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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last modified: 2015-02-09 17:27:05 Contributors

  •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름을 잘(?) 읽으면 나이키가 된다.[1] 신화속 인물에 대해서는 니케 항목을 참조할 것.

Contents

1. 스포츠 브랜드
1.1. 나이키의 역사
1.2. 나이키의 어원
1.3. 대한민국 스포츠 지원
1.3.1. 국가대표팀
1.3.2. 프로스포츠
2. 미국의 지대공 및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3. 송은이의 노래


1. 스포츠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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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E
JUST DO IT(한번 해봐그냥 해)


곡선 모양의 로고가 유명한데, 로고가 단순한지라 짝퉁이 엄청나게 많다. NICE, NIKEE, MIKE 등등등(…). 어떤 이는 하얀 학교 실내화 측면에 유성매직으로 찍 그어놓고는 나이키 실내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로 수많은 스포츠 스타가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2][3]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사실상의 본업과 다름없는 육상은 물론이고 축구, 농구(에어 조던), 수영, 골프, 스케이트보드, 야구 등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스포츠 용품을 제작 판매중이다. 전문 트레이닝 라인의 성능도 좋지만, 패션 브랜드로도 이름있다. 원래는 전문 트레이닝 라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패션 라인으로 팔리는 것들로는 에어맥스, 에어포스, 덩크 등이 있다. 미국에서도 나이키 신발은 그리 싸지 않은 편이지만[4], 일단은 국민화화 되어있다.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최근엔 아이팟 없이도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의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5]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이하게 참여하여 컨셉트카 발표 예정. 그런데 그 유이하다는 두 회사 중 나머지 하나는 또 나이키 산하의 에어 조던이다!

1.1. 나이키의 역사

나이키의 역사는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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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필 나이트(Phil Knight)
우 :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재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500달러씩 투자하여 회사 BRS(Blue Ribbon Sports)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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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의 간판

설립 당시 일본의 유명한 회사인 "오니츠카 타이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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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츠카 타이거 제품.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타이거 슈즈 200켤레를 들여오면서 사업은 시작 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집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라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오니츠카 타이거"가 직접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판로로 일본의 무역상사(닛쇼이와이)에 하청을 받아 새로운 브랜드인 나이키가 1972년도에 드디어 선보이게 되었다.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던가(...),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7]와 겹쳐 아디다스의 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그건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8][9]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 했으나... 그래도 미국이 홈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1984년 스엔젤레스 올림픽 당시에는 시내 곳곳에 대형 간판을 세워 마치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듯 행동했지만, 당시 공식 스폰서는 컨버스였다(...)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의 전형적인 사례.

현재 아디다스를 콩라인으로 밀어내고, 누구나 인정하는 스포츠 용품 부동의 1인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홈그라운드가 세계 최대의 시장 미국인지라 타사가 그 지위를 위협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날 그 누구도 업계 2인자 아디다스가 나이키의 지위를 빼앗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힙합가수 Beenzino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다. 그의 1집 앨범 1번 트랙 노래이기도 한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

1.2. 나이키의 어원

나이키의 어원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전하기 위해 42.195Km를 달렸던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렸다던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유래되었다. "니케"의 원래 영어 발음은 나이크이나 모종의 이유(나이크 발음이 멋이 없었다는 이유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로 발음이 "나이키"가 되었고 그 로고 역시 1971년, 단돈 35달러로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에 의해 여신 니케의 날개와 승리를 표현하는 "V"를 부드럽게 뉘어 놓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1983년에 그녀는 필 나이트로부터 나이키 로고가 각인된 다이아몬드 반지와 함께 공개되지 않은 수량의 나이키 주식을 선물받았다.)

이 나이키의 "스워시(Swoosh)" 로고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 출전한 중장거리 미국기록 보유자인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에 의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조깅 열풍으로 인해 급속한 성장을 하였고, 판매 시장이 캐나다, 호주, 남미, 아시아로 넓혀지면서 회사명 자체도 BRS에서 나이키로 바뀌었다.

그후 농구계 최고의 스타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맺으면서 조던 시리즈를 선보이게 되고 철저한 스포츠의 상업화라는 전략으로 "스포츠 정신(Just do it)"[10]이라는 이미지를 개발하면서 오늘 날에 이르렀다.

1.3. 대한민국 스포츠 지원

1.3.1. 국가대표팀


역대 나이키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찾는다면 이 항목을 참고하자.

1995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다. 나이키가 축구용품을 런칭한 초창기부터 함께했으니 거의 20년간 공식 스폰서인 셈. 2012부터 2019년까지 8년간 총액 1200억원(물품600억+현금600억)재계약을 맺었다. 아디다스가 재계약 기간에 매번 스폰서 계약을 노리고 있어 지원액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3년부터 유럽 메이저 팀이 받는 트레이닝복을 받게 되어 이제서야(...) 20년간 공식 후원사의 대우 좀 해줬다. 유니폼 디자인은 좋게 보는쪽은 깔끔하고 심플함,나쁘게 보는쪽은 그냥 빨강 티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축협엠블럼 땡인 성의없는 디자인[11]이라고 평한다. 이래서 파이어 드래곤 유니폼이 이 모양이었구나. 축구팬들은 불에 가까운쪽이라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높게 쳐준다. 아디다스도 삽질하긴 하지만 나이키보다는 낫다는게 평. 그러자니 꾸미면 의미부여를 많이 한 나머지 해괴한 디자인이 나와버려 또 까인다(...)[12] 1995-96 시즌 유니폼[13]은 아직 나이키 특유의 독자적인 디자인이 정립되기 전이라 현재 적-백-청 조합이 아닌 적-백-흑 조합에 얼핏 보면 1994 월드컵 때 유니폼의 색동조각 무늬와 비슷해 보인다. 2002 월드컵 유니폼은 월드컵 4강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대 나이키 스폰서 유니폼 중에서 가장 디자인이 좋았던 유니폼이라 현재도 평가는 좋은 편. 하지만 팬츠 색깔이 데님블루여서 강렬한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2003-04 시즌의 유니폼은 앞면에 박힌 특유의 동그라미 등번호 마킹 때문에 '로또 유니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도 제작하고 있다. 야구유니폼은 축구유니폼과 달리 대회를 치를수록 디자인이 점점 진일보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현재 야구 국대의 유니폼은 나이키 본사에서 직접 제작한 맞춤형 유니폼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WBC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메이저리그 유니폼 공식후원사인 머제스티(Majesty)사가 일괄적으로 디자인하는 것과는 달리[14][15] 한국은 MLB 사무국(WBC 대회 조직위)에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마케팅 성과를 거둬 나이키에게나 한국 국가대표팀에게나 모두 윈윈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2013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었으나 이후 대한야구협회데상트와 4년간 20억원의 스폰서를 체결해 한동안은 나이키 유니폼은 볼수가 없게 되었다.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그 즈음부터 공식 스폰서가 됐다.

1.3.2. 프로스포츠

국가대표팀 유니폼 제작에는 열정적인 반면 국내스포츠팀 유니폼 후원에는 소극적이라 팬들의 비난이 있는 편. A대표 1200억원-K-리그 0원, 글로벌 나이키의 마인드

K리그의 경우에 2000~2001년 부산 아이콘스 유니폼, 2003년 광주 상무 유니폼, 그리고 2009년 강원 FC의 유니폼 제작을 제외하곤 전무하며, 다른 축구 리그로 확대해봐도 2007년, 2008년에 챌린저스 리그서울 유나이티드의 킷스폰서로 참가한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강원 FC는 강릉점 차원에서의 스폰이라 그냥 기본킷에 글자만 넣어놨던 물건이었고, 2003년의 광주 상무 유니폼도 비슷한 성격이었다.

오랫동안 K리그 스폰서로써 K리그 공인구가 나이키로 쓰여왔지만 이마저도 2012년부터는 아디다스로 바뀌면서 국내 프로축구에선 완전히 손을 뗐다.

프로야구의 경우엔 2013년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 협찬을 제외하곤 없다. 반면 넥센 히어로즈는 나이키 코리아와 재계약을 해서 2017년까지 나이키 협찬을 받는다.

그나마 프로농구팀의 경우엔 유니폼 지원이 활발한 편으로 서울 SK 나이츠의 유니폼 제작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외에 창원 LG 세이커스 창단 초창기 때와 2013년까지의 고양 오리온스의 스폰서가 나이키였던 적도 있었다.

e스포츠에서는 SK텔레콤T1이 2006년부터 이어져온 아디다스와의 유니폼 계약이 종료된 이후 2012년 12월, 나이키와 유니폼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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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화 백 투 더 퓨처 3편에서 이와 관련된 장면이 나온다. 1855년의 서부로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 마티가 신은 나이키 신발을 보고 서부 사람이 "니케? 무슨 인디언 이름이냐?" 라고 한 것.그리스 여신 이름도 모르는 무식한 카우보이
  • [2]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다. 흠좀무.
  • [3] 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최고였을 때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또 흠좀무.
  • [4]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비싼편은 아니다. 소득의 규모를 따지면 그렇게 비싼것도 아닌셈.
  • [5]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 [6] 아식스의 전신 자세한 내용은 아식스 항목을 참조.
  • [7]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
  • [8]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그 모 국가는 대한민국일 가능성이 높다. 화승산업에서 리복의 운동화를 생산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대한민국이였다.
  • [9] 화승은 70~80년대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고 국내에도 나이키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종료로 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
  • [10] 'Just do it' 이라는 슬로건이 로고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 타이거 우즈를 타고 가다가 나이키 광고의 이 문장을 보고서 프로포즈를 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 [11] 이 특징이 월드컵 최종예선 유니폼만 엄청 부각된다
  • [12] 우리나라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나이키 스폰서 팀의 공통사항이다.
  • [13] 당시에 원정 유니폼은 있었긴 했으나 실제 착용하고 뛴 경기는 전혀 없었다.
  • [14] 그 외에 2013년 WBC에서 일본은 미즈노가 키트 스폰서를 맡았다.
  • [15] 대만 역시 2009년 대회까진 일본 미즈노사 것이었다가 2013년 대회에서부터 미국 머제스티사 것을 쓰게됬다.

2. 미국의 지대공 및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나이키(미사일) 항목 참조.

3. 송은이의 노래

송은이와 승현으로 구성된 그룹 '투송플레이스'가 2014년 1월에 발표한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