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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길

last modified: 2015-04-07 10:18:43 Contributors


이름 김성길(金誠吉)
金本 誠吉(카네모토 세이키치)
생년월일 1956년 5월 22일
출신지 일본 아이치
학력 츄우쿄오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8 한큐 브레이브스 6순위 지명
소속팀 한큐 브레이브스(1978~1986)
삼성 라이온즈(1987~1992)
쌍방울 레이더스(199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7번(1988~1992)
김기태(1987) 김성길(1988~1992) 박충식(1993~1999)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일본 시절
2.2. 한국 시절
3. 연도별 성적
3.1. 일본 시절
3.2. 한국 시절
4. 이야깃거리


1. 소개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즈),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약했던 재일교포 야구 선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이다. 별명은 깡마르고 검은 피부가 닮았다고 해서 부시맨. 등번호는 17번으로 이후 박충식이 물려받았다.

츄우쿄오고 진학 후 언더핸드 투수로 전향해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972년 코시엔 8강, 1974 코시엔 봄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또한 고교 재학 중 꾸준히 재일교포 팀으로 봉황기에 참여했다.

2. 선수 생활

2.1. 일본 시절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지명받지 못해 실업팀인 혼다에 입단했다가 1977년 열린 1978 드래프트 때 한큐 브레이브스에 6순위로 지명받고 입단했다.

한큐에서만 9년간 있었으며, 대다수 시즌을 1,2군을 오가는 패전처리로 보냈다. 9년간 성적은 78경기 등판 184이닝 1승 7패 2세이브 평균자책 4.89.

2.2. 한국 시절

김성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재일교포로 알려져 있던 터라 한국프로야구에서 여러 차례 영입을 추진하였다.

1986년 해태 타이거즈가 영입을 추진했고, 한큐와도 얘기가 잘 돼 해태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김성길 본인이 해태 입단을 거절했다. 재일교포로 이미 해태에서 활약했던 주동식이 해태에서의 푸대접 때문에 만류한 것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가 한큐 구단이 아닌 김성길 본인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김성길은 무조건 삼성 아니면 안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해태는 김성길 영입에서 발을 뺐다.

1987년 7월, 한큐에서 김성길을 임의탈퇴 처리하자 여러 팀에서 그를 영입하려 해 그의 몸값은 더욱 올라갔다. 결국 삼성이 4천만엔(당시 환율로 2억원 이상)으로 김성길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1군에서 고작 1승 밖에 올리지 못한 선수를 김일융보다 더 비싸게 데려 온 것. 물론 언론에는 낮은 가격으로다운계약서 발표했다.

1987년에는 시즌 중에 입단해 11경기 밖에 등판하지 않았지만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며 그 몸값을 톡톡히 해냈다. 1989년에는 14승, 1990년에는 13승을 올렸고 특히 1989년에는 233⅔이닝을 소화하며 김시진을 잇는 삼성의 에이스로 올라섰다. 참고로 이 해에 삼성은 팀 평균자책점이 4.42로 7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그야말로 김성길 혼자 팀을 이끌어 간 것.

30대 중반에 접어든 김성길은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지만 1991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기존 마무리 보직 외에 중간계투, 심지어 선발까지 보직을 가리지 않고 애니콜로 굴렸다. 이때문에 만 35세의 구원투수가 선발 3경기 완투를 포함헤서 무려 52경기 188이닝을 던지면서 혹사당했다. 이 혹사는 199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1차전에 구원등판해 80구를 던지면서 승리투수가 되었고, 불과 이틀만인 3차전에는 1회에 선발투수 성준을 대신해 구원등판, 200구 가까이 던지며 13회까지 완투했다. 이는 포스트시즌의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히면서도 김성근 감독의 대표적인 혹사로 언급되고 있다. 오죽하면 혹사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던 당대에도 8개구단 팬들이 "김성길은 저러다 죽는거 아니냐"고 입을 모았을 정도이다.

다승 4위, 세이브 2위, 그리고 팀을 정규시즌 3위로 이끄는 등 개인 성적으로는 최고의 해를 보냈지만 결국 말도 안되는 혹사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부상을 얻었다. 1992년에는 1군 17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이 5점대로 치솟으며 이듬해 신경식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다.[1] 김성근 감독을 이어 부임한 우용득 신임 감독의 김성근 체제 정리 차원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재기를 다짐했지만 이미 그의 나이 서른 일곱. 고작 2승을 거두는 데 그치며 은퇴했다. 재일교포 투수들 중 장명부, 김일융 다음 가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 말년은 초라했다.

대한민국에서 기록은 7년간 211경기 등판 925이닝 54승 46패 39세이브 평균자책 3.38.

3. 연도별 성적

3.1. 일본 시절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0한큐 브레이브스 9 30 0 2 1 6.60 35 10 18
1981 15 43 0 1 0 4.40 41 14 17
1982 1군 기록 없음
1983 29 70 1 3 1 4.50 76 19 36
1984 3 1⅓ 0 0 0 27.00 4 3 1
1985 21 36⅔ 0 0 0 4.17 44 10 24
1986 1 3 0 0 0 3.00 1 2 3
통산 78 184 1 7 2 4.89 201 58 99

3.2. 한국 시절

  •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7삼성 라이온즈 11 31 0 1 3 3.19 31 9 13
1988 38 151⅓ 8 4 6 2.80 150 36 62
1989 34 233⅔
(3위)
14 11 2 2.81 219 71 97
1990 33 166⅓ 13
(5위)
6 3 3.30 168 61 51
1991 52
(1위)
188 16
(4위)
12 18
(2위)
3.30 164 64 94
1992 17 70 1 7 1 5.14 73 33 3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3 쌍방울 레이더스 26 84⅔ 2 5 6 3.93 94 34 40
통산 211 925 54 46 39 3.38 899 308 387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1 삼성 라이온즈 1 1 .000 0 0 0 0 0 0 0
통산 1 1 .000 0 0 0 0 0 0 0

4. 이야깃거리

삼성이 1987년 7월 김성길을 영입한 후 선수 등록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당해 2월 28일을 넘기면 군제대 선수, 트레이드 선수 외에는 추가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 그러나 삼성은 한큐에서 트레이드한 것으로 등록, KBO는 그걸 그대로 인정했다. 하여간 옛날이나 지금이나 KBO의 행정은 한심하다

해태와 삼성이 김성길 영입에 열을 올리던 때에 당시 장명부는 김성길에 대해 "4류투수"라고 말했다. 또, 1987년 8월 12일 한국 프로야구에 첫 등판한 김성길의 투구를 본 한 심판은, "그 정도 투수에게 2억원씩이나 줘야 한다면 진동한은 3억원짜리."라고 평했다. 즉,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돈지랄'오버페이'라는 것이다.

은퇴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2001년 1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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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담으로 트레이드 대가는 선수가 아닌 쌍방울의 2차 1라운드 지명권.(정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