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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성

last modified: 2014-10-03 09:33:56 Contributors

國姓

Contents

1. 개요
2. 한국 역대 왕조의 국성
3. 중국 역대 왕조의 국성
4. 베트남 역대 왕조의 국성

1. 개요

예전 동아시아의 왕조시절에 왕가의 성(姓)을 지칭하는 것. 다른 일반적인 성씨와는 달리 일반 백성이 함부로 이 성을 일컫지 못하던 시대도 있고, 기본적으로 욕설에 섞어서 사용하면 불경죄에 걸려서 해당인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보호받았다.

다만, 국성을 가졌다고 해서 다 왕족이나 황족 취급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왕족이나 황족은 따로 세밀한 족보가 있어서 족보에 기록된 사람에 한해서 왕족이나 황족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일반인이 국성을 멋대로 자신의 성씨로 사용하면 불경죄등으로 처벌받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시대에 따라서는 왕이 큰 공을 세웠거나 자신이 신임하는 신하에게 이 성을 내림으로써 그 권위를 높이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른 신하와는 다르게 왕이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천명하는 수단중에서 상급의 수단인 셈이다. 물론 이건 신하에게도 영광이므로 충성심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해당 성씨를 받은 사람을 국성야(國姓也)등으로 불러서 국성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삼간다.

재미있는 것은 반역의 마음을 품은 사람도 국성을 정식으로 하사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충성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국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후 찬탈을 하더라도 역성혁명이 아니라 왕조 내부에서의 왕위 교체정도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일단 행위는 동일하지만 왕위 교체 수준이라면 근왕병같은 저항세력도 덜 생기고, 차후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기도 쉬워진다.

같은 맥락에서 국경 외부의 야만족이 멋대로 국성을 차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자신의 부족 내부에서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 첫째 목적이고, 일이 잘 돼서 해당 국가의 영토를 잠식하면 자신이 침략자가 아니라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자 수준으로 사실을 왜곡하기 위함이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의 경우에는 국성이 없다. 명목상 지배자인 덴노는 성씨가 없다고 한다. 일본 극우 측에서는 이게 손강림의 증거라나 뭐라나..... 단, 실질적 지배자였던 막부의 경우 과거 조정의 권위를 바탕으로 지배했던 옛 가문의 성씨를 자칭이던 물려받던 어떤 수단을 통해서도 얻어내는 경우가 있다.

2. 한국 역대 왕조의 국성

3. 중국 역대 왕조의 국성

고대
남조

  • 송: 유(劉)
  • 제: 소(蕭)
  • 양: 소(蕭)
  • 진: 진(陳)

북조

  • 북위: 탁발(拓跋) → 원(元)
  • 북제: 고(高)
  • 북주: 우문(宇文)
  • 수: 양(楊)
  • 당: 이(李)

중세 이후

  • 송 : 조(趙)
  • 원 : 보르지긴(孛兒只斤)
  • 명 : 주(朱)
  • 청 :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4. 베트남 역대 왕조의 국성


고대

  • 어우 락(BC 257 ~ BC 207) : 툭(Thục, 蜀)
  • 남비엣(BC 207 ~ BC 111) : 찌에우(Triệu, 趙)

  • 리(Lý, 李) : 544 ~ 602
  • 응오(Ngô, 吳) : AD 939 ~ 967
  • 다이꼬비엣(大瞿越/대구월, 968 ~ 1010) : 딘(Đinh, 丁)(968~980), 레(Lê, 黎)(980~1010)

다이비엣(大越/대월, 1054~1804)

  • 리(Lý, 李) : 1009 ~ 1225
  • 쩐(Trần, 陳) : 1225 ~ 1400
  • 호(Hồ, 胡) : 1400 ~ 1407
  • 레(Lê, 黎) : 1428 ~ 1527, 1532 ~ 1789
  • 막(Mạc, 莫) : 1527 ~ 1677
  • 떠이선(Tây Sơn, 西山) : 1778 ~ 1802

베트남 제국

  • 응우옌(Nguyễn, 阮) : 1802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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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후에 부여 서씨가 된다
  • [2] 신라 멸망 이후 분파되어서, 현재는 밀양 박씨가 대종을 이룬다.
  • [3] 현재 밀양 대씨가 대종을 이룬다.
  • [4] 단 이는 후의 하나라의 후예인 기(杞)와 관계된 것으로, 사성(姒姓)이 당대에 쓰였을 가능성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