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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앙 튀랑

last modified: 2017-05-22 21:50:40 Contributors


"네스타는 대단한 수비수이다. 그러나 튀랑은 우주에서 온 수비수이다."
-파비오 칸나바로

전체 이름 뤼디 릴리앙 튀-윌리앵
(Ruddy Lilian Thuram-Ulien)[1]
생년월일 1972년 1월 1일
국적 프랑스
출신지 과들루프 푸앵트아피트르
포지션 라이트백,센터백
신체조건 182cm / 70kg [2]
소속팀 AS 모나코(1991~1996)
AC 파르마(1996~2001 )
유벤투스(2001~2006)
FC 바르셀로나 (2006~2008)
국가대표 142경기 / 2득점
별명 검은 짐승, 외계인 수비수, 철인, 무결점 수비수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지안루이지 부폰

무결점의 사나이로 불렸던 레 블뢰 군단의 최고의 수비수

Contents

1. 클럽
2. 국가대표
3. 은퇴 이후
4. 여담


1. 클럽

프랑스 아트사커를 든든히 받쳐주어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카리브해에 있는 과달루프섬에서 태어난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대신 축구선수가 되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부로 일하시는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모나코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1부 리그 입성의 문턱까지 갔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 축구인생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중앙수비수로 다시 뛰게 된 그를 아르센 벵거감독은 신뢰했고, 모나코 관중들의 야유를 받던 그를 중용하였다. 그리고 그의 실력이 성장함에 따라 입지도 점점 탄탄해져 갔다.

그는 1996년까지는 거의 후보로 지냈다. 그러나 96년 AC 파르마로 이적한 그는 파비오 칸나바로를 팀 동료로서 만나게 되고 칸나바로-튀랑 라인은 공격수들을 씹어먹으며 파르마를 리그 2위로 올려놓는다. 이후의 몇년간 소위 '세리에 7공주 시대'에 파르마는 7공주의 멤버중 하나로 유벤투스, AC밀란, 인터밀란, AS로마, 라치오, 피오렌티나와 어깨를 겨루게 되는데 이럴수 있었던 배경엔 이 칸나바로-튀랑 라인과 최고의 골키퍼 부폰이 버티고 있던 덕이 컸다.

물론 그의 본업인 수비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2001년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2,200만 파운드의 수비수 이적료 기록을 세운다(종전 기록은 1,800만 파운드의 리오 퍼디난드). 그리고 튀랑과 더불어 네드베드 등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는 리그 우승. 이것은 그의 첫 리그 우승이다.

2002년 유벤투스는 리그 2연패를 기록하는데 공헌하였다. 2005년 유벤투스는 칸나바로를 영입하여 칸나바로-튀랑 라인에 골키퍼 부폰(...)이라는 ㅎㄷㄷ한 수비진을 구축해[3] 팀 실점이 절반으로 줄고 리그를 또한번 우승하고 만다. 그리고 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 준우승에 기여하며 제 2의 전성기를 가진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07년부터는 노쇠화와 더불어 점점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08년 유로에서도 부진하여 프랑스가 조별리그를 탈락하자 국가대표를 은퇴한다. 그의 142경기 출장은 프랑스 역대 출장 1위의 기록이다.

우리에겐 라이트백으로 뇌리에 남지만 정작 본인은 센터백을 더 좋아했다 국가대표시절에도 센터백 안해줬다고 징징댄적이 몇번있다. 물론 센터백도 레전드급 실력을 뽐냈다

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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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94년 국가대표로 데뷔한 그는 96년까지는 거의 후보로 지냈다. 파르마 이적후 일취월장하여 1997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국가대표로서도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대망의 1998년.

비셴테 리사라수 - 마르셀 드사이 - 로랑 블랑 - 릴리앙 튀랑의 수비라인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라인은 1998년 프랑스를 월드컵 우승으로 올려놓게 된다. 그런데 이 월드컵에서 튀랑은 전설을 쓴다.

바로 4강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이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던 괴물 공격수 다보르 슈케르[4]를 상대로 맞이한 튀랑은 수비에서 실책을 범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슈케르는 바로 프랑스 골문을 뒤흔든다. 1-0으로 뒤지게 된 프랑스는 공격에 힘을 더 싣게 되는데, 선제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튀랑이 (수케르가 로빙패스를 받을 때 튀랑 혼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실천하지 못하였다. 결과는 수케르의 골...) 오버래핑을 과감하게 하는가 싶더니....상대편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공을 빼앗아 실점한지 1분만에 동점골을 넣는다. 이때까지 그는 국가대표로서 단 한 골도 넣어본 적이 없던 선수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경기종료 20분 전 역전골까지 넣었다. 만약 이 경기 직후 대통령 선거를 했다면 튀랑이 대통령으로 뽑혔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2-1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 그리고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한다.

이러한 전설에 걸맞게 튀랑은 브론즈 볼을 수상한다. 여담으로 그의 국가대표 스탯은 142경기/2골이다.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 단 한 경기.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그의 프랑스는 2000년 유로 대회에서도 우승하였으나 이후 02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가 조별 예선 탈락하며 흑역사를 남겼다. 하지만, 앙리의 결승전 골든골을 어시스트하며 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등의 기록을 남긴다.

3. 은퇴 이후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자행된 식민지의 유색인종을 납치해 본국 박물관에 전시했던 행태를 알게 되어 크게 충격을 받고, 이러한 '인간 전시'의 야만적 역사를 폭로하는 박람회를 열었던 것. 역시 깨어 있는 축구선수다. [5]

4. 여담

음치이다. 경기 시작전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할때 자세히 보면 박자도 안맞고 음도 안맞는다. 그런데 노래는 무지하게 크게 불러서 눈치채기 쉽다.

미셸 플라티니는 "그는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는 축구선수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인권에 관심이 많다.
책도 몇 권 펴냈는데, 인권과 관련한 책[6]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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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www.youtube.com/watch?v=VsPzvMebsT0 에서 본인이 직접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을 참조할 것. 원래 유럽의 인명은 철자법을 통한 예측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꽤 된다.
  • [2] http://arxiu.fcbarcelona.cat/web/english/futbol/temporada_07-08/plantilla/jugadors/thuram.html
  • [3]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칸나바로-튀랑 / 부폰 라인은 앞서 파르마에서 먼저 구축된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이들은 ㅎㄷㄷ한 활약을 했다. 파르마와 유벤투스의 나머지 팀동료들의 실력을차를 생각해보면 파르마때 활약이 더 대단한거일지도. 참고로 이들 셋은 파르마에서 활약했던 시기도 거의 비슷하고(대략 1995/1996~2001/2002정도) 셋다 나중에 유벤투스에서 재회했다.(참고로 부폰/튀랑은 파르마에서 곧바로 유벤투스로 갔지만 칸나바로는 인터밀란을 거쳐서 유벤투스로 갔다.) 2011/2012시즌 에이스였던 지오빈코도(물론 유벤투스가 원래 고향팀이긴 했지만) 유벤투스에게 내줬으니 파르마팬들은 유벤투스에 대한 감정이 좀 복잡미묘할듯...
  • [4] 참고로 튀랑과 슈케르는 둘다 생일이 1월 1일. 생일이 같다.
  • [5] 파리서 ‘인간 동물원’ 반성 전시회 참고로, 튀랑의 98 월드컵 대표팀 동료이자 낭트,삼프도리아,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생활을 한 미드필더 크리스티앙 카랑뵈의 조상도 누벨칼레도니에서 프랑스로 납치되어 인간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카랑뵈는 레블뢰에서 유일하게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 [6] Pour L'Egalite (우리말로는 '평등에 대하여'). 이외에도 몇 권 있다. 다만 번역본은 없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