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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5-04-15 00:25:3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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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라
광주제일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인상고등학교 전주고등학교 진흥고등학교
화순고등학교 효천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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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23년
소속 리그 전라권
감독 김선섭
연고구단 KIA 타이거즈
우승 기록[1] 15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5회(1975, 80, 83, 2002, 07) - 5회(1974, 76, 97, 2013, 14)
청룡기4회(1949, 88, 95, 2002) 1회(1991) 6회(1977, 78, 81, 82, 93, 2004)
황금사자기5회(1983, 84, 2005, 08, 10) 4회(1980, 91, 97, 2011) 3회(1974, 86, 93)
봉황대기1회(1983) 3회(2004, 05, 09) 1회(1982)
협회장기 - - -

194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중등학교 광주서중등학교 대구상업중등학교
1975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8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8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1983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1983년, 1984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세광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전주고등학교
198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전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동대문상업고등학교
199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휘문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200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진흥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200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정보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2005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정보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장충고등학교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장충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덕수고등학교
200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장충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201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Contents

1. 연혁
1.1. 태동
1.2. 침묵의 종결
1.3. 1차 전성기(1983년)
1.4. 공백기
1.5. 제 2의 전성기(2002~2010)
2. 야구대제전
3. 출신선수



광주 야구의 자존심이자 호남 야구의 대들보. 그리고 한국 메이저리거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 야구부.[2]

연고구단은 KIA 타이거즈이지만, 의외로 넥센 히어로즈 소속 선수들도 꽤 있다. 이 때문에 2013년도 이후로 두 팀이 붙으면 말 그대로 동문회 수준이다.[3]

1. 연혁

1.1. 태동

광주일고가 광주서중이던 시절부터 야구부가 있었고, 이 야구부는 1949년 대형 사고를 쳤다. 당시 전 대회를 평정하던 경남중학교의 장태영과 맞서서 극적인 승리를 따낸 것. 그 선봉장은 철완이라 불린 김양중이었고, 1949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9회 2아웃까지 0:1로 뒤지다가 상대 실수로 만든 2사 2루의 찬스에서 김양중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다시 연장 11회말 볼넷으로 얻은 무사 1루의 기회에서 보내기 번트가 전진 수비를 한 내야수의 키를 넘어 외야로 넘어가고, 당황한 경남중의 좌익수가 공을 잡고 3루로 던진 것이 3루 베이스를 맞고 튀면서 끝내기 점수를 내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이 때의 결승전을 보통 고교야구 최초의 명승부로 꼽는 편이다.

그리고 이 우승 이후, 호남야구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침묵하게 된다. 대규모 인구 이동 및 야구 저변이 얇았던 탓이 원인으로 보이는 이 침묵의 시간 동안 광주일고의 이름도 없었다.

1.2. 침묵의 종결

1975년 대통령배 결승은 광주일고도 오랜 침묵을 깬 결승이었다. 군산상고로부터 시작이 된 호남야구 부활의 바람은 광주일고에게도 그대로 옮겨와 대회 사상 최초로 결승전 3연타석 홈런을 날린 김윤환의 활약과 투수 강만식의 호투 속에 당시 막강했던 경북고를 제압하고 첫 우승에 성공하면서 광주일고의 이름을 다시 알렸다. 그리고 꾸준히 1970년대 4강권 팀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선동열

그리고 1980년 괴물투수 선동열의 등장으로 고교야구의 최절정기에 광주일고는 다시금 우승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통령배에서 선동열을 앞세워 동향의 광주상고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 뭔가 꼬이게 되었고, 결국 1980년 봉황대기에서는 중앙고에게 일격을 당하고 2회전 탈락하더니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선동렬이 박노준에게 홈런을 맞고 물러나면서 선린상고에게 3:5 패배를 당하며 단 한 차례의 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1.3. 1차 전성기(1983년)

1983년 광주일고는 고교야구를 평정했다. 에이스 문희수와 투타만능의 박준태라는 대들보 두 명에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 김성규와 유격수 김선진이 이끄는 탄탄한 내야수비까지. 정말 전력이 막강했던 광주일고는 1983년 시즌 개막과 함께 세광고를 한 점차로 제압하고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했다. 청룡기에서는 북일고에 일격을 맞으며 탈락했지만, 봉황대기에서 포철공고를 두 점차로 따돌리고 우승에 성공하더니 마침내 황금사자기에서 대구고마저 누르고 우승에 성공하며 한 시즌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강철

이 때의 멤버들이 졸업한 후에도 언더핸드 에이스 이강철이 등장하며 1984년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면서 그들의 전성시대가 화려했음을 다시금 보여줬다.[4]

1.4. 공백기

이종범 김병현

공백기라고 하지만 우승이 없었다는 점은 아니고, 1988년 청룡기에서 이종범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고, 1995년 황금사자기에서는 김병현을 내세워 역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공백기로 볼 수 있는 것이 이 시기에 배출한 선수들의 화려한 면면을 볼 때, 우승 횟수가 다소 아쉬웠기 때문이다.[5]

특히 고교야구의 어벤저스, 전설의 92학번이 고3이었던 1991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각각 경남상고신일고에게 무릎을 꿇으며 정상을 놓친 것은 가장 아까운 순간이었다. 당시 박재홍김종국이 이끌던 광주일고의 전력을 충분히 강했지만 돌풍을 일으킨 경남상고와 팀 역사에 손꼽히는 전력을 구축한 신일고에게는 한 끗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

1995년 청룡기우승후. 유니폼을 입은 윗줄에서 네번째가 최희섭, 앞줄에서 세번째가 이현곤이다.

1997년도 마찬가지였는데 최희섭-송원국-이현곤-정성훈이라는 최강의 내야 라인업을 구축했지만, 투수력이 미치지 못해 신일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 1회에 그친 것도 아쉬운 대목.

이 시기에 나온 선수들 중 이름있는 선수들만 조금만 추려봐도 이종범, 박재홍, 김종국, 이호준, 최희섭, 김병현, 서재응, 게다가 이제는 감독으로 대성하신 염경엽, 김기태 등등. 그걸 여기다 쓰기에는 위키의 여백이 너무 좁다.

1.5. 제 2의 전성기(2002~2010)

김대우

광주일고는 2002년 다시 고교무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시 고교 무대 쌍벽을 이루던 투수 김대우고우석이 모두 한 팀이었던 점만으로도 그 강력함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비록 천안북일고와 고교 무대를 나누는 통에 우승은 두 번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광주일고의 전성기는 충분히 돌아왔다.

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

그리고 그 전성기는 에이스 나승현과 주장이자 4번타자인 강정호를 축으로 2005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면서 꾸준히 이어졌다. 당시 뛴 선수들이 나승현, 강정호, 서건창, 허경민, 김성현, 김강 같은 선수들이 뛰었던 시절로 봉황대기 결승에서 유신고에게 일격을 당해 우승을 놓친 것이 아쉬울 정도의 멤버였다.

이들이 대부분 졸업한 후에는 정찬헌을 에이스로 삼아 2007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서울고등학교의 에이스 이형종의 눈물을 이끌어 내면서 서울고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에 성공했으며, 2008년에는 정성철과 장민제를 앞세운 투수진으로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 2009년 심동섭과 유창식으로 봉황대기 준우승의 아쉬움은 2010년 유창식이 전국 No.1의 좌완 유망주가 되면서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깨끗하게 아쉬움을 털어냈다.

광주일고는 유창식의 졸업 후에도 분명 호남지역 주말리그에서는 강세를 보이지만, 전국 무대에서는 그 위세가 약간 우승권 아래 정도로 내려간 상황이다.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6승 4패(부전승 1승 포함)
  • 최고기록 : 우승(2014 야구대제전)

1회 대회부터 모든 대회를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1회, 2회 대회때는 조별예선 탈락, 3회 대회때는 선동렬[6]방수원을 투입해 서울고를 상대로 2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첫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으나 윤학길이 버티던 부산상고에게 4:3 패배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후 2013년 야구대제전에서는 20강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2014년 야구대제전에서는 천안북일고, 상원고(6:5), 배명고(3:2), 군산상고(9:2)를 차례로 격파하고 결승까지 진출, 홈그라운드인 마산 용마고를 꺽고 첫 우승을 기록했다. 서건창, 이호준, 김대우등 프로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것이 주요했으며 김대우는 야구대제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우승상금 1000만원은 야구발전기금으로 사용할 예정.

3. 출신선수[7]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양중 투수 - 금융조합(?~1954)-육군(1955~?)-업은행(?~1961)
강만식 투수 1982년 원년멤버 고려대-해태(1982~1986)-빙그레(1987~1988)-삼성(1989)
차영화 내야수 1982년 원년멤버 롯데(실업)(1976~1981)-해태(1982~1989)
방수원 투수 1982년 원년멤버 영남대-해태(1982~1989)
이상윤 투수 1982년 원년멤버 한양대[8]-해태(1982~1989)
문희수 투수 1984년 1차지명 해태(1984~1995)
선동열 투수 1985년 1차 3라운드 고려대-해태(1985~1995)-주니치(1996~1999)
박철우 내야수 1987년 1차지명 동국대-해태(1987~1993)-쌍방울(1994~1998)
박준태 외야수 1989년 2차 1라운드 동국대-태평양(1989~1992)-LG(1992~1998)
이강철 투수 1989년 1차지명 해태(1989~1999)-삼성(2000~2001)-KIA(2001~2005)
김선진 내야수 1990년 2차 3라운드 연세대-LG(1990~2000)
이호성 외야수 1990년 1차지명 연세대-해태/KIA(1990~2001)
정회열 포수 1990년 1차지명 연세대-해태(1990~1997)-삼성(1998~1999)
김기태 내야수 1991년 특별우선지명 인하대-쌍방울(1991~1998)-삼성(1999~2001)-SK(2002~2005)
염경엽[9] 내야수 1991년 2차 1라운드 고려대-태평양(1991~1995)-현대(1996~2000)
박재홍 외야수 1992년 1차지명[10] 연세대-현대(1996~2002)-KIA(2003~2004)-SK(2005~2012)
성영재 투수 1993년 2차 1라운드 인하대-쌍방울(1993~1999)-SK(2000)-해태/KIA(2000~2002)-두산(2003)-LG(2003~2005)
이종범 내야수 1993년 1차지명 건국대-해태(1993~1997)-주니치(1998~2001)-KIA(2001~2012)
정영규 외야수 1993년 2차 2라운드[11] 동국대-삼성(1993~1994)-한화(1995~1997)-LG(1998~2000)-KIA(2001)
이호준 내야수 1994년 고졸우선지명 해태(1994~2000)-SK(2000~2012)-NC(2013~현재)
김종국 내야수 1996년 1차지명 고려대-해태/KIA(1996~2010)
김상훈 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고려대-해태/KIA(2000~2014)
서재응 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인하대-NYM(2002~2005)-LAD(2006)-TAM(2006~2007)-KIA(2008~현재)
김병현 투수 1997년 고졸우선지명/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ARI)
성균관대-ARI(1999~2003)-BOS(2003~2004)-COL(2005~2007)-FLO(2007)-ARI(2007)-FLO(2007)
-라쿠텐(2011)-넥센(2012~2014)-KIA(2014~현재)
송원국 내야수 1998년 2차 1라운드 OB/두산(1998~2004)
이현곤 내야수 1998년 고졸우선지명 KIA(2002~2012)-NC(2013~2014)
최희섭 내야수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CHI)[12] 고려대[13]-CHI(2002~2003)-FLO(2004)-LAD(2004~2005)-KIA(2007~현재)
정성훈 내야수 1999년 1차지명 해태/KIA(1999~2002)-현대(2003~2007)-히어로즈(2008)-LG(2009~현재)
신종길 외야수 2002년 2차 6라운드 동신대-롯데(2002~2003)-한화(2004~2008)
고우석 투수 2003년 1차지명 KIA(2003~2012)
김대우 투수 2003년 2차 1라운드 롯데(2008~현재)
김성계 투수 2004년 2차 5라운드 KIA(2004~2013)-NC(2014~현재)
곽정철 투수 2005년 1차지명 KIA(2005~현재)
강정호 내야수 2006년 2차 1라운드 현대(2006~2007)-넥센 히어로즈(2008~2014)-PIT(2015~현재)
김성현 내야수 2006년 2차 3라운드 SK(2006~현재)
나승현 투수 2006년 2차 1라운드 롯데(2006~현재)
김강 내야수 2007년 2차 3라운드 한화(2007~2011)-상무(2012~2013)-두산(2014~현재)
모창민 내야수 2008년 2차 1라운드 성균관대-SK(2008~2012)-NC(2013~현재)
서건창 내야수 2008년 신고선수 입단 LG(2008)-넥센(2012~현재)
여건욱 투수 2009년 2차 5라운드 SK(2009~현재)
정찬헌 투수 2008년 2차 1라운드 LG(2008~현재)
윤진호 내야수 2009년 신고선수 입단 인하대-LG(2009~현재)
장민재[14] 투수 2009년 2차 3라운드 한화(2009~현재)
정성철 투수 2009년 1차지명 KIA(2009~2011)-NC(2012)
허경민 내야수 2009년 2차 1라운드 두산(2009~현재)
심동섭 투수 2010년 1라운드 KIA(2010~현재)
김재율[15] 내야수 2011년 5라운드 고려대-LG(2011~현재)
유창식 투수 2011년 1라운드 한화(2011~현재)
이정호 투수 2011년 7라운드 두산(2011~현재)
윤정우 외야수 2011년 2차 3라운드 원광대-KIA(2011)-LG(2012~현재)
이철우 외야수 2012년 신고선수 입단 NC(2012~2013)-kt(2014)
이현동 투수 2012년 1라운드 삼성(20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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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2015년 기준. 참고로 2번째로 많은 학교는 부산고등학교추신수백차승을 배출했다.
  • [3] 2013년에 이 학교 출신인 선동열과 염경엽이 양 팀의 감독이 되면서 정말 동문회가 되었고, 2015년에 선동열의 후임으로 염경엽과 동창인 김기태가 감독이 되면서 다시 한번 동문회 시리즈를 이어나간다.
  • [4] 저 중에서 이강철 정도만 프로에서 성공했다. 김선진은 그저그런 대타요원 정도였고, 박준태도 고교시절과 달리 프로에서는 봄에만 반짝하는 봄숭용의 원조로만 남았다. 오히려 고교시절에 안유명한 어느 성님이 성공을 거두었다...
  • [5] 참고로 1988년 대통령기에서 타격상 받은 선수가 지금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인 염경엽이다.
  • [6] 참고로 제2회 야구대제전 부터는 현역 고교야구 선수 출전 금지조항이 만들어져 고려대에 입학한 1981년에 선동렬을 대회에 투입할수 있었다.
  • [7] 리그베다위키에 등록된 선수만
  • [8] 중퇴
  • [9] 특이하게 현역시절 선수로서는 안습을 넘어서 그냥 말이 안 나왔었는데, 감독된 후 대박친 케이스. 그런데 그 반대가 같은 학교 선배였다.
  • [10] 지명은 해태 타이거즈가 지명했다. 그러나 박재홍은 현대 유니콘스와 밀약을 맺고 해태 타이거즈 입단을 거부한다. 그후 해태는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현대에 보내주게 된다.
  • [11] 1993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받았으나 쌍방울 레이더스는 정영규의 지명권+트레이드 머니로 삼성 라이온즈의 신경식, 김성길과 맞트레이드 했다. 그래서 첫 데뷔경기는 삼성 라이온즈유니폼을 입고 기록했다.
  • [12] 1998년 1차지명을 해태 타이거즈가 했으나 곧바로 해외진출 했기에 무산되었다.
  • [13] 특이하게 야구부가 아니라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 물론 해외 진출로 입학하자 마자 자퇴했다.
  • [14] 2013년 말 장민제에서 개명.
  • [15] 2012년 김남석에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