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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전쟁

last modified: 2015-10-20 20:19:41 Contributors

시기 1812년 6월 18일 ~ 1815년 2월 18일

혹시 미국영국으로 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알아보러 왔다면 미국 독립 전쟁 항목으로.

한자:英美戰爭 또는 美英戰爭
영어:Anglo-American War 또는 War of 1812

Contents

1. 개요
2. 전쟁 배경
3. 경과
3.1. 해전
4. 기타


1. 개요

"1812년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차이콥스키뿐이다. (The only winner in the War of 1812 was Tchaikovsky.)"

1812년 미국영국이 벌인 병림픽 전쟁으로 전형적인 패자뿐인 싸움. 미국에서는 흔히 War of 1812이라고 부르고, 당시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Mr. Madison's Wa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America's forgotten war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전쟁도 잊고 이거도 잊다니...

2. 전쟁 배경

미국은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독립했으나, 이것은 프랑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국력으로는 여전히 3류국가에 불과했다. 거기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자 대륙 봉쇄령으로 맞서면서 프랑스를 봉쇄하고 동맹국들에 병력을 파견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대프랑스 전략의 일환으로 영국은 프랑스와 교역하는 모든 선박들에 대한 강제검열을 개시했다. 여기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미국은 전 국민이 영어를 썼던 터라 영국 탈영병들이 가장 숨기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더욱 집중적인 수색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 선원의 수준이 좋은 편에다 같은 영어를 썼기 때문에 강제로 영국 해군에 징집당하는 경우도 많았다.[1] 이에 미국은 분노했고 영국과의 관계는 다시 막장으로 치닫게 되었다.

한편 당시 미국 북쪽에 위치한 영국령 캐나다 식민지는 전략적으로 미국에게는 위험요소였다. 캐나다는 서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무기를 보내줬기 때문에 테쿰세의 저주로 유명한 테쿰세가 티피카누 전투를 일으키는 등 영토확장에 매우 위험한 존재로 떠올랐다. 한편 미국은 세력확장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기에 캐나다의 영토까지 탐내기 시작했고, 이런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줘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은 영국에 전쟁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양국은 정작 전쟁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우선 영국은 대부분의 전력을 유럽에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신경쓰기 어려웠다. 게다가 정작 선전포고를 한 미국도 영국과 친하고 교류도 많이 하는 연방주의자들의 근거지인 북부가 전쟁에 반대했고, 민병대는 주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였다. 아직 미국 연방정부는 매우 약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나라, 하나의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형성되기 전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미국은 전쟁을 선언하고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연방정부의 훈련된 육군이 고작 7천명(!)이었고 군함도 14척 뿐이었다.미군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3. 경과

미국은 전쟁 초기에는 캐나다의 몇몇 요새와 도시를 점령하는 등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결국 위에서 언급한 점들 때문에 서서히 발목을 잡혀 영국령 캐나다의 중심도시인 몬트리올 점령에 실패한다. 그 이유도 걸작인게, 4,500명 중 1천명은 국경 진군을 거부했고, 나머지 병력도 방어군의 허세에 밀려 공격을 포기해버렸다.

반면 영국은 나폴레옹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자 병력을 아메리카로 돌릴 여유가 생겼고, 나중에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기습해 불태워버렸다. 독립 이후 미국의 수도가 외국군대에게 점령당했던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백악관은 불타버려 수리를 해야만 했으며, 그 외 미국 의회의사당을 비롯한 여러 관청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메디슨 대통령의 아내 돌리 메디슨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와 기밀 서류를 안고 영국군이 백악관에 도달하기 직전에 급히 탈출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라 전쟁이 점점 더 길어지자, 그냥 없던걸로 하자는 내용의 겐트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 교통 사정상, 실제 전투는 조약 체결 뒤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루이지애나올리언스 전투인데 루이지애나상륙하려 한 영국군미군이 맞선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앤드류 잭슨이 이끄는 미군은 단 21명(혹은 83명)의 사상자가 나온 반면 영국군은 무려 2037명의 사상자가 나와 크고 아름다운 교환비율을 달성했다. 이 전과로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영웅으로 부상했고, 후일 대통령이 되는 기반을 닦는다.

3.1. 해전

당시 미국과 영국의 해군력은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물론 같은 프리깃급의 단함전투에서였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영국 해군에 밀리는 규모였다.[2] 그러나 대형 프리깃을 주축으로 미 해군은 해군 장관이 바뀌는 동시에 단함전투 대신 상파괴로 전략을 바꿨고, 이후 영국 상선에 붙은 보험료가 급격히 치솟는 등 영국을 효율적으로 괴롭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활약을 보인 함선은 컨스티튜션(헌법 함)이었는데, 미 해군 사상 첫 단함전투 승전 사례를 기록했다. 미 해군이 창설되면서 유럽의 강대국들처럼 대규모 함대를 만들 형편이 안되자 6척의 대형 프리깃을 주력함으로 건조하는데 유럽 해군의 프리깃 정도는 가볍게 발라버리고 전열함한테도 상황에 따라서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괴물로 설계했다고(...) 이때 컨스티튜션은 38문 프리깃함인 게리에르를 압도적으로 발라버렸다. 이것이 헌법의 파워다 영국놈들아[3]

실제로 게리에르와의 전투에서 전열함급의 방어력을 가진 컨스티튜션은 게리에르의 포탄을 튕겨냈다고 한다. 사실 44문 대형 프리깃 자체가 3급 전열함과 38문 프리깃 중간에 끼인 어중간한 함급이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대형 프리깃 운영을 잠깐 하다 낭비라고 판단하여 다들 버리거나 38문 프리깃으로 다운그레이드 시켰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대형 프리깃이 제일 필요했기도 했고. 플랫폼 자체도 38문 프리깃 입장에서는 전열함과 싸우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영국 해군에서도 "사실은 전열함 하고 맞장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이 함선은 지금도 미 해군의 현역이다.(...) 영미전쟁 이후로도 활약하다가 한동안 도크에 있었는데, 컨스티튜션의 해체 기사 오보로 인해 이 상징적인 함선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뒤이어 대규모 복원작업을 통해 항해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영국의 HMS 빅토리와는 다르게 컨스티튜션은 운영 인원도 배치되어 있고, 자력항해도 가능하다.

4. 기타

워싱턴 D.C와 가까웠던 메릴랜드의 메켄리 요새는 영국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성조기는 메켄리 요새에 계속 게양되어 있었고 이를 보고 감명받은 변호사 프랜시스 스콧 키가 이 성조기를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현재 미국의 국가인 "the star spangled banner"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국가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걸 보면 문학적 감각은 꽝이었던 듯하다.

해당 전쟁은 현대에 있어서는 캐나다에서 주로 재조명되는 편이다. 물론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현 캐나다 내에서 싸움이 많이 벌어진 것도 있고, 독립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탓에 역사적으로 드라마틱한 사건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전쟁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캐나다에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실제로 전쟁 초기에 본국이 대륙에 묶여 있는 기간에는 영국령 캐나다가 거의 자력으로 막아낸 거나 마찬가지였고.) 캐나다의 미약한(...) 민족주의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전쟁임은 분명하다.

미디어에선 원래 전쟁 자체가 병림픽에 상대적으로 마이너하기도 해서 잘 다뤄지지 않는 편인데다. 서양 근대사에 관심이 거의 없는 아시아에선 더 비중이 적다.

예외적으로 알파캣 작가의 플린트 락 머스킷 나폴레옹의 바다는 영미전쟁을 배경으로한 웹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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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강제 징집은 프레스 갱(press gang)이라 불릴 정도로 악명높았다. 아무나 보이면 잡아다 해군으로 만들었는데 시의원이 잡혀가거나 프레스 갱에 의해 끌려갔다가 막 제대한 인원을 다시 끌고가는 등 폐해가 심각했다. 항구와 해안도시에서 점점 인원을 채우기 어려워지자 내륙까지 징발원들이 돌며 징집했고, 이에 마을 단위로 징발원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영국 본토에서는 징발이 어려워지자 눈을 돌린게 미국 상선에 탄 미국 선원이었다.
  • [2] 당시 미 해군의 최고 등급의 함선은 44문 대형 프리깃 3척과 38문 프리깃 3척이 고작이었고 나머지는 슬루프나 브릭 같은 등외함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그 미국의 대형 프리깃함이라는 물건이 영국의 3급 전열함이나 4급함에 준하는 스펙이었다(프리깃은 통상 5~6급함). 그러나 영국 해군의 전체적인 규모를 보면 미 해군에겐 상당히 압박스러운 규모다. 그 덕분에 미 해군은 대형 프리깃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최대한 함대결전을 회피하며 38문 프리깃을 상대로 단함전투나, 영국 상선을 상대로 사략전술을 펼치는 수 밖에 없었다.
  • [3] 영국에는 법률만 있고 헌법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