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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last modified: 2015-04-06 00:56:09 Contributors

Nightclub

Contents

1. 개요
2. 한국의 나이트클럽
3. 종류
3.1. 일반 나이트클럽
3.2. 락카페
3.3. 성인 나이트클럽
3.4. 콜라텍
3.4.1. 변질
4. 여담


1. 개요

밤에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쇼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곳.

한마디로 밤에 술마시며 놀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사실 원래 의미는 흔히 클럽, 또는 댄스클럽이라고 불리는 장소도 포함되나, 한국에서는 부킹 등의 특정한 영업방식을 사용하는 유흥업소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트 클럽이라고 떼어서 쓰기도 하고, 흔히 줄여서 나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클럽"이라고 하면 서양 스타일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클럽을 말하므로, 의미의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한국의 나이트클럽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외국과 구별되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다. 외국의 클럽은 한국에서 흔히 클럽(댄스 클럽)이라 불리는 곳과 거의 같으며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춤추며 놀거나 쇼를 보는 형태를 한 곳이 대부분이다. 보통 테이블은 없고 바 정도만 있는데, 이는 한국의 클럽(댄스 클럽)과 거의 같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하지만 한국에서 나이트클럽이라는 업소는 이러한 외국의 나이트클럽과는 구별되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외국인들에게 "나이트"와 "클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면 놀란다. 일단 "나이트"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한국에만 있기 때문이다. 일단, 외국의 나이트클럽 또는 한국의 클럽이 플로어 중심으로 운영되며 테이블은 별실이나 구석에 몇 개만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테이블 중심으로 운영되며 테이블에서 쇼를 보거나, 별도로 마련된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식으로 운영된다. 테이블에서 술과 안주를 시켜 먹는 것은 나 호프집과 비슷하며 외국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카바레"정도가 있겠다.

또한 한국 "나이트"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부킹"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즉석 만남으로서, 만남을 원하는 남녀를 웨이터가 돌아다니며 짝지어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을 위해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클럽과 달리 웨이터가 다수 포진해 있다. 클럽과 나이트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도 자주 쓰이는데, 웨이터가 다수 포진해서 호객행위를 한다면 나이트이고, 입장 관리자 및 보안 담당자 한두명만 있고 따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곳을 클럽이라고 보면 된다.

3. 종류

3.1. 일반 나이트클럽

20~30대가 주로 많이 찾는 나이트클럽이다. 최신 유행하는 노래를 리믹스해서 트는 경우가 많으나, 외국의 클럽 문화가 들어온 이후에는 어설프게나마 일렉트로니카나 힙합 음악을 틀어주기도 한다.

최신 유행에 가장 민감한 곳이다. 50년대에는 워낙에 먹고 살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에 유흥문화가 철저히 상류층에 국한되어있었다. 당시 유흥문화는 여럿이 모여 춤을 추거나 하는것이 아니라 요정을 비롯한 고급 요리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현재와 같은 나이트클럽이라 할만한 곳이 거의 없었고, 스홀이라고 하는 곳이 많았으며 주로 재즈 음악을 연주했다.[1]

1960년도에 트위스트 열풍이 불고 나서야 한국에는 현대적 의미의 나이트클럽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는 고고장이나 고고크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클럽에는 밴드가 연주를 하지 않을때 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믹스하는 DJ(디스크쟈키)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나이트클럽은 스코텍이라는 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한다.[2] 70년대에는 나이트클럽이 호텔이나 대형 건물에 등장하면서 대형화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록 열풍에 힘입어 하드 록 밴드들이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고[3], 디스코 음악 또한 나이트클럽의 디제이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상륙하게 되었다.[4]

80년대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없어지면서 나이트클럽이 대박을 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당국의 단속과 언론의 도덕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일본문화가 수입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새벽이 되면 일본노래를 틀었다![5] 하지만 유흥업소 야간영업 규제는 1983년 제정되었고 풀어주니까 이것들이 세상모르고 논다는 높으신 분들의 주장에 따라 나이트클럽은 밤 12시부터 4시까지 영업이 제한되었지....만 몰래몰래 올나이트 하는 업소들도 간혹 존재했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나이트에 갔다가, 새벽이 되면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고 첫차가 다닐때까지 만화방이나 심야다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여담으로 당시 만화방과 심야다방에서는 포르노를 틀어줘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나이트클럽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술집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불법이다. 2007년 법 개정 이후 가수나 밴드는 유흥 접객원에서 빠지게 되면서 일반음식점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 댄스 플로어와 조명을 설치하여 춤을 추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그래서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클럽이나 라이브홀에 가면 조명이 관객쪽으로는 없고 무대에만 있다. 당시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상.

3.2. 락카페


90년대 한정으로 락카페[6]라는 것이 존재했다.

90-00년대에는 일렉트로니카나 힙합이 등장하였으며, 80년대부터 주류는 가요리믹스이다. 요즘은 나이트클럽에서 가요를 주로 틀지만, 예전에는 가요보다 팝송이 훨씬 많이 나왔다. 많은 연예인들이 다운타운 디제이나 나이트클럽 디제이로 경력을 시작했을 정도로, 당시 최신 팝송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DJ들이었다. 음반 자체도 구하기 힘든 시대였을 뿐더러, 새로운 유행에 관한 정보도 구하기 힘든 때였기에 이들은 서양의 새로운 음악을 공급하는 첨병 역할을 한것. 나나라마비지스같은 밴드들, Lipps Inc.의 Funky town 같은 노래들은 공중파가 아닌 나이트클럽에서 먼저 유행한 뒤 확산되었다. 신기한 것은 1990년대 이전에는 팝송이면 이것저것 안 가리고 틀었기 때문에 가끔 하드 록(딥 퍼플 등)이나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록(핑크 플로이드 등)을 틀기도 했고 사람들은 이런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 흠좀무.... 플로어의 분위기를 다소 진정시키기 위해 중간중간 느린곡을 트는 경우도 있었고, 이것을 가리켜 블루스 타임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한국에서 블루스를 남녀가 밀착하여 추는 춤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부킹이라는 한국 특유의 시스템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일단 1980년대 초반 까지는 부킹이라는 것은 철저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라서, 웨이터에게 팁을 주고 "저쪽에 앉아있는 여자애들 좀 괜찮은데 합석 좀 시켜달라"고 하면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죽돌이 죽순이들끼리 서로서로 꼬셔대던 시절이라 서로 뺀찌도 잘 안놨다. 이러한 것을 정식화 시켜서 일종의 즉석만남을 상설화 시킨것이 현재의 부킹 시스템.

부킹이 완전히 자리잡고 나니 사람들은 술마시고 춤을 추러 오기보다도 이성을 꼬시러 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물관리라고 하여 들어오는 사람의 외모를 보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그런것 없이 성년이면 너나 할것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7] 물관리라고 하는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것인데, 나이트클럽은 물관리한다는 편견이 여기서 왔다. 이 때문에 전문화된 클럽의 경우 물관리를 하지도 않는데 물관리가 심하다는 편견을 갖는 사람이 꽤나 있다. 당시에는 물관리를 일종의 해괴한 세태로 여기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3.3. 성인 나이트클럽

40-50대가 주로 많이 찾는 나이트클럽이다. 주로 트로트나 가요를 많이 틀며, 노래 중간에 블루스타임이라고 하여 느린 춤곡 같은것을 틀기도 한다. 블루스 타임의 유래는 바로 위에서 설명.

트로트가수나 연예인, 코미디언 등이 출연하여 쇼를 하는 클럽이 많으며,[8] 다른 명칭으로는 카바레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사실 위에서 말했듯이 외국에서도 이런 형식의 중장년층 위주의 나이트클럽을 카바레라고 호칭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카바레라고 하면 라이브 밴드가 음악을 연주해주는 곳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3.4. 콜라텍

무알콜 나이트클럽이라고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되었다. 술을 전혀 팔지 않는 나이트클럽으로 본래 도입 취지는 청소년들의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었으나, 요즘에는 그러한 취지는 상관없이 완전히 변질된 곳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청소년의 일탈을 막고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유럽권에 있던 "청소년 전용 댄스클럽"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곳이었는데, 야간자율학습 실시 및 피씨방등의 대체제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확 떨어졌다. 게다가 당시에도 콜라텍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치하고 시시한 곳'으로 외면받았으며#, 기성 사회의 여가 문화에서 단순히 주류만 뺀다고 해서 청소년 문화가 될 수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3.4.1. 변질

그리하여 업주들은 변칙 영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노년층 공략.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춤추고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성인콜라텍'이라는 형태의 업소가 등장#, 편법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콜라텍은 자유업종이라 편법 영업을 단속할 법규가 없었다. 콜라텍 내부의 식당을 별도의 업소로 신고하면 술과 안주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성인콜라텍을 중장년층의 건전한 문화로 받아들이려는 시각도 있는 한편# #, 관련 법규 부족으로 안전 사고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연령대가 조금 더 높아져서 60대 이상의 '신중년층'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만원 남짓한 돈으로 식사와 술도 즐기고 동년배들도 만나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2011년 말부터 신촌의 "틴플"등을 중심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댄스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있다. 5일제 수업의 전면 실시 및 야간자율학습의 선택제 실시 등을 통해 생긴 여유 시간을 가진 청소년층을 공략하는 것.

위의 콜라텍과 동일한 면허를 가지고 하기때문에 콜라텍이라 불리는 것이 맞지만, 이미 콜라텍이라는 용어는 노년층들의 사교장이라는 의미로 변질된지 오래이므로, "청소년 클럽"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나이트클럽보다는 전문화된 댄스클럽에 가까운 장소이다.

하지만 생기자마자 일부 청소년들과 개념없는 업주들에 의한 병크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시선이 싸늘해지기도 했다. 관련뉴스 하지만 성인 나이트클럽의 유흥주점이나 일반음식점 면허와 달리 콜라텍 면허의 경우 자유업이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고 한다.

4. 여담


노원역 근처 모 나이트 개업식에 온 화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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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지금은 트로트라고 도매금으로 취급되지만, 현인이나 이미자, 티김같은 가수들은 주로 이 시기에 댄스홀에서부터 시작하여 스타가 된 경우가 많아서 탠다드 팝이나 스윙 곡들을 부르며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가수들은 창법이 생각보다 서구적이다. 소위 말하는 "꺾기" 창법은 1970년대가 다 되어서야 등장한다. 이것도 일본 엔카와 서양식 소울 창법이 혼합되어 나타난 한국 특유의 것. 이 당시 댄스홀의 분위기는 영화 자유부인에 잘 나타나있다.
  • [2] 디스코텍은 원래 "밴드가 연주하지 않고 음반만 틀어주는 주점"을 뜻한다.
  • [3] 당시 신중현을 비롯한 많은 수의 유명 록 뮤지션들이 남대문의 닐바나같은 대형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 [4] 이 시기의 세태에서 아주 기가막힌 사연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밤 열두시가 되면 모든 도시가 올 스톱이 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놀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은 밤 새서 나이트클럽에서 나가지 않고 노는 경우가 있었고, 이에 발맞춰 밤 새서 개장을 하는 특별행사를 하는 나이트클럽도 있었다. 이를 가리켜 "올나이트"라는 속어가 생겨났다. 또한 올나이트를 하는 나이트클럽 옆에 여관을 지어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 [5] 일본 댄스뮤직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통해 콘도 마사히코안전지대, C-C-B같은 일본 아이돌의 노래가 확산되었다. 지금 50살 넘은 사람들중에서 이러한 가수들을 알면 당시에 좀 놀던 분들
  • [6] 야간통행금지는 폐지되었지만 당시 존재하던 유흥업소 규제 관련 법안으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업소다. 해당항목 참조.
  • [7] 모 라디오방송의 청취자 사연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시절 가발을 뒤집어 쓰고 동네 나이트클럽에 친구들과 놀러갔는데, 동네 다방 마담하고 팔짱으로 끼고 들어온 아버지랑 딱 마주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서로 잠시 당황했다가, 아버지가 당시 돈으로 2천원 쯤 쥐어주시면서 "적당히 놀다 들어가고, 엄마한텐 비밀이다."라는 협정을 맺음으로 무마되었다는 사연도 있었다(...).
  • [8] 사실 이러한 방식의 "쇼"를 하는 나이트클럽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