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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노 타메토모

last modified: 2014-05-14 22:53:23 Contributors

源爲朝, 1139 ~ 1170?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무장. 미나모토노 타메요시(源爲義)의 8남이다. 진서(鎭西), 즉 서쪽을 평정한다는 명목으로 큐슈 지방에서 활약했기에 친제이하치로(鎭西八郞)라 불렸다.

겐의 난에서 아버지 미나모토노 타메요시를 따라 28명의 기병을 이끌고 스토쿠 상황 편에 서서 분전했지만 결국 시라카와 덴노 편에게 패배한다. 그러나 그 무용을 높이 산 고시라카와 덴노에 의해 목숨은 잃지 않고 이즈 오오시마에 유배되는데, 결국 귀양지에서 다시 세력을 일으켜 즈 제도를 사실상 지배하기에 이르른다. 이후 다시 토벌당해 일본사에서 최초로 할복 자결을 행해 할복의 전통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1] 향년 32세.

비길 데 없는 의 명수로서, 자기 키보다 더 큰 활을 사용해 호겐의 난 때는 일격에 두 사람을 꿰뚫거나 말과 사람을 한꺼번에 꿰뚫는 위력을 보였으며, 자결하기 직전에 쏜 한 대의 화살은 300명이 탄 군선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의 군기소설 《호겐모노가타리》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취급을 받고 있는, 일본판 여포.

오키나와의 정사인 《중산세감(中山世鑑》이나 몇 몇 기록에서는 자살하지 않고 류큐로 도망가 류큐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2][3] 에도 시대의 소설가 쿠테이 바킨이 1807년에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친제이하치로 다메토모 외전-진세쓰유미하리즈키》라는 소설을 쓴다. 역사상의 이야기인 전편과 류큐로 넘어간 뒤의 이야기인 후편 중, 후편이 큰 인기를 얻어 여러 권이 나오게 되고 가부키로도 제작되어 작가를 출세시키고, 이 후에 쓴 것이 그 유명한 《난소사토미핫켄덴(南總里見八犬傳)》.

여담으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8남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요시츠네가 8남인데도 이 타메토모 때문에 일부러 하치로를 피해 쿠로(九郞)라는 통칭을 썼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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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인의 신장의야망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한다. 합전 98 내정 19로 전형적인 맹장형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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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이전에 할복을 시도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공가면서 도적으로 유명했던 후지와라 야스스케. 다만 이 인간은 배는 갈랐는데 안죽었다. 흠좀무
  • [2] 그러나 이것은 류큐가 사츠마에게 복속된 뒤에 내선일체와 다를 것이 없는일류동조론(日琉同祖論)이 퍼지면서 지배 국가와 동일시하려는 변방의 심리로 나온 것이라 믿기 어렵다. 오히려 류큐의 자존심을 짓밟는 떡밥이다.
  • [3] 참고로 이 왕가가 류큐 왕가의 직계는 아니고, 류큐는 다른 혈통의 왕으로 통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