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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

last modified: 2015-03-09 22:57:1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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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가 원수[1]
1대 2대 3대 4대 5대
김두봉 최용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1889년 3월 17일 - 1961년?)


그들의 단란했던 한때.

최좌측에 서있는 인물이 바로 김두봉. 오른쪽부터 혹부리우스 김일성, 박헌영, 김원봉, 허헌, 달현. 한국 전쟁 초기인 1951년에 사망한 허헌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아 해방 후 전쟁 전인 1946년에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출처 : #)

Contents

1. 개요
2. 일제강점기
3. 해방 후
4. 6.25 전쟁과 그 후
5. 총평
6. 여담

1. 개요

북한의 수령이자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 한글학자이다. 일제시대에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과 한글연구를 병행했다. 또한 주시경 선생의 수제자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의 저서로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한글사전인 조선말본이 있다.

2. 일제강점기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한문과 한학을 배웠으며 일제가 세운 소학교 입학을 거절하고 그 대신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이 학교의 국어교사로 주시경이 있었다. 김두봉은 이러한 주시경의 영향을 받아 한글학자가 되었다.

1910년 이완용이 한일합방을 체결하자 안교재, 남형우, 신배부, 이경희 등 동료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결성해서 활동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계속 한글을 연구하며 조선말본 집필에 들어갔으며 1916년 조선말본을 완성했다. 1917년 보성고등보통학교의 국어교사로 부임했으나 일제의 끈질긴 추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압록강으로 도주한 뒤 영국에서 온 화물선에 숨어서 상하이로 밀항했다.

1935년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했고 김두봉 자신은 내무부장 겸 선전부장이 되어 활동했다.

이후 상하이가 아닌 1942년 중국 화베이 옌안에서 활동하면서 조선독립동맹에 가담, 그 해 7월 의장이 되었다.

3. 해방 후

하지만 해방이 되어 귀국하자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 갔고 거기서 조선신민당을 조직하여 그 위원장을 지냈으나, 1946년 8월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있던 김일성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하여 북조선 노동당이 창건되자, 그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1948년 북한정권 수립 당시 김일성, 박헌영 등의 추대를 받아 북한의 초대 수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수령이였고 북한의 실세는 김일성 혼자였다. 김일성이 이오시프 스탈린을 꼬드겨 한국전쟁을 일으키려 할 때 김두봉은 서울은 한반도의 심장이다. 서울만큼은 무조건 장악해야만 한다며 김일성의 남침을 찬성했다.

4. 6.25 전쟁과 그 후

6.25 전쟁이 끝나자 김일성은 김두봉을 바지 수령으로 앉히고 자기가 다 해먹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반발하여 김일성에게 계속적인 비판을 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김두봉의 꼬투리를 잡을 궁리를 하게 되었고 때마침 일부 연안파 간부들이 김일성이 혼자 다해먹으려는 행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8월 종파사건'이 발생하자 김일성은 이 사건을 김두봉과 엮어서 김두봉을 실각시켰다. 김두봉을 실각시킨 김일성은 후임 바지수령으로 최용건을 내세웠으며 최용건을 1972년까지 바지수령으로 써먹다가 1972년 김일성이 그냥 지가 수령이 되어 본격적인 독재자가 되었다.

1958년 조선노동당에서 출당되었고, 농민으로 강등되어 1961년 합작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총평

공산주의를 신봉하여 한국을 좀더 노동자가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는 싶어했으나, 하필이면 김일성과 손을 잡는 바람에 망했다. 심지어는 한국전쟁 때 북한의 남침을 찬동한 탓에, 독립운동으로 활약한 이력까지 상쇄했다. 북한을 위한 애국심은 있었으나 선택을 잘못해 독재자에게 놀아난 비운의 인물이다.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대로 남한에 남아있었다면... 그러나 남침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니 전쟁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6. 여담

같은 독립운동가였으며 월북한 인사인 약산 김원봉과 이름과 행보가 비슷해 헷갈리거나 친척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봉'자로 인해 돌림자로 아는데 김두봉의 '봉'자는 받들 봉(奉)이고 김원봉의 '봉'자는 봉 봉(鳳)이다. 다만 실제로 인척 관계이긴 했다. 정확히 김두봉은 김원봉의 본처 박차정의 외당숙이었다. 박차정은 김두봉의 5촌 조카인 셈. 생전에 김원봉에게 "내 조카 차정이는 갔지만 약산은 언제까지나 내 조카사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3봉이 있다. 김원봉 김두봉 양세봉

월북 인사이며 북한 정권 초창기에 숙청당했기 때문에 다른 북한 정치인들에 비해 존재감이 매우 부족한 편. 그나마 그를 자세히 다룬 매체는 MBC 공화국 시리즈의 시작인 제1공화국(드라마)이다. 해당 배역은 중견 배우 박영지가 맡았다. 당시 김일성 역의 국정환과 함께 호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당시에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북한 인물에 대한 정보나 자료가 부족했고 있어도 다소 왜곡,폄하된 것이 대부분이였기에 박영지는 나름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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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권자의 경우 김씨 일가지만, 사회주의 헌법상 원수는 김두봉과 최용건이 먼저이다. 물론 이들이 실권을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