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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독립 운동

last modified: 2015-11-03 20:48:04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메이지 시대
2.2. 미국 통치 시기
3. 현황


1. 개요


류큐 독립론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류큐공화국의 국기 삼성천양기(三星天洋旗). 말 그대로 세 별, 하늘, 대양을 그린 깃발이다. 하늘색과 파란색 바탕은 각각 하늘과 대양을 그려 대자연을 상징하고, 흰 별은 도덕과 이성을, 붉은 별은 자랑과 정열을, 노란 별은 평화와 번영을 나타낸다고 한다. 1968년에 제정되었다. 상세한 설명(일본어) 구 류큐독립당→현 가리유시 클럽의 당기(黨旗)이기도 하다.

류큐 왕국이었던 오키나와 현을 독립국으로 만들자는 운동. 참고로 오키나와 현 내 류큐 독립론자들은 류큐 왕국의 옛 영토인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군도도 독립국 류큐의 일부로 포함되길 희망하고 있다. 또한 공화정이 목표인데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비슷하다.

현재는 일본 소속이지만, 일단은 전근대까지 독립국이었고, 게다가 일본 정부의 대우도 좋지 않고, 관광업 이외의 산업은 전부 안습이다 보니, 소 꼬리 되는 대신 닭 머리 되는 심정으로 다시 독립국을 만들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많이 나온다.

2. 역사

2.1. 메이지 시대

19세기에 류큐가 1872년 일본이 강제로 실시한 제1차 류큐 처분에 의해 일본 국내의 일개 번으로 전락하고 '유구국 중산왕'(琉球國中山王)은 '류큐 번왕'(琉球藩王)이 돼 그 지역의 영주 비슷한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1879년 제2차 류큐 처분에 의해 오키나와 현으로 바뀌면서 류큐 왕국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마지막 왕인 쇼 타이(尚泰)는 일본 본토로 보내져서 일개 후작이 되었다. 이 시기 즈음해서 류큐의 지배층 중에 청나라로 탈출하여 류큐의 독립을 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을 탈청인(脫清人)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은 기대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오키나와 현에서는 류큐 왕국의 부활을 추구하는 소위 '완고당(頑固黨)'과 류큐 왕국의 소멸을 인정하고 일본화를 추진하는 '개화당(開化黨)'이 대립했다. 이들은 청일전쟁 때 각각 청나라와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기도 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완고당의 세력은 쇠퇴하고 말았다. 대신 일본의 오키나와 현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오키나와 현에 자치권을 두어 류큐 왕족인 쇼 씨(尚氏) 가문이 통치자로 복귀하게 해달라는 운동을 전개한다. 이 운동을 공동회 운동(公同會運動) 또는 복번 운동(復藩運動)이라고 하며, 주도자는 쇼 타이의 차남 쇼 인(尚寅) 남작과 사남 쇼 준(尚順) 남작 형제였다. 일본은 당연하게도 이들의 청원을 쿨하게 거부해서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로 조직적인 류큐 독립 운동은 사그라들었다.

2.2. 미국 통치 시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항복시키고 승리한 미국은 류큐를 일본의 압제를 받아 합병된 지역으로 간주하여 오키나와 현 전역과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군도카라 열도를 미국이 통치하는 '류큐' 지역으로 편성시켰다. 신탁통치 기간을 거쳐 류큐를 점진적으로 독립국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아마미 군도는 류큐 왕국의 영토였으나 1609년 일본의 사쓰마 번에 빼앗겼다. 그 후로 류큐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형식상으로는 류큐 왕국의 영토이되 실제로는 일본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래서 현재 이 곳은 오키나와 현이 아닌 가고시마 현 소속이다. 도카라 열도는 아마미 군도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가면 있는 도서군(島嶼群)이다. 역사적으로 류큐 왕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데 미국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류큐 지역의 일부로 삼았다. 오랫동안 류큐 왕국의 지배를 받지 않은 아마미 군도와, 애초에 류큐 왕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도카라 열도는 일본 복귀 운동을 전개했다. 아마미 군도의 공산 세력은 처음에 독립국인 아마미 인민 공화국의 건국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 복귀 여론이 거센 것을 확인한 뒤 목표를 바꿔 그들도 일본 복귀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미국은 '여기에 대단한 미군 시설을 둔 것도 아닌데 주민들 반발에 시달리면서까지 억지로 통치할 필요가 있겠나' 판단하게 됐다. 그래서 도카라 열도는 1952년에, 아마미 군도는 1953년에 각각 일본에 반환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마미 군도카라 열도 항목을 참고할 것.

이때부터 미국이 설정한 '류큐' 지역은 1972년까지 오키나와 현 단독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의 통치 하에서 제한된 자치가 실시되었다. 처음에 오키나와 현민들 사이에서는 미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하는 모습도 보였고, 그런 분위기 하에서 류큐 독립 운동도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미군 주둔으로 인한 갈등이 벌어져서 주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이럴 거면 평화 헌법 하의 일본으로 복귀하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여론이 확산되었다. 일본이 딱히 좋진 않지만 이제 일본은 군대가 없이 자위대만 있는 나라가 되어 다시는 끔찍한 전쟁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일본으로 복귀하면 미군이 철수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던 모양. 그래서 독립국을 세우려는 운동은 세력이 약해지고 대신 일본 복귀 운동이 강해지게 된다. 결국 미국은 당초 류큐를 독립국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단념하고 1972년 일본에 반환하였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전에 강영훈 총리에게 당시 미국의 통치 하에 들어가 있었던 오키나와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오키나와에 들러 따끔하게 독립정신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네. 오키나와가 원래 대한민국과는 가까운 사이였는데, 이 사람들이 또 일본 치하에서 살려고 그러는 모양일세. 그들에게 우리의 예를 들면서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게." #

이외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내내 여러 차례 이 지역의 일본 복귀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3. 현황

류큐 독립론이 오키나와 현지의 다수 여론이 되진 못했으나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니 70년대에는 이곳에 있는 한 구장에 게양된 일장기를 내려 화형식을 벌이자 구장에 있던 다른 관중들이 환호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일본 본토로 들어간 류큐인들이 내지인들에게 차별을 받자 독립을 요구하는 주장과 함께 테러를 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1975년 아키히토 덴노가 오키나와를 방문했을때 화염병 테러를 당한적이 있다. 게다가 냉전의 종식으로 지역 내 미군이 주둔할 정당성이 조금 사라졌기 때문에, 70년대 이후 잠수를 탔던 구 류큐독립당이 이름을 바꾼 가리유시 클럽이 지방 선거에 등장할 정도이다. 다만 가리유시 클럽이 현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라서 문제.

하지만 산업 기반 자체가 별로 없는 실정에서 그대로 독립했다가는 주변국(중국이나 미국)이 반발할 수 있고, 아시아 북단과 남단, 그리고 대륙과 해양의 중간에 있다는 아주 절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보니 독립을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많다. 특히 중국에 병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이 절묘한 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하여 줄타기만 잘 한다면 상당한 지원을 받아낼 수도 있으니 결국 하기 나름. 당장 오키나와와 비교도 안되는 지리적 가치를 가진 한반도도 독립국으로 존재하니 독립국으로서의 류큐 왕국도 불가능한것은 아니다.

주민 의식과 우치난츄 대회라는 오키나와 출신 해외 동포들의 모임을 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독립 의식은 없어도 자신이 '오키나와인' 이라는 선을 확실히 긋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언론에서 "당신은 '오키나와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라는 설문을 하면, 대부분이 오키나와인이라고 하거나 오키나와인이면서 일본인이라고 하지, 일본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우치난츄 대회는 해외 이민을 간 오키나와인들의 결속 의식을 다지는 모임인데, 그 대회가 생각보다 크고 참가 인원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정작 일본에서 독립하지 말자는 사람도 꽤 있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오키나와 주민들은 꽤 종잡을 수 없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이는 언어나 민족의 기원으로 봤을 때 일본인과는 친척 관계에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오키나와 주민의 독립 문제 설문.[1]
오키나와 2005년 2006년 2007년
독립필요 24.9% 23.9% 20.6%
독립불필요 58.7% 65.4% 64.7%
주민들이 결정해야 2.8% 1.7% 0.8%
그 외 13.6% 9.1% 13.0%

일본 정부도 이를 모르고 있지는 않아서,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지금도 국민 교육 과정에 슬그머니 동화 정책을 펴고 있다. 실제로 일본사 교육에서는 류큐사를 지방의 역사 정도로만 짤막하게 가르치고 있고, 이외의 인문사회 교육 과정에서도 일본 본토의 교육 과정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일수록 독립 의식이 약해지고 있다.

한편 일본 이외의 나라들도 이 문제 때문에 많이 시끄럽다. 중국이나 러시아에게는 이 나라가 독립할 경우 이 나라를 자세력권, 미국의 경우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 나라를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오키나와 현민들은 반일감정 못지않게 반중감정도 강하기 때문에 중국의 속국이 되느니 차라리 그냥 이 상태가 낫다는 의견이 거의 100% 다 된다. 때문에 이러한 오키나와 일본인들의 인식이 합쳐져서 오키나와는 독립이 안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오키나와 현 관할의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두 '중국'(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중화민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2012년 조사에서는 독립 지지 여론이 위 표보다 급감한 1% 안팎이 됐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 국내에서는 류큐 독립(?)을 지지한다는 말이 나온다든지 류큐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하고 있다.[2] 요즘 이런 분위기는 오키나와 현민들의 우려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류큐 독립 지지자들은 대개 독립한 뒤 '비무장한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오키나와 현민들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다고 여겨 지지를 꺼리는 면도 있다. 다만 2차대전을 겪은 뒤 일본인(오키나와 현민 포함)들은 막연하게 군대=전쟁이라고 인식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오키나와 현은 전쟁의 피해를 너무 심하게 입은 데다가 주둔 미군 병사들의 일탈 행위 등으로 인해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에 오키나와 현민들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되길 희망한 원인 중 하나는, 반환하면 미군이 철수하고 전후 일본의 평화 헌법에 따라 자위대만 주둔할 것으로 생각했던 점도 있다.

중국 내에서 일부러 류큐 독립을 부르짖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오키나와 현 내의 류큐 독립 운동가들을 중국의 사주를 받았다고 몰아붙이기도 하고 있다. 음해가 꽤 심한 모양인지 가리유시 클럽의 전(前) 당수인 야라 조스케(屋良朝助) 씨가 본인의 공식 트위터 계정의 프로필에 명예훼손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경고문을 써놓았을 정도다.[3]

한편 독립보다는 오키나와 또는 류큐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자는 제안도 있긴 하다. 물론 독립론자 중에서도 독립 전 단계로서 자치를 주장하는 경우는 흔하다. 자치를 독립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자치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독립 찬성 여론을 둔화시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자치를 통해 니즈에 잘 피드백이 이뤄진다면 굳이 어렵게 독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4] 민주당은 '오키나와 비전'#이라고 명명한 정책안에서 1국 2체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현재의 도도부현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서 고도의 지방자치권을 부여한 도주제(道州制)로 바꾸자는 논의가 수십 년 동안 있어 왔는데, 오키나와/류큐 자치와 관련하여서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류큐 독립론자들이 주장하는 류큐 자치 지역에는 현재 가고시마 현에 소속된 류큐 왕국의 옛 영토인 아마미 군도도 여기에 포함되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미 군도 주민들이 류큐 자치 지역에 편입되는 것에 얼마나 동의할지 회의적이다. 2차대전 직후 잠시 미국에 의해 류큐 지역의 일부로 묶여서 받은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또 오키나와 자치권 확대론자들이 종종 한국의 제주특별자치도 사례를 참고하여 오키나와/류큐에 적용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 #1, #2, #3. 사실 제주도(道)를 제주특별자치도로 바꾸는 것을 연구하는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반대로 오키나와 현을 비롯 해외 여러 곳의 자치 확대 논의들과 실제 사례들을 참고했다. 결국 오키나와 현과 제주특별자치도는 서로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온 셈이다. 한국 내에서 제주도가 처해 있는 상황과 일본에서 오키나와 현이 처해 있는 상황이 여러 모로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참고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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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임천충(林泉忠)「오키나와 주민의 정체성 조사(2005~2007)」『정책과학・국제관계논집』제9호, 2009년3월, 105-147장. 임천충은 중국계 영국인 국제 정치학자로 조사 당시 류큐대학 준교수였다.
  • [2] 참고로 2차대전 말기에 미국은 전후에 중화민국에 류큐를 '반환'을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권했지만 당시 장제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절했다고 한다.#
  • [3] 야라 씨의 트위터 계정을 2014년 8월 13일에 캡처한 화면: #. 해석: "(앞 부분 생략) 이쪽에 비판을 할 경우 증거에 기반해서 행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비방중상이 되어 명예 훼손의 대상이 됩니다. 예=중국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부당해고했다 등등. 경우에 따라서는 철저히 반격합니다."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은 어지간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전직 당 대표가 저렇게 공식 계정에서 강한 경고문을 써놓았다. 아무래도 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 내 극우세력이 류큐 독립론자들에게 상당한 비방을 가하는 듯하다.
  • [4] 그래서 영국에서는 1999년에 스코틀랜드 자치를 도입하기 전에 자치가 독립을 조장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독립론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게 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당시 토니 블레어 내각은 자치를 추진하면서 후자를 역설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는지는 앞으로 수십 년 간 스코틀랜드 현지 여론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