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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말살형

last modified: 2016-03-24 22:43:12 Contributors

라틴어Damnatio Memoriae[2]

Contents

1. 고대 로마 시대의 형벌
2. 창작물에서의 기록말살형
3. 근, 현대시대의 예
4. 창작물에서


형벌 중의 하나이다. 형벌을 받은 사람에 관한 모든 을 철저히 지워버림으로써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존재의 소멸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존재의 소멸이란 그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나 기억까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기록을 지우는 것이지 동시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갖고 있는 기억을 지우지는 못하므로 그 사람의 존재를 소멸시켰다고 볼 수 없다. 대신 기록말살형은 그 사람의 이름마저 입에 담지 못하게 하는 구령을 병행하기에, 존재의 부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 고대 로마 시대의 형벌

대역죄인이나 폭정을 일삼은 황제, 이를테면 폭군으로 규정된 네로나 도미티아누스, 콤모두스 등등의 경우에게 내려지던 형벌의 하나. 공문서나 각종 기록에 남겨진 대상자의 이름을 지우고 건물에 새겨진 대상자의 초상 등을 긁어내 없애버리며, 이를 통해 대상자를 아예 이름만 있고 업적은 하나도 없는 황제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명예를 소중히 하는 로마인에게는 조선의 부관참시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능가하는 최악의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자문화권의 사고방식과는 안 맞는 면이 있는데, 한자문화권에서는 취만년이라고 해서 반역이나 폭정 등의 악행은 기록으로 남겨져서 역사의 이름으로 두고두고 씹히는 것을 더 불명예로 봤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문화권에서도 공신녹권 문서나 해당 인물이 간행에 참여한 서적의 목판 같은 경우는 먹칠로 지워버리거나 목판을 파버리는 등 기록말살형에 준하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또한 기록말살형은 후대의 역사학자들에게도 최악의 적이다. 아무래도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라는 말이 있는 만큼, 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기록마다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한 역사적 기록이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그 주제를 다룬 다른 기록들과 비교를 해 봐야 한다. (=즉 차검증을 해야 한다) 즉 역사적 기록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말.

더 큰 문제는 고대로 갈수록 당시의 기록 자체가 현재까지 오면서 자연재해나 전쟁등으로 유실되는 경우가 빈번한다.[3] 거기에 만약 그 시절 당시에 작정하고 기록을 없애버리게 된다면? 그 시절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료를 얻는 것은 사실상 답이 없게 된다. 결국 남은 것은 유물이나 (사문서로나 남아 있을)[4] 당대의 평판, 혹은 추정 정도이다.

일면 조선시대에 이루어졌던 팽형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다만 조선의 팽형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니, 상대적이긴 하지만 차라리 이것이 낫다고 볼 수도.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에서 마치 '존재 자체를 없애는 형벌'로 묘사한 바 있는데 이것은 과장이다. 존재는 두되 그가 한 '업적'을 기록에서 전부 뺀다는 것이다. 네로나 도미티아누스도 이 형벌을 받았지만 후대 역사가들은 두고 두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었다. 심지어는 오현제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도 이 형벌을 받을 뻔 했다.

2. 창작물에서의 기록말살형

역사의 떡밥으로 숨겨진 역사라는 측면에서 자주 애용되는 클리세이기도 하다. 요세푸스는 모세가 이집트 왕가에서 컸고 이디오피아를 정복하는 등 훌륭한 왕자였으나 십장을 죽이고 도망간 후에 기록말살형을 당해서 호적이 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5]

찰턴 헤스턴이 나온 공포물 피라밋의 공포[6]에서도 이런 설정이 나오는데 아버지를 사고사로 죽인 여성파라오가 이 형벌을 당해서 역사에서 파였고 그런 이유로 그녀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 결말은 그 여왕은 찰턴 헤스턴의 사산된 딸에게 빙의되어 부활하여 아버지를 사고사시키게 된다.

3. 근, 현대시대의 예

고대 로마 이후로 기록말살형이 공식적인 형벌로 지정된 사례는 없으나, 근대는 물론 현대에도 시행한 사례가 간간히 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의 이름이 새겨진 건축물이나 조각상에 콘크리트를 부어 기록을 없애기도 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히틀러나 여타 나치 고관들의 이름이 붙은 건축물과 조형물을 부숴 없애거나 긁어내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 비슷한 사례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의 경우, 광복 후에는 정초석에 새겨진 일본 연호와 글씨를 쓴 자의 이름이 대부분 지워졌다. 대표적으로 구 한국은행 본관 건물의 정초석에는 원래 "定礎 明治四十二年七月十一日 公爵伊藤博文"이라 새겨져 있었는데, 광복 후 "明治四十二年"을 "隆熙三年"으로 살짝 바꾸고 이토의 이름을 지웠다.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건물 정초석의 경우에도 定礎라는 글자만 남아있으나, 잘 보면 사이토 마코토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 공산권 국가들에서 이런 기록말살형을 자주 보여주는데, 특히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대숙청 당시 기록말살이 유명하다. 어떤 사람이 숙청당하면 그 사람이 전에 찍혔던 사진에서 모조리 그 사람의 모습을 지워 없애버린 것.인민의 에어브러시 가장 대표적인 예로 트로츠키예조프가 있다. 스탈린 사후에도 빈도 수는 좀 적어졌지만 여전히 잔존했는데, 흐루쇼프 역시 권좌에서 물러난 후 모든 업적이 삭제되는 불운을 겪는다.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류사오치덩샤오핑이 공식 사진에서 지워지는 일을 당했다.

  • 북한에서는 지금도 애용되는 형벌이다. 실제로 황장엽처럼 월남하거나 숙청당해서 사라진 인물들의 업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사진이나 영상 기록은 모조리 삭제되거나 편집된다. 덕분에 남한과 다른 나라들은 북한의 권력 투쟁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영상이나 사진을 많이 참고하는데, 김돼지 3대가 나온 사진과 영상을 잘 살펴보면 같이 찍힌 인간들 중 누가 편집당했는 지를 보고 숙청/실각 여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휴전 후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를 확립하는 과도기였던 1950~70년대에 빈번히 했고, 1960년대 후반 1.21사태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당시 군부 최고위 인사들이었던 창봉봉학도 숙청 직후 모든 보도 사진에서 먹칠이 되어 지우고 방송에서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 2012년 7월과 2013년 12월에 각각 숙청당한 리영호장성택도 숙청 전에 촬영된 관련 사진과 영상들이 모조리 편집당했다.

    숙청되는 사람들의 저작은 언급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죽하면 북한 작가나 예술인의 정보나 문학예술 작품들은 북한의 기록보다 남한이 입수한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 정확할 정도이다. 어떤 작가가 숙청되면 그가 낸 모든 작품과 그가 언급된 모든 기록이 수정된다고 하니 후대 작가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된다. 물론 소설가 설야나 무용가 최승희처럼 아주 간혹 최고 지도자가 숙청한 지 한참 뒤에 '그래도 그 사람 작품은 괜찮았는데...'라는 식으로 기분이 내키면 복권시켜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예외다.

    인물 뿐만 아니라 동맹국이였던 소련이나 중국의 동시대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8.15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 때 북한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나라들의 업적은 모두 김일성의 업적으로 고쳐졌다. 애쓴다 거기에 김일성 일가에 대한 미화를 위해 추상성과 우화성을 첨가해서 사실상 역사라기보다는 소설(혹은 신화)이 되어 버렸다.

  • 애플스티브 잡스가 자주 벌였다.

  • 아이작 뉴턴도 기록말살을 자주했는데 자기와 적대하는 과학자가 생기면 즉각 린키피아를 뒤적거리면서(...) 그 사람의 이름이나 그 사람 서적을 인용한 부분을 죄다 지운 후 새 판본을 출판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말살했다. 왕립학회 회장이 된 후에는 적대하는 과학자의 사소한 행위를 트집잡아 학회에서 제명시켜서 기록을 말살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미적분 관련으로 논쟁을 벌인 라이프니츠. 발견한 순서 자체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논쟁 과정에서 뉴턴이 자기 직권을 부당하게 남용했다.

  • 스포츠계에서는 보통 시즌기록 삭제와 타이틀 공석처리를 한다. 특히 미국 대학스포츠에서 우승한 학교가 입시부정이나 부정선수, 약물등의 사건을 냈을때 일어난다. 2013년 기준 가장 최근에 일어난 공석처리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Penn State)에서 일어난 코치의 미성년자 성추행사건으로 인해 그가 이 팀과 관련되었던 1998–2011년까지의 기록이 전부 삭제되고, 여기에 포함된 2006년 오렌지보울 승리까지 말소되었다. 이 경우 상대팀이 승리하는 것이 아닌 그냥 경기가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다.

    개별 선수에게 내리는 영구제명도 어느정도 기록말살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승부조작 같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선수에게 내리며, 기록을 모조리 부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마재윤, 최성국, 故 크리스 벤와 역시 이런 비슷한 형태로 기록말살이 된 상태.

  • 일본의 역사왜곡은 기록말살에도 해당되는 데 십중팔구 일본 우익계열 정부,단체들이 행하고 있으며 2010년대 이후 아베 신조 총리에 들어서 일본 내에서 한 것으로 부족했는 지 위안부 문제와 같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기록을 없애라는 식으로 다른 나라 역사학자에게 압력넣거나 정치계에 로비하는 등 세계구급으로 '역사수정주의'라는 이름의 기록말살을 시도하고 있다.

  • 코나미에서 과거 부사장이었던 코지마 히데오가 참여한 게임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고 있다.

4. 창작물에서

  • 현대의 창작물에서 대표적인 예는 소설 1984로 주인공의 직업이 기록말살하는 것이다. 숙청된 인물의 존재를 삭제, 말살하고 영웅으로 추앙할 인물은 그 공적을 과장하거나 아에 없던 인물도 새로 만들어 낸다[7]. 작품을 구상, 집필한 시대 배경을 고려하자면 스탈린의 대숙청을 패러디했다.

    거기에 사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책[8]이라든가 빅 브라더의 언행[9],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기록을 말살시키고 몇년간 싸우던 적을 유라시아에서 동아시아로 바꾸어 버린다. 전날까지 싸웠던 유라시아는 우리와 수십년간 동맹을 맺었고 그동안의 기록들은 골드슈타인의 조작으로 만들어 버린다. 흠좀무. 묘하게도 이런 짓을 하는 정부 부서의 이름이 진리성이라는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10] 그런데 이게 창작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 후궁견환전오라나랍 의수옹정제가 죽은 이후에 살아있을때만 황후로서만 예를 갖춰주고, 황태후로 올려주지 않았으며 그녀의 그간 행적들은 모두 기록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작가의 말로는 역사의 찌꺼기라고. 실제역사에서도 옹정제의 황후는 왕부시절 적복진이자 4년먼저 죽은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와 후궁이였지만 사후 아들 건륭제에 의해 추존된 효성헌황후 뉴호록씨 이렇게 두명밖에 없었으며 오라나랍 의수는 효경헌황후의 일부 사례만 따와 만들어진 가상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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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 엄밀히 말하면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존재의 소멸과는 다르다.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
  • [2] 담나티오 메모리아이(교회 라틴어로는 담나시오 메모리애). 직역하면 '기록의 죽음'. damnatio(동사 으뜸꼴 damnare)는 우리가 아는 그 Damn의 어원 맞다.
  • [3] 국사 교과서에 맨날 삼국유사랑 삼국사기 이야기만 나오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역사서가 다 소실되었으니까.
  • [4] 다른 문명이면 모를까, 로마 공문서와 기록체계의 퀄리티는 현대 기준에서도 철저했으니...
  • [5] 영화 십계에서는 바로 이 학설을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 첫 장면에서 이디오피아의 정복자로 모세가 나오고 있으며 파라오가 죽기전에 스스로 그 칙령을 어기겠다고 하고 모세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 [6] 다만 이 영화는 1971년 영국 해머 영화사에서 만든 미이라의 저주 Blood From The Mummy's Tomb를 1980년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 파라오에 대한 기록이 말살되었다는 설정이다.
  • [7] 당장 주인공의 업무 묘사가 빅브라더의 잘못된 주장기록을 없에고, 거기에 실존하지 않던 인물에 관한 칼럼을 넣는 것이다
  • [8] 신발 생산량을 왜곡해서 미달인것을 초과달성으로 속인다던가
  • [9] 유라시아의 공격방향을 인도로 잘못 안 것을 아프리카로 왜곡하여 옳게 만듬
  • [10] 애초에 이 소설의 정부 4개 기관 이름은 전부 다 이런 식이라, 반동분자를 고문하고 세뇌하는 애정성, 툭하면 배급량만 깎는 풍부성, 전쟁을 총괄하는 평화성, 이렇게 이름과 활동이 완전히 반대다. 이는 작가는 의도한 바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