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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last modified: 2015-03-17 06:40:49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1.1. 소개
1.2. 기록
1.2.1. 충격과 공포의 대구 오리온스 시절
1.2.2. 몰락, 그리고 이면계약서 파문
1.2.3.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그리고 은퇴
1.3. 은퇴 후
2.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3. 장미빛 연인들의 등장인물

1.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이름 김승현(金勝鉉)
생년월일 1978년 11월 23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송도고 - 동국대학교
포지션 포인트가드
신체 사이즈 178cm[1], 78kg
프로입단 2001년 드래프트 3번(대구 동양 오리온스)
소속팀 대구 오리온스(2001~2010)
서울 삼성 썬더스(2011~2014)

2001~2002 한국프로농구 MVP
조성원(창원 LG 세이커스) 김승현(대구 동양 오리온스) 김병철(대구 동양 오리온스)

2001~2002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이규섭(수원 삼성 썬더스) 김승현(대구 동양 오리온스) 김주성(원주 TG삼보 엑서스)

1.1. 소개

대한민국농구 선수.

1978년 11월 23일생.

이상민과 더불어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 강모씨는 뺍시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농구선수[2]

故 전규삼 송도고 감독의 제자로 고교, 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특급 가드로 2001년 KBL 드래프트에서 농구계에서는 비주류였던 동국대 출신으로 이례적인 전체 3순위로 입단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성기는 비교적 짧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만큼 충격적인 임팩트를 선보여 KBL이 만든 최고의 슈퍼스타에 김주성과 더불어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이 되었다.

1.2. 기록

정규시즌
470경기 10.5점 3.0리바운드 6.9어시스트 2.0스틸 FG 45.3% 3P 36.9% FT 81.9% TS 0.57 eFG 0.53 PER 14.8

플레이오프
24경기 10.6점 2.9리바운드 7.1어시스트 1.9스틸 FG 39.0% 3P 29.9% FT 86.2% TS 0.50 eFG 0.45 PER 12.5

챔피언결정전
13경기 12.7점 4.7리바운드 6.2어시스트 2.2스틸 FG 47.7% 3P 44.6% FT 76.9% TS 0.60 eFG 0.59 PER 15.7

1.2.1. 충격과 공포의 대구 오리온스 시절

김승현의 리즈시절은 오리온스의 리즈시절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2001년 드래프트 당시에 김승현처럼 농구선수 치고는 작은 키에 발만 빠른 가드가 과연 KBL에 통할 것이냐라는 혹평이 있었다. 당시 오리온스보다 지명권이 바로 위에 있었던 코리아텐더가 슈팅가드 전형수를 지명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김승현이라는 최고의 포인트가드를 거르고 180cm에 슛만 좋은 단신 슈팅가드 전형수를 지명한 셈이라 결과적으로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 김거전?[3] 덧붙여 4픽이었던 신세기 빅스는 연고지인 송도고 출신 김승현을 지명하려고 했으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전희철은 시즌 전 김승현의 플레이를 보고 어머니에게 "엄마, 우리팀에 농구 끝내주게 잘하는 애 왔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전희철의 어머니는 '쟤가 다른 선수 이야기 하면서 저렇게 신이 난 적이 없는데…(얼마나 잘하길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전설적인 32연패를 하는 등 수 년 동안 쭉 하위권에 처져 있던 오리온스는 2001년 김승현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KBL의 강호이자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올라섰다. 2001~02 시즌 김승현은 2001년 10월 3일 데뷔전에서 15득점 10어시스트, 두번째 경기에서는 19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신인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의 활약을 했고 결국 만년 꼴찌 오리온스를 36승 18패 정규시즌 1위팀으로 만들고 자신은 12.2득점 8어시 3.2스틸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같은 해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한 동료 마르커스 힉스(PF)와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오리온스의 멤버는 판타스틱 5( + 리바운드의 제왕 리맨(C), 든든한 캡틴 김병철(SG), '에어 본' 전희철(SF))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포지션별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리하여 데뷔 시즌 어시스트왕스틸왕에 등극, 그리고 KBL 역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4]

. 여기에 BEST5에 까지 뽑히며 전무후무한 데뷔 시즌 5관왕을 달성했다.

뒤이어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10여 년 이상 이겨본 적이 없던 중국을 만나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막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득점 등 연속 가로채기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간 후 연장전 대역전극을 지휘하여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연히 MVP에 등극했으며, 병역혜택도 받았다.[5]

이 모든 게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며, 김승현은 이 짧은 기간 동안 농구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당시 김승현을 능가하는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선수가 팀에 있으면 "김승현 효과"라고 하여 부진한 팀의 성적이 한순간에 올라간다는 KBL 최대의 미스터리가 있다. 어찌보면 슬램덩크김수겸과 역할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실상은, 송태섭과 같은 KBL 최고수준의 스피드와 NBA수준이라고 칭송받던 창의적이다 못해 똘끼가 넘쳐 흐르는 패싱이 트레이드마크이다. NBA의 화이트 초컬릿 제이슨 윌리암스가 그랬던 것처럼 온갖 현란한 묘기 패스와 과감한 결단력이 보이는 패스[6]등 관중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어주는 현란한 스킬과 이를 접수하는 용병의 피니쉬까지 겹치며 32연패의 수렁에 한때 빠졌던 대구 오리온스를 순식간에 KBL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만든다. 더불어 외국인 선수들과의 호흡도 좋아서 르커스 힉스, 비 레이저, 이트 존슨, 아이라 클라크, 벤슨, 피트 마이클 등 전성기 오리온스 외국인 선수들의 성공을 받쳐주었다.

09~10시즌까지 평균 11.5득점, 7.4어시스트를 올리며 김주성과 함께 KBL을 대표하는 토종 슈퍼스타로 항상 NBA 진출 떡밥에도 이름을 올리고 그가 출전하지 않는 경기의 오리온스 관중수입이 출렁이는등 대구 오리온스의 히어로. 그러나…

김승현이 몰락하면서 오리온스도 같이 나락으로 빠졌다.[7]

1.2.2. 몰락, 그리고 이면계약서 파문

이후 계속 소속팀과 국가대표 팀에서 활약하였으나, 2007~08 시즌 부상으로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연봉 삭감을 통보받게 되자 2006년 FA로 5년계약을 맺으면서 작성한 이면계약서를 토대로 2009~10 시즌 연봉 인상을 주장하였지만, 팀에서는 전 시즌의 부진을 이유로 거부하자, 이면계약서를 공개해버렸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해지자 오리온스 심용섭 단장과 함께 KBL 서머리그 출범 기자회견장에 등장, 이면계약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저지른다 물론 일주일만에 거짓말로 들통.

결국 KBL에서 징계를 내렸는데, 18경기 출장정지라는 가벼운 징계를 먹이고 끝났다.

그리고 2009년 11월 초반 2승 6패의 부진에 허덕이던 오리온즈 구단은 KBL측에 징계경감을 건의했고, KBL측은 이를 낼름 받아들여 11월 2일 이사회를 통해 18경기 출전정지를 9경기 출전정지로 50% 반액 세일을 감행하고 말았다…. 이건 뭐 부커냐?

다만 워낙 대구 오리온스가 김승현에 대한 비중이 크다보니 상대팀 선수들의 거친 수비로 인해 부상이 잦은 편. 2008~2009 시즌은 허리 부상으로 54경기 중 39경기에만 출장하여 시즌을 펑크내다시피 했고, 2009~2010시즌에는 위의 징계를 끝내고 코트에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12월 16일에 있었던 전주 KCC 이지스와의 홈경기에서 1쿼터 7분 남은 상황에서 KCC 강은식과 충돌하여 무릎 부상을 당해 결국 3주간 결장하게 되었다.

2010년 11월 9일 오리온스 구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야말로 갈때까지 가버리는 상황. 이전까지 트레이드도 구단과의 험악한 관계를 모두가 알고 있기에 헐값밖에 못받는 상황이라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11시즌에 출장하지 못하는것도 미운 살이 박혀서 그런것이라는 설도 파다하고. 아예 프런트에서 완전히 쳐박아놓고 계약기간을 끝내겠다는 의중을 내비쳐서 사실상 재기가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프런트의 의중이 반영된것으로 김승현의 아버지는 단장이 모팀 감독에게 "데리고 있으면서 죽이겠다”라고 한말을 모팀 감독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단장은 그런식으로 말한적은 없다고 했지만.. 이와 관련된 자세한 전모는 링크 참조#

KBL은 11월 11일 재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작년 이사회 결정 의결사항의 불복을 사유로 김승현을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다. 임의탈퇴 선수가 되면 선수자격은 사실상 정지되고, 타구단의 영입도 불가능하며, 선수정원이나 샐러리캡에서 제외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수와 구단의 합의 뿐아니라 연맹차원의 임의탈퇴 조치이기에 KBL의 공식절차가 필요하다. 이제 진짜로 소송드립이 열렸다. #

그리고 결국 2011년 7월 14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임금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

소송전 승소 이후 KBL 복귀를 위해 오리온스측과 만남을 가졌으나 협상진행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오리온스 측은 복귀 조건으로 잔여연봉 포기를 요구하고 있고 김승현측은 이는 선수생활을 담보로 한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팽팽한 신경전만 반복되고 있던 상황.#

협상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끝에 11월 22일 오리온스와 선수복귀에 전격 합의 했다. 주요 합의내용은 김승현은 임금청구소송 승소로 얻게 되는 12억을 포기하고 오리온스는 12월 8일까지 타 팀으로 김승현을 트레이드시키는 것.#

1.2.3.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그리고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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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패스는 살아있다~!

결국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는 것으로 결정났다. 이 과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고양 오리온스가 김승현 이적 합의를 본 상황에서 오리온스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파토내고 썬더스로 방향을 급 변경하여 또 한번 파문이 일었다. LG가 결국 KBL에 이번 트레이드에 대한 이의신청을 낸 상태. 이에 대해 오리온스측은 김승현 측이 트레이드 희망팀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가 삼성행을 주장하여 변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승현 측은 트레이드 초기부터 희망팀을 밝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8]

2011년 12월 7일 잠실에서 열린 對전자랜드전에서 641일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예상보다 빠른 복귀인데 18분 정도 뛰어서 6어시 2리바운드를 기록. 시야와 패스 감각은 살아 있으나, 몸상태가 안올라와 퀵니스가 처참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 상대 핵심벤치멤버도 아닌 임효성에게조차 공수 양면에서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상 기량을 회복할려면 시간이 걸릴듯. 결국 팀도 패배, 11연패의 늪에 빠졌다.

가십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소속사가 펄하우스스토리…. 이진주(사업가) 항목 참조

무한도전 결투특집 하하 VS 홍철에서 하하의 자유투 선생님으로 깜짝 출연했다.

12-13 프로농구 개막전에 목 디스크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나왔다.역시 유리몸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며 사실상 시즌아웃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2/13시즌 1월 13일 동부전에서 복귀하였다.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DTD 테크...

결국 지난시즌과 나아진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지난시즌보다 더 떨어진 모습으로 경기당 평균 2.0득점 2.0어시스트 0.6스틸만을 기록하며 공,수 에서도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며 연봉 4억에 걸맞지 않는 먹튀테크를 타게 되었다. 또한 FA계약기간동안 재계약 협상에 진전이 되는 모습을 보이며 비난 여론을 크게 샀고, 결국 연봉 4억에서 대량 삭감한 1년 1억5000만원에 계약하게 되었다.

본인은 농구를 하게 되는것만으로도 좋다고 하면서 연봉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더불어 데뷔하고 가장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실제 연습경기에서도 전보단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9] 그러나 13~14 시즌에도 1라운드 막판 부상으로 한달을 날렸다. 결국 삼성에서는 먹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채 서울 삼성 썬더스와 FA 협상이 사실상 결렬되었다.

삼성시절 평가는 결국 먹튀. 대구 오리온스시절 보여주었던 뛰어난 포인트가드로서의 역량을 보고 당시 주가가 올라가던 몰포워드 김동욱까지 넘겨주었지만(추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김승현+이동준=김동욱+현금 트레이드), 정작 삼성시절 3시즌동안은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고액연봉자였다.김동욱도 고비용저효율이 되가고 있는것이 함정[10] 오랜 공백기를 극복하지 못하며 오리온스 시절보다 둔해진 움직임으로 공수양면에서 둔해진 모습을 보여 수비에서도 구멍이 되고 공격에서도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이는데다 턴오버만은 전성기 급으로 많았다. 패스능력이야 감각이 완전히 죽는것은 아니기에 킬패스나 위 움짤처럼 오리온스 시절을 방불케하는 화려한 플레이도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시기 삼성이 안준호 사임 이후 김상준의 부임으로 삼성 최대의 암흑기동안 영입된 선수이기도 하고 김승현 영입후 성적이 10 - 6 - 8로 직접적인 원인까지는 아니지만 좋지않은 행보와 맞물려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2013-2014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고 2014년 5월 15일, 파란만장했던 농구 인생을 뒤로 한채 은퇴했다. 본인 말로는 타 구단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다고는 했다. #

1.3. 은퇴 후

골프 쪽에 관심을 두는 듯하다.김승현 근황

2014년 11월 아프리카TV에서 해설자로 데뷔했다. 서민교 기자와 함께 KBL 경기를 중계하며 프로그램 제목은 김승현의 매직핸드. '석주일의 프리드로우' 흥행에 삘받은 아프리카쪽에서 추가로 영입한듯.

2014년 12월 25일 전자랜드 vs 오리온스 경기부터 Sky SPORTS의 프로농구 중계에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5년 2월 MBC 진짜 사나이 시즌2의 멤버로 전격 출연하며 예능 나들이를 시작하였다.

3. 장미빛 연인들의 등장인물

이해우가 연기한다. 김승현(장미빛 연인들) 항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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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 키는 175cm
  • [2]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임팩트를 보여준 포인트가드였지만,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플레이스타일에 변화를 주었어야 할 30대 초반을 허리 디스크와 소송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 [3] 물론 당시의 전형수는 신인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공격력을 가졌고, 지명 당시에는 김승현보다 더 뛰어난 공격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상위 픽에서 뽑힐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코리안텐더는 겨우 한시즌 써먹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아버렸고, 이후 전형수는 해를 거듭하며 기량이 쇠퇴했다.
  • [4]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승현 이후로 KOVO V-리그 2005-06 시즌의 김연경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포스트시즌 최종 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한 선수는 김연경이 유일하다.ㅎㄷㄷ 그래도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우승을 맛봤다. 아쉽게도 MVP는 마르커스 힉스에게 내주긴 했지만.
  • [5] 다만 이 면제로 인해 박지현김현중은 만년 백업이 되었다.
  • [6] 이것때문에 그가 부진할땐 턴승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턴오버+김승현
  • [7] 오리온스는 고양시 이전 후 추일승이 리빌딩을 하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 [8] 개인과 집단(구단)의 일방적인 싸움을 혼자 극복하기란 어렵다. 상황 정리된 이후 여러 멘토를 언급했지만 여러 구단에서 김승현을 끌어오기 위해 제안이 오고 갔었고 복귀말미에 삼성 중심으로 기사가 여러번 나왔었다. 임의탈퇴를 풀기위해 삼성의 도움이 있었고 서장훈 선수의 조언에 삼성의 재활시스템이 좋다고 들었다는것을 김승현 선수 본인이 언급했다. 오리온스에서 재활을 잘못해서 몸도 마음도 상한것도 있었을 것이고, 당시 기사 분위기를 보더라도 삼성행이 기정사실인 가운데 오리온스에서 보다 나은 트레이드를 위해 이를 숨겼을 가능성이 다분한데 복귀협상에서도 김승현은 원하는 팀으로의 트레이드를 조건으로 내세웠고 오리온스 측은 일단 소속팀에 복귀부터 하자는 쪽 이었다.
  • [9] 하지만 다르게 보면 김승현이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안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그정도 연습으로 최고소리를 들었으니 그만큼 천재성이 대단했다는걸 인증한다.
  • [10] 허나 김동욱은 오리온스에서 정상급 포워드로 거듭났다. 본격적으로 까이기 시작한 건 12~13시즌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