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가요톱10

last modified: 2016-09-04 09:56:33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역대 MC
3. 공정성으로 대표되는 순위집계
4. 골든컵 제도
4.1. 골든컵을 총 3회 이상 수상한 가수
4.2. 한 정규앨범 내에서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4.3.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4.4. 연도별 골든컵 수상자
4.5. 역대 가요톱10 최다 1위 수상자
5. 그 밖의 이야기들

1. 소개

KBS에서 방송되었던 가요 프로그램으로 뮤직뱅크의 전신이다. 상단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가요톱10' 공식 로고에는 '토' 밑의 'ㅂ'받침 안에 'TOP' 이 들어가있다.

1981년 첫 방송되어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얻은 가요 프로그램이었다. 1981년 2월 10일 KBS 1TV에서 첫방송됐고 그 해 가을개편 때 KBS 2TV로 옮겼다.

초기 오프닝. 로고를 보면 미국 NBC 로고랑 상당히 많이 닮았다. 표절?[1]

1995년 5월에 방송된 후반기 오프닝. 초기에 있던 로고가 없어졌다. 그러나 로고는 1위 발표할때 그래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위 영상에서 보듯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처럼 상당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프로그램이다. 손범수가 실제 KBS 뉴스센터에서 뉴스처럼 진행한다. 심지어 시그널도 KBS 뉴스 9에서 쓰는 시그널의 BGM이다. 그와중에 뉴스센터 뒤에서 깨알 같이 마임하는 사람들과 날씨 진행을 보면 약을 빨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손범수 옹이 뉴스(?)를 진행하는 드문 영상을 볼 수 있다 손범수야 원래 아나운서니까 그렇다치고 룰라 지못미[2]

youtube(drS4SIjKmp0)

대한민국의 대표적 전설의 본좌급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는 듯했으나, 1997년 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온 국민을 충격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KBS는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급격히 떨어진 국민적 사기와 깊이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당시의 시기 상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기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편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명분을 내세워서 개편 시기와 관계 없이 가요톱10을 비롯한 다수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을 서둘러 폐지시킨다.

결국 17년간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명성과 입지를 다져왔던 '가요톱10'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명분 때문에 1998년 2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3] 그 뒤 '브라보 신세대'라고 가수들과 함께 예능쇼를 진행하며 노래를 듣는 특이한 형태의 프로로 바뀌어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였으며,[4] 당시 국민 음악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을 주인과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의 의견 반영도 없이 KBS 멋대로 무리하게 폐지한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상당히 거셌다.

결국 한 달도 못가서 뮤직뱅크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하여 '가요톱10'의 명맥을 잇는 KBS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재도약하고 있는데 현실은 시궁창. MBC에서는 음악캠프를 개설하고 SBS에서는 SBS 인기가요를 재개설해 이전의 KBS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가요톱10의 정통성을 잇는 프로답게 공정성은 다른 공중파 가요 순위프로보다 높다.

대체로 방송에 소개되는 순위는 30위부터 10단위로 끊어서 소개되었다. 30~21위까지 소개 후 한두명(팀)의 가수가 나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소화한 후, 또 다음 턴으로 똑같이. 1위 후보곡은 2곡이냐 3곡이냐에 따라서 10위권 안에 있는 노래는 10~3위 or 10~4위까지 소개되었다.[5]

여담이지만, 국내 TV프로그램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된 프로그램이다, 물론 지금은 KBS에서 33000원을 주고 사야되지만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던 터라 당대 모뎀 속도의 문제로 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영상은 볼수 없는 반쪽짜리 서비스였다.

2. 역대 MC

역사가 긴 가요프로그램답게 역대 프로그램 MC의 변동 또한 많다.

대수 MC 기간
1 하지훈 & 박혜리 1981년 2월 10일 ~ 1981년 9월 3일[6]
2 임성훈 & 박혜리 1981년 9월 8일 ~ 1982년 1월 27일
3 임성훈 & 서동숙 1982년 2월 3일 ~ 1984년 3월 4일
4 임성훈 & 임화숙 1984년 3월 11일 ~ 1985년 4월 21일
5 임성훈 & 김혜란 1985년 5월 1일 ~ 1985년 9월 4일
6 임성훈 & 길은정 1985년 9월 11일 ~ 1986년 6월 18일
7 손창민 & 예명숙 1986년 6월 25일 ~ 1986년 9월 24일
8 임성훈 & 길은정 1986년 10월 1일 ~ 1988년 4월 27일
9 임성훈 & 서성희 1988년 5월 4일 ~ 1988년 8월 3일
10 임성훈 & 오영실 1988년 8월 10일 ~ 1989년 10월 15일
11 임성훈 & 정미정 1989년 10월 22일 ~ 1990년 9월 30일
12 김병찬 & 이한숙 1990년 10월 7일 ~ 1991년 9월 25일
13 김광한 1991년 10월 2일 ~ 1992년 9월 30일[7]
14 송승환 1992년 10월 7일 ~ 1993년 4월 28일
15 손범수 1993년 5월 5일 ~ 1998년 2월 11일[8]

가요톱10의 얼굴마담은 임성훈으로 총 8년간 MC를 맡아 가요톱10의 최장수 MC로 군림했으며,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위키니트들이 많이들 기억하는 MC는 두 번째로 장수한 MC이자 가요톱10의 후반기를 함께한 손범수 前 아나운서[9]일 것이다. 손범수의 경우 다른 MC들에 비해 세련된 외모와 함께 당시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게끔 상당히 맛깔나고 재치있게 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 가요톱10의 인기몰이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도 가요톱10에 애착이 굉장했기에 마지막회를 진행 후 화장실 대변기칸에 들어가서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3. 공정성으로 대표되는 순위집계

1990년대 까지만 해도 21세기 현재와 같이 인터넷이나 케이블/위성 방송등 공중파 외의 매체들이 아직 크게 발달되지 않았기에 공중파 음악순위방송의 영향력이 무척 컸으며, 특히 공영방송 KBS에서 진행하는 음악프로인데다, 당시의 순위 집계 방식이 아날로그틱한 느낌이어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공정해서 대중들의 신뢰도가 무척 높았다. 그래서 가요톱10에서 집계한 순위는 곧 그 시기의 가요 동향을 파악하는 척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가요톱10의 기본적인 순위 집계 방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KBS 경영정보센터에 등록된 명단에서 10만명 추출하여 지역별, 연령별 2,800명 선정.
2. 집단 투표 인단(택시, 버스기사, DJ, 노래 부르기 모임, 가요 담당기자 등) 200여 명에게 왕복 엽서 발송, 회수.
3. KBS 가요담당 PD의 기명으로 10곡 추천받음.
4. 전국 투표인단과 가요 PD 추천곡을 80:20 비율로 합산.
5. 경영정보센타에서 200위까지 컴퓨터에 의해 집계된 40위 부터 1위까지 순위 선곡 방송.

90년대에 들어서면서 PC통신과 전화 ARS를 통한 시청자들의 실시간 순위 참여 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순위 집계 방식은 차츰 발전해 갔다. 태진아, 설운도, 송대관 같은 트로트 가수들의 곡도 인기가 높아 10~30위권내에서 꾸준히 사랑받았고 특히 손범수 아나운서의 고정멘트 "생방송 가요톱텐 몇월 몇째주 영예의 1위곡은?"이란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방식은 현재 뮤직뱅크 케이 차트 시청자 선호도 점수에 비슷하게 쓰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방송 리서치에서 패널로 선정되고 설문 참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TOP 100곡에서 3곡을 선정하여 점수화해서 케이차트에 반영하는 것. 차이점이라면 시청자에만 한정되고 가요담당PD의 추천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10% 밖에 반영이 안된다.

가요톱10이 방영될 당시 개국했던 SBS는 '생방송 TV가요 20[10]'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요톱10의 아성에 도전했으며, 가요톱텐처럼 5주 연속 1위를 하면 '왕중왕'이란 칭호를 주기도 했다. 나름 인기는 있었지만 역시 가요톱10을 넘어서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MBC는 가요 순위프로에서만큼은 콩라인도 아닌 완전한 쩌리로 전락(...)하여, 이 당시 MBC의 가요 차트는 "여러분의 인기가요" "결정! 최고인기가요" "MBC 인기가요 BEST 50" 등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잦은 개편의 난맥상을 겪게 된다. MBC는 서태지가 나올 때만 시청률이 오르지? 어차피 항목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키니트들은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일밤과 토토즐은 건재했습니다

4. 골든컵 제도

가요톱10의 특별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골든컵' 제도다. 최초의 '골든컵' 수상곡은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로서 1982년 8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무려 10주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해내었고, 이를 계기로 5주 연속으로 1위에 랭크 되면 1위 트로피 외에 '골든컵'이라는 특별 트로피를 수여하고 난 후에 더 이상 순위 집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소위 '골든컵 제도'가 도입되게 된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10주 연속 1위였으며, 1983년 1월 26일 방송분부터 5주 연속으로 단축되었다. 그리고 1995년부터는 외국 음악의 순위를 10위부터 1위까지 발표하는 코너도 생기곤 했다.

역대 방송에서 1위를 한 곡들은 위키백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4.1. 골든컵을 총 3회 이상 수상한 가수

횟수 가수 노래명
7회 조용필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 너 좋아, 친구여, 정의 마음,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허공
4회 이선희 J에게,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나의 거리
신승훈 미소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그 후로 오랫동안
3회 김건모 첫인상, 핑계,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컴백홈

4.2. 한 정규앨범 내에서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 가수 앨범 집수 노래명
1983 조용필 5 나는 너 좋아, 친구여[11]
1985 7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 박남정 2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 김민우 1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 신승훈 2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1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7 임창정 3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4.3.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 가수 노래명
1984 조용필 친구여, 정의 마음
윤수일 밴드 아파트, 아름다워
1985 조용필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 박남정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 김민우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5 룰라 비밀은 없어, 날개잃은 천사
1997 임창정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이 자료들은 윤수일 밴드를 제외하고 2011년 12월 KBS TV 50년 특집으로 당시 방송영상을 보여주는 식으로 방송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조용필 자료는 가요톱10 무대가 아닌 당시 단독 콘서트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가요톱10 연말결산이라 했다.

4.4. 연도별 골든컵 수상자

연도 수상자 수 수상자
1982 1 조용필
1983 5 혜은이, 김수희, 허영란, 조용필, 방미
1984 7 윤수일 밴드(2회), 조용필(2회), 정수라, 김수철, 최혜영
1985 8[12] 이선희, 이은하, 나미, 전영록, 조용필(2회), 김범룡, 구창모
1986 6 최진희, 조용필, 높은음자리, 이문세, 구창모, 정수라
1987 6 장덕, 이선희, 이재성, 벗님들, 김범룡, 김학래
1988 3 이정석, 최성수, 이선희
1989 6 이치현과 벗님들, 박남정(2회), 이지연, 이선희, 김흥국
1990 6 김지애, 변진섭, 햇빛촌, 김민우(2회), 민해경
1991 6 태진아, 김지애, 이상우, 신승훈, 노사연, 이범학
1992 7 김정수, 신승훈(2회), 이상우, 김국환, 서태지와 아이들(2회)
1993 5 장현철, 노이즈, 이무송, 김수희, 김건모
1994 7 015B, 김건모, 김민교, 마로니에, 투투, 김원준, 신승훈
1995 6 룰라(2회),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서태지와 아이들
1996 2 김정민, 클론
1997 4 , 양파, 임창정(2회)
1998 1 이현우
합계 86[13]

특히 1984년, 1985년, 1992년, 1994년은 골든컵을 수상한 가수가 7~8명(팀)이 나온 인기명곡 풍작年. 1위의 영예를 한번만 누려도 대단한 것이거늘 어째 골든컵을 못 딴 1위 경험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안습한 일이 발생했다.
아래는 1994년의 골든컵 수상자들와 수상곡 목록. 4주째에서 마로니에에게 밀려버린 지못미 이상우

순서 가수 노래 기간
1 015B 신인류의 사랑 1993년 12월 4째주 ~ 1994년 1월 3째주
2 김건모 핑계 2월 3째주 ~ 3월 3째주
3 김민교 마지막 승부 3월 4째주 ~ 4월 3째주
4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6월 3째주 ~ 7월 3째주
5 투투 1과 2분의 1 7월 4째주 ~ 8월 4째주
6 김원준 너 없는 동안 9월 2째주 ~ 10월 2째주
7 신승훈 그 후로 오랫동안 11월 4째주 ~ 12월 3째주

마지막 골든컵 수상자는 이현우(헤어진 다음날)로, 골든컵 수상한 시점이 바로 1998년 2월 11일 가요톱10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4.5. 역대 가요톱10 최다 1위 수상자

순위가 같은 수상자는 가나다 순으로 정리됐다.

순위 수상자 횟수
1 조용필 69
2 신승훈 26
이선희
4 정수라 21
5 김건모 19
서태지와 아이들
이상우

5. 그 밖의 이야기들

  • 사실 제목 자체는 일본 TBS의 "더 베스트 10"이랑 비슷하다. 표절이라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찜찜 하지만 베스트텐은 틀린 표현이고 톱텐이 맞다는 사실로 위안삼자 하지만 위에 적혀 있듯 공신력은 최강 수준이었고, 그래서 타 방송국(이라고 해봐야 MBC와 SBS)의 가요 순위 프로들은 개편철마다 이름이나 진행자를 바꿔대기 일쑤였다. 그나마 MBC의 '여러분의 인기가요'가 약간 롱런한 편이었다. 사실 MBC는 순위프로보다는 토토즐 같은 쇼프로에서 더 강세를 보였다. 이 경우에는 KBS 젊음의 행진이 영원한 콩라인이었다.

  • 가요톱10의 1위 팡파레는 1981년 첫방송부터 17년동안 계속 사용되어 왔으며, 이후 뮤직뱅크 초창기까지 사용되었다.

  • 1998년 가요톱10이 폐지 후에 가요순위 신뢰도 및 권위도는 KBS 중심에서 MBCSBS 등의 다른 공중파 방송들과, 엠넷KMTV 등의 1990년대 중반에 개국한 음악 케이블 방송국들에게도 많이 나누어지는 다변화를 겪게 되며, 순위집계의 공정성은 점차 떨어지고 더욱 상업적으로 변해 갔다. 그만큼 가요톱10의 순위집계는 대중들 사이에서 권위와 신뢰도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 가요톱10의 폐지로 가요 순위 집계에 있어 공정성과 권위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던 KBS는 결국 후속 프로였던 뮤직뱅크에서의 순위집계를 2001년부터 폐지하는 등의 수순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에 K-차트로 순위집계 제도를 부활시키며 다시금 순위집계의 공정성과 권위를 살리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젠 케이블 방송을 넘어 음원사이트들까지 발달하여 가요순위의 집계 및 흐름의 판도가 더욱 다변화 되는 시대인지라, K-차트가 다른 가요순위 보다도 공정성 앞선다 해도 과거 가요톱10 시절의 권위와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뭐병 KBS

  • 신해철은 자기 홈페이지 디자인할 때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 도안을 거유톱10(…)이라고 손질한 그림을 걸어놓기도 하였다. 알고 싶다면 80 Plus(캐릭터) 항목 참조.가요톱텐이라는 이름의 인디밴드도 있다. 단 이쪽은 가요톱10이 아니라 가요톱텐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 1993년 9월 3일 1990년대의 끝판왕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의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꺾은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수희의 '애모'였다. 이 때 김수희는 수상이 확정되자,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곡은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이기도 하다.

  • 또한 김건모는 가요톱텐에서 위대한 역사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같은 김창환 사단인 클론에 의해 무산되었는데, 만약 김건모의 '스피드'가 골든컵 수상에 성공했다면 김건모는 가요톱10 1990년대 처음으로 4년 연속 골든컵, 정규앨범 4장 연속 골든컵 수상곡 배출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던 상황에서 클론의 쿵따리 사바랴에게 1위 자리를 내 준 것. 이는 야구에서 상대팀 투수의 퍼펙트 경기를 9회 2아웃에서 저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급기야 김건모 선배의 대기록을 저지시킨 클론은 그 여세를 몰아 '꿍따리 샤바라'로 골든컵을 먹어버렸다!!! 이 때 한국 가요계는 유례없는 대혼전으로 1996년 그 해 골든컵 수상곡이 단 2곡 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꿍따리 샤바라'다. 나머지 한 곡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인데, 그나마 슬픈 언약식은 1995년에 나온 음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996년에 발표된 음반 중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곡은 해당 곡과 97년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쿨의 운명(앨범 발매는 96년) 밖에 없다.
----
  • [1] 참고로 NBC 로고의 공작 날개 모양은 6개, 가요 톱텐 로고는 그보다 1개 적다.
  • [2] 그런데 당시 오프닝을 장식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기의 척도였다. 이 때 1위 후보가 룰라 vs. 신승훈이었으니까 말이다.
  • [3] 폐지 전 1998년 1월 ~ 2월에는 시대가 그런지 관중소리도 적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4] 당시 MBC도 3년간 방송됐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폐지하고 가족캠프를 신설하였다가 그 뒤 음악캠프를 신설했다. SBS도 TV가요20을 종영하고 SBS 인기가요로 변경했다.
  • [5] 예외적으로 1995년 12월 둘째주는 30~18위, 17~6위까지 소개한 다음, 세대별 선호도 순위를 발표한 다음 5위부터 1위까지를 소개하였다.
  • [6] 하지훈은 2000년대 이후로는 거의 잊혀진 이름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주택복권 추첨쇼의 MC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전문 MC다.
  • [7] 중간에 김현주(이 김현주가 아니다. 1990년 전후로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던 방송인. 배철수와 연애 경력이 있다.)가 1992년 1월 8일부터 1992년 5월 27일까지 김광한과 같이 진행했다.
  • [8] 이 시기에 손범수 아나운서가 결혼식을 올려 한 주는 김병찬 아나운서가 대리진행했으며, 1997년 1월에는 방송사 파업으로 인해 유열이 한달 간 대리진행을 했다.
  • [9] 그가 MC를 맡은 프로그램으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열전 달리는 일요일 등이 있었다.
  • [10]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위부터 소개되었다.
  • [11] 1984년에 수상했다.
  • [12] 해당 영상에는 이선희가 나오지 않는데, 당시 이선희는 'J에게'로 1984년 11월 넷째주부터 1985년 1월 첫째주에 걸쳐 5주연속 1위를 차지하여 골든컵 수상은 1985년에 한 것이 맞다.
  • [13] 만약에 첫방송부터 5주 연속 골든컵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총 92곡이 골든컵을 수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