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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last modified: 2019-02-19 20:10:40 Contributors

文宗

주로 문치에 공적이 있는 군주에게 바쳤던 묘호 [1]

Contents

1. 고려 문종 왕휘
2. 조선 문종 이향
3. 당 문종 이앙
4. 원 문종 보르지긴 투그 테무르
5. 남명 문종 소무제 주율오
6. 청 함풍제 아이신기오로 이주

1. 고려 문종 왕휘

문종(고려) 항목 참조.

2. 조선 문종 이향

문종(조선) 항목 참조.

3. 당 문종 이앙

당의 역대 황제
13대 경종 민황제 이심 14대 문종 헌황제 이앙(李昂) 15대 무종 숙황제 이염

묘호 문종(文宗)
시호 원성소헌효황제(元聖昭獻孝皇帝)
연호 대화(大和, 827년 2월 ~ 835년)
개성(開成, 836년 ~ 840년)
이(李)
앙(昂)
생몰기간 809년 11월 20일 ~ 840년 2월 10일
재위기간 827년 1월 13일 ~ 840년 2월 10일

당의 제14대 황제. 시호는 원성소헌효황제(元聖昭獻孝皇帝). 줄여서 헌황제(憲皇帝).

목종의 차남으로, 당경종의 이복동생이다.

본명은 함(涵)이었으나, 나중에 앙(昻)으로 개명했다. 이복형 당경종이 갑자기 사망하자 환관 왕수징(王守澄) 등의 추대를 받아 황제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올바른 정치를 하고자 고민하여 궁녀 3000명을 출궁하고 오방응견(五坊鷹犬)을 방출하며 불필요한 벼슬아치와 부패 관리들을 1200명을 파직시켜 개혁정책을 폈다. 그러나 곧 문종은 환관들에게 농락당했으며 환관들은 그를 아들 취급하였고 가짜 외삼촌을 등장시켜 황제를 우롱하기도 했다. 문종은 모후의 친척이 많지 않아 비밀리에 외가를 수소문했는데 사실은 외척의 힘을 빌려 환관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 1명은 환관과의 원한관계 때문에 가짜임이 탄로났으며 문종의 가짜 외삼촌은 3명이나 등장하였고 이들은 모두 유배되었다.

그 후 외척의 힘을 빌리는 것은 포기하고 강호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그는 의술에 능통한 정주와 주역에 정통한 점쟁이 이훈을 찾아내는데 둘은 문종의 심복이 되어 정주는 절도사, 이훈은 재상이 되었다. 834년 문종은 정주와 이훈의 힘을 빌려 왕수징의 병권을 회수하고 왕수징을 독살했으며 산남동도감군 환관 진홍지도 불러들여 귀경 도중에 죽였다. 연달아 환관 거물들을 없애자 문종과 둘은 아예 환관세력을 발본색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에 문종은 835년 왕수징의 장례식 때 환관들이 모이면 모두 제거하기로 했는데 공명심에 불탄 이훈은 일을 서둘렀다. 이훈은 "공중의 석류나무에 감로가 내렸습니다."라고 상주문을 올려 길조를 구경하려는 환관들을 모두 제거하려고 했다. 일단 구사량(仇士良)을 포함한 환관들은 모두 모였지만 한약(韓約)이라는 자가 왠지 대경실색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장막이 날아가 어설프게 매복해 있던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놀란 구사량은 문종을 양옆에서 잡고 금위군을 데리고 궁궐 안으로 도주했다. 이훈은 매복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수십명의 환관을 죽였다. 하지만 구사량은 문종을 동상각만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문을 닫아 문종을 인질로 잡고 대치했다. 거기다 다른 환관들도 신책군을 이끌고 반격하며 모조리 죽였다. 결국 이훈, 정주는 참수되었으며 한약을 포함해 600여명의 대신들은 억울하게 주살되었다. 이것이 감로지변으로 구사량은 완전히 실권을 쥐고 온갖 횡포를 부렸다. 원래 감로지변 전에는 예의상 황제에게 공손한 척은 했으나, 이 때부터는 아예 황제를 자기 아들처럼 대했다. 특히 구사량은 관료들 앞에서 폐하는 이러저러한 과실을 하셨다라고 대놓고 모독을 주었다.

하루는 문종이 대신들에게 "짐은 역사상 어느 황제를 닮았다고 생각하시오?"라고 물으니 대신들은 "신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천하의 사람들은 요순같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종은 "그것은 이상하지 않소. 짐은 주나라의 난왕[2]이나 후한헌제보다 못한 것이 아니오? 난왕은 가신인 제후들의 꼭두각시였고 헌제는 대신인 조조의 꼭두각시였지만 나는 노예인 환관의 꼭두각시가 되었으니 난왕이나 헌제보다 나을 리가 있겠소?"라고 하며 울었다. 이에 대신들도 엎드려서 울었다. 문종은 840년 병으로 대명궁 태화전에 거처하던 중 사망했다.

신당서에서는 한 마디로 문종을 평가했다. "제왕의 도(道)는 있었지만 제왕의 그릇은 아니었다."라고.


4. 원 문종 보르지긴 투그 테무르

몽골 제국의 역대 대칸
11대 라기바흐 칸 12대 자야야투 투그 테무르 칸 13대 쿠살라 후트그투 칸
13대 쿠살라 후트그투 칸 12대 자야야투 투그 테무르 칸(복위) 14대 린칠반 칸
원의 역대 황제
7대 천순제 라기바흐 8대 문종 투그 테무르 9대 명종 쿠살라
9대 명종 쿠살라 8대 문종 투그 테무르(복위) 10대 영종 린칠반

묘호 문종(文宗)
시호 성명원효황제(聖明元孝皇帝)
칸호[3] 투그테무르 자야아투 칸(ᠲᠥᠪᠲᠡᠮᠦᠷ ᠵᠠᠶᠠᠭᠠᠲᠤ ᠬᠠᠭᠠᠨ)
(圖帖睦爾 札牙篤汗 / 도첩목이 찰아돈한)
보르지긴(ᠪᠣᠷᠵᠢᠭᠢᠨ)
(孛兒只斤 / 패아지근)
투그테무르(ᠲᠥᠪᠲᠡᠮᠦᠷ)
(圖帖睦爾 / 도첩목이)
연호 천력(天曆) : 1328년 ~ 1330년
지순(至順) : 1330년 ~ 1332년
생몰기간 1304년 2월 16일 ~ 1332년 9월 2일
재위기간 1328년 10월 16일 ~ 1329년 4월 3일
1329년 9월 8일 ~ 1332년 9월 2일

몽골 제국의 제12대 카간이자 원나라의 제8대 황제.

무종 카이샨의 차남으로, 천순제를 폐위시키고 즉위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복형 쿠살라가 대군을 이끌고 수도 카라코룸으로 왔고, 투그 테무르는 항복하고서 형에게 양위했다. 그러나 명종 쿠살라가 얼마 후 돌연사해 복위했다.

복위한지 3년 만에 사망. 황후 부다시리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3명이나 있었지만, 유언으로 형 쿠살라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말을 남겨 이후 조카인 영종 린칠반과 원혜종 토곤 테무르가 즉위했다.

원나라에서 가장 학문을 사랑한 호학군주. 그의 연간인 1331년에 대법전 <경세대전>(<황조경세대전>, 皇朝經世大典, 징시 다디안)을 남기니 이것이 훗날 <대명률>, <영락대전>의 바탕이 되는 업적이다. 기존의 당나라부터 내려오던 율법에서 빠진 육부(육조)의 형부와 병부를 확고하게 규정했기 때문으로, 이는 주자의 주례의 영향을 깊히 받은 것이다. 다만 이 경세대전은 오늘날 전하지는 않는다. (이는 명나라 영락제의 영락대전도 마찬가지다.)

또한 비록 원본은 사라졌으나 경세대전의 정전(政典)에서 정벌류(征伐類)의 고려일문(高麗一門)과 예전(禮典)에서의 입조, 공납 등의 기사는 청말 중화민국 시대의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와 원사에서 살펴볼 수 있어 원과 고려 관계를 알아보는데 좋은 사료가 되었다.

백림사의 조주선사 사리탑이 건설된 것도 이 때이다#.

5. 남명 문종 소무제 주율오

남명의 3대 황제[4] 소무제의 묘호.

6. 청 함풍제 아이신기오로 이주

의 제9대 황제 함풍제의 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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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법으로 해당 군주 사후에 제사용으르 들어가는 것이지 생전에 자신이 문종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묘호도 갈수록 인플레 때문에 어지간하면 다 좋은 걸 주는 것은 넘어가자...
  • [2] 주나라의 마지막 왕
  • [3] 몽골식 군주 칭호
  • [4] 비정통인 주이해까지 산입하면 4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