이었던 김대중, 정치규제 상태였던 김영삼의 직계세력이 만든 신한민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였다. 사실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수 있었던 것은 노골적인 금권, 관권 부정선거와 중선거구제 그리고 지역구 의석 제1당의 전국구의석 2/3 확보 규정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게 막장인 제도인지를 보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이 1석이라도 더 많으면 전국구의석 2/3(12대의 경우 61석)를 무조건 가져가고 나머지를 지역구 의석수에 비례해서 배분하는 제도였다. 당시 전국구의석은 국회 총의석의 1/3이었으니 전국구 의석 2/3면 전체 의석의 2/9, 즉 지역구 의석을 가장 많이 따면 전국구로만 전체 의석의 20% 넘게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에서는 당시 김대중-김영삼 계가 만든 신한민주당에 철저히 패했음에도 2명을 뽑는 중선거제의 약점때문에 민정당 후보들이 2등으로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관제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은 철저히 망해서 결국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었다[5].

신한민주당은 선명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운동을 벌였고, 여기에 학생운동세력들이 가세하여 가열찬 투쟁을 벌였다. 이들의 활약때문에 국민들은 제5공화국의 반민주성을 깨닫게 되었고, 헌법 개정의 여론이 높아졌다. 민정당은 직선제 개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내걸고 대통령 직선제 개정운동을 회피했다. 이렇게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데,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지자, 전두환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명분으로 내걸고 1987년 4월 13일 소위 4.13 호헌조치를 꺼냈다. 이는 헌법 개정 논의를 중단한다는 것. 이는 전 국민적인 저항을 받았고, 5월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폭로되어 전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창당 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이때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로 경찰력에 의한 치안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전두환은 게엄령을 선포하고 군투입을 검토했으나, - 그랬다가는 아마 카다피꼴 났을걸.. - 결국 국민의 압력에 항복[6], 대표위원 노태우를 내세워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양김씨의 정치규제를 푼다는 6 ·29선언으로 위기를 수습했다. 이때 양김 세력은 5년 먼저 해보겠다고 분열하는 삽질을 하여 민정당에 어부지리를 던저주었다. 그래서 노태우는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7] 그러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총 299석 중 125석을 차지해 여소야대라는 불안정한 정국을 맞이하였다.

2. 광주특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명칭을 주장한 당이 바로 민주정의당이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명칭은 생각하기 힘든 명칭이고 보통은 광주민중항쟁, 광주학살, 광주민주화항쟁/투쟁, 같은 단어로 표현했다. 그러나 민정당이 내놓아서 지금까지 일반화 된 게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명칭이었다. 통일민주당은 이 명칭은 3일동안 반대했고 평화민주당은 6일 동안 반대했던 명칭이며 통일민주당이 이 명칭을 받아들이려하자 평화민주당은 배신자라고 까지 비판했을정도였다. 그래서 1990년대만 해도 광주민중항쟁 이란 표현도 많이 쓰였는데 계속 정부가 밀자 지금은 가장 많이 쓴 게 민주화운동이란 단어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자 "민주화운동은 진보세력이 만든 명칭이다"는 유언비어가 떠도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에 정말 선동당해서 주사태가 중립명칭이라는 오해까지 할 정도다.

일부에선 신군부 세력이 오히려 폄훼할 목적으로 만든 게 광주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한다. 광주민중항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택박사만 해도 자신의 학술도서에 그런 주장을 실었다. 실제로 노태우는 노태우는 광주사태라 하면서 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한다. 김영택 박사 같은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주장인 것. 이 주장이 맞다면 지금 상황은 오히려 신군부 세력의 계획대로 된 것이다.

자세한 건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항목 참고바람

3. 3당 합당

진행 순서 1990년: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한 정당과 과정
1 민주정의당(1981년) 통일민주당(1987년) 신민주공화당(1987년)
2 민주자유당(1990년)

1990년, 민주정의당은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합당을 추진한다.

youtube(YPBEwdjhtyM)
1990년 2월 9일,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창당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 통일민주당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 이후 1990년 2월 15일 민주자유당이 공식 출범하면서 해체되었다. 그리고 민주자유당은 후에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4. 정당 이미지

대표적인 색깔은 파란색으로 창당 당시부터 당기 바탕색으로 사용하여 방송사 선거방송 때도 파란색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향은 1990년 민주자유당으로 계승이 되어서 신한국당, 한나라당까지로 이어졌다가 새누리당에 들어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현재는 오늘날의 새정치민주연합이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다.

정당 슬로건은 안정, 평화, 그리고 번영을!이었다. 1990년 민정당이 민주자유당으로 전향하면서 폐지되었다.

5. 민주정의당 출신 정치인

민주정의당 출신 정치인
1963년 ~ 재순 자료없음. ※ 제4대 민주당(1955년) 강원 제14선거구 국회의원 후보 - 낙선
※ 제6대 민주공화당(1963년) 강원 제6지역구 국회의원
※ 제7대 민주공화당(1963년) 강원 제6지역구 국회의원
※ 제8대 민주공화당(1963년) 강원 제6지역구 국회의원
제13대 민주정의당 강원 화천군.철원군 국회의원
제14대 민주자유당 강원 화천군.철원군 국회의원
자료없음. 희태[8]
민주정의당 13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14대 국회의원
신한국당 15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16대~18대 국회의원
2010년~2011년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2014년 1월 6일 새누리당 상임고문[9]
1990년 3월 박태준 고의원
민주자유당 14대 국회의원
※ 32대 국무총리
1963년 육군소장 예편.
1981년 민주정의당 제11대 국회의원
1988년 민주정의당 대표
※ 구 포항제철(포스코) 회장
1981년~? 김태원 고의원
1981년 민주정의당 사무처 공채 2기
1989년 민주정의당 정책위원회 행정자치 전문위원
1997년 신한국당 의원국 국장
1998년 한나라당 재정국 국장
2007년 제17대 대선 이명박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정책본부 부본부장
2008년 5월 ~ 2012년 5월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을
2012년 5월 ~ 2016년 5월 제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을
1989년~? 박순자
1989년 민주정의당에 입당.
경기도 교육위원, 경기도의회 의원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10]
한나라당 17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
2008년 5월 30일~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 제18대 국회의원 안산시 단원구 을
1981년~? 이순재
1981년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
1988년 민주정의당 문화예술분과위원회 부위원장겸 의식개혁추진본부 중앙위원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제14대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중랑구
1984년~? 이정현
1984년 민주정의당에 입당.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
2008년 5월 30일~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2012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2년 한나라당 공보단장
2014년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전라남도 순천시곡성군
1980년~? 윤길중[11] 자료없음. ※ 전남 강진군/무안군 군수
조선총독부 상무국 사무관
앙선거위원회 선전부장
1948년 5·10 총선거에 출마하여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1950년 (강원도 원주군/무소속)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1954년 자유당 출신으로 출마하여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1960년 사회대중당 제5대 국회의원(원성군)
1971년 신민당 제8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정)
1981년 민주정의당 제11대 국회의원(서울 서대문구·은평구)
1985년 민주정의당 제12대 국회의원(서울 서대문구·은평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관료 부문에 선정됨.
1981년~1992년 재희[12] 자료없음. 1979년 민주공화당(1963년) 제10대 국회의원(서울 강서구)
1981년 민주정의당 제11대 국회의원(서울 강서구)
1985년 민주정의당 제12대 국회의원(서울 강서구)
1988년 민주정의당 제13대 국회의원(서울 강서구 을)
1993년 제11대 노동부 장관
1973년~1980년 정래혁[13]
1.1945년 :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제58기)
2.1961년 5월 20일: 제17대 상공부 장관
3.1970년 3월 10일: 제18대 방부 장관
4.1973년 3월 12일: 제9대 국회의원(성북구:민주공화당)
5.1979년 3월 12일: 제10대 국회의원(성북구:민주공화당)
6.1981년 4월 11일: 제11대 국회의원(곡성군·담양군·화순군:민주정의당)
7.1981년 4월 11일: 제11대 1기 국회의장(민주정의당)
8.2008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 선정
1960년대~1980년 유방[14]
1.1973년 3월 12일: 제9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
2.1979년 3월 12일: 제10대 국회의원(서대문구:민주공화당)
3.1979년 3월 12일: 제13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4.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민주자유당)
5.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새정치국민회의)
1979년~1980년 태섭[15]
1.1979년 3월 12일: 제10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구:민주공화당)
2.1981년 4월 11일: 제11대 국회의원 낙선(서울 강남구:민주정의당)
3.1983년 10월 15일: 제3대 정무제1장관
4.1986년 8월 27일: 제8대 과학기술처 장관
5.1988년 5월 30일: 제13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민주정의당)
6.1997년 3월 6일: 제15대 국회의원(수원시 장안구)(보궐:자유민주연합)

6. 역대 선거결과

  • 1981년 제12대 대통령 선거 전두환 4755/5277 당선
  •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총선거 151/276 35.6%
  •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 148/276 35.2%
  •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36.6% 당선
  •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125/299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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