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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노비츠키

last modified: 2015-04-15 16:29:48 Contributors


댈러스 매버릭스 No.41
디르크 베르너 노비츠키(Dirk Werner Nowitzki)
생년월일 1978년 6월 19일생
213cm (7 ft 0 in)
체중 111kg (245 lb)
포지션 파워포워드
드래프트 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
밀워키 벅스에 지명[1]
역대 소속팀 (1994-1998)DJK Würzburg(독일 분데스리가)
(1998~현재) 댈러스 매버릭스
국가대표 독일 U-22(1998)
독일(1999-)
등번호 41번
수상내역 2007년 정규시즌 MVP
2011년 파이널 MVP
NBA All-Star 13회 (2002-2012,2014-2015)
All-NBA First Team 4회 (2005-2007,2009)
All-NBA Second Team 5회 (2002,2003,2008,2010,2011)
All-NBA Third Team 3회 (2001,2004,2012)
NBA Three-Point Shootout champion (2006)
NBA Shooting Stars champion (2010)
FIBA World Cup MVP (2002)
FIBA EuroBasket MVP (2005)
FIBA Europe Player of the Year 2회 (2005,2011)

2007년 NBA 정규시즌 MVP
스티브 내쉬 더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2011년 NBA 파이널 MVP
코비 브라이언트 더크 노비츠키 르브론 제임스


Contents

1. 개요
2. 독일에서
3. DJK 뷔르츠부르크(1994-1998)
4. NBA 커리어
5. 플레이스타일
6. 이것저것

1. 개요

독일 출신의 현 NBA선수. 댈러스 매버릭스의 파워포워드이자, 매버릭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선수. 별명은 란츠크네히트. 국내언론에선 간간히 란츠크네히트를 독일 병정으로 옮겨서 적곤 하는데, 한국내 NBA 팬들은 '사기츠키' ,'노기꾼' 등으로 종종 부른다. [2]

간단히 말해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기꾼빅맨 슈터".[3] 2011년 댈러스의 우승을 주도하고 파이널 MVP로 선정됨으로서 역대 PF 랭킹에서도 팀 던컨,칼 말론 바로 다음으로 거론된다.[4] 그리고 흑인 선수가 많은 nba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래리 버드 이후 최고의 백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5]

2. 독일에서

노비츠키는 독일의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독일 국가대표 농구선수였고, 그의 아버지는 독일최고의 핸드볼 선수였다. 노비츠키는 어렸을때 주로 테니스와 핸드볼을 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키가 부쩍 크기 시작하자 그는 농구로 종목을 바꾸게 된다.

스포츠집안의 아들이라서인지 재능이 보였던 노비츠키는 지역농구팀이었던 DJK 뷔르츠부르크에 참여한 후 전직 독일 농구선수였던 홀거 게슈빈드너(Holger Geschwindner)의 눈에 들게되고, 그는 노비츠키의 개인코치가 된다. 게슈빈드너는 노비츠키를 엄격하게 가르쳤고 농구뿐만 아니라 노비츠키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고, 문학책을 읽을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노비츠키에게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할 것을 주문했고, 노비츠키는 DJK성인팀에 16살의 나이에 입단한다.

3. DJK 뷔르츠부르크(1994-1998)

95-96시즌에는 팀의 주전 포워드 매티 쿠시마와 함께 주전포워드로써 매 경기 두자리 수 득점을 하면서 활약한다. 독일국가대표 코치인 더크 바우만은 "노비츠키는 훗날 10년 15년안에 독일을 대표할 선수가 될것." 이라고 극찬했다.

DJK는 2부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마지막 1부리그 승격결정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1부리그 진입에는 실패했다.

96-97시즌에는 쿠시마가 팀을 떠나면서 확고한 팀의 주전에이스가 되었다. 평균 19.4점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팀은 다시 정규리그 2위에 올랐지만, 또 승격결정전에서 패해 승격에 또 실패했다. 97-98시즌에는 독일의 수능시험으로 불리는 아비투어를 마쳤지만 이번에는 군복무 크리가 겹쳐져서 노비츠키는 97년 9월1일부터 98년 6월30일까지 군복무를 마쳐야했다.

그후 다시 팀에 복귀한 그는 2부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드디어 팀을 1부리그로 승격 시키는데 성공한다. 그해에 그는 올해의 독일농구선수로 선정되었다. 그의 뛰어난 기량은 독일밖으로도 알려져서 유럽농구 명문인 FC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영입을 제안했을 정도. 그러나 노비츠키는 이를 거절했다. 1년후에 그는 나이키가 주최하는 Hoop Heros Tour 에 참가하게 되는데, 여기서 찰스 바클리스코티 피펜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서 바클리가 극찬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나이키가 각 지역유망주들을 불러모아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Nike Hoop Summit에도 참가, 알 헤링턴과 라샤드 루이스등 미국의 농구유망주들을 압도했다. 그의 순발력과 볼 핸들링, 그리고 뛰어난 슈팅능력은 NBA스카우터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4. NBA 커리어

독일에서 웬만큼 이룰것은 이뤘고, 군복무까지 마친 노비츠키는 이제 걸림돌이 없었다. 그는 1998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하게되고, 1라운드 9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다가, 댈러스가 지명한 로버트 트레일러와 트레이드되어 댈러스로 이적하게된다.

근데 하필이면 98-99 시즌이 NBA가 파업크리를 맞는바람에 시즌개최가 불투명했다. 노비츠키는 NBA시즌이 개막되기를 바라면서 독일로 돌아가 원 소속팀에서 다시 뛰었다. 그 후 NBA와 선수노조가 극적으로 타협을 해, 단축시즌으로 시즌을 치르기로 합의하면서 노비츠키도 NBA에 데뷔하게 된다. 47경기에 출전한 노비츠키는 평균 8.2득점. 3.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장기였던 슛 성공률은 최악이었다. 독일리그와는 다른 NBA리그에서 노비츠키는 분전했지만, 그는 아직 부족했다. 무엇보다 수비력이 약점으로 지적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D가 빠진 irk가 불리며 조롱당했다. [6]

그러나 2년차 시즌에는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기량을 향상시켜나갔다. 평균득점도 9점 가까지 상승했고, 대부분의 기록이 루키시즌과 달리 수직상승했다. 팀도 인터넷 재벌이었던 크 큐반이 새로운 구단주가 되고, 큐반이 댈러스 매버릭스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면서, 더욱더 농구에 집중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클 핀리, 스티브 내쉬와 함께, 빅3로서 팀을 이끌었다.

3년차 시즌에는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서부강호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승4패로 탈락할 때까지 노비츠키는 팀의 플레이오프 득점1위를 달리는 등,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후 계속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언제나 2%가 모자라는 모습을 보였다. 03-04시즌에는 팀이 트완 워커트완 재미슨등을 데려오면서 사기라인업을 구축했으나, 1라운드에서 광속탈락하는 불운을 맛봤다. 그 와중에서도 노비츠키는 플레이오프에서 더블더블 활약을 펼치며, 이때부터 사기츠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04-05시즌, 스티브 내쉬피닉스 선즈로 이적하고, 시즌 중에는 이클 핀리가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하락되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리더자리도 그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노비츠키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팀도 이슨 테리, 리 스택하우스, 스 밴 혼등 벤치멤버를 영입하면서 노비츠키의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 시즌 중에 감독 돈 넬슨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코치였던 에이브리 존슨이 감독으로 승격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빠른속도로 팀이 수습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트레이시 맥그레디야오밍이 버티는 휴스턴 로케츠에게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승리. 2라운드에 올라갔지만, 당시 돌풍의 핵이었던 피닉스 선즈에게 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때 노비츠키는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던지, 실수를 한 이슨 테리를 험악한 인상으로 노려보거나[7] 에릭 뎀피어에게 화를 내는등의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모습에 팬들은 노비츠키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비판했다.

05-06시즌. 노비츠키는 다시 절치부심하고 시즌에 임했다. 이클 핀리도 우승을 위해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한 상황. 이제 명실상부한 팀의 리더였다. 60승 22패를 기록한 매버릭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멤피스 그리즐리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피닉스 선즈 등을 차례대로 격파하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에 오르게 된다. 상대팀은 드웨인 웨이드샤킬 오닐이 버티는 마이애미 히트. 출발은 좋았다. 첫 2승을 따내면서 우승에 거의 근접하나 싶었지만...바로 광속으로 4연패를 당하면서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06-07시즌에 댈러스는 팀 창단 이래 최고성적을 거뒀다. 서부전체 1위. 1번시드를 거머쥐고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노비츠키 본인역시 정규시즌 MVP에 선정되는 등 개인적인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전에 같이 한솥밥을 먹은 돈 넬슨이 이끄는 8번시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2승4패로 탈락하며, 업셋의 희생양이 되었고 노비츠키는 소위 '택배 MVP'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8] 지못미

07-08시즌. 전 시즌의 업셋 후유증이었는지 매버릭스는 전 시즌보다 16승이나 하락한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그쳤다. 이 기간동안 팀은 유망주였던 데빈 해리스를 내주고 뉴저지에서 제이슨 키드를 받아오는 등 우승을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이번에도 07-08시즌 돌풍의 주역인 뉴올리언스 호네츠에게 관광당하면서 또 1라운드에 탈락하고 말았다. 발이 느려진 키드는 크리스 폴을 전혀 막지 못했고, 팀의 2옵션인 조쉬 하워드는 플레이오프에서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팀이 지건 말건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면서 비난을 받았다. 시즌 종료후에는 에이브리 존슨 감독이 마크 큐반 구단주와 설전을 벌이며, 해임되는 등 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오프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릭 칼라일을 영입했다. 그리고 알찬 선수보강을 바탕으로 댈러스는 강호의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노비츠키 역시 변함없은 활약으로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의외로 가볍게 물리치고 2라운드에 올랐으나 '''이번에도 돌풍의 주역인 덴버 너겟츠에게 1승4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09-10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오르긴 했으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라운드에서 광속탈락했다. 허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감독인 릭 칼라일의 용병술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메리언을 중용하지 않았고, 중요한 6차전때 캐런 버틀러의 출전시간도 납득할수 없을만큼 짧았고, 고집스럽게도 3가드 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

10-11시즌. 오프시즌동안 팀은 그동안 거의 잉여자원이나 다름없던 에릭 댐피어를 버리고, 트레이드를 통해 타이슨 챈들러를 영입해 골밑을 강화한다. 시즌 중에도 캐런 버틀러가 시즌 아웃당하면서 생긴 3번 라인업의 공백을 야 스토야코비치와 코리 브루어를 영입해 해결했다. 정규시즌 막판까지 레이커스와 서부지구 2위자리를 놓고 접전을 펼쳤지만 서부전체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다. 1라운드에서 브랜든 로이가 마지막으로 불타오른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상대해 약간 고전했지만 2라운드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를 4전전승으로 개발살 내버리며 5년만에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올랐다!!! 댈러스 팬들과 노비츠키의 팬들은 감격의 눈물만 흘리고 있다. 노비츠키 역시 플레이오프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고, 컨퍼런스 결승 1차전에서 야투 15개중 12개를 성공시키고 자유투 24개를 얻어내 모두 성공시켜 많은 NBA팬들에게 사기를 쳤다. 역시 노기꾼.

그리고 댈러스는 결국 오클라호마 시티를 4승 1패로 누르며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노비츠키는 다시 한번 NBA 제패에 도전하게 되었다. 파이널상대는 2006년 노비츠키에게 좌절을 맛보여준 드웨인 웨이드의 마이애미 히트. 노비츠키의 실력 자체는 그때보다 물 올랐고 댈러스도 그때보다 좋은 멤버를 꾸리고 있지만 역시 더 강해진 웨이드, 그리고 그의 동료 르브론 제임스크리스 보쉬의 마이애미 히트보다 강하다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해보였다.

1차전은 접전 끝에 패배,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손가락 부상.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2차전은 정말 모든게 안좋게 흘러갔다. 마이애미는 댈러스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였으며 4쿼터가 7분 남았을때 웨이드의 3점포로 점수차를 15점차로 벌렸다. 모두가 오늘 경기는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할만 했다.

그리고 기적은 시작되었다.

테리로 시작된 불꽃은 댈러스 팀 전체를 불타게 했으며 그 기세에 마이애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막판의 무려 22-5 run으로 95:93으로 승리. 댈러스는 소중한 홈어드밴티지를 뺏어왔다. 허나 댈러스 홈에서 펼쳐진 3연전중 첫번째 경기를 아쉽게 패배,다시 홈 어드밴티지를 뺏기면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독감까지 걸린다. 그 여파로 4차전에서 노비츠키는 확실히 부진했다. 하지만 그외의 팀원들의 활약,마이애미의 자멸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5차전은 양팀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 댈러스에게는 리드를 가져갈수 있는 기회이자 마지막 홈경기.여기서 지면 남은 마이애미 원정에서 남은 2경기를 모두 가져가야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에 억눌릴 것이 확실했고 마이애미에게도 리드를 가지고 홈으로 돌아갈수 있는 기회였다. 그 때문에 경기는 역전의 역전을 반복, 결국 노비츠키,테리,키드의 연속적인 클러치샷으로 5차전을 따냈다. 이때 웨이드와 제임스의 Mocking Dirk사건이 논란이 되면서 원래 안티가 많던 마이애미는 더 많은 욕을 먹게 되고 모두가 댈러스의 우승을 바라는 상황이 되었다. 흐름과 분위기는 댈러스의 압도적 우세,하지만 분위기가 우승을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조롱의 주제였던 노비츠키는 사건에 대해 침착히 대응하며 남은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꿈에 그리던 NBA 우승을 하게 되었다.!! 파이널 MVP로도 선정되어서 기쁨은 두배. 10여년간의 NBA커리어 동안 미국땅에서의 성공과 NBA우승을 목표로 했던 이 독일인 청년은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참고로 노비츠키의 고향은 뷔르츠부르크 현지에서도 더크 아버지와 고향사람들이 NBA파이널을 시청했다. 우승이 결정되자 고향땅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파업 때문에 단축시즌으로 진행됐던 11-12 시즌, 댈러스는 우승멤버들이 해체되면서 대격변을 겪으며 지난해 우승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전력이 약화됐다. 노비츠키는 애써 팀을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은 시켰으나 신흥 강팀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게 스윕당했다. 이듬해에는 아예 무릎부상으로 전반기 경기 상당수를 날려먹었으며 댈러스는 2000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팀 상황이 워낙 안습해서 승률 5할 전까지는 면도를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다같이 털보가 됐다가 시즌이 다끝나갈때야 면도에 성공했다.이팀에 하든 친구들이 왜이리 많죠

간만에 면도하는 노비츠키.

2014년 4월 9일 유타 재즈전 이후 NBA 역대 통산득점 10위에 등극했다(이후 하킴 올라주원을 제치고 외국인 출신 NBA 선수 통산 최다 득점을 달성했다 통산 득점 9위). 2천점 가량 차이가 나는 6위 샤킬 오닐의 통산 득점 정도는 갱신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리고 현재 누적이 누적인만큼 2~3시즌 커리어를 더 이어간다면 윌트 체임벌린, 칼 말론, 카림 압둘자바 세 전설적인 빅맨이 기록했던 30000득점 10000리바운드 이상을 해낼수있을지에 관해 주목받고있다.

201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와 만나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2014년 오프시즌에 팀의 선수층을 두텁게 하기위해 댈러스와 3년 $25M이라는 싼값에 재계약을 한다. 매버릭스에서 이사님 소리들을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나중에 잘안되면 더 싸게 계약하려고하는건 덤.

2014-2015시즌 3월 25일 샌안토니오와의 경기에서 통산 25,000득점, 10,000리바운드, 1,000블록슛, 3점슛 1,000개이상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명예로운 훈장을 얻은 셈.

5. 플레이스타일

슛에 장인정신이 담긴 대표적인 선수가 노비츠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쉽게 말하자면, NBA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 빅맨 슈터이다.

7피트의 장신 선수임에도 4번 포지션에서 뛰는데 일반적인 4번, 아니 프로농구의 웬만한 4번과는 판이하게 다른 타입의 플레이어다.

일단, 노비츠키는 플레이 시작을 하이포스트에서 주로 한다. 4번 사이즈를 가진 공격형 파워포워드나 스트레치 4번도 이렇게 시작은 안한다. 외곽에서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이포스트에서 스크린으로 시작하는 투맨게임을 통해 패싱으로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슛을 던진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미드레인지에서 슈팅을 던지면서 마무리하는 타입이라 인사이드 리바운드에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노비츠키의 타점높은 슛을 막으려면 상대 4번도 같이 나와서 컨테스트를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은 농구의 기본명제를 고려할 경우 매우 비효율적인 공격이다. 지금도 골대 가까이에서 슛을 던지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며 멀리서 던지는 것은 성공률도 문제고 실패시 리바운드 가능성을 떨어뜨리며(가까이서 던지면 던진 선수도 공격리바운드를 할 수 있으니깐.) 멀리서 던질 것이면 차라리 3점 라인 바깥에서 던지면 3득점을 얻는 메리트가 있으므로 그 쪽이 더 효율적이다.[9] 그런데 노비츠키의 주요 득점루트는 3점 라인 살짝 안에서 던지는 장거리 미들슛이다.[10] 현대 농구에서는 가장 기대치가 떨어지는 슛이며 농구에서는 가장 금기시하는 슈팅이다. 그럴바엔 한발짝 뒤에서 3점슛을 같은 확률로 쏘는 쪽이 더 나으니까.[11]

노비츠키의 사기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던지면 다 들어가니까.

ESPN Sport Science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게 왜 사기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야오밍의 키를 가진 선수가 데릭 로즈만큼 점프를 해도 블럭이 불가능한 슛을 어쩌란 말인가? 페이더웨이 할 때 무릎으로 방어하는건 덤이다.


이 안 들어갈 것 같은 미들슛이 막 들어간다. 가뜩이나 막기 힘든 높은 타점인데 페이드 어웨이까지 구사한다. 슛거리는 길고 들어가봐야 2점이다. 그런데 계속 들어간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힐 수 밖에 없다. 어중간하게 마크맨이 컨테스트해도 다 씹고 들어간다. 사기츠키라는 별명은 이런 사기적인 슈팅능력때문에 생긴 것이다.
거기에 자유투까지 좋다. 물론 플레이스타일상 빅맨치고는 얻어내는 자유투의 수가 적은 편이지만, 90퍼센트를 넘긴 시즌도 수차례 있고 통산 성공율도 87프로에 달하니 이건 뭐 파울로 끊을수도 없고...

득점의 효율도 효율이지만 가공할 클러치능력으로 악명이 높다.

노비츠키는 2미터13이란 키에 비해 스피드도 좋은 편이고 드리블 능력 역시 훌륭하다. 이 때문에 슛을 페이크로 쓰고 나서 돌파로 득점을 올리기도 한다.

노비츠키의 운동능력이 좋지 않다는 오해도 있지만 실상은 당대의 선수들중 동급신장 최고 수준의 스피드를 지닌 선수였다.

이 동영상에서 현재와는 사뭇다른 리즈시절 노비츠키의 운동능력을 실감할수있다. 특히 요즘은 좀처럼 볼수없는 탄력적인 덩크와 코스트 투 코스트를 하는 모습들이 단연 압권

데뷔 초기에는 수비를 계속 지적당했지만 거듭된 노력 끝에 일대일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일은 없어졌다.

6. 이것저것

독일 출신으로서 먼저 NBA에 진출했던 데틀레프 슈렘프와 함께 NBA에서 성공한 독일인 농구선수로 평가된다. 독일 농구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편. 거의 대표팀 소집을 거른적이 없다. 심지어는 유럽농구에서 존재감이 미비한 마케도니아와 독일의 평가전때도 소집에 응했을 정도. 노예가 따로없다. 奴婢츠키? 하지만 10-11시즌이 시작되기 전 오프시즌에는 대표팀 차출을 처음으로 거부했다. 독일 농구협회에서도 그의 결정을 이해하는 분위기. 노비츠키는 그러나 이것이 국가대표 은퇴가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향후에도 대표팀 소집에 응할 용의는 있는듯.

사실 독일 농구 국가대표팀은 노비츠키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 먹고 산다. 노비츠키가 없으면 그야말로 시망. 이는 다른 독일 국가대표 농구선수들 기량이 노비츠키와 너무 차이가 나는데다 노비츠키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막중한 자리때문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아 강하기 때문.[12]

플레이 스타일이 주로 슛을 위주로 한 플레이다 보니, 무시무시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농구를 구사하는 케빈 가넷이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에 비하면 좀 재미가 없는 플레이 스타일이기도 하다. 포스트업과 돌파를 장착하긴 했지만, 역시 재미보다는 공격의 다변화라고 보는게 맞을 듯.

NBA에서 통산 2만득점을 돌파한 첫번째 유럽인 선수다. NBA리그에서 자신만의 족적을 잘 남기고 있는중.

2011 NBA 챔피언이 된 이후 주가가 급상승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플레이오프 및 결승전에서의 대활약으로 노비츠키를 재평가하는 분위기이며, 언론매체 여기저기서 찬양, ESPN에서 수여하는 "ESPY Best NBA Player" 부문에 이어 "ESPY Best Male Athlete"[13] 부문까지 수상함으로써 2011년을 명실상부한 더크 노비츠키의 해로 만들었다.[14]

어릴적부터 코치의 가르침대로 농구외적으로 음악과 문예에도 열심이었는지 다룰줄아는 악기가 꽤있는것같다. 색소폰을 잘분다고 알려졌는데 독일의 한 쇼에 나온걸 보면 기타연주에도 나름 조예가 있는듯 다만 노래실력은 좀 아닌듯하다

비미국선수중 가장 NBA에서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되었다.[15]

차갑고 무뚝뚝한 독일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을 잘 뒤져보면 예술급 표정의 그의 사진을 감상할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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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M01_ykXJ3mc)
농구에서는 사기꾼이지만 랩에는 젬병이다. 압권은 27초 부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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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드래프트 당일 바로 댈러스 매버릭스가 지명한 로버트 트레일러와 트레이드 되었다.
  • [2] 정말 사기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클러치 상황에 나오는, 혹은 그냥 단순한 플레이가 너무나 사기적이어서(...)
  • [3] 정교한 장신 슈터로 래리 버드가 있긴 하지만 버드는 SF에 가깝고 PF나 C로 한정한다면 노비츠키와 동급의 빅맨 슈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 [4] 주로 3위경쟁에서 케빈 가넷과는 동급으로 묶어진다. 엄청난 기량으로 90년대를 수놓은 찰스 바클리도함께.
  • [5] 물론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중 하나였던 버드와 달리 인기는 별로 없다. 외국인인것도 한몫하지만 플레이가 역동적인 화려함과는 좀 거리가 머니 어쩔수없는것. 다만 버드도 화려한 선수는 전혀 아니란 걸 생각하면 외국인+미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닌 매버릭스 소속이란 게 커 보인다. 게다가 버드는 한때 역대최고 떡밥이 나올 정도로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였는데 노비츠키는 그 정도는 아니니...
  • [6] 후에 신인시절 Jump shoot이 없다며 ason kidd라고 조롱받던 제이슨 키드가 댈러스에 돌아오면서 함께 우승을 일군걸 생각하면 참 희한한일이 아닐수없다.
  • [7] 근데 이 때 제이슨 테리의 실수가 보통 실수가 아니긴 했다.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3점차로 앞서고 있었는데, 경기 종료 10초 전 3점라인 정면 지점에서 NBA 최고의 3점슈터인 스티브 내쉬에게 밀착하지 않고 공간을 줬다가 사실상 시리즈를 결정지은 동점 3점슛을 얻어맞았다.
  • [8] 진짜로 MVP 트로피를 택배로 보내준 건 아니고(…) 실제로는 이때 기자회견과 사진촬영을 곁들인 조촐한 수여식을 가졌다. 당연히 nba 총재 데이빗 스턴과 감독 에이버리 존슨, 구단주 마크 큐반이 참가했다. 상식적으로 nba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인기 리그가 그 시즌 최고의 스타인 mvp에게 트로피를 집으로 배송한다는게 말이나 되는가...구글에 Dirk nowitzki mvp david stern을 치면 관련 사진을 확인할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mvp 시상식은 플옵 경기에서 홈팬들 앞에서 하고 시기상(2라운드 도중 시상)우승의 가능성이 있을때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굉장히 좋은데 이때 노비츠키는 광탈당한 이후, 게다가 홈팬들 앞에서 한것도 아니니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 [9] 실제로 농구에 세이버매트릭스를 적용하는 전문가들은 3점슛의 성공률에 가산점을 주는 Total Shooting Percentage(TS%)라는 기록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 [10] 커리어 초기에는 4.8개 내외의 3점슛을 던지는 등 3점 비율도 높았다. 06-07시즌을 기점으로 3점슛 시도를 줄여가다가 2개 초반까지 줄였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3~4개의 3점슛을 시도 중.물론 성공률은 4할 내외로 매우 좋다.
  • [11] 아니면 가까이 붙어서 성공률도 높이고 리바운드 다툼에도 도움이 되거나. 그래서 롱2라고 불리는 장거리 미들슛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들은 노비츠키나 라마커스 앨드리지처럼 높은 성공률을 갖지 못하면 팀에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다. 13-14시즌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패망의 주인공인 조쉬 스미스처럼...
  • [12] 크리스 카만등 NBA에나 유로리그에서 뛰는 독일선수는 있지만 유럽농구의 수준이 상향평준화가 돼서 이렇다할 성적이 안나온다.
  • [13] 1993년 마이클 조던이 수상한 이래로 NBA 선수로선 최초이며, 현재 유일무이한 외국인 선수 수상자이다.
  • [14] 참고로 "Best Team" 부문은 댈러스 매버릭스가, "Best Coach/Manager"는 댈러스의 릭 칼라일 감독이 수상했다. 말그대로 댈러스가 상을 휩쓸었다.
  • [15] 전에 항목에선 귀화한 비미국선수라고 기재되어있었지만 노비츠키는 귀화한적이없다. 애국심에 번번히 독일 국가대표에 참가하는것만봐도 말도 안되는말
  • [16] 참고로 말하자면 댈러스 매버릭스와 노비츠키는 이런짓(...)을 거의 매시즌간 했었다. 팀관련해서 웃긴영상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수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 가사를 가운입고 낭독하는 노비츠키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