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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1세

last modified: 2014-12-25 13:39:31 Contributors

Contents

1. 비잔티움 제국황제
1.1. 왕위 계승
1.2. 2차 십자군
1.3. 이탈리아 원정
2. 트레비존드 제국의 황제


1. 비잔티움 제국황제


생애 : 1118~1180
재위 : 1143~1180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 유일하게 대제(megas) 칭호를 받은 황제이다. 그가 재위하던 12세기 중후반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점 중의 하나이며, 마누일은 37년의 재위기간에 걸쳐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진력했다. 이 시기는 중세 성기에 들어와 역전되기 시작한 동방제국(帝國)과 서방제국(諸國)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역전되는 시기이기도 하며, 로마제국이 지중해 세계의 국제질서하에서 마지막으로 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평가는 다소 교차되는데, 외교에 치중한 게 저평가되지만 오히려 서방 세력과 되도록 평화를 이루고 발칸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최소화했던 그의 정책은 높이 평가될만하다. 지나치게 권모술수를 부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립적인 성향이 너무 심했던 알렉시오스 1세보다는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의 큰 실수는 거꾸로 내정 실패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점점 심해지는 부익부빈익빈으로 서민층의 불만이 점점 고조되어 갔고 이것이 반서구 감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편승한 안드로니코스 1세가 집권하여 그의 외교 정책까지 모조리 파탄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1. 왕위 계승


마누엘 1세는 하네스 2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는 헝가리의 왕 라디스라우스 2세였다. 요하네스 2세가 셀주크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1143년에 마누엘은 황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 형인 이사키우스가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1143년 4월 8일 요하네스 2세가 사망하자, 마누엘은 군대 내에서 황제로 추대되었다.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멀리 떨어진 실리시아의 황야에 있는 아버지의 임종의 자리에서 마누엘은 즉시 수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그의 계승이 확실히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장례식을 살펴야 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수도원에서 기반을 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누엘은 신속하게 제국군 총사령관 요한 악수코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콘스탄티노플의 궁전에 있는 그의 형 이사키우스를 체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사키우스는 이 시점에서 마누엘의 가장 위험한 정적이었다.

악수코스는 하네스 2세의 부고가 전해지기 훨씬 전에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악수코스는 빠른 속도로 수도의 충성심을 안전하게 다졌으며 1143년 8월 마누엘이 수도에 들어왔을 때, 그는 새로운 총대주교에게 왕관을 받아 썼다. 그 후 수일 뒤에 마누엘은 황제의 자리가 안전해지자 이사키우스의 석방을 명했다. 그리고 마누엘은 콘스탄티노플의 모든 주택 소유자들에게 금을 줄 것을 명령했으며, 200파운드의 금을 교회에 보냈다.

마누엘이 요하네스 2세에게 물려받은 제국은 8세기 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반을 닦아 놓은 뒤로 많이 변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이탈리아, 스페인, 아프리카를 포함해 일부 수복했으나 7세기에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의 상당 부분을 이슬람에게 빼앗겼다. 11세기에 시칠리아에 있는 노르만 족은 비잔티움 제국의 이탈리아 에 대한 영향력을 지우고 있었다. 셀주크 제국은 소아시아의 중심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레반트에서는 십자군 국가들이 비잔티움 제국에 도전하고 있었다. 황제의 과업은 실로 벅찼다.

1.2. 2차 십자군


마누엘 1세의 치세에서 첫 번째 시험은 1144년에 찾아왔다. 안티오크 공국의 군주, 레몽이 실리시아의 이양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말, 에데사 백국의 십자군은 이마드 앗딘 장기 1세 아래 다시 일어난 이슬람 성전의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레몽은 서쪽으로부터 즉시 돕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동쪽 측면 역시 이 새로운 위협에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선택 사항은 없었고, 결국 레몽은 굴욕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할 준비를 해야 했다. 자존심을 가라앉히고 레몽은 황제에게 보호해달라고 하기 위해 북쪽으로 여정을 떠났다. 마누엘 1세에게 굴복한 뒤에, 레몽은 그가 요청하면 지원을 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레몽의 충성심은 보장되었다.

1146년에 마누엘 1세는 군대를 집결시켰고 룸 술탄국에 대한 토벌을 시작했다. 당시 룸 술탄국은 서부 아나톨리아와 실리시아에 있는 제국의 국경을 반복적으로 침략하고 있었다. 영토에 대한 체계적인 정복에 대한 어떤 시도도 없었으나, 마누엘의 군대는 아피온카라히사르에서 투르크를 이겼다. 필로멜리온의 요새화한 도시가 무너지고 점령되기 전에,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는 기독교도들이 지워지기 전이었다.

제국군은 코냐에 이르렀고 도시의 빙 둘러져 부분을 파괴했으나 성벽을 공략할 수는 없었다. 이 침략을 시작하기 위한 마누엘의 동기 중에는 십자군의 견해를 활발히 옹호해 서방에 보여주기 위한 소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킨나모스는 이것을 마누엘이 새 신부에게 전쟁에 대한 기량을 과시하기 위한 욕구로 보았다. 이 군사 작전 동안에 마누엘은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에게 편지를 받았다. 루이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십자군 영토의 구제를 위한 군대를 주도하겠다는 의도를 알리는 것이었다.

1.3. 이탈리아 원정


1147년, 마누엘은 시칠리아의 국왕 로지에르 2세와 대면했다. 로지에르 2세는 순식간에 비잔티움 제국의 코르푸 섬을 점령하고 테베와 코린트를 약탈한 적이 있었다. 발칸 반도가 쿠만족의 침공을 받아 산만해졌으나, 1148년 마누엘 1세는 콘라트 3세와의 동맹과 로지에르와 그의 강력한 함대를 패배시킨 베네치아의 협조를 요청했다.

2. 트레비존드 제국의 황제

생애 : 1218~1263
재위 : 1238~1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