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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last modified: 2015-02-22 21:48:02 Contributors


연세대의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던 시절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안양 KGC 시절



전주 KCC 이지스 No.7
김태술
생년월일 1984년 8월 13일
국적 한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출신학교 동아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 사이즈 180Cm, 80Kg
프로입단 2007년 드래프트 1번(서울 SK 나이츠)
소속팀 서울 SK 나이츠(2007~2009)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2009~2014)
전주 KCC 이지스(2014~)

2007~2008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이현민(창원 LG 세이커스) 김태술(서울 SK 나이츠) 하승진(전주 KCC 이지스)

Contents

1. 선수 생활
1.1. 아마농구 시절
1.2. 서울 SK 나이츠 시절
1.3.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1.4. 전주 KCC 시절
1.5. 국제 무대
2. 선수로서의 특징
3. 기타 사항


1. 선수 생활

1.1. 아마농구 시절

동아고 시절부터 천재 포인트가드란 말을 들었으며, 강동희 - 이상민 - 김승현 으로 이어지는 '6년 가드설'을 잇는 천재 가드의 출현이 아니냐는 기대까지 받았다. 청소년대표팀에도 뽑혔다.

그리고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처음 출전한 농구대잔치에서 그런 기대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입학 예정자라는 대학생도 아닌 병아리 신분으로 출전한 주제에 고려대 격파의 주역이 되고 당시 재호가 있던 경희대 격파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결승에서 만난 상무 상대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연세대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다.

그 후 선배인 이정석과 포인트가드를 번갈아 맡으며 선배인 방성윤전정규, 동기인 양희종, 이광재 등과 함께 연세대가 대학 최강자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도 대학생 신분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 후반기에는 선배들의 졸업과 함께 힘을 키운 중앙대와 경희대의 대두로 인해 연세대 농구부가 차츰 패권을 잃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만다. [1] 고려대와의 정기전 성적 역시 좋지 않다. 시작은 2005년(2학년) 정기전에서 내내 앞서고 있다가 양희종의 파울아웃 후 귀신같은 역전패를 당한 것. 신제록과의 매치업에서도 줄곧 우위를 점했지만 신제록이 역전 클러치 3점을 때리는 바람에 다 망치고 말았다(...). 2006년(3학년) 정기전은 이동준(다니엘 산드린) 출장 문제로 경기 전부터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등 2시간여 가까운 파행을 겪다가 가까스로 진행됐는데, 연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부상과 파울이 겹친 양희종이 빠지자 전반전에 이미 20점 차 가까운 점수차가 나버린 것. 김태술(현 KGC), 이광재(현 동부), 이정현(현 KGC)의 연세대 가드진이 정의한(현 KCC)-신제록(현 LG) 콤비에게 순삭당한 탓도 컸다. 4년의 정기전 중 김태술이 가장 부진했던 해. 덕분에 박건연 감독은 바로 잘렸다(...). 이듬해(4학년) 정기전 역시 15점 차로 대패하며 영 좋지 않은 성적을 남기고 졸업하였다.

그럼에도 대학 최고의 포인트가드는 분명 김태술이었고, 프로농구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한 임재현을 대신해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1.2. 서울 SK 나이츠 시절


07-08 시즌에 평균득점 10.7점, 7.3 어시스트, 1.7스틸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서울 SK 나이츠를 오랜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고 그 해 신인왕에 올랐다. 마침 07~08시즌에는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등 쟁쟁한 가드들이 각각 노쇠화, FA 후유증 ,골프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양동근이 상무에 입대했던터라 상대적으로 가드진의 경쟁이 얇기는 했지만 날카로운 어시스트나 준수한 득점력에 리딩까지 보여주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나온 괜찮은 신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SK 나이츠 측에서도 이에 고무 받았는지 포털 사이트 농구 뉴스란에 독자 코너를 만들어 '방-민-술 트리오(방성윤, 김민수, 김태술)'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08~09 시즌 초반에는 어깨 부상으로 결장하며 방성윤, 김민수와 김태술이 같이 뛰는 경기가 있긴 한거냐는 우려를 받았으나 부상에서 회복해서 곧 돌아왔다. 하지만 전년도 신인왕 시즌에 비해서는 다소 정체한 시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치에 비하면 뭔가 미흡했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다. 결국 우승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SK는 2008-09 시즌 MVP인 주희정을 영입하기로 결정했고, 이 때 내준 카드가 바로 김태술이었다. 시즌 종료와 함께 발표된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술은 김종학과 패키지로 주희정과 교환되어 인삼공사(당시 KT&G)로 이적했다.

1.3.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주축 선수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고, 이들이 돌아오는 시점에 드래프트 자원과 함께 한 번에 정상을 노리는 계획에 따라 김태술은 트레이드와 동시에 바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의 복무 끝에 2011-12시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양희종-김일두 등도 한꺼번에 돌아오는데다가 신인 최대어 오세근까지 합류하는 시즌이므로 상당히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

그리고 복귀한 2011-12 시즌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인삼공사의 돌풍을 이끌었다. 비록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상범 감독의 질책도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공백이 있었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준수한 활약.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흔들리는 면도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준수한 활약이었다. 시즌 평균은 10.8 득점에 4.4 어시스트. 그리고 PO KT와의 경기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평균 12득점을 집어 넣으면서 맹활약, 팀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면서 주희정을 내주고 자신을 데려온 인삼공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탈슼하니 바로 우승

2011-2012 시즌 종료 후 발표된 Best 5에도 양동근과 함께 가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결국 2012-2013시즌도 양동근, 김선형등의 포인트가드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하며 부상병동 KGC에게 공수 양면으로 이끌며 활약했다. 2013-2014시즌에는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해 4경기를 결장했고, 그사이 팀은 4연패에 허덕였다.

발목을 잡는것이 있으니 바로 장염과 부상. 장염은 2012-13시즌 내내 괴롭히던것이였다.[2] 그리고 2013-14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고생하는중. 게다가 야투 감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득점가담이 부족해지는등 작년보다 부진하며 태업을 하고 있냐는 비아냥까지 받고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유가 밝혀졌는데 바로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리신것. 11~12 시즌 우승직후 병원으로부터 진단받았던 것이라고 한다. 췌장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생존률이 극히 낮은 암으로 걸리면 끝인 암이다.[3] 추가로 밝혀진 소식에 따르면 본인 역시 장염을 아직도 달고 살고 있다고 하며 발목부상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단 이러한 소식들이 밝혀진 뒤로는 팬들 그 누구도 까지 않고 아버님의 쾌유를 빌고 있다.그러나 결국 김태술의 아버지는 병환의 악화로 별세했다.#, 이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 되었다. 다음시즌을 앞두고 FA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FA시장에선 동료인 양희종이 5년 6억에 계약하면서 김태술은 잔류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삼성이 라는 소리가 들렸으나[4] 박지혁 기자가 삼성은 가고 꿈에서 김태술이 KCC를 갔다는 드립을 치고[5] 정지욱 기자가 I Love NBA 카페와 농구갤러리에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기는 등 KCC로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에서 다음날 바로 사인 앤 트레이드 기사가 떴다. ## 결국, 5년-6억 2천만 원에 안양 KGC 인삼공사와 재계약 후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KCC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반대급부는 강병현과 장민국. [6] 이적 후 김태술의 인터뷰를 보면 시즌 중반부터 FA로 이적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

1.4. 전주 KCC 시절




먹튀 개막전에서 5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기대를 모은 하승진과의 호흡이 아직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 첫 경기라 아직은 두고 봐야 할 듯 하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KT와의 경기에서는 승리하긴 했지만 본인은 매치업 상대인 전태풍에게 확실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상의 여파가 있는 모양인지 2014년 10월 27일 기준 시즌 초반이지만 약 23%의 야투율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슛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그 후로도 전혀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먹튀, 고태술 등으로 불리면서 까이고 있는 중. 2라운드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야투율 20%대에 평균득점 5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조금은 나아졌지만 KCC는 패배하면서 리그 꼴찌로 내려 앉았을 정도. 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중. 팀이 9연패까지 하자 스트레스로 장염에 또 걸려 전자랜드전에 결장하였다. 아이러니하게 팀은 연패를 끊고 승리하였다. 장염에 시달리다 허리부상까지 겹쳤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결장 하였는데 팀은 SK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여전히 몸값대비 활약은 못보여주고있는 가운데 허재감독까지 사퇴하면서 악재가 겹치게 되었다

1.5. 국제 무대

2012년 런던 올림픽 농구 최종 예선 라인업에 선발되어 한국 농구 대표팀의 포인트가드로 활약을 하였다. 최종 예선 상대인 러시아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으나, 팀의 신장 열세와 체력 저하로 아쉽게 2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2013년 윌리엄 존스컵과 fiba 아시아 선수권에 출장하였으나 장기라 할수 있는 뱅크슛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수비에서의 부족함만 내보이며 필리핀전 역전 3점슛을 얻어맞는 수비를 보여줬다. 결국 대회내내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이며 국내용 가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농구 월드컵에서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 선수로서의 특징

포인트가드 치고도 작은 신장(프로필에는 180cm이라지만 실제는 178 정도)만 보면 빠른 움직임을 가진 가드같지만 대학 시절에도 드리블 능력이 좋았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고, 넓은 시야와 패스 능력으로 인정받은 족이다. 거기다 돌파 능력에 괜찮은 외곽슛까지 있을 정도로 득점력도 있다.

키가 키다 보니 아무래도 수비에선 약점을 보이는 편. 센스 있는 스틸 같은 건 잘 하지만 매치업 상대가 힘으로 밀어뭍이는 경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인다.

프로에서 보여준 속공 전개 능력은 하프 코트 때에 비해 떨어진다. SK나이츠 시절의 경우 3점 난사 방성윤, 미들 난사 김민수, 스팟 슈터 문경은, 득점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병석, 김기만 등을 선수진으로 봤을 때 과연 누구로 속공을 하느냐 하는 반론도 있다. 대학 시절을 보면 드리블 좋은 김태술이 속공 상황에서 혼자 득점을 해내거나 같이 따라온 선수에게 찔러주면서 득점을 이끄는 등 빠른 공격은 선배 이정석보다 나은 모습도 보여준 게 김태술이다.

하지만 여러 모로 대학 초기에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감에 비하면 성장이 별로 없는 편. '대학 1학년때 이 정도니 졸업할 때면 얼마나 대단해지겠는가' 라는 게 당시의 기대감이었지만, 4학년 때 가서도 1학년 때 만큼만 보여줬으니.

김태술의 기대값보다 덜한 성장은 대학 때 출중한 포인트가드인 이정석이 같은 팀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태술이 포인트가드로 뛰는 상황에서 김태술이 풀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이정석이 들어와 팀을 이끌었고, 결국 김태술은 자기가 플레이하기 좋은 환경에서만 뛰게 되면서 위기를 거치고 약점을 공략당하며 고난을 겪다가 그걸 극복하며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 (물론 대학 시절 상대팀 입장에선 김태술 나가니 이정석 들어오는 상황은 악몽과도 같았지만). 이런 지적은 '김태술은 너무 농구를 예쁘게 하려고 한다' 라는 비판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석이 김태술에 밀려 얼리 엔트리로 프로로 진출했음도 잊어선 안된다.

공격때와는 달리 수비에서는 좀 거친면도 있긴 하다. 실제 하드한 파울을 생각외로 많이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플레이 자체는 특정 대학 출신 선수답게 헐리웃 플레이가 굉장히 심하다.
(무릎을 쳐도 목을 꺽는 신기한 모습을 연출)

공익근무 중에는 몸을 상당히 만들어서 피지컬이 굉장히 강해졌다. 실제 양동근도 김태술의 피지컬을 칭찬했다. 하지만 장염에 시달리면서 상당히 체중이 감량하였고 조금 힘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더욱 노련해지면서 시야, 리딩, 패스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센스있는 패스는 현 KBL 제일이며 정통 포인트가드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약점을 꼽자면 잔부상이 제법 많은 편이며 위에 언급한것과 같이 가드치고는 느린편.[7] 달리기 자체도 그렇게 빠른편이 아니고 순간 민첩성 역시도 빠르지 않아 상당히 민첩하고 날쌘 선수들을 만나면 자동문이 되는 편이다.

3. 기타 사항

방성윤과 더불어 SK나이츠의 관중 버프를 담당했을만큼 인기가 많았기에 신인 시절부터 팬들이 기자단에게 신인왕 선정을 위해 선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KBL 꽃보다 남자 투표'에서 이정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건 흑역사인가

SK의 홈구장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08-09 올스타전 마지막 장면은 선수들이 김태술을 번쩍 들어올려 덩크슛을 '시키는' 모습이었다.

SK 시절 별명은 매직키드, 마수리, 그리고 스탯술[8]

KGC에 와서는 김태술래 라는 별명이 생겼다. 바로 이분 때문이다.[9]

공익근무 시절 안쓰러운 일화가 있다. 공익 시절 안양실내체육관에 와 경기도 지켜보고 연습도 했는데, 어느 팬이 관중석에 앉아있는 김태술을 몰라본 채 "여기 매점이 어디에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우승한 직후 이 일화를 상기하면서 홈팬이 자신의 얼굴을 못 알아봐 충격이 컸다며 이로인해 이를 더 악 물고 연습했다고 한다.#

맞트레이드 대상이었던 주희정이 SK에서 폭풍몰락하게 되면서 한동안 DC 농구 갤러리 등지에서는 김태술 재평가론이 돌기도 했다. 게다가 2011-2012 결승전에서 김태술이 맹활약하면서 KGC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희정-김태술 트레이드가 다시 화제거리가 되었다.

안티가 좀 있는 편인데 그 이유가 이동준, 김민수에 대한 반말 덕분. 학년은 같지만 나이가 이동준은 4살이 많고 김민수는 2살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혼혈선수라서 라는 말이 많았다. 더불어 인터뷰에서도 전태풍에게 형이라 하지않고 그냥 이름만 불러서 더욱 확산되기도 하였다. 결정타는 비록 반말은 아니지만 이동준이 트위터에 "김태술 고맙다. 이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우리 귀화한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알 것 같아." 라는 글이 나오면서였다. 그래서 나온 드립이 김태술:"동광아~"[10]

최근 치한으로 오해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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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배들의 졸업도 있지만, 하승진의 입학으로 인해 그 해 연세대가 빅맨을 뽑지 않았다가 하승진이 NBA진출하는 바람에 빅맨이 없어진 탓도 크다. 김재환이 5번을 보고 그나마 반칙이 많아 양희종이 '센터킬러'소리까지 들어가며 4~5번을 봤던 안습한 상황ㅠㅠ. 거기다 명장 소리 들으며 팀을 이끌던 김남기 감독도 나가리되어 버렸으니. 그럼에도 양희종이 인사이드에서 경이적인 활약을 보인 덕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대학 후반기에는 결국 한계가 오고 말았다.
  • [2] 그로인해 공익가서 키워온 근육이 다 빠져버렸다.
  • [3] 그 억만장자였던 스티브 잡스조차 회생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는 5년이나 버틴 것이 굉장히 용하다고 할 정도.
  • [4] 감독이 이상민이고 이상민김태술은 알다시피 연세대...
  • [5] 엠바고에 걸릴까 봐 돌려 말한 듯싶다.
  • [6] KCC가 현 FA제도에서는 최대어를 FA로 영입하기는 힘들었다는 판단이 있었던것 같다.
  • [7] 그로인해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인데도 철저하게 출전 시간관리를 받는다.
  • [8] 경기력에 비해서 기록이 좋아서이다.
  • [9] 하지만 복수도 성공
  • [10] 김동광 감독은 나이가 60이 넘으신 감독님인데 바로 하프코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