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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살리나 발레리아

last modified: 2014-01-09 00:36:12 Contributors

로마 제국의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황후, 서기 25년~48년.

본격 로마 제국의 어우동

16세의 어린나이에 50대의 별볼일 없는 절름발이 황족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했으나 곧바로 당시 황제 칼리굴라가 갑작스레 살해당하여 클라우디우스가 황위에 오르자 황후가 된 여자이다. 하지만 황후가 되고나서 사치를 일삼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황후로도 기억되고 있다. 보통 로마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방탕하고 음란한 황후라는 평가를 내린다. 클라우디우스와의 사이에서 1남 1녀(옥타비아, 브리타니쿠스)를 낳았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된 건 어느정도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잘못도 있었다. 이제 막 혈기왕성한 나이였던 황후를 50대의 황제는 사실상 방치해두었고 자기 아내가 뭔 짓을 해도 그저 무관심했다고 한다. 거기에 황후였던만큼 주변에서 그녀를 제어하고 훈계할만한 사람들도 마땅치 않았다. 그녀에게 충고를 했다가 살해당한 사람들도 있었으니...이런 환경에 메살리나 본인의 물욕와 허영심, 탐욕(특히 성욕)이 겹쳐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오는 것이다.

그녀의 기행은 지금도 여러가지가 전해오는데 대표적으로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을 기념하는 개선식에 보란 듯이 참가해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당시 개선식은 전쟁에 참가한 장군과 휘하 병사들에게만 주어졌고 제정시기에 들어와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할수 있는 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브리타니아 정복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어린 황후가 마치 자기가 주인공인마냥 대놓고 설치고 다닌것이다.

여기에 금전욕이나 물욕도 강해서 사치도 꽤나 심했는데 단순 사치만 심한 정도가 아니라 한번 눈독을 들인 재물은 갖가지 음모를 짜고 누명을 씌우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가로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악명을 높인것은 정도가 심한 불륜행각과 성욕의 분출이었다. 뭔 짓을 해도 황제가 그녀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채자 그녀는 곧바로 쾌락에 몸을 던졌고 궁정 안의 은밀한 방을 밀회 장소를 만들어 애인들과 육욕의 향연을 벌였다, 심지어 클라우디우스의 해방노예 비서들도 가까이했다고 한다.[1] 물론 황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또 자기가 마음에 든 원로원 의원 아피우스 실라누스가 그녀의 유혹을 거부하자 황제를 부추겨 죽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이런식으로 그녀의 모함을 받아 죽은 원로원 의원들 때문에 황제와 원로원 사이가 나쁘게 흘러가기도 했다.

그녀를 둘러싼 얘기들 중에선 애인들과의 정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궁궐을 몰래 빠져나가 고급 매춘부로 나섰다는 얘기도 있으며 심지어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그녀가 아예 천민들이 이용하는 최하층 매음굴에서 창녀로 날이 밝을때까지 여러 손님을 받으면서 온갖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과감하게 남근의 고리가 달린 '류카스카'라는 문패까지 걸어놓고 손님을 받았다고. 물론 과장된 이야기일수는 있으나 이런 얘기가 시중에 돌 정도였다면 그녀의 방종에 대한 당대 마인들의 시각이 어땠을지 능히 짐작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데 원로원 의원인 가이우스 실리우스와 궁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참금까지 낸 결혼식을 강행했다는것. 거기에 황후가 실리우스와 음모를 꾸며 황제를 살해하려 했다는 서신 담당비서 나르키수스의 밀고까지 나와버렸다. 황제는 실리우스에게는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메살리나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렸던지 자꾸만 처벌을 미뤘고 결국 클라우디우스의 측근들이 루쿨루스 별장에 숨어 있던 황후를 찾아내 칼로 찔러 죽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스물세살이었다.

그녀의 소생들도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다, 딸인 옥타비아는 어머니와 달리 착하고 현명했으며 정숙한 여인으로 이름이 높아 로마인들의 동정과 사랑을 받았으나 남편이었던 네로에게 냉대를 당한끝에 간통누명이 씌워져 죽임을 당했고 아들인 브리타니쿠스 역시 네로의 황위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말에 따르면 현대 이탈리아어에서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아무 남자와 동침하는 몸가짐이 헤픈 여자'의 대명사로 쓰인다고 한다. 흠좀무

그녀의 이런 악행들은 타키투스, 카시우스 디오, 수에토니우스 등 로마 역사가들의 저작에 실려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런 방탕한 요부 이미지는 후대의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도 했고 그녀를 소재로 한 그림들도 꽤 그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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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러다 해방노예 비서진의 일원인 폴리비우스가 죽임을 당하자 관계가 틀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