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레슬매니아

last modified: 2015-04-11 08:43:36 Contributors


Contents

1. WWEPPV 명칭
1.1. 유래
1.2. 역사
1.3. 흥행
1.4. 관례
1.5.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
1.6. 리그베다 위키에 기재된 역대 이벤트 항목
1.7. 역대 구매율
1.8. 역대 게스트
2. 게임


1. WWEPPV 명칭

WWE, 아니 세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큰 PPV이자, 1년동안 북미에서 개최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들 중 하나에 거론될 정도로 큰 무대이다. 혹자는 꿈의 무대라고 할 만큼 WWE 소속의 프로레슬러들은 이 PPV에 나오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1][2] 비록 PPV에서 안나오는 다크매치 성격의 프리쇼라 할지라도 말이다.

바로 감이 오겠지만 프로레슬링 매니아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 때문에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라는 단어 대신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1.1. 유래

아버지의 업무를 이어받어 WWE[3] 회장 직을 이어 받게 된 빈스 맥마흔은 당시 프로레슬링 산업을 전국적으로 키우는데 주력하게 된다.

위험한 생각이라며 만류하던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 지에서 유명한 프로레슬러들을 영입한 빈스는 단체의 입지는 상승시킬 수 있었으나, 이들의 몸값으로 인해 자금 상황은 좋지 않은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엄청난 올인을 하게 되는데, 바로 프로레슬링계의 수퍼볼을 만드는 것.[4] 사실 이러한 이벤트가 과거에 없던 건 아닌데 NWA에서 개최되던 스타케이드도 비슷한 이벤트다.[5] 그러나 빈스가 생각하는 이 흥행의 규모는 과거의 비슷한 흥행들과는 파격적으로 차이가 났었고, 1980년에 계획한 이벤트를 마침내 1985년 3월 31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레슬매니아란 명칭 아래 개최하게 된다.

레슬매니아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이 두개가 유명하지만, 대부분 후자의 쪽이 무게가 실린다.

첫 흥행은 프로레슬링 계에서 엄청난 흥행 실적을 기록했고, 이후 레슬매니아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며 매년 3월 말 또는 4월 초 WWE의 한 해를 정리하는 대형 이벤트로 자리잡게 된다. 빈스가 흥행을 계획하며 말했던 프로레슬링 계의 수퍼볼이 현실이 된 무대가 바로 레슬매니아다.

당연한거지만 WWE의 자존심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며, 북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프로레슬링 단체 내의 수많은 PPV들의 명칭이 바뀌고 PPV가 없어지더라도 레슬매니아만큼은 절대적인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과언이 아닌 이야기로 레슬매니아가 없어지는 날, WWE는 끝난거나 다름 없다.

1.2. 역사


1985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2016년에 32회 대회가 진행될 WWE의 역사이자 세계 프로레슬링 최대의 축제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난 1년간 WWE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만이 이 무대에서 경기를 가질수 있으며, 선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에 팬들의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굉장히 높으며, 이 기대에 걸맞게 매년 명경기가 1, 2개 이상 나온다. 특히 레슬매니아 3때의 헐크 호건과 앙드레 더 자이언트는 최다관중을 기록했을정도. 또한 레슬매니아 18에서 열린 헐크 호건과 더 락의 경기는 "드림 매치"라고 불릴 정도의 최고의 명경기이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도 많다. 레슬매니아 20에서 열린 브록 레스너빌 골드버그는 과대포장되어 볼 게 없던 레슬매니아 경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경기 내용은...망했어요.ㅠㅠ 정말 할 일이 없다면 한 번 보는 것도 추천한다. 레슬링 팬들이 잊지 못할 경기로 남아있다.[6]

행사의 명성이 높다보니 레슬러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경기에 관여하는 역할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레슬매니아 14에서 열린 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의 경기에 특별 심판으로 등장한 마이크 타이슨이라든지, 레슬매니아 23에서 바비 래쉴리의 링 사이드에 서있던 도널드 트럼프[7], 레슬매니아 25에서 크리스 제리코에게 주먹을 날린 미키 루크 등이 그러한 인사들이다.

더 나아가 아예 경기를 펼친 경우도 있는데, 레슬매니아 11에 등장한 당시 NFL (미국미식축구스타) 로렌스 테일러는 아예 메인이벤트 경기를 가졌고[8], 레슬매니아 21에선 아케보노가 빅 쇼와 스모 경기를 가졌으며, 레슬매니아 24에선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역시 빅 쇼와 복싱 매치를 가졌다.[9][10]

2010년대 들어선 디바 마케팅의 활성화와 함께 여성 연예인들의 섭외도 늘었다. 2011년엔 지 쇼어의 히로인 스누키(니콜 폴리지), 2012년엔 유명 리포터 마리아 메누노스가 출연해 경기를 가졌다. 다만 안 그래도 WWE 내에서 디바들의 입지가 좁은데 외부 유명인사에게 레슬매니아 출연권을 뺏겨버리는 꼴이라 불만이 많다. 2011년 출연자인 트리쉬 스트래터스와 스누키가 이 사태의 대표적 희생양.[11] 결국 2012년엔 주요 디바 3인(켈리 켈리, 이브 토레스, 디바스 챔피언 베스 피닉스)이 모두 출전했고, 2013년엔 AJ 리만이 돌프 지글러 & 빅 E 랭스턴의 매니저로 출전했고,2014년에는 비키 게레로 주최로 챔피언 AJ리를 포함한 14인의 디바들이 총출동하는 디바스 챔피언쉽이 예정되어있다.

1.3. 흥행

매 년 레슬매니아 개최를 위해 수많은 주가 경쟁을 펼친다. 레슬매니아 하나 때문에 미국 전역이 한 곳에 모이기 때문에, 그 만큼 관광수익 등이 엄청나기 때문. 실제로 레슬매니아를 개최한 곳은 최소 몇달치의 지역경제를 한꺼번에 벌어다 줄 정도이다. WCW가 하락세를 걷고 레슬매니아의 입지가 공고해진 2000년대부터는 타 단체들이 레슬매니아 주간에 레슬매니아가 열리는 도시에서 흥행을 여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평소보다 수익이 더 나온다고 한다. 2위 단체 임팩트 레슬링 조차도...

이때문에 그 해의 레슬매니아가 개최되는 도시에선 이벤트가 개최되기 한 달전부터 레슬매니아 분위기가 느껴질 수 있도록 도시에 여러 게시물과 부착물들을 전시하며, 개최 1주일 전에는 레슬러들이 참여하는 사인회 혹은 인터뷰 등의 간단한 이벤트들을 개최하는 것을 후원한다.

이러한 열기때문에 WWE는 아예 1년전부터 다음 레슬매니아가 열릴 곳을 정해놓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다다음 레슬매니아까지 일찌감치 정해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10의 배수의 주년은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지는게 일반적. 전설의 시작인 레슬매니아 1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레슬매니아 10, 20은 이 곳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때문에 레슬매니아 30 역시 이 곳에서 열릴 것으로 예측되어지고 있으나, 문제라면 경기장 규모가 작다보니 관중 입장에 제한이 있어 흥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뉴욕에서는 개최하되, 다른 대형 경기장에서 개최하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기어이 레슬매니아 30 개최 후보지에서 MSG가 빠졌다.[12] 그리고 결국 레슬매니아 30이 뉴올리언스 슈퍼돔에서 개최가 결정됨에 따라 이 전통은 깨졌다.2015년 레슬매니아 31은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13]에서 열린다고 한다

1.4. 관례

규칙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정되어진 것들인데

1) 레슬매니아 마지막은 탑페이스, 선역의 승리로 장식한다.

레슬매니아가 최고의 무대인 만큼, 레슬매니아의 마지막은 WWE 최고의 선수 혹은 최고로 밀어주는 선수가 승리한다. 이른바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푸쉬의 정점을 찍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레슬매니아 X의 브렛 하트, 12의 숀 마이클스, 14의 스티브 오스틴, 19의 브록 레스너, 20의 크리스 벤와, 21의 바티스타, 22의 존 시나, 30의 대니얼 브라이언 등등. 헐크 호건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 7회 출장하여 역시 선역인 워리어에게 패배한 레매 6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했으며, 레슬매니아 9에서도 브렛 하트와 요코즈나의 메인이벤트에 등장하여 재경기를 갖고 승리했다.

이런 관례가 깨진 것은 세 번인데 레매 16에서 악역인 트리플 H가 승리하고 더 락은 트리플 H와 맥맨 부녀에게 피니셔를 날리며 분풀이를 하고 퇴장했다. 그리고 레매 17에서 스티브 오스틴더 락의 최강의 아이콘 대결이 역사상 제일 충격적인 턴힐로 끝났고, 레매 27에서는 더 락의 난입으로 미즈의 승리로 끝났다. 셋 다 더 락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31 역시 세스 롤린스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을 사용하여 챔피언을 획득하면서 악역의 승리로 끝났다.

2) 로얄럼블 경기의 우승자는 레슬매니아에서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에 도전한다.

지난 1991년부터 로얄럼블의 우승자에게는 레슬매니아에서 WWE 챔피언쉽(과거엔 WWF 챔피언쉽)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며, 2002년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이 등장하며 2003년부터는 두 챔피언쉽 중 하나에 도전이 가능하다.

사실...2006년 WWE에 ECW 브랜드가 생기면서 나온 ECW 챔피언쉽에도 도전이 가능했는데, 벨트의 가치때문인지 로얄럼블의 우승자는 단 한 명도 도전하지 않았으며 결국 2010년 ECW가 없어지면서 이는 과거의 역사가 되었다.

2013년 두 챔피언쉽이 통합됨에 따라 다음해인 2014년 로얄럼블 우승자는 자동으로 통합 챔피언쉽인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의 도전자로 내정이 되었다.

원래 로얄럼블의 우승자의 레슬매니아에서의 챔피언쉽 도전 기록은 2008년 깨질뻔했다. 해당 해 로얄럼블 우승자 존 시나가 노웨이아웃에서 당시 챔피언이던 랜디 오턴에게 WWE 챔피언쉽을 갖자고 해 경기를 이미 가져버린 것.[14]

하지만, 이 때 경기 결과가 어설프게 끝났고, 여차저차하다보니 시나는 기존의 챔피언인 랜디와 또 다른 #1 컨텐더였던 트리플 H와 레슬매니아 24에서 WWE 챔피언쉽 경기를 가지면서 이 역사는 이상하게 이어지게 된다. 어쨌든 도전했으니까 이어진 거 맞다.

로얄럼블의 우승자가 레슬매니아에서 월드 챔피언쉽에 도전했을때 승률은 상당히 높았으며, 특히 2001년(레슬매니아 17)부터 2007년(레슬매니아 23)까지는 로얄럼블 우승자가 모두 챔피언에 등극하며 성공이 보장된 자리로 굳혀지는 듯 했으나, 로얄럼블의 2008년 우승자 존 시나와 2009년 우승자 랜디 오턴[15]이 챔피언에게 패한데 이어 2010년 우승자 에지가 챔피언 제리코에게 패배, 2011년 우승자인 알베르토 델 리오가 챔피언 에지에게 패배하면서 이 도전권의 성공확률은 과거에 비해 떨어진 상태이다. 이 때문인지 로얄럼블 우승자가 가지는 대립에 대한 관심도도 줄어든 편.

3)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 7 이래로 레슬매니아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으며, 2013년까지 21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레슬매니아 XXX에서 이 것이 깨져버렸는데 이걸 깨버린 선수가 하필 브록 레스너라 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 외에 과거 최초의 레슬매니아가 열린 이후 10의 배수 단위로 열리는 레슬매니아는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었다.(10, 20) 그러나 레슬매니아 30이 뉴올리언스 슈퍼돔에서 개최됨에 따라 이 전통은 깨졌다.

4) 행사 시작전에는 America the Beautiful을 유명 가수를 초청하여 부른다, 한번은 링 아니운서 릴리안 가르시아레슬매니아 XXVII에서 부른 바 있다.

1.5.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

2004년부터 WWE는 과거의 명 활약을 펼친 레전드들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다른 스포츠에 존재하는 것처럼 프로레슬링계의 전설들을 환영하며 그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WWE 명예의 전당(WWE Hall Of Fame)을 창설한다.

처음 명예의 전당 헌액식은 레슬매니아 20 이벤트 중간에 이루어졌으나, 이후 2005년부터는 레슬매니아 전 날 같은 지역의 예술회관 등을 빌려서 행사가 진행되어진다.

모두가 아는 스타 헐크 호건, HITMAN 브렛 하트, Nature Boy 자연인 릭 플레어[16], 로디 파이퍼,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하트 브레이크 키드 숀 마이클스 여성 디바로는 트리쉬 스트래터스 와 리타등에 레슬링계를 주름잡던 전설들을 비롯 웬만한 과거의 인기 스타들은 거의 헌액되었으며, 현역 시절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갑작스렇게 고인이 된 에디 게레로 도 2006년 이 자리에 헌액되었다. 단, WWE와 안 좋은 관계로 인해 아직도 헌액되지 못한 케이스도 있는데 대표적인 선수로는얼티밋 워리어. 그러나 최근 워리어와 WWE의 관계가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 가능성은 생겼다. 결국 얼티밋 워리어는 201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편 크리스 벤와는 경력으로는 흠잡을데가 없으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처음 이 행사가 진행될 당시에는 WWE에서만 뛰었던 인사들만을 위한 공간 아니냐?라는 비판의 눈초리도 있었으나, 이후 WWE와 상관없던 인사들인 AWA, NWA의 전설들도 헌액이 되어지며 이러한 비판들은 줄어들었다. 대표적으로 AWA의 전설 번 가니에.

이 항목이 작성되는 시점에서 차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으로 보이는 현역 선수들은 조만간 은퇴가 예상되고 2014년부터 2015년 들어와서 은퇴가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할리 매니아 겸 노동조합 조합장님 언더테이커라든지 혹은 국장님 케인, 존 시나, 더 락, 어떻게든 링에 가고 싶어하는 사장님도 헌액될 것이 매우 유력해보인다. 그러고 보니 빈스 맥마흔도 헌액해야 할판...[17]

단, 첫 회 명예의 전당은 사실상 레슬링과 관계 없는 야구선수였던 피트 로즈[18]가 수상자였기에 두고두고 까이는 것 중 하나이다.

물론 쇼에 몇 번 출연한 것은 있지만 경기를 한 것도 아니다. 단지 3번의 레슬매니아에 출연해서 케인에게 툼스톤을 2번, 그리고 초크슬램 + 리키쉬의 스팅크 페이스 케인배의 보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려달라는 얘기가 일종의 항의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WWE 입장은 알 수 없는 일. 이외에도 매년 한명씩은 관계없는 인물들을 헌액시켜 꼭 야유를 받는다.(...)

1.7. 역대 구매율

뒤의 경기들은 당일 메인이벤트.
WWF / WWE 챔피언쉽 매치는 {★} 표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매치는 {☆} 표시.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 매치는 {◎} 표시.
승자는 굵은 글씨로 표시.

레슬매니아 1 (1985) : x - 헐크 호건, 미스터 T vs 로디 파이퍼, 폴 온돌프[19]
레슬매니아 2 (1986) : 250,000 - 헐크 호건 vs 킹 콩 번디 {★}
레슬매니아 3 (1987) : 400,000 - 헐크 호건 vs 故 안드레 더 자이언트 {★}[20]
레슬매니아 4 (1988) : 485,000 - 테드 디비아시 vs 마초맨 랜디 새비지 {★}[21]
레슬매니아 5 (1989) : 650,000 - 헐크 호건 vs 故 마초맨 랜디 새비지 {★}
레슬매니아 6 (1990) : 550,000 - 헐크 호건 vs 얼티밋 워리어 {★}{◎}[22]
레슬매니아 7 (1991) : 400,000 - 헐크 호건 vs 서전 슬로터 {★}
레슬매니아 8 (1992) : 300,000 - 헐크 호건 vs 시드 저스티스
레슬매니아 9 (1993) : 400,000 - 헐크 호건 vs 故 요코주나 {★}
레슬매니아 10 (1994) : 420,000 - 故 요코주나 vs 브렛 하트 {★}[23]
레슬매니아 11 (1995) : 340,000 - 로렌스 테일러[24] vs 故 뱀 뱀 비글로 (특별 심판 : 팻 패터슨)[25]
레슬매니아 12 (1996) : 290,000 - 브렛 하트 vs 숀 마이클스 {★}[26]
레슬매니아 13 (1997) : 237,000 - 사이코 시드 vs 언더테이커 {★}
레슬매니아 14 (1998) : 730,000 - 숀 마이클스 vs 스티브 오스틴 {★}[27]
레슬매니아 15 (1999) : 800,000 - 더 락 vs 스티브 오스틴 {★}
레슬매니아 16[28] (2000) : 824,000 - 더 락 vs 트리플 H vs 빅 쇼 vs 믹 폴리 {★} [29]
레슬매니아 17 (2001) : 1,040,000 - 더 락[30] vs 스티브 오스틴[31] {★}
레슬매니아 18 (2002) : 880,000 - 크리스 제리코 vs 트리플 H {★}[32]
레슬매니아 19 (2003) : 560,000 - 커트 앵글 vs 브록 레스너 {★}[33]
레슬매니아 20 (2004) : 1,007,000 - 숀 마이클스 vs 트리플 H vs 故 크리스 벤와 {☆} [34]
레슬매니아 21 (2005) : 1,085,000 - 트리플 H vs 바티스타 {☆}[35]
레슬매니아 22 (2006) : 975,000 - 존 시나 vs 트리플 H {★}[36]
레슬매니아 23 (2007) : 1,250,000 - 존 시나 vs 숀 마이클스 {★}
레슬매니아 24 (2008) : 1,041,000 - 에지 vs 언더테이커 {☆}
레슬매니아 25 (2009) : 960,000 - 트리플 H vs 랜디 오턴 {★}[37]
레슬매니아 26 (2010) : 885,000 -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38]
레슬매니아 27 (2011) : 1,059,000 - 미즈 vs 존 시나 {★}[39]
레슬매니아 28 (2012) : 1,253,000 - 존 시나 vs 더 락[40]
레슬매니아 29 (2013) : 1,100,000[41] - 더 락(C) vs 존 시나 {★}
레슬매니아 30 (2014) : 1,350,000[42] - 대니얼 브라이언 vs 랜디 오튼 vs 바티스타 {★}[43]그딴건 모르겠고 언더테이커 vs 브록 레스너 결과가 다 묻어버렸지
레슬매니아 31 (2015) : 추가바람 - 브록 레스너 vs 로만 레인즈 vs 세스 롤린스{★} [44]

2000년대부터 해외 구매율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내 구매율로만 본다면 14~18, 23, 27, 28이 최고. 초기부터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유명인사들을 게스트로 초청하고 있다.

1.8. 역대 게스트

무하마드 알리 - 1
조 프레이저 - 2
앨리스 쿠퍼 - 3
로빈 리치, 글래디스 나이트 - 4
모튼 다우니 Jr., Run-D.M.C. - 5
로버트 굴렛, 스티브 알렌, 로나 바렛 - 6
윌리 넬슨 - 7
리바 매킨타이어, 레이 콤즈 - 8
도니 월버그, 버트 레이놀즈, 제니 가스 - 10
로렌스 테일러 - 11
켄 샴락 - 13
피트 로즈 - 14, 15, 16
마이크 타이슨 - 14
모터헤드 - 17, 21
림프 비즈킷 - 19[45]
아케보노(...) - 21
도널드 트럼프 - 5, 23
플로이드 메이웨더 - 24
미키 루크 - 25
"더 락" 드웨인 존슨(...) - 27
헐크 호건 - 30

2. 게임

1의 항목의 인기의 여세를 받아 나온 동명의 게임 WWF 레슬매니아. 게임 개발 년도가 1990년대이기에 WWF가 게임 명칭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더 이상 발매가 되지 않음에도 문제거리가 있었는데 이는 각주 참조.

----
  • [1] 일본과 멕시코, WCW를 넘나들고, DRAGON GATE의 전신인 토류몬을 만든 일본 루차도르계의 레전드인 울티모 드래곤도 단 한번이라도 레슬매니아에 참가하고 싶어서 WWE와 1년 계약을 했다. 그리고 섀넌 무어등과 대립하며(...) 레슬매니아 XX에서 크루저웨잇 오픈 챌린지로 꿈을 이루고 WWE를 나갔다. 참고로 이경기에는 한국계 제임스 윤(WCW 영드래곤의 양윤, WWE 지미 왕 양으로 알려진)도 참가했다.
  • [2] 흔히 안티 WWE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스팅도 "레슬매니아란 무대를 동경하지 않는 레슬러는 없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표현한 적이 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31에 섰다! 비록 졌지만 다음날 RAW에서 "레슬매니아에 선 것 만으로도 좋았다."라고 했다.
  • [3] 당연히 당시엔 WWF였다. 2002년 동일한 이름을 쓰고 있던 세계야생기금과의 법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단체 이름을 개명했다. 여담이지만 세계야생기금은 2005년 WWE에게 여전히 WWF의 명칭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레슬링 상품 판매 금지 내용으로 연방 법원에 소송을 걸었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역관광타버리며 WWE가 승소했다.
  • [4] 수퍼볼은 미국의 미식축구프로리그 (NFL)의 결승전 이벤트로서 그 어떠한 스포츠들을 제치고 북미에서 매년 당당히 문화산업이벤트 흥행 실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도중 방영되는 광고의 가격만해도 수억불이 넘어가며,이 날 경기의 MVP,초청된 가수,심지어는 광분하며 자신의 광기를 자랑하는 팬마저도 한 해의 이슈가 될만큼 스포츠를 넘어 미국 내에선 엄청난 이벤트다.
  • [5] 1990년대에 WCW가 동일한 이름으로 PPV를 개최한다.
  • [6] 이미 프로레슬링 자체에 마음이 떠난 두 선수가 엄청나게 성의없는 경기를 펼쳤다. 그나마 이 경기를 살린건 특별 심판으로 등장했던 오스틴이 양 선수에게 스터너를 날리는 상황.(이 때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는 진짜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 경기에 크게 실망한 관중들의 냉대는 꽤나 오래갔는데, 경기 이후 빈스 맥마흔이 등장해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시간과 이후에 펼쳐진 경기들까지 졸지에 관중들이 보내는 차가운 시선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빈스 맥마혼은 이때 나오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 [7] 매치 조건이 진짜 대단했다. 일명 '삭발빵'으로써 진쪽이 삭발을 감행해야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쪽으로 나온 바비 래쉴리가 빈스 측의 우마가를 이김으로써 무대에서 곧바로 삭발을 하게되었다. 참고로 이때 특별 심판이 스티브 오스틴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삭발식 이후 스터너 한사발씩
  • [8] 이 경기는 1년동안 고생한 다른 프로레슬러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굉장히 많았으며, 흥행이 끝난 후에도 내부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 [9] 그런데 이 경기는 사실 복싱 경기보단 레슬링에 가까웠다.
  • [10] 여담이지만 빅 쇼는 레슬매니아와 인연이 없는 레슬러로 유명한데, 레슬매니아 22에서는 케인과, 레슬매니아 26에선 미즈와 파트너를 맺어 태그팀 매치를 승리한 것외에는 싱글 매치를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케보노와의 이벤트성 경기에서도 패했다. 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이벤트에서 경기 후 쓰러지는 모습만 나오는 빅 쇼는...어떻게보면 엄청난 대인배다.ㅠㅠ 하지만 2012년 4월 1일 열린 레슬매니아 28에서 코디 로즈 와의 IC챔피언쉽 매치에서 승리 하여 커리어 첫 IC 챔피언이 되었다.
  • [11] 트리쉬는 레슬매니아27에서 스누키, 존 모리슨과 함께, 돌프 지글러와 레이-쿨을 상대하는 6인 혼성 태그 매치를 가졌는데 이 경기를 준비하는 내내, 존 모리슨이 자신을 냉대하여 서운했다고 한다. 모리슨이 그녀를 냉대한 이유는 그의 여자친구가 당시 WWE에서 기량 좋은 디바로 평가 받던 멜리나이기 때문.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모리슨은 그나마 줄어들던 푸쉬를 더 못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멜리나는 사실 백스테이지에서 행실이 안 좋기로 유명해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못 했었다. 2011년에 방출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고. 다만 멜리나 외에도 벨라 트윈스나 켈리 켈리 등 다른 디바들도 이 경기 부킹에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 [12] 개최지로 거론되어졌던 곳으론 2009년에 새로 지어진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뉴 양키 스타디움 등이 있다.
  • [13] 샌프란시스코의 위성도시
  • [14] 사실 이건 존 시나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빨리 휴식기를 가지려고 한거지만.
  • [15] 재밌는건 2008년 레슬매니아 24에서 열린 WWE 챔피언쉽에서 존 시나가 승리를 내준 상대는 당시 챔피언인 랜디 오턴이었다. 그런데, 2009년 레슬매니아 25때 열린 WWE 챔피언쉽에선 랜디 오턴이 작년 존 시나와 함께 또 다른 도전자였던 트리플 H에게 패했다. 게다가 다른 월드 챔피언인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에서 시나가 승리하면서, 한 해만에 세 선수의 희비가 뒤바뀌었던 장면이었다.
  • [16] 2012년에도 헌액되었는데 TNA 소속인데도 양 단체가 서로 합의를 봐서 가능했다.
  • [17] 참고로 빈스 회장님의 부친은 헌액되어 있다.
  • [18] 현역 시절에는 MLB 역대 최다 안타를 쳤던 명예의 전당 유력 후보였으나 감독 시절 자기 팀 경기를 두고 벌인 도박으로 인해 영구 제명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마저 물 건너갔다.
  • [19]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태그 팀 매치가 메인이벤트인 케이스.
  • [20] 이 레슬매니아는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중수를 동원한 흥행으로 기록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능라도 경기장에서 안토니오 이노키가 주축이 되어 북-일 문화교류 차 열렸던 흥행(메인이벤트는 릭 플레어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이 최다 관객동원으로 기록되었으며, 당시 15만 관중이 관람하였다. 왜 비공식으로 기록되었는지는 알아서 판단을
  • [21] 토너먼트 파이널.
  • [22] WWF 챔피언쉽과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이 둘 다 걸려있었다. 워리어가 WWF 챔피언을 획득하면서 기존에 워리어가 보유하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은 공석처리.
  • [23] 브렛 하트는 이 날, 두 번의 경기를 치뤘다. 첫 번째 경기는 동생 오웬 하트와의 경기.
  • [24] 영화배우이자 미식 축구 선수.
  • [25] 오로지 흥행 하나만을 위해 다른 멀쩡한 레슬러들의 경기를 다 제껴두고 메인 이벤트 경기가 되었다. 참고로 이날 열렸던 다른 경기로는 언더테이커(with 베어러) VS 킹 콩 번디(with 테드 디비아시), 브렛 하트 VS 밥 백런드, WWF 챔피언쉽 숀 마이클스 VS 디젤의 경기가 있었다. 당연히 왜 그 경기가 메인 이벤트 경기가 되었냐며 악평이 있었다.
  • [26] 가장 유명한 60분 아이언맨 매치가 벌어진 명경기이기도 하다.
  • [27] 스페셜 인포서로 핵이빨"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나왔다.
  • [28] 포스터에는 레슬매니아 2000으로 되어있다.
  • [29] 최초로 4자간 경기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로 펼쳐졌다. 그리고 최초로 악역이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한 경기.
  • [30] 레슬매니아에서 오스틴에게 2연속으로 패했고 이후 레슬매니아 19에서 연패 사슬을 끊는다.
  • [31] 그동안의 숙적이었던 빈스의 도움으로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이 둘은 동맹을 맺는다.
  • [32] 당시 제리코가 벨트를 두 개 들고 다니는 통합 챔피언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당시 WCW 챔피언쉽(월드 챔피언쉽)은 소멸한 상태였고 "WWF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쉽(WWF 통합 챔피언쉽)"이라는 하나의 챔피언쉽이 걸린 경기였다. 2014년 현재의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과 같은 경우라 보면 된다. 다만 이 경기는 메인이벤트인데도 불구하고 앞서 있었던 진정한 메인이벤트급 경기인 락 vs 호건 의 경기보다는 포스가 떨어진다.
  • [33] 18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메인 이벤트급 경기인 더 락 VS 스티브 오스틴 때문에 묻힐 뻔 했으나 경기력 좋은 두 선수의 경기라 크게 묻히진 않았다. 다만, 18과 비교해서 흥행 성적이 크게 떨어진 데다가 마지막 브록 레스너의 삑사리 때문에......
  • [34] 최초로 3자간 경기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로 펼쳐졌다.
  • [35] 트리플 H의 등장신에서 모터헤드가 라이브 공연을 했다.
  • [36] 로얄 럼블 우승자가 참여하지 않은 메인 이벤트 경기. 아닌 적도 꽤 있지만그 동안,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 경기는 대부분 로얄럼블 우승자의 경기인 경우가 많았다. 18과 19에서 다른 메인 이벤트급 경기가 있음에도 그 경기들이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지 않았던 것은 로얄럼블 우승자의 특권을 배려했기 때문. 그러나 이 때부터 로얄럼블 우승자라고 무조건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를 맡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 [37] 4년 만에, 로얄럼블 우승자 랜디 오턴이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를 장식했다. 문제는 경기가 폭망이라 레슬매니아 25를 용두사미로 만들어버렸다.
  • [38] 연승 vs 은퇴 매치. 언더테이커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숀은 약속대로 은퇴.
  • [39] 레슬매니아 11, 25 못지 않은 최악의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 심지어 마지막을 승자인 미즈도 패자인 시나도 아닌 게스트 더 락이 장식하면서 더 욕을 먹었다. 참고로 이 날, 로얄럼블 우승자 알베르토 델 리오의 경기는 무려 레슬매니아 오프닝 매치가 되었다.
  • [40] 레슬매니아 27이 끝난 직후, 로우에서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최초로 1년 전부터 확정된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
  • [41] 구매율은 하락했지만 PPV 구매가격이 오르면서 기존의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 [42] WWE 네트워크를 통한 구매량은 66만7,000여 가구, PPV 구매자는 미국 내에서 40여만, 해외에서 29만으로 집계됨.
  • [43] 레슬매니아 10의 브렛 하트와 마찬가지로 대니얼 브라이언은 레슬매니아 30에서 두 경기를 치뤘다. 다른 한 경기는 레슬매니아 오프닝 매치로 트리플H와의 싱글 매치. 승자가 WWE 챔피언쉽에 참가하는 경기였다. 덕분에 혹시나 트리플H가 승리하여 에볼루션 멤버들이 레슬매니아를 장식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팬들이 불안해 했으나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다. 만약 트리플H가 이겼으면 레슬매니아30은 언더테이커와 브록 레스너의 경기 없이도 최악의 레슬매니아로 평가되었을 지도 모른다.
  • [44] 세스 롤린스가 머니 인 더 뱅크를 사용함으로 메인이벤트에 난입하여 트리플 쓰렛 매치로 변경. 이후 챔피언을 획득했다. 레슬매니아 16 트리플 H 이후 처음으로 악역이 엔딩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기막힌 반전 엔딩에 매니아들은 많은 환호를 보냈다.
  • [45] 언더테이커의 경기 전에 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