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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last modified: 2017-01-22 20:12:4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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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일대기
2.1. 출생 당시 환경
2.1.1. 부족
2.1.2. 메카의 상황
2.2. 어린 시절
2.3. 청년기
2.4. 각성
2.5. 헤지라(회교, 이슬람 기원)
2.6. 성전(聖戰)
2.7. 귀환
2.8. 정복 이후 죽음까지
2.9. 사후
3. 무함마드와 성경
4. 얘기거리
5. 아랍 남성 이름


1. 개요


<여행의 밤: el-miraj> 16세기 페르시아 세밀화.

아랍어, 페르시아어, 우르드어 : محمد
영어 : Muhammad, Mohamad, Mohamed, Mohammad, Mohammed, Muhamad, Muhamed, Muhamet, Muhammed, Muhammet, Mahammad
라틴어 : Mahometus, Machometus
히브리어 : מוחמד
아람어 : ܡܘܚܡܕ
아제르바이잔어 : Məhəmməd, Məmməd
아르메니아어 : Մուհամմեդ
보스니아어 : Muhammed, Muhamed, Mehmed
알바니아어 : Muhammedi, Muhamet, Mehmet
불가리아어 : Мохамед
벵골어 : মুহাম্মাদ
힌디어 : मुहम्मद
디베히어 : މުޙައްމަދުގެފާނު، މުހައްމަދު
풀라어 : Muhammadu, Mamadou
소말리어 : Maxamed, Muxamed
쿠르드어 : Mihemed
터키어 : Muhammed, Muhammet, Mehmet
바시키르어 : Мөхәммәт
타타르어 : Мөхәммәт
카자흐어 : Мұхаммед
키르기즈어 : Мухаммед
타지크어 : Муҳаммад
카라칼파크어 : Muxammed
투르크멘어 : Muhammet
우즈베크어 : Mohammad, Muhammad
위구르어 : مۇھەممەد
러시아어 : Мухаммед, Магомед
일본어 : ムハンマド
중국어 : 穆罕默德

아부 알-카심 무함마드 빈 압드 알라 빈 압드 알-무탈리브 빈 하심 빈 압드 마나프 알-쿠라이시. 570.04.22~632.06.08. 이슬람교의 실질적인 창시자. 그러나 이슬람교 기준으로는 무함마드가 종교를 '창시' 한 것은 아니므로 이슬람교 신자는 결코 저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무슬림과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1][2]

알라의 25번째 예언자이자 14번째 사도이다. 쿠란에서는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예언자나 사도가 없을 것임을 선언하였다. 예언자와 사도는 혼용되어서 쓰이고 있지만 그 둘의 의미는 다르다. 사도가 예언자보다 더 좁은 개념이며 일반적으로 그냥 예언자로만 일컬어지는 인물들보다 사도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더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예언자는 이전에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면 사도는 예언자의 역할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맡는다고 한다. 무함마드의 경우 무사(موسى, 모세)의 구약, 다우드(داود, 다윗)의 시편, 이사(عيسى, 예수)의 신약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서 예언자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쿠란을 계시받아 전달함으로서 사도의 역할을 다했다.

'코끼리의 해' 에 탄생하였다고 하며 570년인지 571년인지 미상이지만 570년을 유력하게 본다. 태어난 해의 별명인 '코끼리의 해' 는 코끼리 부대의 침공을 받아서 코끼리해라고 한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는 그의 친할아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저쪽 사람들 문화 자체가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쓰는 기준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두자.

오래 전만 하더라도 이슬람권에 대한 무지로 서구식 표기인 마호메트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국립국어원에서도 두 가지 표기를 다 인정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마호메트'라는 표현에는 그를 악마(Mahound)로 여기는 서구의 경멸적 시각이 담겨있다고 여긴다. 유럽 쪽의 악마 바포메트가 무함마드의 이름이 약간 변형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보기엔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으나 무슬림에게는 굉장히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는 두자. 예수악마를 동일한 존재로 볼 때 그냥 참고 넘길 기독교도가 얼마나 되겠는가와 비슷한 의미라고 보자(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예수를 삼위일체로 보고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그냥 위대한 선지자로 보고 있으니까 좀 다르다).

참고로 이슬람교를 숭상하는 모든 문화권에서는 무함마드의 초상화나 그의 동상 같은 것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위 그림과 같이 무함마드가 등장하는 그림이더라도 얼굴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우상 숭배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교에 대한 영화를 보아도 무함마드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영화인 The Message(한국판 제목은 '예언자 마호메트'. 다만 DVD에선 메세지란 원제로 나왔다. 1976년작으로 사막의 라이온 감독이자 할로윈 시리즈 제작자인 무스타파 아카드가 감독했다)에서는 카메라맨이 무함마드인 것 같은 연출을 사용한다. FPS 화면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으로 무함마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2. 일대기

2.1. 출생 당시 환경

2.1.1. 부족

아랍의 역사에서 개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부족이다. 아랍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씨족(부족)에 속하게 되며 이에 속하지 못하면 보호받지 못한다.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혼자 살아남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무함마드는 상어를 토템으로 삼은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씨족으로 태어났다. 가계도는... 하심이 압둘 무탈리브(압드-알 무탈리브)를 낳고 무탈리브가 압둘라(압드-알라)를 낳고 압둘라가 무함마드를 낳았다(족장의 직계혈통이다. 물론 큰 의미는 없다).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는 메카의 으뜸가는 미남이었다. 이 외모를 무함마드가 이어받은 듯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요절했다. 안습. 미인박명도 아니고 그리고 '아미나' 가 빛으로 아이를 잉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빛으로 태어나는 건 예언가의 필수요소인 듯 싶다. 예수를 두고 라틴어로 lumen de lumine(빛에서의 빛), nata lux de lumine(빛에서 난 빛)이라 일컫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리하여 무함마드의 어머니 '아미나' 는 시아버지 압둘 무탈리브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그리고 무함마드가 11살에 할아버지가 죽고 '압둘 미나프(무함마드의 숙부. 후에 아부 탈리브로 불린다[3])' 가 족장이 된다.

이슬람측에선 다윗의 멀고 먼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랑 멀고 먼 사촌이란 이야기.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도 없고 거짓이라고도 증명할 수도 없다(...)[4] 아브라함교 신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2.1.2. 메카의 상황

당시 메카의 인구 구조는 소수의 거상과 절대 다수의 노예(...)가 있었다. 해방 노예라도 사실상 주인이 있는 어쨌거나 노예인 자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장사 혹은 용병 일을 목적으로 온 여러가지 목적의 기독교인(외국인), (가난한)장인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거상과 그지들밖에 없단 소리다. 그리고 이 틈을 타 몇몇 여성들이 상업활동에 뛰어들어 거상이 되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성령을 보내겠다고 선포했는데 이를 이슬람교도는 무함마드라고 한다. 쿠란에 따르면 전대의 선지자가 무함마드를 예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후술한다.

2.2. 어린 시절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죽었고 6살엔 어머니가 죽었고 11살엔 할아버지가 죽어 직계혈통이 끊어져버렸다. 완전 사망 플래그. 직계혈통이 없는 고아라서 족장인 숙부에게 맡겨진다. 상인인 숙부를 따라 아랍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기독교의 성지에서 한 수도승이 무함마드가 성경에서 나온 성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여기서 라술 알라(신의 사도)란 별칭이 붙은 듯 싶다. 그리고 당연히 이야기를 들은 당시엔 깔끔히 무시된 듯하다(...) 이래저래 돌아다니며 무함마드는 말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는데 이게 아마도 '쿠란' 이 성서이면서 마치 시와 같이 된 까닭일 듯 싶다(아랍 사람들이 유난히 시를 좋아한다는 점도 한 이유일 듯하다).

2.3. 청년기

가난한 무함마드는 나이가 무려 25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다. 사촌에게 청혼한 적 있지만 퇴짜맞았다. 당시 기준엔 이상적인 결혼이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는 상단의 주인 하디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하디자는 부유한 미망인이었으나 40대라 무함마드랑 워낙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5] 무함마드의 씨족은 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결국 누님 하디자의 적극적인 구혼에 넘어갔다.

그녀와의 결혼 이후 무함마드의 인생은 고속도로를 피게 된다. 다만 대를 이을 아들은 없었다(아들을 낳긴 했지만 일찍 죽었다). 대신 양자를 들여 잇게 했다고 한다.

2.4. 각성

하디자의 후원하에 명상에 전념하게 된 무함마드는 610년에 메카 교외의 히라 산의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의 계시를 받는다. 갑자기 지브릴이 나타나 무함마드에게 '읽어라!' 라고 소리치자 벙찐 무함마드는 '나는 문맹이라 읽을 줄 모릅니다' 라고 하자 지브릴이 무함마드를 세게 껴안은 후 '읽으라!' 를 두 번 반복하였다.

그리고 정말 갑자기 개종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이 40대의 아저씨가 되고 난 뒤에. 우선 아내인 하디자(55세), 두 양아들, 친구 아부 바크르 등 우선 가까운 사람부터 포교했다. 그의 포교 정신은 부자, 명문가의 딸, 가난뱅이 등 가리지 않았으나 자신의 씨족만큼은 제대로 포교할 수 없었다. 그가 포교하지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숙부는 키운 정인지 무함마드를 씨족 단위로 지켜주었다. 사람들이 탄압을 하려고 할 때마다 니네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하심 가문이 단체로 일어설 거임! 라고 무함마드를 커버해줬다[6].

그리고 그가 이슬람교를 이야기하는 동안 공공의 적이 되어 아내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보이콧 대상이 되어 파산하였다. 당시 순례는 상인들의 짭짤한 소위 대박상품이었다. 그런데 이슬람교가 우상 숭배를 금하면서 당시 성행하고 있던 수많은 다른 종교의 우상 숭배와 순례행위를 규탄했으니 당연히 이슬람교는 탄압 대상일 수밖에.[7]

거기에 파산의 영향으로 아내 하디자가 향년 65세로 죽고 이틀 후 숙부 아부 탈리브가 죽었다. 즉, 무함마드는 이틀만에 2명의 강력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셈. 그리고 아브 라합이 족장이 되었는데 이 사람은 그다지 무함마드에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무함마드는 씨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 기준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

2.5. 헤지라(회교, 이슬람 기원)

야스리브라 불리는 땅이 있다. 비옥하고 기름진 이 땅은 아라비아에 토착한 히브리인, 아라비아 부족 등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당장 내일을 보장할 치안이 없었다. 당장 같은 아랍 부족들끼리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 끝에 이슬람의 무함마드를 중재자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를 초대했고 이것이 헤지라이다.

출발날 당일 밤에 무함마드의 침대가 습격받았지만 무함마드 측은 이미 이를 예상해 무함마드를 대피시킨 상태였다. 습격 당시 침대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양자인 알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신 누워있었다. 습격자들은 낚였다는 걸 알고는 분노했지만 알리를 죽이진 않았다.

알리의 희생과 여러 친구들 덕분에 무함마드는 야스리브의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낚시를 했으나 메카인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그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그들이 숨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준 거미, 그들이 숨은 곳에 둥지를 튼 비둘기 등의 여러 기적 덕에 메카인들로부터 간신히 탈출해 야스리브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야스리브의 이름은 '마디나트 안 나비(선지자의 성읍)'로 바뀌었는데 영어로는 메디나라고 불리는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이때 타고 입성한 낙타의 이름인 '카스와(Qaswa, 뜻은 '귀의 1/4이 잘린')'까지 역사에 남았다.

그곳에서의 삶도 험난했는데 이슬람교도인 척하는 위선자들(무나피쿤) 등이 여러가지 암적 요소로 작용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딱히 차별하지도 않았으나 이것이 결국...

2.6. 성전(聖戰)

비록 메카로부터 탈출해 땅을 얻었으나 원주민들에게도 갑자기 증가한 인구는 부담이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갑자기 줄 땅이 땅에서 솟아날 리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굶어야 했다. 결국 선지자 무함마드는 특단의 조치로 약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곧 메카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625년 봄 3,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온 것이다. 메디나 근처 오호드 산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무함마드가 1,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대항했다. 그러던 중 위선자 300명이 탈영해 버렸지만 기세로 메카인들을 몰아넣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팔려 진영이 무너졌고 역공당해 패배했다.

결국 메디나에서의 입지까지 위험해져 버렸다. 유대인, 위선자, 이민족 등이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시인은 메카에 항복하고 무함마드의 목을 팔자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627년 메디나를 향해 온 메카의 1만 명의 원정부대와 3천의 무함마드의 부대가 참호전을 펼쳤고 기적의 모래바람 덕분에 승전했다. 기적이다. 기적.

그리고 반역자 청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투 중 메카의 편을 든 1,000여 명의 유대인, 메카에 항복하자고 말한 시인(2년 전 일이었는데!) 등을 철저히 응징하였다.

628년엔 도망간 유대인들을 추격해 덤으로 유대인의 도시에서 조공을 받게 된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과거엔 베두인족에게 바치던 것을 이슬람교인들에게 바친 걸 볼 때 이거나 저거나 큰 차이는 없는 모양.

2.7. 귀환

628년 무함마드는 메카에 '순례' 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메카와의 협상 끝에 3일 동안의 메카 체류를 허락받았다. 그 다음해인 629년엔 자신의 씨족과 화해하였고(아브 라합이 죽은 터라 수월하였다) 630년엔 이슬람교도의 죽음을 이유로 1만 군대를 이끌고가 메카를 무혈 정복하였다. 그 후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카바 성전을 이슬람의 성소로 선포하였다.

이로서 그는 통치자가 되었다.

2.8. 정복 이후 죽음까지

귀족들에게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귀족 자리도 없다고 협박한 끝에 귀족들이 모두 이슬람교도가 되었고 소위 이슬람 법전이라 할 만한 신앙고백, 기도, 지즈야, 순례, 금식 등 이슬람 기본 5개조를 포함한 규칙을 공포했다.

그는 메카 정복 이후 신의 사도라는 지위를 빌려 인간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존재나 절대군주가 될 수 있었으나 오히려 평범한 지도자이기를 자처했다. 그는 왕관을 쓰지 않았으며 옥좌 대신 마룻바닥에 앉아 통치했고 스스로 옷과 신발을 고쳐 입었으며 대추야자와 보리빵을 즐겨먹는 소박하고 겸손한 인간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에 대해서는 근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탐욕스럽고 호색하며 편협하고 잔인한 혹세무민의 정복자 정도로 폄하되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개혁 운동가로서의 면모와 박애주의, 인자, 중용, 인내, 용맹 등을 겸비한 인격자로서 재평가받고 있다.

무함마드는 검소하기로 유명했는데 통치자가 되고 나서도 거친 깔개 위에서 잠을 청했고 한 되도 안되는 보리와 물, 약간의 대추야자로 끼니를 때웠으며 그가 죽고 나서 남은 것은 생전에 끌고 다니던 당나귀 한 마리와 죽고 나서 기부하기 위해 남겨놓은 약간의 땅밖에 없었다고 한다. 뒤에 2대 칼리프가 되는 우마르는 무함마드의 이런 생활상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로마페르시아의 왕[8]은 현세를 즐기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알라의 사도이신 당신께서는 이런 보잘 것 없는 것들만 가지고 계신다' 라고 말하자 '그들이 누리는 것들은 보잘 것 없는 현세의 향락의 일부일 뿐이다. 내세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은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특별한 것들이니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 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다만 종교의 창시자답게 다소 독선적인 면은 있어서 유대인들과의 종교 논쟁에서 여러 번 논파당하자[9] 예루살렘을 향해 절하던 규칙을 메카 방향으로 바꾸는 등의 땡깡은 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공포한 규칙과 법의 수호자였다.

그 후 632년 마지막 메카 순례를 마치고 메디나로 돌아온 뒤 건강이 악화되어 그의 자택에서 애처 아이샤가 보는 가운데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검소하게 장례를 치뤄 오늘날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에 묻혀있다.

다만 한국에서 그의 최후가 좀 잘못 알려진 게 있는데 '그가 죽었을 때 승천했다' 라는 잘못된 정보가 있다. 승천 전설 (미라즈 전설)은 그의 죽음이 아니고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의 도움으로 메카에서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바위의 돔)을 경유하여 천국에 승천 한 뒤 여러 옛 예언자들을 본 후 계시를 받고 다시 돌아온 전설을 말한다. 햇갈리지 말자.

2.9. 사후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추종자들이 중세 최고의 제국을 만들 줄. 그의 사후 이슬람교칼리프 통치 체제가 되었고 우스만 이븐 아판의 사후엔 시아파수니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고작 20여 년 만에 그 방대한 아라비아 반도를 손에 넣었고 이것은 전설이 되었다. 그 손에 의해 중세 최고의 제국이 태동하였다.

시아파아바스 왕조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알리의 사후엔 무함마드의 후손에게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며 무함마드의 혈족 하심 가도 이를 주장한 세력 중 하나였다. 오스만 제국 이후에도 이들은 종교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근대에 영국에 의해 세워진 이라크, 요르단의 국왕은 하심 가의 일원이다.

3. 무함마드와 성경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이미 성경에서 등장이 예언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성경 신명기 18장 18절의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가 무함마드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예수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슬람은 무함마드와 모세의 공통점이 더 많다는 점을 들어 이를 부정하고 있다.[10]

또한 무슬림들은 성경 이사야서 제 29장 12절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에서 천사 지브릴이 무함마드에게 '읽으라' 라고 했을 때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라고 대답함으로서 성경이 무함마드의 계시를 완벽하게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4. 얘기거리

저서로는 23년간 알라께 받은 계시들을 기록한 책인 쿠란이 있다. 물론 본인이 직접 쓴 건 아니고 구전되던 내용들을 나중에 모아서 책으로 낸 것.(논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예수가 신약성서를 기록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이치.

쿠란의 시적 구조 덕분에 그는 종종 시인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아니라고 했다. 쿠란은 아랍이 낳은 최고의 문학 중 하나라고 한다.

단테신곡에서는 기독교를 분리/내분시켰다는 이유로 지옥에 있다.[11]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단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 사기 지옥에 있다는 것. 이런 서술로 볼 때 그 당시에도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연장으로 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어떤 직위건 히스토리를 볼 수 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의 칼리프 직위 계보를 보면 다른 칼리프들은 다 그냥 랜덤생성 얼굴이지만 무함마드만은 정말 종교적으로 적절하게 구현되어 있다. 역설사의 역덕 기질이 정말 잘 발휘된 부분.

그의 아내는 2자리 수이며 그의 아내 사랑은 당시 아랍의 모범(!)이었다. 공평히 사랑했다나 뭐라나. 철저히 평등의 이름 아래 매일밤 한 명씩의 여자와 잤다(...) 정력 킹왕짱 선지자.

쿠란의 의하면 4명의 아내만을 가지라 했지만, 정작 선지자는 4명이 훨씬 넘는 아내를 가졌다(...).

0.첫 아내 하디자 빈트 후와일리드(خديجة بنت خويلد) : 사이가 좋았던 걸로 유명. 무함마드는 그녀의 생전엔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1.사우다 빈트 자마(سودة بنت زمعة)
2.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عائشة بنت أبي بكر‎)
3.하프사 빈트 우마르(حفصة بنت عمر)
4.자이나브 빈트 후자이마(حفصة بنت عمر)
5.힌드 빈트 아비 우마이야(هند بنت أبي أمية)
6.의붓아들의 부인(!)이자 무함마드의 고종사촌 자이나브 빈트 자흐시(زينب بنت جحش)
7.주와이리야 빈트 알-하리스(جويرية بنت الحارث)
8.몇몇 유대인 부족 정복 중 얻은 라이하나 빈트 자이드(ريحانة بنت زيد)
9.역시 유대인 정ㅋ벅ㅋ 중 얻은 유대인 여자 사피야 빈트 후야이(صفية بنت حيي)
10.라믈라 빈트 아비 수프얀(رملة بنت أبي سفيان)
11.이집트 콥트 정교 신자 마리아 빈트 샤문(مارية بنت شمعون)
12.삼촌의 처제 마이무나 빈트 알-하리스(ميمونه بنت الحارث)

이중 일부는 입지적인 의미에서(첫 아내인 사우다나 8살의 아이샤), 일부는 과부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얻은 아내이지만, 일부는 개인의 정욕을 따른 결혼이였다.

이를테면 9번째 아내인 사피야 빈트 후야이는 본디 유대인 부족인 카이바르의 부족장인 케나나 이븐 알-라비(Kenana ibn al-Rabi)의 아내였으나, 정복전쟁의 일환으로 카이바르를 점령한 무함마드는 케나나를 고문해서 살해하고 가장 젊은 아내인 사피야와 결혼한다. 자이나브도 아들의 부인에게 정욕을 품고 결혼한 경우. 이슬람교도들은 자이나브와의 결혼을 '가장 선한 인간' 무함마드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 중 가장 커다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존 아랍의 전통을 깨고 부인을 딱 4명까지만 가지라 하였고[12] 여성의 유산상속권을 허락했다. 이는 현재까지 이슬람교의 규칙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워낙에 여기저기에 이 규칙을 멋대로 왜곡해 무함마드 이름과 코란을 팔아먹는다.

그외 법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반복을 금지했고 이자 금지, 간음에 대해서는 4인의 증인을 요구하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법이 많았다. 그리고 간통을 했다고 돌팔매로 여자를 죽이는 당시의 관습(이건 아직도 하는 곳이 있다... 물론 종교의 이름으로)과 다르게 그냥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고 말하며 히잡을 씌웠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무함마드는 생전에 무에자(معزة)란 이름의 고양이를 대단히 아꼈다고 한다. 기도를 하던 도중 무에자가 와선 옷자락 위에서 잠이 들자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다며 옷자락을 잘라내곤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이슬람 교도들 중 상당수는 고양이를 애호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무함마드가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 쪽으로 갔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있고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비잔티움의 첩자처럼 아랍 세력이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되어 비잔티움 제국이 유럽과 중동을 제패했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지만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그랬더라면 아랍 기독교와 유럽 기독교가 여전히 서로 이단이라며 죽어라 싸우고 있으며 역사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리라는 주장을 한다. 어느 유럽 대체역사소설에선 과거로 간 기독교 과학자가 무함마드를 만나 자신이 가브리엘이라고 속여(첨단 기술을 동원) 그가 기독교 목사가 되게 하는데 미래로 와보니 9.11은 아랍 기독교 과격파로 달라진 것 뿐인 탈레반이 일으켰고 여전히 미국이 아랍에 주둔하며 미국과 유럽은 아랍 기독교와 원수지간이 되어있었다. 결국 무함마드를 개종시키더라도 역사를 바꿀 수 없었다고 과학자는 절망하며 끝난다.

5. 아랍 남성 이름


그의 이름은 아랍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붙이는 가장 인기 있는 이름[13]이며 의미 자체는 아랍어로 '찬양함·칭송함'을 의미하는 حمد(ḥammada)에서 온 것으로 '찬양받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14] 보통 장남은 대부분 이 이름이다(...) 아랍 문자로는 محمد라고 쓰며 모음을 붙여 쓰면 مُحَمَّدٌ(/mʊˈħæmmæd/)로 표기된다. '함'으로 표기되는 ˈ/ħæm/' 발음은 '무성 인두 마찰음'이라고 하는데 쉽게 예시를 들자면 가래 뱉을 때 내는 '카' 소리를 'ㅋ'이 아닌 'ㅎ'이라고 해보면 안다. 정 모르겠으면 EBS 제2외국어 아랍어를 들어보면 된다.

이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총재 무함마드 유누스, 전 복싱 선수 무함마드 알리, 스파이였지만 유능한 학자인 무함마드 깐수(정수일), 셰이크 무함마드 두바이 국왕,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물라' 는 이름이 아니라 이슬람 성직자에게 붙는 칭호다.), 무함마드 압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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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슬람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무슬림은 아담(آدم)과 하와(حواء)이다. 성경에 따르면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로 아담과 하와는 아라비아에 정착했으며 특히 메카는 주요 예언자들이 다녀간 곳으로 여겨진다. 가령 메카 근방에 있는 '잠잠' 이란 샘물은 모세가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을 때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메카의 중심부인 카바 사원에 있는 검은 돌은 아담과 함께 내려온 운석이라고 여겨진다.
  • [2] 사실 이건 아브라함계통의 종교라면 다 마찬가지이긴 하다.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창시자라고 하지 않으며 흔한 기독계열 사이비 종교도 교주를 창시자라고는 안한다.
  • [3] 아랍 사람들의 아들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예이다. '~의 아버지' 란 뜻의 아부(ابو) 뒤에 자신의 아들 이름을 넣는다. 즉 '탈리브 아범' 이라는 의미.
  • [4] 거짓이다. 만약 무함마드와 예수가 같은 핏줄이라면 무함마드는 당연히 생우 일주일 안에 유대인 회당 시나고그에서 할례를 받았어야 했었다. 하지만 무슬림들에게는 놀랍게도 무함마드는 40살이 넘어서야 할례를 받았고 이 이유는 유대인 공동체에 들기 위해서였다. 신약 성서에 의하면 예수도 난지 3일만에 회당에서 할례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다.
  • [5] 하디자의 나이가 40세보다는 좀 더 젊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녀는 무함마드와 금슬이 좋아 6남매를 두었는데 출산 연령을 고려할 때 40대 여성이 아이를 무려 6명이나 낳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까진 아니더라도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 [6] 아직도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가문간에 허락 없는 살인이 나면 대를 물려서 복수한다. 놀라운 것은 그 일부에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남부 시골의 아주 극소수 지역에서만이지만.
  • [7]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설파하자 사람들이 무함마드에게 침을 뱉고 흙을 뿌리며 욕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무함마드가 기도 중에 우크바 이븐 아비 무이드라는 자가 다가와서 무함마드의 목을 졸라 죽이려다가 아부 바크르의 제지로 실패한 적도 있었다.
  • [8]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거대 제국의 대명사인 로마나 페르시아의 왕을 막강한 권력과 부귀를 누리는 세속 권력자의 대명사로 사용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당시 아랍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한 것이다. 무함마드와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면 육상 인접국가는 동북쪽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서북쪽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이 된다.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선비가 왕 앞에서 중국일본을 거론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비유였다는 것. 현대 까지도 이슬람권에서 '로마'하면 지정학적으로 그 이탈리아의 로마도 되지만, 역사학적으로는 주로 비잔티움을 일컬는다. 비잔티움 제국 본인들이 스스로를 로마 제국과 단절이 없는 연속체로 보았으며, 이 당시만 하더라도 콘스탄티노폴리스쪽에서 들고 간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들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막장이 된 서로마 제국과 달리 로마의 번영과 영광을 더 잘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랍인들과 이들을 이어 이슬람권을 주도하게 된 튀르크인들 또한 비잔티움=로마란 주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터키에서 그리스 공화국의 시민인 그리스인들은 yunan이라고 부르지만, 아나톨리아 내에 역사적으로 살던 그리스인들은 로마에서 딴 rum이라 부르는 것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9] 유대인 율법학자들 시선에선 '웬 아랍인이 요상하게 변형한 유대교' 를 상대하느라 좀 잔인하게 찍어눌렀을 것이긴 하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유대교 교리에 그다지 박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 [10] 무함마드와 모세는 부모가 있었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었고 자연사했지만 예수는 성적 관계 없이 기적으로 잉태되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에 의해 승천(기독교에서는 죄를 뒤집어쓰고 죽음)하여 모세와 예수는 매우 차이가 많다는 점이다.
  • [11] 역사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독교 역시 파생 종교인 건 맞지만 순서로 따지면 어찌됐든 기독교 기준으론 이슬람은 신흥 종교니까.
  • [12] 이슬람은 일부일처제가 원칙이다. 그러나 아내들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4명까지는 가져도 좋다고 한 것. 근데 사람 특성상 이게 불가능한지라 이슬람 법학자들은 웬만하면 그냥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2명 이상의 부인을 가진 사람들은 약 2%도 되지 않는다. 사실 그놈의 지참금 문화 때문에 돈을 못 내서 결혼을 못하는 모쏠 남자들이 이슬람 세계에선 흔하다
  • [13]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한 이름이라고 한다. 참고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가 가진 성씨는 리(李)라고.이 둘이 합쳐진 무함마드 리는 중국계 회교도나 회족말고는 없을 듯
  • [14]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는 그리스어 에페네토스(Ἐπαίνετος)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