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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하베스트

last modified: 2014-10-13 12:09:33 Contributors

1970년에 창립한 홍콩의 메이저급 영화사. 홍콩 영화계의 거물인 추문회, 하관창[1], 양풍 이 세사람이 합심해 설립한 회사다.

대한민국의 영화사와 비교하자면 CJ엔터테인먼트급. 실제로 관련도 있는데, CGV의 대주주 중 하나였기 때문. 원래 CGV 약자중 G가 골든하베스트를 의미했었다. 지금은 계약이 끝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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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1. 역사

흔히 둥!둥!둥!둥! 하는 묵직한 효과음[2]과 함께 직사각형 네개가 모여 웅장한 음악과 함께 정사각형 모양의 G자 이니셜을 만드는 로고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로고를 보면 워너브라더스와 흡사한 로고를 사용했던 홍콩 영화사 쇼 브라더스의 로고를 따라한게 보인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대부분의 홍콩영화는 거의 다 이 영화사에서 만들었다고 보면된다.
라이벌인 쇼 브라더스는 스튜디오 촬영을 활용한 저예산 무협 활극물을 만들었는데 골든하베스트도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영화사로 거듭나기 위해 헐리우드와 손잡고 합작영화를 제작하고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3] 덕분에 닌자 거북이캐논볼같은 무술 및 코미디가 들어간 개봉작을 비롯하여 오브 포스같은 진지한 영화를 이 영화사에서 제작 및 배급을 맡았다. 그리고 이소룡을 필두로 홍금보, 성룡, 원표를 뜻하는 가화삼보[4]를 배출해 내기도 했으며, 임정영강시선생 시리즈도 대단한 흥행을 거두었다.

대한민국과도 인연이 있어서 황인식, 황정리, 왕호, 김태정[5]등 유명한 발차기 고수들도 발탁되어 활약했고 동아수출공사와 합작으로 몇몇 작품을 찍기도 했다. 이 협력관계는 끈끈해서 골든하베스트 홈 비디오 수입 라이센스도 동아수출공사가 거의 독점했다.[6] (서진통상에서 동아수출공사가 수입한 골든하베스트 영화를 출시해오다 계약이 끝난 1991년부터는 동아수출공사가 자회사인 영성프로덕션을 설립해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 홍콩영화의 급격한 침체기로 접어들자 골든하베스트도 휘청[7]이기 시작해 2001년을 끝으로 작품을 내놓지 않고 영화관 사업과 수입, 배급에 치중하다 결국 2007년 11월 1일 중국 영화사 청톈 엔터테인먼트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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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골든하베스트 내에서 추문회 회장 다음인 서열 2위로 1997년 사망하였다. 성룡에겐 거의 양부급으로 존경받았고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 [2] 개그콘서트 꺾기도에서는 김준호의 변신 브금으로 사용되었다.
  • [3] 애초에 골든하베스트의 설립 배경 자체가 쇼 브라더스에서 일하고 있던 추문희가 저예산 스튜디오 촬영을 고집하는 런런쇼 회장의 경영방침에 반기를 들고 1970년 쇼 브라더스를 나와 설립한 것이다.
  • [4] 골든하베스트사의 세 보배라는 뜻. 골든하베스트사의 한자 명칭은 橙天嘉禾娛樂集團有限公司(등천가화오락집단유한공사)이다. 골든하베스트가 2009년 오렌지 스카이(등천)와 합병하여 명칭에 등천이 추가된 것. #. 골든하베스트에 해당되는 한자는 가화이다.
  • [5] 사망유희 때 이소룡을 대역할 배우를 모집했는데 마땅한 배우가 없어 곤란을 겪던중 당시 동아수출공사 오너였던 이우석 회장이 김태정을 데려가 오디션을 보게했고 합격점을 받았다. 흥행에도 성공해 이후 대한민국에 돌아와 몇몇 작품을 했지만 그는 곧 잊혀졌다. 사망유희로 뜨기 전까지 김태정은 호떡 장사를 하는 등 생활고로 고생했다고.. 2011년 8월 27일 원인불명의 갑작스런 복통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 [6] 그전에 1989년까지만 해도 세경문화영상에서도 골든하베스트 영화를 출시하긴 했었다. 세경은 1970~1980년대 이소룡과 왕우가 출연한 작품이나 무협, 시대극등 다양하게 출시한 반면 서진통상은 극장개봉한 작품이나 미개봉한 B급물 위주로 출시했다.
  • [7] 성룡이 영화를 찍을 때마다 매번 예산을 초과해 펑펑 써댄 게 원인이란 말도 있다. 실제로 자신의 전용 제작사를 만든 뒤 성룡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1980년대 성룡의 영화들은 지금봐도 아찔할 정도의 스턴트와 블록버스터 같은 장면들로 성룡의 완벽주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골든하베스트에서 성룡에게 준비된 예산 내에 영화를 완성시키면 100만 홍콩 달러의 보너스를 준다는 요청(물론 성룡은 이 제안을 매번 거절하였다고 한다.) 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성룡이 감독, 주연한 골든하베스트 창립 20주년 기념직인 <미라클>의 흥행 실패로 영화사가 도산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게다가 홍콩중국 반환이 얼마 안남은 시점이자 골든 하비스트 여명기인 1990년대 중반 성룡의 작품들은 거액을 투입하고도 흥행에 참패했다. 이럴 때마다 골든하베스트의 부사장인 하관창은 성룡을 응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