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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last modified: 2015-01-17 23:39:5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국가 대표
4. 기타

1. 개요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Demetrio Albertini)
생년월일 1971년 8월 23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베세나 인 브리안자
포지션 미드필더
신체조건 180cm
A매치 79경기 3골
소속팀 AC 밀란(1988 - 2002)
칼치오 파도바 (1990 - 1991)(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2 - 2003)
SS 라치오 (2003 - 2004)
아탈란타 BC (2004)
FC 바르셀로나 (2005)

안토니오니-알베르티니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레지스타 적통라인[1]이자 밀란 제너레이션의 주역.

슈테판 에펜베르크, 르난도 레돈도, 펩 과르디올라와 함께 대표되는 90년대 후방 플레이메이커.

현 FIGC(이탈리아 축협) 부회장.


2. 선수 시절


AC 밀란의 황금 유스 라인 중 한명[2]

1989년 17세의 나이로 데뷔하지만 당시 밀란의 중원을 담당하던 카를로 안첼로티, 프랑크 레이카르트라는 걸출한 두 레전드가 있었기에 제한된 기회만을 부여받다 90시즌 파도바로 임대를 가게된다. 임대간 파도바에서 주전자리를 차지하여 28경기 5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밀란으로 복귀한다. 시즌 종료후 안첼로티의 은퇴와 함께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93년부터 95년까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무려 3연속 진출시키지만 꼴랑 1회 우승하는데 그친다.[3]

이 후 밀란 제너레이션의 붕괴와 세대교체 실패로 인해 암흑기로 대표되는 96년부터 2002년까지 전성기를 구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레알과의 마드리드 더비에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는 등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이후 라치오, 아탈란타등을 거치고 2005년 바르셀로나에서 5경기 출장 후 은퇴한다.

대항마로 꼽혔던 선수는 발렌시아의 역적드림팀 1기의 멤버였던 로날드 쿠만.

패스와 슛 모두가 뛰어난 선수였지만 후계자라 할 수 있는 피를로와 대비해 볼 때 가장 큰 장점이자 차이점은 수비력. 알베르티니는 정말로 1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수비력을 보유했으며 여기에 훌륭한 공전개능력을 장착했다. 수비력으로 정평이 난 사비 알론소와 비교해 봐도 수비력은 한결 나은데 거기에 막강한 피지컬로 혼자서도 공을 지켜내고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의 능력에 비교불가능한 수비력을 더한 선수 같은 건 아니고 수비력에 보강이 들어갔으니 대강 패스에서 좀 빼내면 들어맞는다. 요새 선수로 비유하자면 수비력이나 몸빵이 하비 마르티네스나 마스체라노인데 모드리치 정도의 패스를 갖췄다고 할 수 있다.

3. 국가 대표


1991년 압박축구의 창시자이자 팀의 전임 감독이던 아리고 사키에 의해 발탁. 1994 미국 월드컵에서 공격 전개가 안되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베르토 도나도니, 로베르토 바지오와 더불어 유일하게 공격전개의 활로를 이끌었고, 결승전 패널티킥 2번주자로 나서 성공시켰지만 영웅이던 바지오와 아주리의 레전드 바레시의 실축으로 결국 준우승을 기록...

이후 절차부심하여 참가한 유로 1996에서는 팀 전체가 맛가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맹활약을 펼치며 찬사를 보았으나 팀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만다. 사키의 후임으로 들어온 자레 말디니는 알베르티니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 8강까지 어렵지 않게 진출했으나 그 대회 우승팀 프랑스를 만나 박빙의 대결을 벌이지만 아쉽게 석패하고 만다. 노 조프의 휘하 아래 참가한 유로 2000에서는 결국 준우승을 차지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지만 발목부상으로 낙마하고 만다.

4. 기타


은퇴 후 2006년 이탈리아 칼치오폴리 사태 조사 관련으로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트니를 조사를 위한 수석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칼치오폴리 사태 조사를 제의하며 한동한 활동하다가 칼치오폴라 사태가 마무리 되자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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