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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스테고멘

last modified: 2018-01-18 01:34:36 Contributors

切捨御免, きりすてごめん

Contents

1. 개요
2. 죠이우치(上意討ち)
3.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일본에도시대사무라이계급에게 허용되었던 특권[1]의 하나. '부레이우치'(無礼討ち)라고도 한다. '베서 미안해가 절대 아니다.[2]

현대적으로는 사무라이가 무자비하게 무례한 농민을 베어넘기는 모습이 연상되겠지만[3], 사실 키리스테고멘은 결투형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하층민에게 지기라도 하면 할복, 할복이 아니어도 사회적으로 매장되며, 결투를 하지 않아도 처벌의 구실이 되었다. 지거나 오히려 사무라이가 죽어도 상대 평민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사무라이와 그 가족은 사회적으로 매장. 상대가 결투를 회피하면 그냥 공격해도 되지만, 응하는데 무기가 없다면 자신이 와키자시를 빌려줘야 했다. 게다가 사실상 법률상의 정당방위와 비슷한 개념이라서, 농민이 자신을 모욕했다는 행위의 목격 증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후대에는 무사의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개념이지만 당시엔 거의 행사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무라이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도의 크기도 법적으로 제한하였고, 개인적인 사유로 결투를 하는 것을 엄중처벌하게 되면서 몇몇 겁없는 사람들이 사무라이를 모욕한 다음 칼을 주기 전에 도망치는 치킨게임을 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사무라이가 활과 화살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덤으로 무사는 모욕에 대해 반드시 갚아야 하는 명예를 중시하는 계층이라서 무시당하고 그냥 넘겨도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진퇴양난(...) 그래서 오히려 이런 제도가 상류층인 무사가 함부로 평민 근처에 못 가고 몸을 사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평민들도 와키자시를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고[4], 정당방위처럼 취급되는지라 사무라이가 평민을 죽였다면 정당한 부레이우치였다는 것을 증명해줄 증인이 필요해서 사건을 기록한 서류를 제출하고, 칼은 증거품으로 일시적으로 압류되었다. 정당한 부레이우치라는게 입증되지 않으면 그냥 살인사건이 돼서 처벌받았고, 할복, 심하면 하층민의 처형방법인 노코기리비키[5]나 참수형으로 처형되기도 하였다.

에도 성내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칼을 뽑는 것만으로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였고[6], 이 때문에 아예 칼날을 대나무 조각으로 모양만 낸 것으로 대체한 물건인 타케미츠를 차는 경우도 많았다. 그냥 안 차고 다니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당시 사무라이의 복식문화상 남자가 칼 두자루도 안차고 다니면 조선으로 치면 선비가 갓도 안 쓰고 길에 나선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칼은 반드시 차고 다녔다.

이런 이유로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인 죠카마치는 신분별 구획이 철저하게 나눠져 있다. 전적으로 상대의 악의에 의해 시비가 걸려도 본인이 억울하게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제도라는 점은 민간인들과 시비라도 붙으면 무조건 경을 치는 대한민국 국군의 장병들과도 비슷하다 카더라(...).

한편 많은 이들이 문명화된 에도시대 이전에는 사무라이들이 농민을 마구잡이로 죽였을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이 기리스테고멘이 실제적으로 대두된 것은 에도시대이다.

전국시대까지 토지생산력을 담당한 농민은 전쟁물자를 조달하던 상인보다 오히려 중요한 위치였다. 개다가 전쟁이 터지면 번의 농민들 중에서 일정 연령의 남자들은 창을 들고 종군하는 '야리'가 되는 즉시전력이었다. 이렇기에 각 번은 경쟁적으로 다른 번에서 농민들을 빼오거나 혹은 역으로 자기 번의 농업생산력의 유출을 막아왔다. 하지만 11세기 무로마치 막부이후 힘을 얻은 사무라이 세력은 그 아래의 생산계층보다는 분명히 신분적으로 격리된 거의 '사는 세계가 다른' 격을 유지했고, 그렇기에 '부레이우치'나 '키리시테고멘' 따위의 핑계거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벨 수 있었다.

그러런 것이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를 거쳐 에도막부에 이르러 시정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정치에 체계가 생겨나면서 무사의 권위는 확실히 높이되 그렇다고 일반 생활의 질서나 안정을 파괴하지 않도록 무사 또한 정형화된 제도와 관료제 내로 흡수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이러한 관념들이 생겨난 것으로, 이는 에도막부를 열고 유학을 받아 들여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 도쿠가와 가의 의도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즉, 부레이우치나 키리시테고멘으로 백성에 대한 사무라이 계급의 확실한 우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그러한 행위에 엄격한 제한을 둠으로서 전쟁이 없는 시대에 불안정요소인 사무라이들의 행동을 규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재는 게편"이라 시정에서 일어나는 일반 살상사건과는 달리 부레이우치나 키리시테고멘에 관한 규찰은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평판이나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사무라이의 삶에서 이러한 일은 일변 사무라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라고 이해받을 수는 있으나 인사나 여러 문제에서 흠결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기에 사무라이들도 이러한 상황이나 흐름을 극력 피했다.

때문에 ‘칼 든 사무라이니까 자기 맘대로’라는 막가는 상상이나 반대로 ‘설마 진짜로 죽이겠어?’하는 안일한 발상은 금물이다. 잊으면 안되는 것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무라이는 칼로 밥을 먹던 인종들이기 때문이다.

2. 죠이우치(上意討ち)

무례하게 군 평민을 베어버리는 것과 함께 무사는 자신의 하급자[7]에 의해 굴욕을 당했을 경우 하급자를 벌할 권리를 지녔다. 이는 죠이우치라 하여 상급자가 하급자의 잘못을 벌할 당연한 권리로 여겼기 때문에 기리스테고멘에서처럼 증거품을 제출하거나 증인을 불러오는 번거로운 절차는 필요없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인재관리능력에 의심을 받아 출세에 지장을 받거나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와 반대로 자신과 동등한 신분이나 상급자에 대해 칼을 빼드는 일은 체제에 대한 반역과 동급으로 간주되는 용납받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에 해당 무사는 반드시 사형을 언도받았다. 실제로 에도시대에는 분을 못이겨 상급자를 베었다가 제정신이 들어서 할복을 했지만, 막부에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개역[8]을 언도한 사례도 있다.[9]

3. 매체에서의 등장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 시류가 기리스테고멘을 언급한다. 정발판에서는 '참륙(斬戮) 용인'이라는 말로 의역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막이 다르게 해석되어 나온 덕택에 잘 모르지만 기동전사 건담 00그라함 에이커더블오 건담과의 결투 당시 마지막 일격을 날린답시고 이 대사를 날렸다.과연 와패니즈
환세취호전에서 스마슈가 무기 '나찰의 흉인'을 장비했을 때 생기는 개인공격기 절사어면은 切捨御免을 그대로 읽은 것이다. 이 기술에서 스마슈는 적에게 찌르기 공격을 가한 후 돌아서서는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들어올린다. 그런데 이때도 데미지가 들어간다. MISS 뜨면 엄청나게 무안하겠다
메탈코어 밴드 트리비움에 Shogun앨범에 있는 Kirisute Gomen이라는 곡이 이에 대해 다루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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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에도시대의 무사계급은 기본적으로 대도묘자(帶刀苗子)의 권리를 가졌다. 대도(帶刀)는 칼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고, 묘자(苗子)는 성씨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 [2] 다만 일본어로 '미안합니다'란 뜻인 ごめんなさい 자체가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서술은 국내 교육용 서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 [3] 와패니즈 영화 쇼군에서 자신에게 절을 안하고 멀뚱거리는 농민을 단칼에 쳐죽이는 장면이 대표적. 당연한 얘기지만 와패니즈는 와패니즈다.
  • [4] 사무라이 계층의 특권인 대도(帯刀, たいとう)는 정확히 말하면 드러내놓고 칼을 차고다닐 수 있는 권리로, 요새로 치면 총기의 Open carry에 가깝다.
  • [5] 땅에 목만 남겨두고 파묻은 뒤 땅을 따라 칼질해서 참수하는 방법. 형 집행 직전에는 땅 위에 사람의 머리가 튀어나온 모양이지만 형 집행 후에는 땅이 완전한 평지가 된다.
  • [6] 이 법에 걸려서 죽은 대표적 사례가 추신구라의 주가 아사노 가문이다. 에도 성내에서 칼을 뽑은 데다 상관에게 상해까지 입힌터라 본인도 사형을 언도받고 가문도 영지를 몰수하고 평민으로 격하시키는 개역(改易, かいえき) 처분을 받아 멸망해버렸다.
  • [7] 자신이 부리는 하급 무사, 몸종 등
  • [8] 改易, かいえき. 계급을 낮추고 전재산을 몰수하는 형벌.
  • [9] 위의 주석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대체로 에도시대에는 무사가 할복으로 사죄하면 어지간히 큰 죄가 아닌 이상은 해당 무사 선에서 끝내고 그 이상의 죄를 묻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 할복을 하였음에도 개역을 언도하였다는 것은 이 상황을 에도막부 자체에 대한 반역에 필적하는 큰 죄로 보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