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무하마드 알리

last modified: 2016-06-04 20:35:51 Contributors


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챔피언이 되면

나는 낡은 청바지와
낡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로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시골 동네에 갈 것이다.

거기서 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작고 귀여운 여우 같은 여자를 한 명 찾아낼 것이다.

난 그녀를 백만 달러가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진
25만 달러짜리 내 집으로 데려가서
내 캐딜락과 수영장을 보여 줄 것이다.
비 올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실내 수영장까지도.

그런 다음 그녀에게 말하리라.

"이건 모두 네 거야. 왜냐면 넌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 무하마드 알리(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中)"


197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제키 스튜어트 무하마드 알리 피트 로즈

Muhammad Ali. 미국 출신의 권투선수.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태생.
키 191cm, 리치 200cm. 통산전적은 56승(37KO) 5패. 2016년 6월 3일 서거.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2.2. 최고의 복서
2.3. 해가 지다
2.4. 서거
3. 흑인 인권 운동가
4. 기타


1. 소개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2세(Cassius Marcellus Clay, Jr.). 줄여서 캐시어스 클레이. 1975년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무슬림 이름인 무하마드(또는 무함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아마추어 복서 출신으로 1960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그 금메달이 흑인을 멸시하는 현실을 바꿔주진 않는다는 데 좌절하고 금메달을 호수에 던져버린 뒤 프로로 전향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금메달을 찾으려고 잠수부들이 여럿 동원되었고 익명의 팬이 거액을 내걸어서 사람들이 많이 노다지를 찾고자 호수 밑바닥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대신 새로운 금메달을 증정받았다.

2.2. 최고의 복서

권투계 역사상 가장 성공했고 가장 유명한 권투선수라 할 만한 사람으로 근 20년간 활약하며 수많은 권투영웅들과 경기를 벌이며 70년대 세계 권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사람을 교묘하게 비웃고 도발하는 엄청난 말빨로 유명했으며 그 유명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가 그의 명언이다. 원래 경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허세였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전술이 되었다. 복싱과 마케팅과 선수의 캐릭터를 일치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유명하며 특히 언론 플레이를 통한 유리한 매칭 업은 나중에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플로이드 메이웨더 같은 놈들이 악용한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캐시어스 클레이 시절 브라이언 런던과의 경기 영상. KO를 얻어내는 펀치 소나기를 보면 북두백열권이 따로 없다. 3초에 11개의 펀치를 꽂아넣는데 이 사람 헤비급이다(...) 그 외에도 특유의 노 가드 오픈 스탠스와 무빙도 확인 가능.

현란한 스텝으로도 유명한데 아예 알리 스텝이란 풋워크도 따로 있다. 다른 스텝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하여 복싱은 물론이고 종합격투기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다. 조 루이스에 의하면 이소룡도 알리를 존경하여 수련의 90% 이상을 이 풋워크 연습에 투자하였다고 한다. 페르소나 4에서 얼리댄스로 오역된 무속성, 빛속성, 어둠속성 제외 회피율을 두배로 올려주는 기술의 제대로 된 번역이 알리 댄스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징병 거부를 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3년 5개월간 경기를 치루지 못했다. 이에 법정 싸움 까지 갔는데, 이 긴 법정싸움 이후 전성기의 나이가 지나 육체적으로 노쇠하였다. 법정싸움 기간 동안 링 위에 서지 못한 그는 알리만의 경쾌한 스텝인 '알리 셔플' 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며 반사신경만으로 회피하던 노 가드 전술을 버리게 되었다. 그의 전성기를 벗어나 그의 경력 중반기에 그와 대결한 선수들은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등 모두 시대를 초월해 최고로 인정받는 돌주먹들이었다. 하지만 알리는 이른바 'Rope-a-dope' 전술을 고안, 로프의 신축력으로 펀치의 충격을 흡수하는 전술로 프레이저와 포먼을 모조리 쓰러뜨린다. 특히 인간병기 조지 포먼을 박살낸 "The Rumble in the Jungle" 은 아직까지도 복싱 역사상 최대의 파란으로 불린다. 당시 조지 포먼은 압도적인 챔피언이고 지금도 헤비급 역사상 손꼽히는 강타자였다. 그리고 알리 직전에 꺾은 조 프레이저 역시 헤비급 역사에 꼽히는 인파이터인데 포먼은 프레이저를 상대로 어린애 다루듯 패버려서 이긴 그야말로 인간 괴수였다[1]. 반면에 알리는 전성기에도 강펀쳐는 아니었고 주무기였던 스텝과 빠른 눈도 잃었고 자기 관리 실패로 인해 체중도 많이 나갔던 상황이었다. 그러고도 이겼다.(...)

▲ 프로 권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조 프레이저와의 혈투 트리뷰트.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 경기는 경기 전 신경전도 대단했고 경기 내용도 처절했는데 체육관 냉방 시설마저 고장나서 선수들 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마저 지칠 대로 지쳤던 경기.

알리의 커리어는 복서가 어떻게 진화하고 노화에 대처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이전 세대의 복서들은 자신만의 장기를 극대화하여 난타전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주로 택했다. 현대복싱의 선구자인 슈거 레이 로빈슨은 이 전략의 정점에 서있었다. 알리는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을 모두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았고 아마추어 복싱부터 다져진 풍부한 경험을 통해 상대 우위에 서있는 점을 잘 이용했다. 알리의 하이라이트 영상 등에 잘 나오지만 초창기 알리는 빠른 스텝과 레프트를 이용해서 상대를 제압하고 순간적인 컴비네이션으로 다운을 따냈다. 그러나 몇몇 경기에서는 카운터 복서, 혹은 스위머 스타일 역시 잘 구사했다.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는 스텝을 잃고 대신 위에 나온 rope-a-dope라거나 스핑크스와의 재대결에서 보여준 라이트 퍼스트 전략 등 고정적인 스타일로는 소화할 수 없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복싱사적인 관점에서 알리의 위치가 상당히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능형 복서' 의 프로토 타입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만화와 달리 현대에는 반쪽짜리 복서[2]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졌고 이 트렌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알리다.

2.3. 해가 지다

그의 권투신화는 1978년 2월 15일 레온 스핑크스에게 패하면서 저물기 시작했다. 이때 상실한 WBC, WBA 헤비급 타이틀 중 WBA 타이틀은 같은 해 9월 15일 다시 레온 스핑크스와의 설욕전 끝에 탈환했으나[3] WBC 타이틀은 끝내 탈환하지 못했고 이후 이전의 영광은 찾지 못하고 1981년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선수 생활을 하며 얻어맞아 생긴 펀치드렁크 증후군[4]으로 말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파킨슨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5]. 전성기 때 엄청나게 떠벌이였던 그가 더듬거리며 말도 잘 못하게 되었으니 팬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지 짐작이 간다.

2.4. 서거

그 뒤 후술하는 것처럼 사회운동가로 활동해 오다가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결국 2016년 6월 3일에 가족들이 병상을 지켜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서거 소식은 전 세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특히 알리가 복서로서 보인 재능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촉구하며 이어간 투쟁, 병마에 굴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 등을 재조명했다. 또한 미국의 정치인들과 전 세계 스포츠 관계자들도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3. 흑인 인권 운동가


흑인인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함께. 여자아이들은 모두 맬컴 엑스의 딸들이다.

권투 이외에도 196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흑인 인권운동에 동참하여 미국 흑인들의 권익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이유로 일부러 1974년 조지 포먼과의 대결 때는 아프리카 콩고의 킨샤사에서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징병 거부를 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3년 5개월간 경기를 치루지 못했다.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법정싸움에 대한 와전. 당시엔 미국 사회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나 법정 공판에서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 라는 외침으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끝내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현재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으로 불리기도 한다.

4. 기타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딸 라일라 알리도 여자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했고 세계 챔피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그 아버지에 그 딸임을 보여주었다. 라일라는 2007년 이후 은퇴한 상태. 방송 진행자 등의 일을 하는 듯하다. 여담으로 라일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베로니카 포셔 알리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흑인은 못생겼다, 추하다' 는 잘못된 생각이 판을 치던 당시에도 흑인 여성 베로니카의 미모는 수준급이라 엄청난 관심을 끌었는데 라일라는 다행히도 어머니의 얼굴을 많이 닮았다. 즉 라일라 본인도 꽤 미인이다. 라일라 알리의 최근 모습, 무하마드 알리와 베로니카. 라일라도 아디다스 광고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서 웬만한 남자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때는 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등장. 원래는 올림픽 오륜기 게양식에 같이 참가하려고 했지만 건강상 문제로 오륜기를 만져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알리>에서 윌 스미스가 맡아서 알리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다.[6]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30분 가까이 삭제하고 개봉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극장에서 외면당했다. 욕 먹을 만 하지

  • 이 사람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가 바로 아폴로 크리드. 록키의 라이벌(?) 바로 그 흑인이다. 당시 영화를 찍을 때 스타 중의 스타였던 알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는 록키를 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으며 심지어 스텔론에게 헌정하는 시를 써서 바치기까지 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진짜 아폴로 크리드다!!" 라면서 뛰쳐나와 스텔론과 스파링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보러가기. 시침 뚝 떼고 도망가는 록키

    생각해보면 록키에서 아폴로 크리드는 챔피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무명 복서였던 록키에게 도전할 기회를 준 대인배에 록키와 명승부를 펼친 훌륭한 복서였으니 무하마드 알리의 신경을 크게 거슬리게 할 것도 없었다. 딱히 있다면 록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방심했다가 훅 갈 뻔한 장면 정도?

  • 이탈리아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무함마드 알리는 수박을 파먹으면서 연신 트림을 하는 등 매우 무례한 태도로 팔라치를 맞았다고 한다. 팔라치는 두번째 트림을 하는 것까진 참았으나 알리가 세번째 트림을 하자 그의 얼굴에 마이크를 집어더지면서 "이런 무식한 촌놈이 챔피언이라니!"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간이 부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팔라치는 호메이니 면전에서 차도르를 짓밟고 덩샤오핑 앞에서도 어디 때릴테면 때려보라고 했고 키신저보고 고자라고 욕을 퍼부었던 사람이다. 결국 간이 부은 건 맞다는 건가? 사실 부은 정도를 떠나서 이미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

  •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인 박정희도 그의 열렬한 팬이어서 한국에도 방문한 바 있다.
----
  • [1] 실제 경기에서 더킹 상태의 프레이저에게 레프트 어퍼를 쳐서 양 발이 공중에 뜨게 만든 적이 있을 정도다.
  • [2] 인파이팅만 한다거나 아웃복싱만 한다거나 철저하게 카운터 전략만을 쓴다거나 하는 고정적인 전략에 매몰되는 복서 타입.
  • [3] WBC 타이틀은 레온 스핑크스가 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다음 경기를 지명 도전자인 켄 노턴이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와 다시 붙겠다고 선언하면서 규정위반으로 박탈되었다.
  • [4] 직역하면 '펀치(punch)에 취하다(drunk)' 란 뜻으로 지속적으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뇌세포가 차츰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후유증이다. 복싱선수나 미식축구 선수들과 같이 머리에 지속적인 충격을 받는 운동선수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 [5] 알리의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 증후군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알리는 많이 맞아본 복서도 아니고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와 밀접한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 [6] 극장 수익으론 해외 수익까지 다 합쳐도 제작비도 못 건졌다. 그나마 DVD 같은 2차 판권 시장은 꽤 괜찮게 팔려 수익을 거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