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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아드보카트

last modified: 2015-03-18 19:19:39 Contributors


선덜랜드 AFC 감독
딕 아드보카트 (Dick Advocaat)
본명 디르크 니콜라스 아드보카트 (Dirk Nicolaas Advocaat)
생년월일 1947년 9월 27일
국적 네덜란드
출신지 헤이그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ADO 덴 하흐 (1966~1973)
샌프란시스코 게일즈 (임대) (1967)
로다 JC (1973~1977)
VVV 펜로 (1977~1978)
시카고 스팅 (1978~1980)
ADO 덴 하흐 (1979~1980)
스파르타 로테르담 (1980~1982)
K. 베르헴 스포르트 (1982~1983)
FC 위트레흐트 (1983~1984)
지도자 DSVP (1981~1984)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4~1987)
HFC 하를럼 (1987~1989)
SVV (1989~1990)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0~199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1992~1995)
PSV 아인트호벤 (1995~1998)
레인저스 FC (1998~200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02~200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4~2006)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200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5~2006)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6~2009)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2009~2010)
AZ 알크마르 (2009~2011)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0~2012)
PSV 아인트호벤 (2012~2013)
AZ 알크마르 (2013~2014)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4)
선덜랜드 AFC (2015~)

Contents

1. 소개
2. 지도자
3. 여담

1. 소개

선수시절 미드필더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ADO 덴 하흐에서 축구를 시작해 샌프란시코 게일즈, 로다 JC, VVV 펜로, 시카고 스팅, 스파르타 로테르담, 베르헴 스포르트, FC 위트레흐트에서 활약하였다.

2. 지도자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본프레레호 아드보카트호 베어벡호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HFC 하를렘, SVV를 거쳐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8강에 올리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95년 PSV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선임되어 네덜란드컵과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1998년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2002년 루이스 판 할의 뒤를 이어 다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1] 유로 2004 본선 이후 독일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불과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이후 2005년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조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자를 찾던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이 당시 아드보카트와 아랍에미리트 국가대표팀 사이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해 아람에미리트 축협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취임한지 몇개월이 안 되어 공교롭게도 바로 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아랍에미리트와 친선경기를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0-1로 패했다.[2] 이후 평가전에서는 나름 좋은 결과를 냈으나,[3]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에서 가졌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대패했고 경기 내용적인 면 또한 좋지 않아 본선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4]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에는 실패하였으나 1승 1무 1패의 나름 괜찮은 성적을 냈다.[5] 당시 정상급의 골게터였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보유한 토고를 격파하며 원정 월드컵 첫 승을 맛보고, 비록 결과적이지만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와 팽팽한 승부 끝에 박지성의 동점골로 무승부를 거두었다.[6][7]당시 프랑스 대표팀 선발 라인업[8][9] 하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에서는 애매한 심판 판정 및 저조한 경기력으로 패배를 맛보며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월드컵이 끝나고 2006년 6월 30일로 감독직을 끝냈고,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은 수석 코치였던 핌 베어벡이 되었다.

비록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비판은 전임 감독들에 비해 많지 않았는데, 대회를 준비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대표팀 전력을 제법 끌어올려 당시 기대치가 낮았던[10] 국가대표팀을 가지고 역사상 첫 월드컵 원정 승리 및 종합적으로 1승 1무 1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이 주요 이유였으며, 어그로를 죄다 스위스전 심판인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당시 골을 기록한 선수인 알렉산더 프라이 제프 블래터가 먹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하기도 전에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사전 협상을 끝마쳤던 상황이었던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11] 가뜩이나 8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파브를 비롯해 몇 가지 TV 광고를 찍어가면서 축구 외적인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언론에서도 아드보카트를 거스 히딩크 급의 지도자로 포장해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미리 계약한 대로 바로 러시아로 날랐기 때문에 전형적인 먹튀의 수순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당시 알렉산더 프라이의 추가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호를 비롯해 당시 대표팀에서 많이 까였던 김동진을 애제자로 데려갔던 터라 아예 세 명이 세트로 묶여서 까였다.(...)

또한 전술적인 면에서도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조 최하위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토고를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친 결과[12] 16강 진출을 다투던 스위스에 비해 골득실에서 밀리는 불리한 상황을 안고 스위스와의 맞대결을 가져 무조건적인 승리를 위해 무리한 경기 운영을 펼친 결과 오히려 스위스에게 얻어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비록 스위스전 당시 전체적인 판정이 스위스에게 유리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스위스를 상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도 도마에 올랐다.[13] 그리고 취임 이후 여러 평가전에서 당시 3백 체제였던 대표팀 수비를 4백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실험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뜬금없이 3백으로 회귀했기에 평가전에서 헛되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나냐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덧붙여서 아드보카트 본인이 국가대표팀에 발탁하고 적극적으로 기용해 황태자 소리까지 들었던 조원희를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거의 기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가동해 이영표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끌어내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비판의 요소 중 하나이다.

월드컵 이후 한동안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이러한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으나, 2007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이어 2008년 UEFA 컵 우승 등 기록할만한 성과를 내자 평가가 바뀌었고, 애제자였던 김동진이 러시아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기존의 먹튀 감독에서 선수 한 명 제대로 키워준 감독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2007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제니트가 연봉을 대폭 인상한 제계약 협상을 제시하자 바로 호주 축협의 뒤통수를 치고 제니트와 연장 계약을 함에 따라 호주쪽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2009년 제니트와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비난에 시달리다 경질되는 등 계약 관련으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PSV 아인트호벤과 호주 국가대표팀을 겸임했던 히딩크처럼 벨기에 국가대표팀과 AZ 알크마르의 감독을 겸임했으나, 양 쪽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아 1년여 만에 그만두었다.

그 뒤 2010년 히딩크의 후임으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유로 2012에서 1승 1무 1패로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물러났다. 이후 2012년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유로파 리그에서 F조 3위로 탈락하는 등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시즌 후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으나 2013년 AZ 알크마르의 임시감독으로 깜짝 복귀 하여 시즌을 마쳤다. 2014년 7월 22일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14년 11월 15일 취임 4개월만에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14]

그 후 한동안 무직으로 보내다가 2015년 3월 17일, 포옛 감독을 경질한 선덜랜드 A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 여담

거스 히딩크오대영 희동구, 조 본프레레를 조봉래라고 한것처럼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아동복(...)이라고 한다.[15] 아동복 이후의 대한민국 국대 후임인 핌 베어벡가방(...)

아드보카트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동안 도미노피자에서 아보카도를 넣은 피자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16]


날아라 슛돌이 1기 당시, 슛돌이 멤버이자 미취학 아동최성우에게 굴욕(?)당하는 장면. (...) 주변 및 네티즌 사이에서는 버르장머리없는 행동이라는 악평이 있었지만[17] 표정에서 보다시피 아드보카트는 오히려 손자보듯 엄청 흐뭇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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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특히 체코와의 유로 2004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먼저 2득점을 한 뒤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다 내리 3실점을 해 역전패를 당한 것이 결정타였다.
  • [2]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왼쪽 풀백으로 당시 기대주 중 한 명이었던 장학영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는데, 이 경기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결국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선발되지 못했고, 이는 후임 감독들에게도 이어져 K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무색케 했다. 그리고 K리그에 관심없고 국가대표팀 경기만 보는 해축빠들에게는 듣보잡 선수가 되었다
  • [3] 특히 이 과정에서 조원희이호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 [4] 참고로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의 축빠 및 언론에서는 가나의 전력을 크게 쳐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심지어 몇몇 축빠들은 가나의 전력을 토고보다 약간 나은 수준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 [5] 여담으로 2006년 월드컵 국가 대표팀은 공격력 만큼은 역대 최고의 대표팀으로 꼽힌다. 최전방에 훅 불면 날아가던 시절의 박주영, 이동국(부상으로 본선 out), 안정환, 조재진. 미드필드진의 이천수, 설기현, 박지성, 김남일, 이을용에다가 오버래핑을 기대할 수 있는 이영표, 조원희(1번 항목)까지. 특히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이 당시 이천수의 측면돌파는 유럽 수비수에게도 통했다.
  • [6] 다만 이 당시 프랑스는 유럽 지역예선 당시부터 본선 조별 라운드가 끝날 무렵까지 멕시코와 함께 톱시드 팀 중 최약체로 불릴 정도로 상태가 영 좋지 않았고 특히 팀의 핵심인 지네딘 지단은 시종일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명성을 무색하게 했다. 뭐 토너먼트 진출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지만...
  • [7] 또한 이 당시 스위스도 프랑스를 상대로 비겼었기 때문에 단순히 프랑스와 비긴 것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성과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 [8] 하지만 이 당시에는 해당 선수들 중 상당수가 노쇠화로 전성기가 지난 상태인지라 네임밸류에 걸맞는 기량을 선보일 수 없었다.
  • [9] http://kfa.or.kr/record/history_nation.asp 저기서 프랑스 누르고 2006년 경기보면 나온다. 지리는 멤버들
  • [10]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와 비슷한 정도.
  • [11] 2010년대 들어 아드보카트가 월드컵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연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축빠들이 상당히 많은데, 월드컵 성적 여하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니트와의 사전 협상을 진행해 월드컵 직후 러시아로 곧바로 날라간 선택을 한 건 아드보카트 본인이다.
  • [12] 특히 후반 40분경부터 한국 진영 내에서 볼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응원하던 축구팬들에게도 까였다.
  • [13] 사실 당시 대표팀은 설령 프랑스에게 졌더라도 스위스만 이겼으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버려도 상관없었을 프랑스와의 경기는 나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반드시 잡아야했던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비판의 대상이다.
  • [14] 다만 아드보카트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게, 성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이 알바니아와의 경기에서 일어난 양 국가간의 충돌 사건으로 인해 승점 3점을 잃어버렸던 것이기 때문.
  • [15] 이외에 '안복환'이란 별명도 있었다.
  • [16] 그 피자의 이름은 리꼬쏠레 피자. 2009년쯤 그 맛없다던 타이타레 피자와 조용히 묻혔다. 안습.
  • [17] 엄연히 환갑인 할아버지한테 저런 행동을 하는건 해외에서도 봐주기 힘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