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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갑

last modified: 2015-04-13 18:54:37 Contributors


넥센 히어로즈 No.81
김성갑(金性甲)
생년월일 1962년 5월 3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대구수창초-경상중-대구상고-건국대학교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태평양 돌핀스 (1991~1995)
지도자경력 현대 유니콘스 수비코치 (1996~1998, 2000~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수비코치 (2008~2009)
넥센 히어로즈 작전•주루코치(2009~2010)
넥센 히어로즈 수비코치/2군 감독 (2011)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감독대행 (2012)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 (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손상대 김성갑(1985) 김종갑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번
김성갑 (1991~1995) 김상국 (1996~1997)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1번(2009~)
이순철(2008) 김성갑(2009~) 현직

넥센 히어로즈 역대 감독
김시진 김성갑(대행, 2012.9.17~10.9 ) 염경엽

Contents

1. 소개
2. 유이 아버지
3. 연도별 성적

1. 소개


2014년 현재 넥센 히어로즈의 2군인 화성 히어로즈의 감독이다. 갑동님.[1]

168cm의 작은 키임에도[2] 대구상고, 건국대학교 시절에는 4번 타자를 칠 정도의 강타자였다. 그러나 이는 아마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썼기 때문. 프로에 입단한 후 아마야구 시절의 파워는 사라졌고, 타율도 항상 규정 타석을 채운 야수 중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아 "한국의 멘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3] 통산 타율은 0.235이고 한 때 2할 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신 수준급의 내야 수비를 자랑했다. 어라? 그러고보니 염경엽 감독도 수비력이 좋았다는데??

198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방위 복무 중이던 1986년 1월 20일, 투수 성낙수와 함께 전력보강 선수 지원 차원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현금 트레이드됬다. 그래서 전성기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에 기회를 주는 역할을 많이 했으며,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된 후에는 노련한 2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1987년 10월 3일부터 1988년 7월 20일까지 67경기 연속 3루수 무실책 기록을, 1988년 3루수 시즌 최소 실책(3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5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코치를 시작으로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후에도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중간에 IMF 무렵 코치 감축으로 팀을 잠시 떠난 적이 있긴 하다.) 2011년, 원래는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시즌 중 1군 수비코치로 부임하면서 박흥식에게 2군 감독을 넘겼다. 그리고 시즌 후 이광근 수석코치의 SK 이적과, 2군의 이명수, 정명원 코치가 두산으로 이적함에 따라 1군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17일 뜬금없이 김시진 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못지 않게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보인다.

2013년 또다른 짠물 수비의 전설이자 국내 프로야구계 멘도사 라인의 종결자였던 염경엽 감독 체제로 들어서면서 2군 감독으로 복귀했으며[4], 화성 히어로즈로 2군 팀이 새로 발족된 후에도 2군 감독을 맡고 있다. 2군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던 박정준, 지석훈, 차화준 등을 트레이드하여 앞길을 틔워주는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트레이드 관련 뒷이야기

그 외에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2군을 잘 이끌어 8월 11일 현재 남부리그 1위에 퓨처스리그 승률 1위로 끌어올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상무에 역전을 당하여 55승 6무 39패 (승률:0.585)를 거둬 남부 리그 2위로 마감하였다.[5] 사실 2군이 1군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록 남부리그 2위로 마감했지만 넥센 히어로즈포스트시즌의 진출에도 꽤 비중있는 공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평범하고 성실한 야구인이겠지만...

2. 유이 아버지


유이와 찍은 사진. 아버지 표정이 불편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

2009년 들어와서는 야구 외적인 것 때문에 유명세를 탔는데, 바로 유이의 아버지로 밝혀진 것! 둘째딸인 유이는 김성갑이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에 대전에서 태어났다. 현역 시절에는 최단신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다녔지만[6] 유이는 173cm의 장신을 자랑한다. 어쩌면 나중에 김선빈 아들이나 딸도 장신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이랑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고 한다... 평생 야구 선수, 코치로 있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유이도 TV에서 '아버지랑 둘만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 라고 말할 정도니 뭐...

사실 유이데뷔하기 전 2008년에 아버지를 응원하러 목동야구장에 왔다가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아나운서가 이를 알아보고 "김성갑 코치의 딸입니다."라고 소개하여, '목동녀'라고 불리게 됐다. 이 날 딸 덕분에 처음으로 검색어 1위를 했다고 한다.

팀을 가리지 않고 야구팬인 사람들에 한해서 간혹 김성갑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팬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게임에서 김성갑 카드가 나올 경우(...)

ex) A: 어? 94 장인어른 나왔네
B: 누가 니 장인어른임 내 장인어른임
A,B: 1%[email protected]$!$

하는 위의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편이다. 물론 장난이 반이겠지만 유이의 아버지 이미지가 현재의 인기에 한몫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성갑 본인은 유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한다고 한다. 가장 근래의 예로 2012년 김시진 감독의 해임 이후 시즌 중간에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을 때 팀이 졌을 때 감독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며, 유이 아빠라는 호칭보다는 김성갑의 이름의 야구인으로써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외부에서 유이 아빠로 불리면서 혹시나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염려되는 마음에서였다고.

여담으로, 염경엽 1군 감독의 딸 염아란 양 또한 현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넥센 1, 2군 감독의 딸들이 모두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5 삼성 라이온즈 11 6 .000 0 0 0 0 0 0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6빙그레 이글스 80 196 .219 43 5 1 1 21 20 5
1987 108 382 .230 88 19 1 0 12 52 9
1988 101 257 .253 65 11 2 1 31 28 5
1989 103 284 .243 69 18 2 4 45 47 12
1990 89 210 .219 46 5 1 3 18 29 1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1태평양 돌핀스 87 217 .194 42 5 0 1 14 24 14
1992 102 240 .288 69 5 1 0 24 27 7
1993 50 138 .232 32 6 1 1 15 14 3
1994 97 219 .237 52 6 1 3 15 23 2
1995 114 267 .228 61 10 1 0 23 32 4
통산 942 2416 .235 567 90 11 14 218 296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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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름이 性甲 즉 성품이 갑이라는 듯 오오 그래서 딸도 잘 태어났겠지
  • [2] 게다가 몸무게도 그리 많지 않은 66kg였다. 지금 1군 감독인 염경엽이 64kg인걸 감안하면....
  • [3] 비슷한 케이스로 태평양 돌핀스에서 같이 활약했던 염경엽이 있다. 그런데 지금 염경엽넥센 히어로즈의 1군 감독이고 김성갑 본인은 2군 감독이다. 흠좀무 그런데 염감독의 타율이 더 나쁜데??
  • [4] 공석이 된 수석코치는 기아에서 이강철 투수코치을 영입해서 채웠다. 대신 양승관 2군 감독이 NC로 떠났다.
  • [5] 다만 이것만 가지고 지도력을 비판해선 안 된다. 일반 구단의 경우 9월이면 확대 엔트리가 실시되기 때문에 2군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1군으로 콜업되므로, 각 팀의 2군은 전력이 갑자기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에 비해 국방부 퀘스트 중인 상무의 병장 선수들은 9월 말에 전역이어서 시즌 말까지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
  • [6] 이후 김선빈이 이 기록을 경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