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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오스

last modified: 2015-03-25 10:43:30 Contributors


약 빨고 기분 좋았던두산 베어스 시절.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약 빨은거 들켰네

이름 다니엘 리오스 (Daniel Rios)
생년월일 1972년 11월 11일
국적 미국
출신지 스페인 마드리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7)
캔자스시티 로열즈(1998 ~ 1999)
KIA 타이거즈 (2002 ~ 2005)
두산 베어스(2005 ~ 2007)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2008)

2007년 한국프로야구 MVP&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류현진(한화 이글스)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김광현(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등번호 45번
구자운
(1999-2004)
리오스(2005-2006) 구자운
(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박명환
(1998-2006)
리오스(2007) 김명제
(2008-2010)

Contents

1. 소개
2. 커리어
2.1. 메이저리그 시절
2.2. KIA 타이거즈 시절
2.3. 두산 베어스 시절
2.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3. 약물 논란
4. 이모저모

1. 소개

야구선수, 투수.

한국프로야구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에서 선발 투수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고, 적응력이나 친화력도 뛰어나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KBO 1군리그 최초의 9구 3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1] 하지만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약쟁이로 전락했다.[2]

2. 커리어

2.1. 메이저리그 시절

1997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 2경기를 뛰었으나 평균자책점 19.29로 크게 부진했다.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즈로 옮겼으나 큰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사실, 리오스는 KIA가 아닌 삼성에 입단할 뻔했다. 먼저 접촉한 쪽은 KIA였는데, 2001년 당시 KIA는 용병타자였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가 부진의 기미를 보이자 방출 후 대체 용병으로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리오스가 방광염 증세를 보이며 한국 입국을 거절함으로써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 말았다. 방광염 증세가 완쾌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결국 해가 지나서야 KIA와 공식적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

KIA 입단 후에는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원체 선발 타입인 선수인지라 세이브 상황에서 똥줄타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 등 불안했다. 이후 최상덕의 부상을 틈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첫 해 14승을 거두며 활약했다. 2003시즌엔 살짝 부진이 겹치며 10승에 그쳤다. 그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란이 잠시 있었으나 2004시즌에도 재계약에 합의했고, 결국 그 해 17승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해낸다. 당시 삼성의 배영수, 두산의 개리 레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하지만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선 부진하며 팀 패배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05시즌 전년도와 달리 맞아나가는 빈도도 늘었고[3] 하필이면 팀 역시 부상선수가 속출하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꼴찌를 달리는 상황까지 겹치며 부진에 빠졌다.

그것을 빌미삼아 KIA에서는 리오스를 퇴출하려 했으나[4], 팬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결국 트레이드로 방향을 선회, 2005시즌 도중 두산의 유망주 전병두와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KIA의 생각은 뛰어난 유망주인 전병두를 받아오고 비슷한 급인 용병투수를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이었으며 당시 단장이던 정재공의 인터뷰에서도 '리오스 ↔ 전병두'가 아닌, '리오스 ↔ 전병두 + 그레이싱어'라고 밝혔다. 단편적으로 볼 때 그레이싱어가 좋은 활약을 해줬고 전병두도 중간 계투자리에서 그럭저럭 제몫을 했지만, 전병두는 SK로 조공트레이드되고서 재능을 꽃피웠다.(…) 다만 2011년 이후론 부상 누적으로 줄곧 재활병동 신세로 전락했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

2005년 시즌 도중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는데,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게 됨과 동시에 탄탄한 두산의 수비력 버프를 받은 덕분인지 후반기에만 9승을 올리며 활약한다.

2006년에도 역시 잘 던졌으나, 하필이면 팀의 주포 김동주가 WBC에 참가한 후 부상을 입어 시즌을 절반 넘게 날려먹은 탓에 두점베어스로 전락하며 리오스도 득점 지원이 줄어들어 12승 16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2007시즌,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을 작성했다. 234⅔이닝 22승, 평균자책점 2.07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수립한 것.[5] 그 이전에,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9구 3삼진이라는, 그야말로 역사를 쓴 적도 있었다. 2007년 6월 16일 문학 SK전 8회말 이진영-박경완-최정을 모두 3삼진으로 돌려세운 KBO 1군리그 역사의 대사건이다.

특히 9월에 엄청난 연투로 두산베어스의 2007년 2위 사수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아무리 용병이지만 저렇게 써도 되는 건지, 이닝이팅 능력이 좋다 해도 저렇게 노예마냥 던질 수 있는 건지 많은 말들이 있었고, 특히 작두탄 김성근 감독이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였다.

2007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1차전에서는 4피안타 1볼넷 완봉승을 거두어 두산 베어스가 기세를 잡는데 큰 공헌을 했다. 여기서 김경문감독이 리오스를 4일만에(그러니까 3일 휴식) 4차전에 등판시키는 강수를 썼다가 5이닝 3실점 9피안타 1볼넷 2피홈런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그리고 상대는 시즌 초반에 입을 잘못 놀린 안산공고 출신의 한 젊은 좌완 영건이었는데…. 결국 여기서 흐름이 뒤집힌 두산은 내리 깨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7년 시즌 MVP가 되었고, 그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8시즌 전에 NPB의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2.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2008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 한국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계속 지적받던 폼이 일본에서는 보크로 판정되어 투구폼을 수정하는 사건이 있었고[6] 이후 평균자책 5점대에 육박하며 개털리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08년 6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도핑 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계 양성 반응이 나왔다.
리오스는 이는 2007년 11월 치료를 받으며 주사한 것으로 이후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NPB에서는 '6개월 동안이나 약품이 체내에 잔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스테로이드는 복용 후 1년 정도 양성 반응이 나오므로[7] 한국에서도 약물 복용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에서의 오버페이스 → 일본에서의 급락한 성적으로 인해 리오스 약물 복용설에 박차를 가한다. 박동희의 기사에 따르면 약물과 관련해 상당한 지식을 보였다고 하며,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리오스가 한국에서도 약물을 복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편 KBO에서는 리오스를 대상으로 도핑 테스트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리오스는 1년간 출장정지를 받은 이후 바로 방출되었다. 2007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운동선수는 불과 6개월만에 최악의 오명과 함께 몰락했다. 선수로서의 모든 영예가 약물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사 자기 자신을 더럽혔다. 예전에는 한국 선수들에게 '약물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는데…. 나만 해서 좋은 성적 거둬야 되니 너네는 하지 마라

3. 약물 논란

약물만 아니었으면 레전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 이승엽의 일본진출 이후 투수들의 시대가 된 2000년대 후반을 장식한 명투수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인다. 자기관리나 사생활 등에서도 모범적이었다. 특히 지금은 없어진 잡지인 스포츠 2.0에서 박동희 기자와 한 인터뷰는 개념 중의 개념 인터뷰. 그래서 한때는 한국형 용병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인간성과 적응력도 뛰어나서 KIA 시절에는 '전라도 용병 이오수'라는 한국식 별명으로 불렸으며[8] 한국식으로 동료나 구단 스탭 경조사도 잘 챙겨 스포츠신문의 미담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약물파동으로 날라갔다.

다만 약물복용 의혹을 받고 있거나 실제 혐의가 드러난 일부 선수의 경우와 비교할 때, 유독 리오스가 특히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의 진갑용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박명환은 2006년 WBC에서 도핑 테스트에 걸렸지만 여론에서 별로 문제제기를 받지 못했다. "정황 증거상 약물을 한게 확실해 보이니 리오스의 기록이 흑역사라면, 심증이고 뭐고 약을 한게 확실한 진갑용이나 박명환도 똑같이 까여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주장. 똑같이 해외리그에서 약물복용이 적발된 펠릭스 호세에 비해서도 까이는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러나 리오스는 MVP, 투수 골든글러브를 주요 수상을 싹쓸이 해갔고, 호세가 있을 적에 8888577이 시작되던 꼴찌팀 롯데와 달리 두산 베어스는 리오스의 활약에 힘입어 컨텐더팀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리오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선수들이나 2007년 리오스의 활약에 2위 탈환을 실패한 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같은, 약쟁이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고려할 때 비난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리오스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였고, 약물 의혹을 받을 당시 다승왕과 MVP를 차지했던 선수다. 때문에 자신이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그에 따른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외국인선수라서 적극적으로 언론에 해명하기도 어렵고 야구 내부인사들이 딱히 비호해줄 건덕지가 없어서 직접 결백을 입증하기는 참 어려울 듯하다.

4. 이모저모

스페인-쿠바계 미국인이다. 본가는 플로리다에 있는데, 아버지는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동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카스트로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정세가 불안정한 쿠바대신에 미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강귀태에게 도마라는 호를 붙여주게 된 선수. 이유는 리오스가 프로야구 첫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려는 찰나, 안타를 쳐냄으로서 퍼펙트 게임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리오스가 일본에서 약물 때문에 퇴출된 기사가 알려지면서, 강귀태는 '약쟁이로부터 나라를 구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인 '도마'가 붙여졌다.

2009년 12월에는 한화 데이비스와 함께 대만리그 트라이아웃을 받았으나 가정 문제를 이유로 중도에 귀국하였고 이 이후로 독립리그 쪽에서도 활동하지 않는 것을 보아 야구계를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그 MVP가 일본으로 가자마자 약물로 인해 아웃되는 일이 벌어지고, 선수 본인은 부인하지만 정황상 한국시절에도 약물을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지자 KBO는 비용상 문제[9]로 거의 시행하지 않았던 도핑검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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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9구 3삼진은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이 세워서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에선 2014년 시즌까지도 한국프로야구 1군리그에서 단 4번 나왔다. 140년 MLB 역사에서도 단 40여 회밖에 나오지 않았다.
  • [2] 일단 한국에서 기록한 성적이 모두 약빨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건 사실이다.
  • [3] 더 정확히는 그냥 한없이 꼬이면서 무너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호세 카페얀의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2005시즌 첫 등판에서 9이닝 1실점 완투패를 기록하고 시작했다.(…).
  • [4] 2004년까지 팀 감독이었던 김성한 전 감독과 특히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 [5] 특히 10월 3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이후 도마 강귀태가 안타를 쳐내며 퍼펙트 게임을 세우는 데에는 실패했다.
  • [6] MLB에서도 베테랑 소리 듣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투구폼이 보크로 지적받는 것을 보면 보크에 관한 룰은 일종의 로컬룰처럼 리그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7] 다만 이 주장은 NPB의 입장과 상충된다. 6개월 전에 주사한 약물이 검출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복용 후 1년 정도 양성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는 주장인데, 근육강화제 중 하나로 쓰이는 난드롤론의 경우 반감기가 약 11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 [8] 당시에 리오스의 트레이드에 관해 KIA팬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고 한 동안 트레이드로 온 전병두를 배척하기도 했다. 전병두도 나중에 SK로 보내고 나서 후회하긴 했지만. 특히 주전포수인 김상훈하고 친해서 이적 직전 경기에서 교체되자마자 바로 김상훈에게 포옹을 했을 정도였다.
  • [9] 흔히 도핑검사를 선수협에서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 MLB 노조의 입장이며, 오히려 한국 선수협은 예전부터 약물 문제에 적극적이고 전수검사에도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전수검사는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일본리그 또한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