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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투수)

last modified: 2015-03-15 12:35:1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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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金守經)
생년월일 1979년 8월 2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출신 학교 서화초-대헌중-인천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 우선지명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1998~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2)
고양 원더스(2014)
지도자 경력 넥센 히어로즈 투수코치(201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0번
최상덕 (1994-1995) 김수경(1998~2007)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0번
팀 창단 김수경(2008~2012) 조중근(2013~2014)[1]

1998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이병규(LG 트윈스) 김수경(현대 유니콘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 시절
2.1.1. 1998~2000 시즌
2.1.2. 2001~ 2006 시즌
2.1.3. 2007 시즌 부활
2.1.4. 2008 ~ 2010 시즌
2.1.5. 2011 시즌
2.1.6. 2012 시즌
3. 1년간의 불펜투수 코치 시절...그리고 고양 원더스
3.1. 2014 시즌
4. 기타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닥터 K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고양 원더스를 거치며 활동한 야구선수. 2012년 10월 은퇴를 선언하고 넥센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를 역임하다 2013 시즌 종료 후 고양 원더스에 입단해 선수 신분으로 복귀하였다.

인천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천고 1학년 때인 1996년 당시 3학년이었던 박진만과 함께 봉황대기 준우승을 이끌었고 감투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김수경은 인천고가 간만에 낳은 에이스 투수로 인정받아 학교 측에서 플래카드를 매년 걸어둘 정도였다. 그리고 1998년 고졸 우선으로 지명됐을 때도 인천 연고 야구팬들에게 인천+인천고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어필했다.

젊은 시절엔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올라서 안경을 썼던 이미지가 강하지만 2002년 라식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은 지금은 배우 감우성과 비슷한 호남자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마구마구에서는 여전히 안경남.

별명은 수경언니 혹은 닥터 K. 언니김창희, 송신영과 비슷하게 여자같은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다른 별명은 마지막 황태자. 이숭용의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본래 주인은 김수경. 현대 왕조가 해체하기 전에는 순백의 유니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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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드업 투구폼이 상당히 특이한데 와인드업 할 때 왼다리를 거의 직각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용수철 튕기듯 하이키킹한 뒤에 던진다. 박찬호의 하이키킹처럼 다리를 쫙 뻗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지만 세트포지션의 투구 역시 무릎이 엄청나게 높게 올라가는 하이키킹 투구폼이다. SK 와이번스2012년 신인 투수인 임치영이 김수경과 닮은 꼴. 이 때문에 왼다리와 엉덩이 쪽이 받는 부담이 큰 편이며 이 투구폼을 수정하려다가 적응에 실패하여 꽤 오랫동안 고전했다.
입단 당시엔 지금보다 더 특이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2011시즌 투구모습을 보면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투구폼이 다르다. 주자가 없으면 기존의 투구폼이고, 주자가 있으면 발을 빼는 동작을 생략한 채로 던진다.

개인 통산 112승을 올려 2011년 김원형이 은퇴한 이후 현역 선수 중 1위였다.[2] 송진우의 역대 최다승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거의 유일한 후보로 손꼽혔으며 동시에 불가능에 가까운 성구회 가입 요건인 선발 200승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고양 원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재기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역대 최다승 도전은 유효하다. 다만 프로에 복귀해도 많은 나이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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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투구(2007년)

주무기로 직구슬라이더가 있으며 실제로 잘 나갈 땐 빠른 직구와 종슬라이더 투피치만으로도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정도. 그러나 2011년도 이후엔 직구의 구위가 떨어져 슬라이더 이외의 변화구도 많이 구사하기 시작했다.


2008년 김수경의 투구

2. 선수 생활

2.1.1. 1998~2000 시즌

인천고 재학 시절만 해도 직구 평균구속이 139km/h가량 나오는 그저 그런 선수였으며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1학년 때 봉황대기에서 9이닝 완투승도 하고 정대현의 모교 군산상고와의 결승전에서도 비록 지기는 했으나 잘 던졌지만, 박진만이 졸업한 이후 인천 지역예선에서 동산고에 번번이 밀리는 등 인천고의 성적부진으로 별다른 수상기록을 쌓지 못한 채 졸업했다. 그럼에도 김시진이 그의 잠재력을 보고 현대 유니콘스 구단에 추천하여 1998년 드래프트 고졸우선 지명으로 뽑혔다. 현대의 나머지 고졸우선 지명자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영혼의 배터리인 강귀태, 그리고 이대환.

입단 직후 김수경의 잠재력을 낮게 본 김재박 감독이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하자, 김용휘 단장이 '투수 1명만 더 데려가라'면서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었다고 한다.[3]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따라간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연습경기에서 3이닝 7탈삼진이라는 호투를 보여주며 김시진 투수코치의 눈에 들게 되었다. 이후 김시진 코치의 집중조련을 받으며 최창호,안병원,김홍집,최영필 등의 선배들을 제치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 해 12승 4패, 2.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김용수와 함께 승률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최원호와 함께 1998년 현대 유니콘스 선발진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이 때 지금까지도 유일한 선발투수 전원 10승이라는 대기록도 만들어진다. 1,2,3,4,5선발 투수가 모조리 10승 이상을 거둔 것이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강동우 선수(3할, 10홈런, 22도루)와 OB 베어스김동주(.265, 24홈런, 89타점)를 물리치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해에 올린 탈삼진 168개는 김시진이 기록했던 154개를 깬 역대 신인 최다 탈삼진 기록으로, 당시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이대진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었다.[4] 그래서 많은 팬들은 신인 때부터 김수경을 '닥터 K'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0고 199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등판하여 당시 현대의 천적이었던 LG 트윈스를 상대로 호투하며 승리. 역대 최연소 한국시리즈 선발 승리투수. 당시 19세로 종전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 염종석의 19세 2개월 10일이었다. 시리즈동안 총 2경기 나와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61의 쏠쏠한 활약으로 팀의 첫 우승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쉬운 점은 1998년 처음으로 도입된 외국인 선수 제도로 현대에 영입된 마무리 투수 스트롱방화범 역할을 하며 김수경의 승리도 몇 차례씩 날려주는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것. 이로 인해 스트롱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제외되었고 현대는 한국시리즈에서 선발투수와 셋업맨들로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

1999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이 개발살나면서 중간계투로도 많이 나왔으며 타선이 김수경의 승리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팀 선배인 정민태와 선발진에서 쌍두마차 활약을 해주었다. 1999년 최종 기록은 10승 11패 1세이브 탈삼진 184개 ERA 4.11. 말하자면 2년차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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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같은 팀의 정민태, 임선동과 함께 18승을 올리며 공동 다승왕에 오른다.[5] 당시에 기업 라이벌이기도 했던 삼성 라이온즈배영수와 함께 우리나라를 이끌 투수라고 극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성적은... 어쨌든 군 면제는 받았다. 박종호, 박진만[6], 박재홍[7], 박경완, 임선동, 정민태 등 한 팀에서만 국가대표팀에 7명이나 뽑혔다는 점은 2000년 현대가 최강의 팀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0년 7월 16일 수원야구장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9회2사에 헤수스 타바레스안타가 터져서 노히트 노런 기록이 깨진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9회말 2아웃 1스트라이크에서 기습번트를 댄 것이 내야안타가 되어 기록을 깼다는 이야기가 있다. 퍼펙트게임 혹은 노히터가 진행되고 있을 때, 경기 후반 기습번트를 대지 말아야 한다근데 가끔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 게임을 언급하는 기사는 김수경의 예를 드는 경우가 없다. 안습#

2.1.2. 2001~ 2006 시즌

2001년에 투구폼 수정을 시도하다 대실패하면서 200이닝과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던 투수가 6승으로 주저앉고 100이닝 안팎으로 이닝 소화력이 줄어들었으며, 결국 시즌 중간에 부상으로 드러눕는다. 당시 오릭스 투수코치의 권유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주변의 조언을 본인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발언도 있다

2002년에 12승, ERA 4.88 2003년에 10승, ERA 4.63 2004년에 11승, ERA 4.01의 성적을 올리지만 1998~2000년 사이 보여줬던 활약에 못 미쳤고, 2005년에 다시 추락하며 2년간 부진에 빠진다. 높았던 탈삼진율이 01년 이후로 크게 감소하면서 투구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04년에는 특기할만한 기록으로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세운 5타자 연속 삼진 신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김광현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경신(6개)했다. 2006년에는 3.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만 17경기 4승 7패. 이 해가 심각한 투고타저였기에 3점대 방어율도 낮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2군 강등을, 그것도 여러 번 당한 시즌이기도 하다. 그 때 감독은 김재박인데 경험 좀 하고 오라고 보냈다 카더라.

2.1.3. 2007 시즌 부활

FA를 선언하였으나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1+2년 계약을 한 채 현대에 잔류하였다. 2007년 세부기록은 생각보다 확 좋아지지는 않았으나 오랜만에 176.1이닝을 소화하고 방어율 3.88에 12승을 올렸다. 역대 최연소 100승 투수가 되는 동시에 팀내 최다승 투수가 되었고, 이렇게 부활하나 싶었다.

2.1.4. 2008 ~ 2010 시즌

이듬해인 2008년에 부상과 재활로 다시 주저앉았고, 2009시즌에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했다. 이 때부터 배터리도 과거 연고지 라이벌 팀인 누구처럼 초등학교 동창하고 영혼의 배터리 호흡을 맞추었다.

2010년에는 시즌 내내 2군에서 재활. 단 1경기에 선발로 올라가 3⅓이닝 5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갔다. 그리고는 부상이 발견되어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2.1.5. 2011 시즌

2군에서 재활하다 이정훈이 강진으로 내려가며 1군으로 콜 업.

다음날인 6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박한이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은 문성현을 구원하여 4회 1사 상황에 등판. 3⅔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직구 최고구속이 136Km이고 야수진의 호수비로 겨우 막아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투구. 이후 6월 15일 3이닝 1실점, 6월 21일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주로 패전처리를 맡았다.

7월 7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1⅔이닝 무실점. 정말 감질나게 나오다가 7월 9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4이닝 무실점으로 다시 등장. 3회말 1사 만루의 상황에서 구원등판해 병살로 깔끔하게 이닝 마무리. 이후 나머지 3⅓이닝도 단 1안타로 막아냈다. 평균자책점은 0.68까지 내려갔고 이 경기에서 통산 1,700이닝(1701이닝)을 달성했다. 구속이 처음 올라왔을 때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게 포인트. 이날 최고 구속은 140Km/h. 이후 등판은 없었으며 7월 21일까지 5경기 13⅓이닝 7피안타 5K 1실점 평균자책점 0.68을 기록했다. 구속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고 하였다. 143Km/h까지 나왔다는 듯.#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김성현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선발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1년 8월 11일 롯데 자이언츠 원정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왔지만 강민호황재균의 홈런으로 492일만에 선발 등판 경기에서 3⅔이닝 만에 강판당하였다. 황재균의 홈런이 파울인지 홈런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심판진에 의해 홈런으로 인정된 후 흔들리면서 무너졌다.

2011년 8월 19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 원래 선발로 예고되었던 김성태가 어깨 통증 때문에 공을 한 개도 안 던지고 내려갔고 그 대신 김수경이 깜짝 등판했다. KBO에서는 김수경을 선발 투수[8] 기록하였고 그 날 5이닝 3피안타 3볼넷 1실점 1탈삼진으로 호투했다. 중계진의 방화로 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팬들은 호투한 김수경에게 박수를 보냈다. 오재영, 이보근, 박준수 이 셋이 이 날 방화의 주범…….

8월31일에 두산전에 등판해서 1실점 호투했지만 손승락의 1피홈런 블론세이브로 승리가 날아갔다. 승락아! 내가 뭘 잘못했니!

9월6일에 SK전에 등판, 3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했으나 역시 불펜진의 방화로 인하여 승리는 날아가고 말았다. 1승 거두기가 너무 어렵다

9월 11일 롯데전에 등판 2실점 퀄리티 스타트를 했으나 타선의 득점 지원 부족으로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기 때문에 승리를 챙기지 못하였다. 타자님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9월 16일 두산전에서는 6회까지는 잘 막았으나 그후에 실점하여 동점을 허용하면서 강판당했다. 팀의 역전승으로 패배는 면했지만 승을 올리지는 못했다 이쯤 되면 심수창 시즌2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9월 28일 SK전에서 6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745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고 112승을 달성하였다.

전반적으로 2011시즌을 평하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이번 시즌도 안되면 은퇴도 불사하겠다고 했던 선수가 1군 등록된 이후 날카로운 제구력과 위기관리능력[9] 등을 보여주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려 팀과 선수 모두 큰 수확을 거둔 시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40km/h도 나오지 않던 구속이 143km/h까지 상승하고 시즌 중반 이후 무너진 선발의 한 축을 메꿔주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내년 시즌이 기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군에서 재활을 마치고 1군으로 콜업될 때 재활을 도운 정명원 투수코치의 얘기로는 더 이상의 구속 상승 여지는 거의 없다고. 슬라이더의 구속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130km/h 초반을 찍었다. 하지만 직구 최고 구속이 143km/h에 머무른다는 건 슬라이더의 위력이 반감한다는 것. 결국 본인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약점이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지 2011시즌 후반에는 커브와 체인지업의 비중을 높였다. 흠이 있다면 중계진들이 김수경의 승을 4번이나 까먹은 것.

2011시즌 최종 성적은 69이닝 1승 2패 평균자책점 3.39.

2.1.6. 2012 시즌

팬들은 이제나 저제나 현대시절의 영광의 재현을 보고 싶어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스프링캠프 때 부터 시범경기까지 단 1차례 등판하여 1이닝 3실점을 기록하였다. 개막전때는 1군 엔트리에 포함되어 잠실 야구장에서 선수 소개할 때 마침 나왔다. 그러나 이후 주장 강병식과 같이 아름다운 2군행 강진에서 굴렀다. 2군에서 3승 3패 1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6월 1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1군에 드디어 올라왔다. 팀이 스코어 0:13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하여 1이닝 17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등판이었고 팀도 0:13으로 이겼다.

팀이 대망의 중위권에 오른 상태에서 6월 1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강윤구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강윤구가 그 놈의 볼넷으로 4실점을 헌납하여 스코어 4:2로 지던 5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김수경이 마운드에 올랐다. 2루 주자 김주찬과 1루 주자 손아섭의 더블 스틸로 무사 2, 3루의 위기에서 김수경이 강민호를 루킹삼진으로 잡아냈다. 이 때 강민호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표정이 TV 중계화면에 10초간 뜬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박종윤을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고 조성환에게 볼넷을 내준 뒤 황재균을 3루수 땅볼로 막으며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다. 이날 3이닝 49투구수 5피안타 1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하필이면 스코어 4:4인 7회초에 실점을 한데다가 팀 타선이 7회부터 9회까지 무기력하게 막히는 바람에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6월까지의 성적은 5경기 6⅔이닝 1패 평균자책점 1.35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가면 갈수록 피안타율이 높아져서 결국 피안타율이 무려 .333이 되었기 때문에 팬들은 불안해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팬들은 김수경이 선발 투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2012년 10월 17일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발표했다.# 넥센 1군 불펜 코치로 자리를 옮기는 모양. 현역 200승 투수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릴 것이라 다들 기대했는데... 화려한 전성기 및 긴 재활의 시간을 거친 것은 같지만 2012 시즌 부활의 날갯짓을 펼친 배영수와 달리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선택한 것은 아쉬울 따름. 배영수와 고작 2살 차이이다. 그런데....

3. 1년간의 불펜투수 코치 시절...그리고 고양 원더스

2013 시즌 불펜투수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방화로 시청률을 올리는 불펜진을 보며 마음고생이 많다고 한다. 시즌 도중 친정팀으로 복귀한 송신영은 김수경에게 '불안하면 니가 나와 던지라'고 했다 카더라. 사실 그의 나이 만 33세에 불과했으며, 은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구단에서 별 다른 은퇴식 행사도 치르지 않았기에,[10] 몸만 꾸준하게 관리한다면 플레잉 코치로 복귀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는 히어로즈 팬들이 많았다. 시즌 종료를 앞두고 이강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투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넥센에서 현역 복귀해도 됐을 텐데,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는 이유는 뭔가.
사실 현역에서 물러날 때, 구위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다.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에 뛰어드는 건 다소 무리라 생각했다. ‘야구’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넥센 구단에선 “네가 현역으로 복귀한다면 우리 팀에서 뛰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셨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넥센에서 뛰는 건 부담을 드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일단 구위를 회복하는데 집중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 무대로 다시 뛰어들지 판단하는 게 맞지 싶었다.
- 박동희 인터뷰 중에서

2013년 시즌 종료 후, 고양 원더스로 이적을 밝혀 선수로써 부활을 선언했다. 구단에서는 올 시즌 중 성대한 은퇴식을 치러 주겠다고 여러 차례 걸쳐 제안했었지만 선수복귀 의사가 있었때문에 은퇴식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단에서는 넥센 소속 선수로 복귀할 것을 권유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면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 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고양 원더스로 갔다. 선수생활 시절 김성근 감독과는 큰 접점이 없었고, 운동을 1년 쉬었기 때문에 우려도 되지만 기대하는 현대-넥센 팬들이 많다. #

10월 말 경에는 폼 교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롯데 출신의 이왕기 선수도 같이 훈련 받고 있다는 듯.[11]

3.1. 2014 시즌



그러나 시즌 들어와서는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구위도 폼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7월까지 이어졌다.

7월 14일 BCS 베이스볼 퍼포먼스에 찾아와서 점검을 받았다는 페이스북 글이 떴다. ##

2014 시즌 성적은 10경기 등판해 승패없이 평균자책점 6.83. 이 상태로는 프로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성적.

시즌 후 원더스 해산이 예고됨에 따라 일단 거취가 유동적인 상황이 되었다. 싸융짱문오의 활약을 보고 있는 넥센 팬들은 김수경이 선수로든 코치로든 복귀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12월 19일 근황을 담은 기사가 떴다. #

4. 기타

  • 스승인 김시진 감독이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선수 중 한명이며, 김시진은 늘 안타까워하는 타자나 투수를 고를 때 주저하지 않고 김수경을 꼽는다. 김수경 본인도 개인적인 목표가 124승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코치가 똑같이 통산 124승을 기록했기에 이제 본인 차례 아닌가 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은퇴해버리는 통에... 근데 다시 복귀했으니 기대해 봐도.

  • 1998년 신인 입단 때부터 과감하게 뽑고 훈련도 철저히 시키는 등 김시진이 김수경에게 쏟은 애정은 보통이 아니어서, 김수경은 김시진의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늘 들었고 김시진 스스로도 김수경만큼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안다고 하면서 재활 훈련, 수술 등에 관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현대 유니콘스 32 160 12 4 2 - 0.750
(1위)
2.76 112 6 73 168
(3위)
56 49 1.125
1999 40 184⅔ 10 11 1 - 0.476 4.14 180 18 115 184
(1위)
98 85 1.565
2000 29 195
(4위)
18
(1위)
8 0 0 0.692
(5위)
3.74 167 16 94 172
(2위)
87 81 1.323
2001 20 97 6 6 0 0 0.500 5.20 101 15 52 59 60 56 1.557
2002 27 151⅓ 12 10 0 0 0.545 4.88 155 25 60 130 84 82 1.407
2003 29 167 10 9 0 0 0.526 4.63 184 14 74 121
(4위)
96 86 1.521
2004 26 152⅔ 11 8 0 0 0.579 4.01 151 14 65 100 74 68 1.395
2005 17 90⅔ 7 7 0 0 0.500 5.76 106 17 42 70 60 58 1.599
2006 17 85⅔ 4 7 0 0 0.364 3.78 96 5 40 64 41 36 1.541
2007 30 176⅓
(5위)
12
(5위)
7 0 0 0.632 3.88 170 19 63 127 85 76 1.3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 히어로즈 26 106⅔ 3 6 0 0 0.333 3.88 110 7 47 63 54 46 1.425
2009 서울 히어로즈 25 117⅓ 6 11 0 0 0.353 6.67 142 29 58 66 93 87 1.662
2010 넥센 히어로즈 1 3⅓ 0 1 0 0 0.000 13.50 9 1 3 4 5 5 3.600
2011 18 69 1 2 0 0 0.333 3.39 65 6 24 37 27 26 1.261
2012 9 12⅔ 0 1 0 0 0.000 2.13 19 0 5 5 3 3 1.816
KBO 통산(15시즌) 346 1769⅓ 112 98 3 0 0.533 4.29 1767 192 815 1370
(6위)
923 84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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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김수경이 인터뷰에서 직접 신인이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고교시절 달던 번호라고 제맘대로 달아버려서 팬들의 분노를 샀다. 거기에 팬들이 욕한다고 sns에 징징거린건 덤...그런데 2014년에 조중근이 kt위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자동 결번이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선수가 30번을 가져갔다.... 다시 넥센에 복귀하지 않으면 30번을 못 찾고 은퇴할 가능성이 크다.
  • [2] 김원형의 통산 승수는 134승.
  • [3] 김용휘 단장의 뛰어난 선수 선구안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 [4] 류현진이 2006년 204개로 경신.
  • [5] 다만 위 사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3사람이 2004년에 찍은 사진이다.
  • [6] 올림픽 직전 병역 비리에 연루되면서 병역 면제가 취소되었으나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 [7] 1998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미 병역면제
  • [8] 만약 구원 투수라면 선발승과 구원승에 대한 기록이 달라지며 4이닝만 던져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선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최소 5회를 채워야 승리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 [9] 피안타율이 0.248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은 0.100이다.
  • [10]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선언한 강병식의 경우 2013년 7월 7일 은퇴식을 가졌다.
  • [11] 아쉽게도 이왕기(이후 이재율로 개명)는 2014년 5월 재기를 단념하고 퇴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