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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로 카모라네시

last modified: 2015-02-06 13:45:46 Contributors


이름 마우로 헤르만 카모라네시(Mauro Germán Camoranesi)
생년월일 1976년 1월 1일
국적 이탈리아
출생지 아르헨티나 탄딜
포지션 중앙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 윙, 윙포워드
신체조건 174cm, 70kg
소속팀 토스 라구나(1996~1997)
CA 반필드(1996~1997)
CDSC 크루스 아술(1998-2000)
헬라스 베로나(2000-2002)
유벤투스 FC(2002-2010)
VfB 슈투트가르트(2010-2011)
라싱 클럽(2011~2014)
감독 코라스 FC (2014~ )
국가대표 47경기 4골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2중국적을 지닌 축구선수.

Contents

1. 커리어
1.1. 남미
1.2. 이탈리아
2. 기타

1. 커리어

1.1. 남미

멕시코의 산토스 라구나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카모라네시는 13경기에서 1골을 넣어 리그우승을 견인하며 클럽의 첫번째 타이틀 획득에 이바지한다. 산토스 라구나의 팬들은 그의 별명을 "엘 촐로(El Cholo)"라고 붙여주었다. 이후 고향팀 반필드에서 뛰기 전에 우루과이 클럽인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잠깐 뛰었고, 중구난방이던 포지션을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굳혀갔으며, 38경기에서 16골을 넣었다. 다음 시즌 멕시코의 크루스 아슬로 이적하여 98-00시즌까지 활약하여 75경기 21골을 넣는다.

1.2. 이탈리아

크루스 아슬에서의 활약으로 카모라네시는 당시 세리에 A소속이였던 헬라스 베로나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후 베로나와 계약했으며 2년동안 활약하였고 2002년 공동소유권으로 유벤투스가 베로나에게 €4.8m(공식적으론 £3m)을 지급하고 그들에게 맥스 비에리의 공동 소유권 역시 넘겨주었다. 2003년 6월 26일 유벤투스는 €4.5m을 추가로 지급하면서 비안코네리 군단에 합류하게 되었다.[1] 이후 주전 라이트 윙이였던 잔루카 참브로타의 부상과 카모라네시의 기량 만개로 잠브로타를 후보로 밀어버리고 그를 수비수로 전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주전 라이트 윙으로 뛰게 된다.

이후 칼치오 폴리가 터지고 잔루카 참브로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릴리앙 튀랑,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떠나는 와중 여름에 리옹, 발렌시아, 리버풀등의 클럽과 접촉하기도 했으나, 그는 유베의 강등 이후인 9월에 잔류선언을 하고 유베팬들에게 까방권을 획득한다.

승격이후 사실상 팀의 공격을 이끌던 에이스였다. 네드베드 은퇴이후 선수단에서 몇 안되는 귀중한(...) 월드클래스 선수였을뿐만 아니라 피를로 영입 이전까지 유일하게 팀에 창의성을 불어넣어줄수 있는 선수였다.[2] 잭팟투스로 불렸던 시즌의 경기를 보면 카모라네시가 출전했을때와 출전하지 않았을때의 경기력에서 확연하게 구분됬을정도. 2014년 은퇴선언을 했다.

은퇴이후 2014년 12월 멕시코 2부리그 소속 코라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 기타

별명은 이름을 줄인 카모와 아줌마같은 외모(...)로 인해 카숙모로 불린다. 국내에는 실력에 비해 엄청나게 과소평가된 선수의 대표적인 케이스. 월드클래스급의 실력을 지니고 잠브로타 등 수많은 윙어를 묻어버린 카모라네시에겐 아쉬운 상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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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같은 날 마르코 디 바이오와 엔조 마레스카가 유벤투스와의 계약에 합의하였다.
  • [2] 창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르더 브레멘으로부터 디에구를 영입했지만 기대이하의 활약으로 실패작이 되었다.
  • [3] 국내에선 해외축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에 칼치오폴리가 터져 세리에 A 출신의 선수의 평가는 엄청나게 박한편이다. 사실 2002월드컵때 이탈리아전 혈투로 인한 반감이 대부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