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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기

last modified: 2015-02-28 22:12:57 Contributors

미... 미친 조... 좋은 각도다...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
2010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
2012년 쇼트트랙 세계챔피언
생년월일 1989년 12월 26일
신장 164cm
체중 57kg
주종목 1000m[1][2]
학력 연세대학교 졸업[3]
소속클럽 고양시청[4]

Contents

1. 수상경력
1.1. 동계올림픽
1.2. 세계선수권
2. 소개
3. 커리어
3.1. 2007/2008
3.2. 2008/2009
3.3. 2009/2010
3.3.1.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3.3.2. 깝윤기
3.4. 2010 동계올림픽 이후
3.5. 파벌 논란
3.6. 그 후
3.7.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
3.8. 2014/2015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3.9. 2014/2015 시즌


1. 수상경력

1.1. 동계올림픽

은 2010 밴쿠버 5000m 계주

1.2. 세계선수권

은 2009 비엔나 500m
은 2009 비엔나 1500m
금 2010 소피아 1500m
은 2010 소피아 1000m
은 2010 소피아 3000m
금 2010 소피아 5000m 계주
은 2010 소피아 종합 2위
동 2012 상하이 500m
금 2012 상하이 1000m
은 2012 상하이 1500m
금 2012 상하이 3000m
동 2012 상하이 5000m 계주
금 2012 상하이 종합 우승

2. 소개


쇼트트랙 선수들의 키가 대부분 170cm을 웃도는 걸 감안했을 때 곽윤기는 쇼트트랙 선수들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몸싸움에 굉장히 약한 편. 또다른 단점 또한 신체조건에서 오는데 우선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 피치[5]가 작고 몸무게가 가벼워서 빠른속도로 코너를 돌때 원심력에 기존 선수들보다 약하다. 하지만 오히려 이 핸디캡들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작은 체격조건을 적극 활용한 스케이팅이 특징이다.[6] 다른 선수들은 돌파 시도도 못할 비좁은 공간을 자유롭게 파고들 수 있으며 가벼운 몸무게 덕분에 짧은 구간에서 내는 속도, 즉 순간가속도가 굉장히 좋고(전 국가대표 코치가 말한바로는 세계에서 이 순간가속도 하나만은 최고라고 한다. 그의 진가를 보고싶다면 09/10 시즌 1차 월드컵 계주 결승경기를 꼭 참조바란다.[7])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급 방향틀기도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하지만 가벼운 몸무게와 짧은 다리 때문에 간혹 단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바로 최고 스피드를 낼 땐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는 것.[8] 그럼에도 곽윤기에겐 저 순간가속도라는 무기와 정상급 인코스 추월능력이 있기에 단거리에서도 좋은성적을 내는게 가능했던것.

여하튼 곽윤기는 자신의 장점들 덕에 허를 찌르는 장면도 자주 연출하는 편인데, 추월당하고 나서도 바로 인사이드로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추월해 나간다던지 마지막 한 바퀴까지 꼴찌로 달리다가 갑자기 코너를 돌면서 메달권에 들어온다던지 하는 것들. 이러한 곽윤기의 인코스 추월 능력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비범함이 있으며 이것은 무조건적으로 신체조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곽윤기의 뛰어난 기술력이 동반된 덕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예전부터 인정을 받아왔으며 쇼트트랙에서 기술 하면 안현수이호석 다음으로는 곽윤기의 이름이 나오는 편.
또한 안현수, 이호석 세대이후 영리하고 노련하고 침착한 수준급 경기운영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선수다.

성시백만큼은 아니지만 500m에서도 꽤나 강점을 보이고[9] 계주에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줄곧 마지막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10] 우리나라 선수답게 기본적으로 1000m, 1500m도 당연히 잘 타고, 노진규가 1500m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면서 곽윤기는 본인의 순발력과 추월능력 그리고 경기운영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1000m에 더 집중하게 된다.

3. 커리어

3.1. 2007/2008

2007년에 9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시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곽윤기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5위를 기록해 국대승선에 성공한다. 당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 풍년이었던걸 감안한다면 곽윤기의 국대선발 성공은 상당한 선전이었다. 하지만 5위를 기록했기에 세계선수권에는 출전할 수 없고 월드컵에만 참가 가능했다.[11] 곽윤기는 대표팀 마지막 순위였기때문에 주로 500미터에 참가했지만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며 성시백에 이어 500미터 세계랭킹 2위를 기록했으며 간간히 출전기회를 부여받은 1000미터와 1500미터에서도 각각 13위, 29위를 기록. 주로 선발전에서 4위를 기록한 성시백과 콤비로 같은 종목에 출전을 했는데 둘다 첫 국대승선이었음에도 월드컵에서 맹활약하여 세계 탑 이호석안현수에 이어서 각각 세계랭킹 3위(성시백), 4위를 기록한다. 그렇게 곽윤기의 첫 국가대표 시즌이 마무리되는줄 알았으나 2008 강릉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안현수가 태릉빙상장에서 훈련중 중부상을 당하며 곽윤기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게된다. 물론 개인전은 출전할 수 없고 계주 준결승멤버로 출전했으며, 결승에서 대한민국이 우승을해내 곽윤기는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획득한다.

3.2. 2008/2009

2008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1위를 해냈고 덕분에 3000미터 슈퍼파이널에선 7위를 기록했음에도 압도적인 점수로 당당히 1위로 국가대표선발이 되었고 동시에 자동적으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다.2008/2009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결과 및 선수명단
월드컵에서는 1500미터에서 부진했으나[12] 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각각 종합랭킹 4위, 2위를 기록해 세계랭킹 5위에 오른다.

2009 비엔나 세계선수권에서 이호석과 종합우승을 두고 경쟁했지만 슬럼프를 털어낸 이호석이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종합우승을했고 곽윤기는 1500미터와 500미터에서 은메달을 땄음에도 3000미터에서 충분한 포인트를 획득하는데 실패해 종합 3위안에는 들지 못한다.

3.3. 2009/2010

대망의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09/10시즌 대표선발전. 곽윤기는 아슬아슬하게 4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대표팀승선에 성공했으나 계주멤버로만 출전할 수 있게된다. 월드컵에서는 이정수 대신 꾸준히 500미터에 출전을 했고 1000미터에서 간간히 기회를 부여받으며, 500미터에서 세계랭킹 4위를 유지했지만 1000미터에서는 7위로 지난시즌보다 하락,세계랭킹 종합 7위를 기록.

3.3.1.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1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을 하고있던 이정수가 자신이 취약한 종목인 500미터 출전권을 곽윤기에게 양보한다. 덕분에 곽윤기는 올림픽에서 개인전 출전 가능했고 준결승까지 진출하지만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이호석, 아폴로 안톤 오노같이 쟁쟁한 선수들과 경기를 치뤘고, 컨디션이 좋았던 이호석이 2위로 달리고 있었으나 4위에서 계속 기회를 노리던 곽윤기가 결승진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도였는지 무리하게 1위 트랑블레를 추월하려 시도했고, 결국 넘어지며 곽윤기에게 되려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결국 트랑블레, 오노를 제치지 못하고 3위를 기록해 파이널 B에 진출. 파이널 B에서 1위를 기록해 500미터에서 종합 4위를 기록한다.[13]

같은날 열린 5000미터 계주 결승에서는 이호석대신 두번째 주자로 출격한다. 경기내내 두번째 주자로써는 걸맞지 않게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팀원들 모두 500미터 후유증때문인지 서로 손발이 맞지 않으며 최악의 팀웍을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한국이 극적인 은메달을 땄는데 이는 곽윤기의 원맨쇼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캐나다미국이 레이스 중후반쯤에 변칙 작전을 썼는데 이게 먹혀들어 한국이 3위로 달리게 됐다. 더군다나 나중에는 뒤에서 바짝 따라붙던 미국한테까지 자리를 허용해 마지막 2바퀴 남기고 4위로 내려간다.[14]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코너 구간을 돌 때다. 마지막에 곽윤기가 중국과 미국 선수 사이로 파고들며 눈 깜짝할 사이에 4위에서 2위로 골인해 한국팀에 은메달을 안겨준다.

그리고...

3.3.2. 깝윤기

쇼트트랙 5000미터 계주 메달 시상식 때 시상대에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아브라카다브라 춤을 추며 세레모니를 하였다.


이거시 깝권과 쌍박을 이루는 깝윤기의 위엄.

국제빙상연맹의 공식 프로필에도 이 세레모니가 언급 되어있다(...)

귀국했을 때 본인 왈 "아무래도 타 종목에서도 많이 따고 했다보니 즉석으로 제의해서 했던 이벤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절 알리고 싶어서 하기도 했어요" 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깝윤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 네티즌들에 의해 본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진 많은 움짤들이 발견되면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미니홈피. 단시간에 방명록 수가 12000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매의 눈 타이틀을 거며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아를 노리는 매의 눈. 흉악하기 그지없다

헤어스타일이 심하게 독특하다. 윗 사진에서 보여진 대로 오른쪽으로 머리를 전부 넘겼으며 거기에 파마+붉은색 염색까지 해서 이건 뭥미 수준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잘 어울리는 탓에 한국에서 가장 디올한 남자라는 타이틀로 불리기도. 하지만 곽윤기의 큰아버지는 그 머리카락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윤기야, 머리 깎자".

귀국 후 인터뷰에서 헤어스타일 역시 자신을 알리기 위해 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로서 조권과 같은 과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2010년 3월 7일 높으신 분들의 자기과시&허세와 더불어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방송에서 2AM과 같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쇼트트랙 남자 국대들이 다 올라갔다) 조권이랑 호노보노 러브러브를 연출하여 충공깽.


이 남자는 내 남자다 라고 외치는 곽윤기의 표정에 주목

3.4. 2010 동계올림픽 이후

올림픽 이후에는 "부상"당한 올림픽 2관왕 이정수대신 세계선수권 개인전에 출전한다. 그냥 말 그대로 포텐이 터져서 2010년 3월에 열린 1500미터에서 1위, 하지만 여자부 1500m 금은동 싹쓸이 때문에 묻혔다 1000미터와 3000미터에서 각각 2위를 해 종합 2위로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한다.[15]

그런데...

계주결승에 부상당한줄 알았던 이정수가 대회도중 진짜로 부상당한 성시백대신 출전을 하게되어 파벌 논란이 시작되게 된다..

3.5. 파벌 논란

세계선수권 대회를 마친 후 이정수와 빙상연맹 사이의 문제가 터진 상황에서 곽윤기는 선발전에서 포인트가 부족했던 이정수를 도와주고 그러면 올림픽때 1000m는 곽윤기가 출전하기로 했는데 이정수가 1000m에도 나간다고 해서 황당했다는 말을 했다 주장했다. 대신 이미 서술된 바와 같이 올림픽에서 500미터 참가를 양보해주고 나중에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 출전권을 양보하기로 협상타결 됬던것...참고. 이정수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부정했고 안현수와 이정수가 빙상연맹에 희생된 상황이므로 이로 인해 곽윤기는 인기를 상당히 잃었다.

언론에 부각되지 않았지만 김성일 이 짬짜미의 담합자 중 한 명인데 본인이 문제제기를 하거나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김성일은 09/10 시즌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한 선수고 2위[16]를 한 이정수가 빠졌기 때문에 개인전 출전의 기회가 김성일에게 주어졌어야 됐지만 오히려 곽윤기가 나왔고 김성일은 계주에만 출전했다.[17]

나중에 성시백이 곽윤기를 옹호하는 듯한 동영상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고 이에 대해 조사한 조사위원회 역시 곽윤기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한빙상연맹도 마찬가지로 보고 곽윤기와 이정수에게 3년간 자격정지 조치를 취했지만 3년은 대외적으로 너무한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고 자체 내에서도 너무 과했다는 의견에 자격정지를 받은 본인들도 항의를 하여 6개월 자격정지로 바뀌었다. 허나 6개월 정지 적용 시점이 2010년 7월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2011년에 2월에 열린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3.6. 그 후

자격정지 징계가 풀린 후 대표팀에 복귀한 곽윤기는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 2011년 세계선수권우승으로 정상에 올랐던 한국의 신예 에이스 노진규와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고 순위결정전이었던 3000미터에서 노진규를 꺾고 우승을 해내 종합 1위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물론 부상당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1년동안 국제대회에 못 나갔던 걸 감안하면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18]

최근 인터뷰서 이정수와는 친구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19]


계속해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소치 올림픽 때는 신예 에이스 노진규와 금메달을 두고 경쟁할 거라 예상되었다. 굳이 실력으로만 말한다면 당시 국가대표 선수 중엔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인터뷰에서는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아쉬웠던 걸 모두 해소하기 위해 소치 올림픽에선 "아주 박살을 내겠다" 라고 했다.[20]

그런데 2012-2013 시즌, 부상으로 6차 월드컵에 불참한 후 귀국해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발목부상이 생각보다 큰 부상임이 밝혀지고, 그때문에 올 3월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4월에 열릴 대표 선발전을 위해 컨디션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3.7.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

부상 때문에 아직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탓인지 500m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목에서 결승 진출조차 하지 못했고 총점 10점으로 종합 8위에 머물러 우려대로 대표팀 승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남자 국가대표팀의 실질적인 에이스[21][22]였기 때문에 곽윤기의 탈락은 엄청난 손실이었고, 실제 남자 대표팀은 곽윤기의 대표팀 승선 실패 및 부상 및 암 투병으로 결장한 노진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노메달의 수모를 겪으며 귀국했다.

평창 올림픽 때는 만 29세(한국나이 30세)가 되기 때문에 또 다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대한민국은 세대교체가 워낙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베테랑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 대표적으로 빙상연맹과 마찰을 빚다가 러시아로 건너가 버린 안현수와 2010년 올림픽 이후 급격한 노쇠화를 보였던 이호석, 그리고 20대 중반에 은퇴한 성시백 등이 있다. 샤를 아믈랭이나 아폴로 안톤 오노만 봐도 각 국의 빙상연맹이 자국 선수를 잘 관리해 주었을 때, 그 선수들이 얼마나 롱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빅토르 안이 러시아 귀화 후 만 29세의 나이로 소치올림픽에 참가해 3관왕을 해내면서 국내 쇼트트랙 계에서도 선수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

만약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조금 더 선수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개선되고, 곽윤기 또한 국제 무대로 복귀하여 옛 기량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결코 불가능한 건 아니다.

3.8. 2014/2015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27명까지 선발하는 1차 타임레이스를 21위로 간신히 통과한 후, 4월 5일과 6일 벌어진 2차 선발전에서 종합 6위를 기록하며 3차 선발전에 진출했다. 첫 날 종목인 1500m와 500m에서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는 스피드를 내며 추월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에 이러다 곽윤기가 2시즌 연속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둘째 날 자신의 주종목인 1000m에서 저력을 발휘하며 2위로 21점을 획득하며 3차 선발전 진출을 의미하는 슈퍼파이널 참가에 성공하였다. 곽윤기의 몸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행히도 오픈 레이스에서의 관록이 빛을 발한 셈. 3차 선발전이 열리는 9월까지 떨어진 신체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로 밴쿠버 올림픽 당시 같은 대표팀 멤버이자 절친인 이정수도 2차 선발에 성공했다.[23]

9월 29일 열린 3차 선발전에서 1500m 6위, 1000m 3위, 3000m 슈퍼파이널 3위로 3차 선발전 6위, 2차와 3차 선발전 합산 순위에서 이한빈과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3차 선발전 슈퍼파이널에서 이한빈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최종 순위 6위로 국가대표 승선에 성공했다. 3차 선발전을 직관하러 간 팬들에 의하면 아직까지 예전 기량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제한적인 출전 기회만을 부여받게 될 월드컵에서 과연 예전 경기감각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3.9. 2014/2015 시즌

오랫만에 국제대회로 복귀한 1차 월드컵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떨어진 경기감각에 여전히 스피드가 제대로 나지 않으며 특유의 추월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6위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기 때문에 월드컵을 500m 위주로 출전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전성기에 돌입하기 이전에는 500m에서도 괜찮은 모습이었으나,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자리잡은 이후 500m에는 거의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곽윤기가 500m에 빨리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

2차 월드컵 500m(1)에서 동메달을 따며 오랫만에 월드컵 메달을 따냈다. 특히 이 월드컵에서부터 스피드가 상당히 살아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500m(1) 결승전에서는 5명 중 4레인에서 시작하여 스타트를 꼴찌로 끊었음에도 곧바로 2명을 추월하고 마지막 바퀴에서는 2위인 미구노프까지 추월에 성공하는 등[24] 500m에서 무려 3명을 추월할 정도로 스피드가 제대로 붙은 모습이었다. 5000m 계주 결승전에서도 2번 주자로 출전, 레이스 중반까지는 이따금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였으나 막판 기가 막힌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상하이 3차 월드컵에서는 500m(1)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마지막 바퀴의 인코스 추월 장면에서 우다징의 강한 몸싸움 시도가 있었으나[25] 바디 밸런스를 잘 잡고 끝까지 1위로 통과하였다. 500m(2)에서도 비록 실격되기는 했지만 재차 결승에 진출하는 등 지금까지는 500m에서도 상당히 잘 해주고 있다. 1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500m 세계 랭킹 6위에 진입하였고[26] 월드컵을 치르며 계속해서 경기력이 회복되는 추세인지라 앞으로도 500m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한국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는 오랫만에 자신의 주종목인 1000m 출전 기회를 얻어, 예선부터 여유 있고 가벼운 모습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준결승에서는 이 종목 현재 최강자 중 한 명인 샤를 아믈랭을 상대로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27] 결승전에서 경기 도중 싱키 크네흐트의 스케이트 날에 빙판을 짚은 손이 걸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두번째로 골라인을 통과, 상당히 오랜만에 1000m에서 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3000m에도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 이정수, 신다운과 함께 시상대에 섰다.

5차 월드컵에서 500m 3위를 기록하며, 현재 500m 랭킹 3위이다. 단거리 전문 선수였던 박세영의 500m 부진[28]이 이어지는 가운데 곽윤기의 500m 부활은 반가운 소식.

월드컵 시리즈가 끝나고 최종 세계랭킹 8위에 올랐다. 한국선수중에는 신다운(1위) 다음으로 랭킹이 높으며, 비록 2015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을 뛸 수 는 없지만 큰 부상을 겪고 1년동안의 세계무대 공백이 있었음에도 이 정도로 폼을 회복한걸 보면 다음시즌이 더 기대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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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밴쿠버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주종목이 딱히 잡혀있지 않았으나 500미터가 자신의 주종목이나 다름없듯이 좋은 성적을 냈고 벤쿠버 올림픽후에는 다른 한국선수들처럼 1000미터와 1500미터로 주종목이 변경되는듯 싶었으나 파벌논란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한동안 아웃이 됬었고 이후 1500m 괴물 노진규가 들어오면서 곽윤기의 주종목은 1000m로 굳혀졌다.
  • [2] 대표팀 합류 초창기 때는 500m가 주종목이었긴 했지만, 이는 사실 안현수, 이호석, 송경택, 성시백, 이승훈에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다 보니 대표팀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500m에 집중 출전해야만 했던 것. 08-09시즌에 접어들면서야 국가대표 선수들이 어느 정도 세대교체가 되며 조금씩 자신의 주종목을 찾아가게 된다.
  • [3] 성시백의 후배기도 하다.
  • [4] 전에는 서울시청 소속이었다.
  • [5] 스케이트로 얼음을 밀어내는 동작
  • [6] 다만 어렸을때부터 작은 체구때문에 몸싸움에서 항상 밀리는게 습관처럼 되다보니 가끔 포지션을 방어해야하거나 피할 수 없는 몸싸움을 해야할때 좀 과감한면이 떨어지는편.
  • [7] 네이버에 빙판위에 스릴이라는 쇼트트랙 카페가 있다. 유튜브에서는 찾기 힘드니 꼭 보고싶다면 카페에 가보길 바란다. 홍보아님.
  • [8] 캐나다 선수들이 괜히 500미터랑 계주에서 잘하는 게 아니다. 노진규는?
  • [9] 0708시즌 기준으로 500미터 세계 2위에 등극했었다.
  • [10] 실력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막판 뒤집기에 능한 이호석이 마지막으로 타기로 돼있었으나 500m에서 넘어졌을 때 약간의 부상으로 코치진이 이호석이 100% 기량으로 탈 수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계주나 단거리에서 약한 편인 이정수를 커버하기 위해 이호석이 세번째로 배정된다. 가벼운 몸무게의 곽윤기를 밀어주기 위해 원래 단거리/계주에 강했던 성시백이 첫번째로 탔다.
  • [11] 나중에 2008년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안현수의 부상으로 곽윤기가 세계선수권 계주준결승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 [12] 106위
  • [13] 만약 500미터에서 오노말고 또 다른 선수가 실격 당했다면 곽윤기가 동메달을 걸 수 도있었다.
  • [14] 선수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성시백이 곽윤기를 밀어주는 데 실패한다.
  • [15] 종합우승자는 2009년에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이호석.
  • [16] 세선 우승자 이호석, 1위 성시백, 3위 김성일, 4위 곽윤기.
  • [17] 본인도 짬짜미에 가담했었고 그덕에 이득을 보았을뿐더러 자신의 실력이 저둘에 비해 떨어진다는걸 알기에 구지 불만을 표출할 이유가 없었던걸로 보인다.
  • [18] 사실 원래 잘 타는 선수였지만 안현수, 이호석, 성시백, 이정수, 이승훈 등등 쟁쟁한 실력자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참고로 이정수는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이 미미한 편인데 곽윤기는 이호석에 이어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2위를 기록했었다.
  • [19] 서먹했던 분위기를 위닝일레븐을 하면서 서로 풀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다.
  • [20] 곽윤기는 밴쿠버 올림픽 선발전에서는 4위를 기록해 개인전에 참가할 수 없었고 그나마 이정수가 500미터를 양보해 Final B까지 갔었다. 계주 결승을 제외하고 큰 활약을 하지 못해 약간 한이 된 듯.
  • [21] 노진규는 에이스라고 하기엔 1500m를 제외한 다른 종목에서의 활약이 부족한 편.
  • [22] 중부상을 당하고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선수들, 쇼트트랙 팬들이 곽윤기가 선발전에서 1위를 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 [23] 둘다 고양시청 소속.
  • [24] 아쉽게도 곧바로 재추월당하며 2위를 지키는 데까지는 실패했다.
  • [25] 우다징은 이 플레이가 임페딩으로 판정되어 실격되었다.
  • [26] 대표팀에서 500m에 가장 강하다는 박세영보다도 높은 랭킹이다.
  • [27] 안상미 해설위원은 이에 대해 샤를 아믈랭의 기를 죽이는 레이스를 보여줬다고 했다.
  • [28] 1000m, 1500m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500m는 5차 월드컵이 되어서야 준결승에 처음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