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last modified: 2015-03-30 01:08:17 Contributors

실제로 일어난 사건! HELP!

이 문서가 다루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며, 열람 및 수정 시 주의해야 합니다.
서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http]위키워크샵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83년 9월 1일
유형 민항기 격추
발생 위치 소련 사할린, 모네론섬 부근
탑승인원 승객 : 246명
승무원 : 23명
사망자 승객, 승무원 269명 전원 사망
기종 Boeing 747-230B
항공사 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442
출발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도착지 김포 국제공항


Contents

1. 요약
2. 사고
2.1. 경과
3. 사건 발생 후
4. 각국 정부의 대응
4.1. 9월 1일
4.2. 9월 1일 이후
5. 기체 수색
6. 사건 그 이후
7. 영공 침범 원인
8. 영향
8.1.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
9. 관련자료
10. 음모론
11. 기타
12. 관련 항목
12.1. 유사 사건
12.2. 그 외
12.3. 외부 링크

1. 요약


1983년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1] 대한항공 007편(기종 보잉 747-230[2], 등록번호 HL7442)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의 SU-15TM 요격기에게 격추당해 추락한 사건이다.

대한항공 007편에는 총 246명의 승객과 2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중에는 미국 하원의원인 로렌스 맥도널드가 탑승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소련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소련 정부에 항의하였다. 다만 외교 채널이 없어 직접 항의하지 못하고 미국을 통해 항의했으며, 사건 당시 정부는 자국민 수백명이 몰살당했음에도 강대국 눈치를 보는 작태를 보였는데 "대한항공 007기가 제3국(물론 소련) 전투기에게 격추되었다."라고 발표한 것.

2. 사고

2.1. 경과

모든 시각은 서울/도쿄 표준시 기준

  • 1983년 8월 31일 오후 1시 5분
    대한항공 007편이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이륙했다. 이때 관성항법장치 3기중 1기의 고장이 발견되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8시 30분
    연료보급을 위해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연료를 보급하며 승무원도 교대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9시 20분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이륙하려 했으나 뒷바람 때문에 김포국제공항의 개항 시간인 오전 6시 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어 출발 시간을 조정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9시 50분
    예정보다 30분 늦게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출발했다. 뒤이어서 로스앤젤레스발 서울행의 대한항공 015편도 이륙했다.[3]

  • 1983년 8월 31일 오후 10시 00분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007편이 이륙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10시 02분
    007편이 웨이포인트 '베젤'로 향하기 위해 방위 245도로 선회했다. 이후 방위는 계속 고정되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10시 27분
    카이룽산 전파국 부근을 통과하여 레이더 권외로 빠져나갔다.[4] 이때 이미 예정 항로였던 J501항로에서 북쪽으로 11Km나 이탈한 상황이었지만 항공 관제사의 경고는 없었다.

  • 1983년 8월 31일 오후 10시 49분
    앵커리지 센터의 관제관에서 웨이포인트 '베젤'의 통과를 알렸다. 실제 웨이포인트 '베젤'의 위치보다 22Km 북쪽에 있었으며. 이때 미 공군 레이더 기지 King Salmon의 권역이었지만 민간 항공기에 대한 관제권이 없었기 때문에 경고는 없었다. 이후 가장 북쪽에 있는 북태평양 항로인 R20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0시 51분
    소련의 방공 레이더가 캄차카 반도 북동쪽 상공을 비행하는 항적을 확인하고 미 공군 기체라고 판단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1시 30분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에 진입했다. 소련 공군기는 요격 시도를 하지 않고 그대로 귀환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2시 28분
    대한항공 007편이 캄차카 반도 상공을 통과했다. 이때 소련 측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2시 36분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섬 상공에 접근했다. 이때 소련군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2시 54분
    이 때부터 대한항공 007편의 조종석 녹음 장치의 기록이 남아있다. 조종사들은 잡담중이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5분
    대한항공 007편이 대한항공 015편과 교신했고 서로 바람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았다.[5] 하지만 조종사는 비행계획서를 체크하고 오차 범위 안쪽이라고 판단하여 항로에 이탈한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6]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8분
    소련 방공군의 Su-15TM 요격기가 007편을 확인했다. 어두웠기 때문에 기종식별은 불가능했고 항법등과 충돌방지등이 점멸하고 있는 것을 보고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0분
    도쿄 센터의 관제관이 대한항공 007편에게 고도 3만 5천피트로의 변경을 허가하였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1분
    소련 방공군의 MiG-23P 요격기가 경고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예광탄은 탑재되어있지 않았고 철갑탄만이 발사되었기 때문에 대한항공 007편은 보지 못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3분
    대한항공 007편은 고도 3만 5천피트로의 상승을 끝냈다. 이때 속도가 조금 떨어졌기 때문에 소련 전투기가 바로 옆까지 따라붙었다. 그리고 대한항공 007편에 대한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7]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5분
    겐나디 오시포비치가 조종하는 Su-15TM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통상 수순을 밟아 적외선 유도방식과 레이더 유도방식의 2종류를 발사했다. 30초 후, 대한항공 007편의 미익에 적외선 유도방식의 미사일이 명중했다. 이로 인해 방향타 제어 케이블 주변과 유압계통이 손상되고 약 1.75평방미터의 구멍이 뚫려 급격한 감압이 발생했다. 기체는 순간 상승한 후 하강하기 시작했으며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6분
    기장이 도쿄 센터의 관제관에게 "급격한 감압 발생, 고도 1만피트로 하강한다"라는 교신을 보냈지만 잡음에 의해 중간에 끊겼다. 이후 대한항공 015편이 도쿄 센터와 007편의 교신을 중계하여 몇차례 응답요구를 보냈지만 응답은 없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27분
    피탄 후 1분 44초, 블랙박스의 기록이 끊어졌다. 녹음 장치에 남아있던 마지막 음성은 긴급 강하를 알리는 방송이었으며 이후 대한항공 007편은 왼쪽으로 선회하면서 하강했다.

  •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 38분
    소련과 왓카나이의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에서 대한항공 007편의 항적이 사라졌다. 이때 일본오징어잡이 어선 58치시마호(第五十八千鳥丸)가 모네론 섬 북쪽 18.5해리 지점에서 비행기의 폭음과 해상에서의 폭발을 목격했다.

3. 사건 발생 후

항로를 이탈한 007편은 항공자위대의 왓카나이 레이더 기지에서 계속 관측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바다 위를 비행중이었을 007편은 ATC 트랜스폰더에서 식별 신호를 발신하지 않았고 항공자위대는 007편을 "소련 영공을 비행하는 소속불명의 대형기"로 판단하고 그 주변을 비행하는 소련 전투기를 "요격 훈련중인 전투기"로 판단했다.

또, 일본의 육상막료감부 조사 제2부 별실에서는 소련 전투기가 지상 기지와 교신하고 있는 음성을 잡았고 "미사일 발사"의 교신을 확인했지만 이 시점에서 소련 영공내에서 영공 침범기에 대한 통상 요격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민간 항공기가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 이때 교신이 녹음된 테이프는 미국이 소련에게 민간기 격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일본 정부에서 미국 정부로 넘어가지 않았다...

격추 직후, 왓카나이의 레이더 기지에서는 소속 불명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발견했고 행방불명기가 없는지 일본, 한국, 미국, 소련의 각 항공당국에 문의했지만 일본, 한국, 미국에게서는 "행방불명기는 없다"라는 대답이 있었고 소련은 대답이 없었다.

피격 30초 후, 007편과 통신하고 있던 도쿄 센터에 잡음이 섞인 007편의 교신이 들어왔지만 그대로 연결이 끊어졌다. 부근의 015편도 007편과의 교신에 실패했고 30분 후 "조난의 가능성이 있음"이란 보고와 함께 당국에게 수색을 요청했다.

4. 각국 정부의 대응

4.1. 9월 1일

9월 1일 아침, 일본 정부가 대한항공기가 사할린 만 상공에서 행방 불명된 것을 공식 발표했고 곧바로 일본의 TV나 라디오에서는 속보로 "대한항공기가 행방불명됐다"라고 보도했으며 각국의 통신사가 도쿄발 기사로 대한항공기의 행방불명을 보도했다. 이후 "소련 공군에 의해서 사할린 섬에 강제 착륙했다", "승무원과 승객은 전원 무사"라는 등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보도 있었고 일본의 매스컴이 이런 오보까지 전부 보도했기 때문에 대한항공 본사와 유가족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MBC에서는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 유가족의 얼굴을 화면에 비추기도 했는데....

이런 대한민국, 미국, 일본의 서방측 보도에 대하여 소련은 "해당 항공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공침범기는 동해로 빠져나갔다"라며 사건을 일체 부정했다. 소련이 이렇게 나오자 미국은 "소련 전투기가 007편을 격추했다"라고 발표했다. 일본에게서 입수한 소련 전투기의 교신 테이프도 잡음을 없애고 러시아어 자막을 붙여 일부를 방송했다. 이 발표로 인해 사건의 당사국인 한국, 일본, 미국 등의 서방측 정부에서 소련에 대해 비난이 쇄도하고 소련에게 사실 발표를 요구했다.

이날 소련 정치국 회의가 있었지만 이 사고는 한번도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다음날 임시 정치국 회의가 열렸지만 "영공침범기를 계획적인 도발행위였다고 비난한다"라는 결의만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홋카이도 만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어선이 기체의 파편이나 유품을 발견하고 해상보안청과 미 해군의 군함이 대한항공기가 추락했다고 생각되는 곳 부근을 향해 이동했다.

4.2. 9월 1일 이후

9월 2일엔 소련군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가 "영공침범기는 항법등을 켜지 않았다", "경고에 응답하지 않았다", "동해 방면으로 날아갔다"라고 발표했다.[8]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소련 정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대한민국 정부도 제3국소련을 비난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서방측 정부가 소련의 대응을 비난했다.

9월 6일, UN 안전보장 이사회에 육상막료감부 조사 제2부 별실이 녹음한 소련 공군기의 교신 내용 테이프에 영어와 러시아어 자막이 들어간 비디오가 미국에 의해 각국 UN 대사에게 공개되었고 소련 공군기에 의한 격추 사실을 다시 한번 전세계에 확인했다. 이때 소련 대사는 화면에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이후 소련 외무대신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격추를 인정하는 성명을 정식 발표했다.

9월 9일, 소련 참모부장 오가르코프가 "대한항공기는 민간 여객기로 위장한 스파이기였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9월 13일 긴급 UN 안전보장위원회 이사회에서 소련에의 비난 결의가 상정되었지만 상임 이사국인 소련의 거부권 행사에 의해서 부결되었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한국은 소련과의 외교관계가 전혀 없었고 UN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에게의 항의나 교섭, UN에서의 활동은 UN 가입국이고 소련과 국교가 있으며 이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이기도 한 미국과 일본이 주체가 되었다.

5. 기체 수색

사건 발생 후 곧바로 미국, 소련, 일본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사할린 섬 서쪽의 모네론 섬 주변의 해역을 수색했지만 소련은 영해로 미국과 일본의 선박이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으며 공해상에서의 수색에 대해서도 미국과 일본의 선박에 대해서 방해공작을 펼쳤다.

이후, 소련에서는 회수한 기체 일부와 유품 등 일부 회수물을 일본측에 넘겼지만 "이것말고는 유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블랙박스는 회수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체의 파편이나 시신의 일부가 사건 직후부터 계속 홋카이도 해안으로 흘러왔고 근처에서 조업중이던 일본 어선에서도 회수했기 때문에 이러한 소련의 발표내용은 처음부터 의문시되었다.

그리고 미국, 소련, 일본이 필사적으로 찾고 있던 블랙박스는 이미 사건 직후 소련 당국에 의해서 회수되었다. 소련 당국은 조종석 녹음장치와 비행기록장치의 분석을 모두 끝내놓고 1983년 11월 28일에 극비 보고서로 스파이 행위설을 완전 부정했다. 하지만 "스파이 비행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블랙박스의 회수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일본과 미국은 이 사실을 모르고 반년이나 블랙박스를 찾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9]

또한 블랙박스의 극비 회수지시가 사할린 부근 주민에게 내려졌던 것, 주민들이 지시서에 써있던 것과 같은 것을 바닷속에서 건진 것, 그리고 주민들이 가져간 부품이 격추당한 대한항공기의 것이라는 사실이 니혼TV의 취재에 의해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에 판명되었다. 니혼TV는 소련 국방성의 허가를 얻어 잠수정을 사용해 사고 현장을 촬영했고 기체의 잔해나 희생자의 의류, 그리고 유골의 일부가 촬영되었다.

6. 사건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소련이 사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에 의한 소련 정부에 대한 정식 항의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 및 각급 학교에서 규탄 대회를 열고 소련 국기를 불태우는 등 소련에 대한 항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또한 해당항공기를 격추한 사람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격추지시가 있었고 그 사람은 그것을 반대하였다는 것.

미국아에로플로트미국 취항을 무기한 정지하고 자국 정부 직원의 아에로플로트 이용을 제한했으며, 팬암소련 취항도 정지시켰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따른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의 서방권 국가들의 불참에 이어 1984 LA 올림픽에 대한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또 다시 반쪽 올림픽 대회로 전락하는 등 양국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었다. 아에로플로트미국 취항 금지는 1986년 4월 29일까지 이어졌다.

이 사고 후, 수많은 유족들이 각자 대한항공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대한항공은 배상 청구에 대해서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 때문에 많은 유족들은 원만한 해결을 하지 못했다.

사건 당시 ICAO(국제민간항공기관) 이사회는 민간 항공기의 요격은 피하고 가능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 어떠한 경우라도 무기의 사용은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84년 시카고 조약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이것으로 영공을 침범한 민간 항공기를 격추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1989년 이란항공A300을 미사일로 격추시키고도 그걸 찬양한 미국은 당시 소련에게 비웃음당하며 피장파장이라고 놀림받았다. 자세한 건 빈센스호 사건 참고.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한 파일럿인 겐나디 오시포비치 중령은 1986년 사고로 중상을 입어 퇴역했고, 민간 항공기를 격추한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했다.

당시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침묵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하였다. 소련 측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 통신망이 미국에 의해 감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군 교신용 주파수를 모조리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감청을 통한 소련군의 정보수집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사건 후 대한항공은 사고기의 편명인 007편을 영구결번했다. 대한항공뉴욕행 노선에서 007편이라는 편명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007편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민항기인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데 아무 죄책감도 없었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전투기 조종사는 당시 007편 꼬리날개에서 민항기 항법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찰기인줄 알고 과감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에선 일반 여객기에 여러가지 장비들을 달아 군용 정찰기로 써먹기도 하고, 또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시키는 페이크를 자꾸 쳐온터라 격추 당시에는 민항기인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나마나 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때마침 소련 정보부로부터 '해당 지역에 미군 정찰기들이 자꾸 싸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 그 지역 방공부대들은 제대로 정신줄 잡고, 걸리는 놈들은 전부 격추시켜버려'라고 지시를 받은터라 확신을 가지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후에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본인이 격추시킨 비행기가 알고보니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가 아니라 진짜 민항기였음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고.

7. 영공 침범 원인

최초 사고 조사 위원회는 블랙박스를 회수할 수 없어서 다음과 같은 추측만 하고 해산되었다.그 내용은 "항로 이탈의 원인은 난기류 혹은 적란운 회피를 위해 일시적으로 방향각 모드(방향각만을 지정하는 자동조종모드)로 바꾼 채로 관성항법장치로 바꾸는 것을 잊어버렸던가, 관성항법장치로 바꿨지만 지정한 항로에서 7.5마일 이상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다"란 것이었다. 어느쪽이 정확한지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 관성항법장치의 입력 실수
    항로는 통과지점을 순서대로 관성항법장치에 입력하도록 설정되지만, 경도나 위도 둘 중 하나가 잘못 넣어진 것은 아닌지, 혹은 출발지의 좌표가 잘못 넣어진 것은 아닌가하는 설이다.

  • 관성항법장치의 작동 실수
    관성항법장치는 비행전에 자이로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이 작업에서 실제로 항법장치를 시작할 때까지 스위치를 바꿔넣지만 바꿔넣기 전에 기체가 움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설이다.

  • 관성항법장치의 조작 실수
    항로에 탈 때까지 방위각 모드로 비행하고 항로에 진입한 후로는 유도 모드로 바꾸지만 난기류 혹은 적란운을 피하기 위해 방위각 모드로 바꾼 뒤, 다시 관성항법장치 모드로 바꾸지 않았거나, 혹은 바뀌지 않았다는 설. 실제로 모드를 바꾸는 것을 잊어버린 일본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소련 공군이 긴급 출격한 사례가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되고 1991년 소련 해체 후 비로소 대한항공 007편의 블랙박스가 대한민국으로 전달되었다.[10] 이후 블랙박스는 ICAO에 제출됐고 남은 유품은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ICAO는 이 블랙박스를 제3국이었던 프랑스의 항공당국에 제출하여 분석했고 그 결과를 기본으로 하여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최종 보고서는 블랙박스 기록에 의거하여 조종사가 이륙 후부터 격추시까지 방위각 모드에서 유도 모드로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NGC 항공사고수사대에서 관련 내용이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해당 방송에서는 소련이 격추라는 극단적인 대응을 한 이유를 당시 미국 정찰기가 근처 공역에서 활동중이었고 이를 오인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는 미국이 사건후 007편의 비행항로가 담긴 극비 첩보자료를 조사단에 제공했다고 나온다.

8. 영향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군사용으로만 사용될 예정이던 GPS를 민간에게도 제공할 것을 공표하였다.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공동으로 새로운 기체 도색을 고안하여 현재까지 하늘색 도색을 사용하고 있다.

8.1.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

길창덕 화백의 고집세에서는 이 사건때문에 소련을 이기자는 뜻으로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었다. 우생학??

KBS에서 방영중인 SF 인형극에서는 갑툭튀한 외계인 집단이 지구의 여객기를 격추시키고 항의하는 지구인들에게 그 여객기는 우리를 정찰하려는 지구방위군의 스파이였다고 오리발 내미는 에피소드가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아기공룡 둘리에서는 둘리가 우리 여객기를 격추한 소련 조종사를 잡겠다며 온갖 말썽을 부리다 얼떨결에 한강에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간첩을 잡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계속된 말썽에 고길동에게 크게 혼난 둘리는 벌을 받으면서 "코나 깨져라." 라고 말하고, 둘리의 초능력에 의해 소련 파일럿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미끄러져 코가 깨지는 엔딩. TV판 애니메이션에선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바꾸면서 소련이 아닌 북한 관련으로 다르게 나온다.

신문수 화백의 신통방통이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서 소련군 전함을 날려버리고 바다에 가라앉음에도 무사한(?) 007편 여객기(당시에는 칼(KAL)기라고 불렀는데 이 만화에선 카알 기라고 부른다)를 구해준다. 그러나 알고보니 방통이의 아시발꿈.

이 사건 이후에 관련 반공동화(...)들이 양산되었는데 대부분은 소련을 비난하는 어린이들의 분노를 담아낸 세미 다큐멘터리 동화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소련에 대한 복수를 해달라는 편지와 레이건 할아버지, 낸시 할머니에게 사건 처리를 감사한다는 어린이들의 편지 모음집도 있었다.(....)

록 뮤지션 게리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Murder in the Skie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1984년 발표된 앨범 Victims of the Future에 수록되었다.

1988년에 미국에서 TV영화로 돌아오지 않는 KAL 007(비디오 제목/ 원제는Shootdown)이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1991년에 KBS에서 토요명화로 방영하려다가 방영금지된 바 있는데,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제시카 아줌마과부 안젤라 랜스베리가 사건 관련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음모를 밝힌다는 내용인데 처음 설정으로는 부기장이 CIA의 에이전트로서 실수를 가장한 소련 영공 침투 시험을 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비난을 받았고 약간 바꾸어 한국인 비행사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소련으로 넘어가려는 듯한 설정을 보여서 기장의 유족들이 반발했다. 영화적 완성도는 범작 수준... TV 방영은 당연히 금지되었지만 비디오로는 출시되었고 케이블에서도 가끔 틀어준다. 다만 사고 재현 부분은 꽤 긴박감이 있어서 한국 TV 뉴스시간에 소개될 정도였다.

중국의 모형 메이커 트럼페터에서 발매한 1/48 스케일의 Su-15TM 키트의 박스 아트가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 오시포비치의 기체 번호는 17번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동료기였다거나 일부러 번호를 바꿨다는 등의 의견이 난무했다. 사실 해당 킷 모델인 Su-15만 그려도 되는데 저 멀리 민항기로 보이는 기체를 그려넣을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게 가장 큰 의문이다.

영국의 TV시리즈 셜록(드라마)의 시즌2 에피소드1 벨그레이비아 스캔들에서 추락 예정이던 민항기는 007편이었다. 대한항공 사건서 미국이 소련군 교신의 감청을 통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감청 사실을 숨기기위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숨겼다는 음모론 또한 드라마와의 유사점. 다만, 셜록은 대한항공 사건이 아닌 코번트리 음모론을 언급한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지만 1993년 발매된 '삶 사람 사랑'[11] 1집 수록곡 중 '할머니와 비행기'라는 곡이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곡이다.
노래의 내용은 미국에 계신 할머니가 손자의 선물로 줄 야구장갑과 모자를 사서 한국으로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시신을 못찾아 결국 할머니의 옷을 묻고 묘를 꾸몄고, '(내가 기다리던) 야구장갑과 모자는 이제는 잠기어 저 바다속 어디에 있겠지 할머니가 사주신 나의 것 보고싶어 어째 손자는 할머니보다 선물을 바랐던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와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는 내용. 가사가 가사다 보니 노래 자체도 암울하고 어둡다.

9. 관련자료

KAL007_1.png
[PNG image (Unknown)]

대한항공 007편의 실제 비행항로와 비행 예정항로, 일본 상공을 통과해 서울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소련영공을 침범했다. 점선이 비행 예정항로다.

KAL007_2.jpg
[JPG image (Unknown)]

미사일 피격 144초후의 비행 데이터

KAL007_3.jpg
[JPG image (Unknown)]

당시 소련 측에서 회수한 유품들

10. 음모론

냉전의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고 적국 영공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당연히 음모론이 따라오게 되었다. 일단 고의 정찰설, 미국 방조설[12]등이 주요 음모론이다.

사망한 탑승객중 미국의[13] 로렌스 맥도널드 상원의원이 있었던 것도 음모론의 근원인데 1983년이면 한국전쟁 휴전 30주년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이 한국방문을 하려고 했다. 다행이 10분뒤 출발하는 다음편 항공기를 대표단이 탑승하는 바람에 주요 의원 몰살이라는 비극은 피했지만 하필이면 맥도널드 의원이 문제의 항공기에 탑승했으니... 그래서 어떤 높으신 분[14]들의 암살작전이라는 게 음모론의 요지이다. 음모론 총정리

추락이 아니고 사실은 캄차카에 착륙했고 탑승객들이 전원 살았으며 맥도날드 의원은 루뱐카에 나머지 승객들은 시베리아 굴라그에 수용되어서[15] 사망했다는 음모론도 미국에서는 꽤 퍼져있다. 이에 따르면 해상에서 발견된 파편은 소련이 비슷한 기체를 고의로 폭파시켰고 블랙박스는 소련이 당연히 입수해서 처리했다는 논지인데, 위에 서술한대로 옐친이 블랙박스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었고 그것에 따른 분석자료가 나와 있는 현재는 거의 폐기된 음모론이다. 물론 디씨나 일부 인터넷에서는 옐친이 블랙박스를 조작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공개된 블랙박스는 불시착 또는 추락 이후 탑승객들의 사망이나 생존 유무를 식별하는 단서가 될 수가 없다.

기타 쩐의 전쟁화폐전쟁 등에서는 세계정부의 실체를 밝히려던 맥도날드 의원을 암살하기 위해 비행기를 폭파시켰다는 가설음모론도 있었다.

11. 기타

  • 홋카이도의 최북단이자 일본의 최북단인 소야 곶(宗谷岬)에 위치한 공원에 이 사고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설치되어있다.
  • 월간조선이 이 사건에 대해서 르포를 여러 번 냈었다. 잡지의 논조와 상관없이 분석을 상당히 예리하게 했었는데, 2003년에는 비행기를 격추시켰던 오시포비치와 인터뷰까지 했었다. 요지는 나는 잘못 없고 007기는 미국 CIA의 지시를 받고 소련내 정찰을 하는 스파이 행위가 맞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라는 내용이다.
  • 1991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희생자의 유해 일부로 보이는 사람의 잘려진 팔뚝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흠좀무.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오시포비치는 KAL기가 민간기라는 것을 알고 격추했다고 하는데, 1997년 동아일보 인터뷰와 2003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몰랐다고 말을 바꿨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혐오 주의[16]
  •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에도 9시 뉴스(KBS 9뉴스, MBC 뉴스데스크)에서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또한 이순자 여사부터 다뤘다는 웃지못할 얘기가 있다.(...)
  • 2014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 http://www.youtube.com/watch?v=hCrvEqeHOTU -플심으로 재현한 영상이다.
  • 동년 1월 8일 007편은 폭탄테러 미수를 겪은 적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장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긴급착륙했으며, 샅샅이 수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폭탄은 없었고, 범인은 정신이상 중국인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12. 관련 항목

12.2. 그 외

  • 9.11 테러 - 2001년 (여객기 납치 후 건물에 충돌공격)

12.3. 외부 링크

----
  • [1] 당시 대한민국에서 미국 동부 지역으로 가는 여객기는 항속 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나마 거리 손실이 낮았던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연료 보급, 승무원 교대가 이루어졌다.
  • [2] 콘도르 항공에서 중고로 들여온 여객기이므로 이쪽 항공사의 고객 코드를 따른다
  • [3] 3년 전에 추락한 비행기 이름과 같다! 자세한 건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참조
  • [4] 레이더 권외로 빠져 나가면 항공기의 위치추적은 불가능하다.
  • [5] 예정대로라면 007편과 015편은 같은 항로를 약 2분 정도 뒤쳐진 거리에서 비행하고 있을 예정이었지만 이미 007편은 항로를 이탈한지 오래였다.
  • [6] 원래 같은 항로를 2분 정도 거리로 비행하면 바람의 방향이 다르지 않다. 바람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항로를 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7]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경고사격 이후에 고도를 올린 것은 경고사격을 알아차리고 반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SU-15TM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007편이 자신을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고도 상승이 공격적 행동이 되는 이유는 고도를 상승시키면서 속도가 떨어졌는데, 전투기가 이 속도에 맞춰서 같은 거리를 두고 추적하려고 하면 실속에 빠져서 추락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즉 전투기의 추락을 의도한 지능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전투기의 비행특성까지 인지한 군의 전문가가 조종하고 있는 비행기이지 민항기일 리가 없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 [8] 단, 항법등은 켜져있었고 충분한 경고는 없었다고 겐나디 오시포비치가 증언했다.
  • [9] 이후 이 블랙박스는 1992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이 관계 개선을 위해 방한하면서 국회 회의장에서 공개하며 한국에 넘겨주게 된다.
  • [10] 이 때 당시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이 직접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
  • [11] 015B의 베이시스트 조형곤과 그의 형 조형민이 만든 그룹. 참고로 이 앨범은 희귀판이다.
  • [12]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영공침범을 알았는데도 소련 방공 시스템의 정확도나 신속성을 테스트하고자 고의로 놔두었다는 이야기. 설마 격추까지는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는데..
  • [13]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강경노선을 펼쳤고 미국의 극보수 단체의 회장까지도 역임했다. 심지어 대선 출마까지도 고려했다는데
  • [14] 대부분은 소련이라고 하지만 일부 음모론에서는 미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 [15] 냉전 종식후 냉전 시대에 자유진영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굴라그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름 공개되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미 정찰기 관련 인사들의 이야기는 유족들이 소련의 매장지에 방문할 정도인데, 굴라그 관련 서적에도 KAL기 생존자 관련 증언은 없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들어서 어린이를 포함한 생존자의 이야기를 실어주기도 한다
  • [16] 여담이지만 당시 이 기사를 썼던 이낙연 기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전라남도 도지사로 재임중이다.
  • [17] 무기에 의한 민항기 격추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