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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술탄국

last modified: 2015-03-07 01:10:21 Contributors

1077년 ~ 1307년까지 존속한 이슬람의 왕조. '룸 셀주크 왕조'라고도 하며 현대 터키어로는 아나톨리아의 셀추크 일족의 왕국이라는 의미의 '아나돌루 셀추클루 데블레티(Anadolu Selçuklu Devleti)'나 룸 술탄국이라는 의미의 '룸 술탄르으(Rum Sultanlığı)'라고 한다. 참고로 룸(روم)은 아랍어로 로마라는 의미. 셀추크는 셀주크(Seljuk)의 터키[1] 발음이다. 셀주크(Seljuq)는 페르시아어로 Saljūqiyān(살주키연)이라고 부르던걸 유럽에서 차용해온것.

1071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오늘날의 말라즈기르트)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전부터 소아시아 동부를 왕래하던 투르크족은 군사적 공백과 비잔티움 내부 분열을 기회로 본격적으로 아나톨리아 동부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후 투르크족은 아나탈리아를 사실상 장악하다시피했고 셀주크 제국 왕족인 쿠탈므쉬의 아들 쉴레이만(سليمان بن قتلمش, Kutalmışoğlu Süleyman)이 아나톨리아 서부 니케아를 빼앗아 그곳에서 독립한뒤, 룸 술탄국을 건국하게 된다. 이 시기에 니케아가 이즈니크(İznik)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다른 터키 도시들도 그렇지만 그리스어 발음을 자기식에 맞게 고친것이다.[2] 여기서 룸은 곧 로마를 뜻하는 것으로 이 지역이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트라브존과 북서부 아나톨리아 해변을 제외하고 룸술탄국에 동방 영토를 내주고 만다. 하지만 이후 비잔티움에서도 알렉시우스 1세라는 걸출한 군주가 등장하였고 서방에서 1차 십자군이 몰려들게 되자 서부 아나톨리아에서는 물러나게 되고 마수드 1세 시절에는 주로 동방을 정복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이후 12세기 내내 룸 술탄국은 제국 영토였던 지역을 수복하려는 비잔티움과 동쪽의 십자군과 맞서게 된다.


1180년대 무렵 소아시아 세력권.

마수드 1세 시절에는 서부와 흑해 연안을 제하고 아나톨리아는 룸 술탄국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후 1176년에는 이전부터 서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영토를 수복하던 비잔티움의 황제 마누엘 1세의 군대를 미리오케팔룸 전투에서 패배시키면서 비잔티움의 아나톨리아 수복 시도를 저지하였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내부분열이 지속되면서 룸 술탄국의 아나톨리아 지배는 공고한 것이 되었으며 흑해 연안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올린다.


1190년경의 룸 술탄국.

하지만 이후 십자군의 반격등을 받아 룸 술탄국은 곤경에 처했고 1204년에 서방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비잔티움 제국이 4차 십자군으로 몰락하지만 당시 비잔티움의 잔존 세력인 니케아 제국트레비존드 제국이 아나톨리아 서부와 흑해연안에 각각 버티고 있었으므로 아나톨리아를 완전히 손에 넣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 13세기 중반엔 당시의 개깡패 몽골의 침입으로 세력이 약화되고 이는 재건 비잔티움이 한숨 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었다. 세 닥 전투에서 대패한 룸 술탄국은 이후 몽골의 속국이 되었으며 이후 일 칸국의 칸들이 룸 술탄국의 종주권을 행세했다. 따라서 룸 술탄국 각지의 가지와 토후들이 독립함에 따라 내부분열로 인해 룸 술탄국은 점점 위상을 잃게 된다.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수복 이후 소아시아 세력권(1263년).

이렇게 룸 술탄국이 유명무실해지고 그 와중에 고질적인 투르크족의 권력다툼이 심화되어 왕족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중간에 일칸국이 개입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술탄을 내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술탄을 복위시키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각지의 토후들은 통제를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했다. 그 후 룸 술탄국의 마지막 술탄이 죽자 일 칸국은 신임 술탄을 임명하지 않고 총독을 파견한다. 그리하여 룸 술탄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13세기 말에 비잔티움 제국과 맞닿은 룸 술탄국의 북서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앙카라의 토후였던 유목 부족장 오스만 1세의 세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오스만 제국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역대 술탄

여기 기록된 이름/발음들은 현대 터키어 식으로 읽은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튀르크인들은 중세 튀르크어를 썼지만, 르네 그루세에 따르면 당시 코냐의 궁정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는 페르시아어였다. 특히 룸 군주의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이후스라우(كيخسرو), 카이쿠바드(كيقباد), 카이카우스(كيكاوس) 따위의 인명들은 이란의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쿠탈므쉬의 아들 쉴레이만 샤흐(Kutalmışoğlu Süleyman Şah) 1077 ~ 1086 이즈니크에서 룸 술탄국의 창설
클르치 아르슬란 1세(I. Kılıç Arslan) 1092 ~ 1107
멜릭샤흐(Melikşah) 1107 ~ 1116
뤼크네딘 메수드 1세(I. Rükneddin Mesud) 1116 ~ 1156
클르치 아르슬란 2세(II. Kılıç Arslan) 1156 ~ 1192
그야세딘 케이휘스레브 1세(I. Gıyaseddin Keyhüsrev) 1192 ~ 1196 1차 재위
쉴레이만 샤 2세(II. Süleyman Şah) 1196 ~ 1204
클르치 아르슬란 3세(III. Kılıç Arslan) 1204 ~ 1205
그야세딘 케이휘스레브 1세(I. Gıyaseddin Keyhüsrev) 1205 ~ 1211 2차 재위
이제딘 케이카부스 1세(I. İzzeddin Keykavus) 1211 ~ 1220
알라에딘 케이쿠바드 1세(I. Alaeddin Keykubad) 1220 ~ 1237
그야세딘 케이휘스레브 2세(II. Gıyaseddin Keyhüsrev) 1237 ~ 1246
이제딘 케이카부스 2세(II. İzzeddin Keykavus) 1246 ~ 1260
알라에딘 케이쿠바드 2세(II. Alaeddin Keykubad) 1249 ~ 1257
클르치 아르슬란 4세(IV. Kılıç Arslan) 1248 ~ 1265
그야세딘 케이휘스레브 3세(III. Gıyaseddin Keyhüsrev) 1265 ~ 1284
그야세딘 메수드 2세(II. Gıyaseddin Mesud) 1284 ~ 1296 1차 재위
알라에딘 케이쿠바드 3세(III. Alaeddin Keykubad) 1298 ~ 1302
그야세딘 메수드 2세(II. Gıyaseddin Mesud) 1303 ~ 1308 2차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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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는 터키 튀르크어식
  • [2] 쉴레이만은 이후 샤를 자칭한다. 그래서 아래의 목록에 쉴레이만 샤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