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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일 8세

last modified: 2014-12-05 00:25:06 Contributors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 [1]


생애 : 1223~1282
재위 : 1259~1261(니케아 제국의 황제, 공동 통치)
1261~1282(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요안니스 4세 미카일 8세 안드로니코스 2세
라스카리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비잔티움 제국황제이며 팔레올로고스 왕조(Δυναστεία Παλαιολόγων)의 창시자.

Contents

1. 생애
2. 창작물에서

1. 생애

아버지는 제국군 총사령관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콤니노스 팔레올로고스(Ανδρόνικος Δούκας Κομνηνός Παλαιολόγος)였으며 어머니는 알렉시우스 3세의 손녀인 쎄오도라 앙겔리나였다.

1259년 1월, 미카일 8세는 제노바 공화국의 도움을 받아 님파이움(=님페온)에서 니케아 제국의 공동황제로 즉위했다.

1259년에는 팔라노기아 전투에서 이겨 아카이아의 공작 윌리엄 2세와 에피루스(이피로스) 봉건왕국의 군주 미카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의 동맹을 격퇴시켰다.

1261년 7월 25일, 미카일 8세의 장군인 알렉시오스 스트라티고풀로스가 라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보두앵 2세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다. 미카일은 8월 15일에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해 아들 드로니쿠스 2세(안드로니코스 디오토스)와 함께 왕관을 썼다. 그 해 12월에 공동 황제 요안니스 4세는 맹인이 되어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1263년에 미카일은 아카이아 공작령을 정복하기 위해 1만 5천명의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프리니챠 전투와 마크리플라기 전투에서 패하고 제국과 제노바의 48척으로 구성된 연합 함대가 베네치아 함대에게 패해 원정은 실패했다.

첨언하자면 미카일의 황제위 찬탈은 비잔틴 사에서 굉장히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됐는데, 정통성이 부족했던 미카일은 황위를 굳히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니케아 제국이 공들여 비축하고 육성한 재화와 영지들을 탕진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재화를 국가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용하는 미카일의 행위는 니케아 제국이 자리 잡은 소아시아 및 이오니아 지방 신민들과 유력자들의 의혹과 불신을 샀고,[2] 이는 이후 강건했던 니케아 제국 영토들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오스만 제국에게 편입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2. 창작물에서

코에이징기스칸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다. 보통 쿠빌라이 칸이 중심인 시나리오에서 등장. 3편인 원조비사에서는 중년의 일러스트였는데, 징기스칸 4에서는 어쩐지 준수한 일러스트로 환골탈태. 징기스칸 4에서의 능력치는 정치, 전투, 지모 순으로 각각 63, 57, 68. 상업, 외교, 화공 특기를 소유하고 있고 병과적성은 보병, 궁병, 기병, 수군 순으로 각각 B,D,C,D다.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능력치지만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등용 특기는 아들인 안드로니코스 2세가 지니고 있으며 콘스탄티노플의 문화치가 사기급이라 그 부자보다 우수한 가공장수들이나 후계자는 얼마든지 등용 가능하다. 플스판에서는 전투 66, 지모 79로 대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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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스어 발음은 미하일 옥토스 팔레올로고스가 된다.
  • [2] 우리도 언젠가는 멸망해 역사속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구 니케아 제국 영토에 사는 사람들의 미카일에 대한 불신은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