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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테

last modified: 2015-04-11 23:21:03 Contributors

唐手→空手
からて
공수
KARATE

오키나와가 발상지이며, 주먹과 발에 의한 타격기술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의 무도 및 격투기.



Contents

1. 가라테의 역사
1.1. 기원
1.2. 일본 지배기와 무기술의 변화
1.3. 본토 상륙
1.4. 풀컨택트 가라테
2. 현대의 다양한 발전 양상
3. 북미에서
4. 국내 전파
5. 해외 전파
6. 종합격투기에서의 가라테
7. 명칭에 대하여
8. 가라테 유파
9. 관련용어
10. 유명인물, 혹은 관계자
11. 각종 매체의 가라테 사용자
11.1. 대전액션게임에서 가라데가 유파인 캐릭터들
12. 미디어

1. 가라테의 역사

1.1. 기원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략에 의해 무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 류큐(지금의 오키나와) 무인들은 중국 남권을 차용한 당수(唐手), 말 그대로 중국 무술(당나라 무술)을 수련하게 되는데 이것이 '테'의 모체다. 일본어에서 '가라(から)'는 '비어 있다(空)'는 뜻이고, '테(て)'는 '손'이란 뜻으로, 가라테(空手)는 곧 맨손의 무술을 의미한다. 1625년에 명나라 사람 진원빈이 류큐에 와서 자국의 권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1] 이것은 가라테 역사에서 꼭 다루어지는 사실 중 하나이다.

한편, 중국 당나라를 가리키는 '당(唐)'자도 히라가나로는 '가라(から)'라고 쓰는데, 여기서의 '가라테(唐手)'는 '당나라의 권법'이라고 풀이된다. 일본의 무술로 정착되면서 이후 일본은 '당'자가 중국 당나라를 연상시킨다며 '당'자는 폐기되고 '空手(공수)'로 통일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가라테 카타(形)도 중국에서 왔다.#1#pdf 물론 류큐인들이 이를 개량, 발전시켰음은 물론이다.

또한 중국 남소림권에서 유래한 중국 남파 권법, 그 중에서도 영춘백학권(영춘권과는 한자가 다름)이라는 권법과 굉장한 유사성을 띤다. 교본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 체계도 그렇고 아예 특정 카타(形)와 동작 및 순서가 같은 투로도 존재한다.[2]

때문에 중국에선 중국 무술로 여기는 이들도 많고, 태권도도 비슷하다면서 중국 무술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2007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대회에선 아나운서가 대놓고 "태권도는 중국 것이다. 중국 무술 가라테를 일본이 일본 것이라고 하는데, 태권도도 한국이 자기 것이라며 왜곡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주연 영화 호투에서는, 가라테가 원래 당수이니까 중국 것이라는 개드립을 치기도.

물론 중국의 개드립과는 달리 태권도도 엄연히 한국무술이듯이 가라테도 일본 무술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인 홍차도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영국의 홍차 문화를 중국 문화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물며 17세기에 류큐로 전파된 남권이 400년 동안 변형을 거친 결과물인 가라테를 중국 무술이라 부르는 것은 상술한 대로 그저 개드립(...)에 불과하다.

1.2. 일본 지배기와 무기술의 변화

앞서 설명했듯이 본시 류큐 왕국 주민들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수행한 것으로 16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미 상씨 왕조때에 내전을 두려워해 전 국민의 무기 소지를 금지했고, 심지어 군인들조차 무기를 왕궁 무기함에 거치해놓고 잠갔을정도라고 한다. 때문에 싸움이 나거나 들짐승 등의 공격을 받았을 때 맨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어, 류큐인들은 호신을 위해 더욱 가라테 수련에 열심이었다.

일본 점령기에도 일체의 무기를 금지했기 때문에, 호신 겸 일제로부터 독립하려는 열기가 담긴 무술로 수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이 곧 가라테 수련도 금지시켜서, 수련도 일본 무사들의 눈을 피해야 한 까닭에 비밀리에 수많은 유파가 집집마다 다르게 전수되었다.

그 때문인지, 가라테에는 원래 무기술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무기들이 대부분 무기같이 안생긴것들이 대부분이란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나, 톤파, 쌍절곤같이 평상시라면 농기구의 일부로 보이기 쉬운 것들. 심지어 을 무기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또한 전통 가라테 수련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카타 수련의 경우도 카타 동작이 원래 무기를 갖고 수련하는걸 염두에 둔 동작이거나, 무기술에 근원한 경우가 많다. 즉, 맨손으로 무기를 들고있다고 가정하고 훈련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표적인것이 평안 2장으로, 원래는 봉술에서 유래한 카타다.

1.3. 본토 상륙

1879년 일본의 정식 영토로 편입되기 전까지 오키나와인들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고 가라테에 대해서도 탄압이 심했다. 지금도 차별이 심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900년대부터 일본이 군사정권화 되면서 검도와 유도 이외의 격투기들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때 오키나와의 가라테 역시 주목을 받아 일본에 상륙한다.

일본에 가라테를 전파한 사람은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 1868 - 1957)이었는데,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해 부모가 열심히 운동을 해 몸을 단련하란 의미에서 스승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스승과 후나코시의 집은 거리가 20리나 되었는데, 수련이 금지되어 있어 밤에 몰래 수련하기 위해 제자는 한밤중에 10리를 달려가고, 스승도 10리를 달려와서 정확히 중간의 공동묘지에서 만나 수련했다고 한다. 만약 하루라도 빠지면 상대가 10리를 헛수고해서 달려온 게 되기에, 태풍이 오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심지어 아파도 제자는 스승을 위해, 스승은 제자를 위해 단 하루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다는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여간 후나코시는 일본에서 오키나와인들의 무술이 인정받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일본에 전파하게 되었고, 1916년부터 일본 본토에 진출 하였다. 이때 한창 중국과 전쟁을 치루고 있었기 때문에 '唐'자를 빼라는 일본측의 주장에[3] 1929년 이름을 공수도(空手道)로 바꾸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일본의 국민 스포츠이던 유도 강도관 도장에서 수련시간 외에 연구회가 처음 인정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승급 체계나 도복 등이 유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 이후 가라테는 쭉 발전하여 일본에서 검도, 유도의 뒤를 이어가는 주류 무술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도 웃기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가라테에는 원래 어느 정도 유술이 존재했었다.[4] 그러나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유도와의 차별성을 위해 유술기가 죄다 떨어져 나갔다. 현재에는 메치기나 그래플링의 개념이 있는 가라테 유파가 더 드물 정도... 그런데 유도의 경우 원래 간단하게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 타격기가 있었는데, 스포츠화 되면서 타격기를 없애고 그래플링만 남았다...

사실 태평양전쟁 이전에는 일본 내에서 가라테의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다. 유도가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제압하는 신사적인 무도라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가라테는 깡패들이나 수련하는 싸움이란 선입견이 강했다. 60년대에 만들어진 가라테 영화에서도 제목을 무도로서의 가라테가 아니라 그냥 공수치기라고 부를 정도였다.[5]가라테가 온전히 일본무술로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후술하게 되는 극진공수도가 해외에서 이름을 떨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1.4. 풀컨택트 가라테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일본 검도의 '슨도메'룰을 적용 시켜 수련기간 중에 상대를 실제로 가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검도의 경우 실제 진검을 상대에게 내리칠 수가 없기에 상대 몸앞에서 멈추지만, 주먹은 실제로 가격하더라도 상대가 쓰러질지 안 쓰러질지는 알 수가 없는 문제라 좀 한계가 있다.

일본에서는 전후에도 수련자는 꾸준히 있었으나, 아까 말했듯이 실제 타격을 하지 않는 관계로 시합의 공정성 등에 문제가 있다는 유파가 있었으며, 때문에 자체적으로 수련생들끼리 실제 타격을 해보며 수련하는 도장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 유파들의 영향을 받은 최영의 씨가 실제로 가라테 대회에서 우승 후 전국을 돌며 도장깨기, 소와의 싸움 등을 벌여 유명해진 뒤 미국으로 격투기 여행을 떠나면서 이후 세계에 가라테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사실, 미국에 가라테를 알린 것은 거의 전적으로 최영의 씨의 활약 때문이라는 증언도 많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최영의씨는 최초로 '대산도장'이라는 이름으로 체육관을 열었으나, 여러가지 사건에 얽혀 도장을 접은 뒤 나중에 다시 '극진회관'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극진가라테를 만들며 실전 가라테를 주장한다.

지금도 전통 가라테는 수련인구나 숫자가 많지만, 극진회관을 비롯한 실전 가라테 계열도 무시할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성장하고 있다. [6]

2. 현대의 다양한 발전 양상

각각의 유파들도 자신들만의 발전 방향을 가지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대...

1. 전통 공수의 경우 자신들 무술의 전통성을 강화하고 수련생들이 다치지 않는 격투기로서의 발전 방향을 갖고있다. 주로 노약자, 어린이, 여성들도 쉽게할수 있는 격투기 수련으로의 특징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2. 풀컨택트 유파들은 육체의 단련과 강함을 모토로 어떻게 실전에 적응 할것인가를 화두로 보고있다. 이 안에서도 다시 수련방법이 여러개로 나뉘는데, 보호구 없는 맨몸타격을 고수하는가 하면, 보호구를 착용하고 부상을 막는 유파가 있고, 복싱글러브를 착용하고 킥복싱과 비슷하게 변화한 유파도 있다.

3.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격투기로서의 순수성에 최대한 집중하며 가라데로서의 특징마저 과감히 포기한, 도복만 입은 종합격투기에 가깝게 변화하는 곳까지 있다. 정권찌르기나 카타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수련방식을 포기하고, 격투기 무대등에서 실전성이 입증된 트레이닝과 기술들에 집중하는 유파들이다.

3. 북미에서

미국인들은 영어 발음탓에 커라릐(Karate)... 같은식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북미에서는 50년대부터 가라테 도장들이 들어섰으며, 전통유파 가라테의 경우 현재에는 고등학교 수업이나 대학교 클럽등에도 많이 진출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반면에 출처를 확인하기 힘든 사이비 도장도 많이 들어선 편. 북미출처의 가라테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겐포가라테가 있는대, 이는 일본 출처인 일본권법 겐포와 가라테의 명칭을 합친 단체이다.

일본 특유의 관체제나 수련방식, 도장 문화에서 접근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도 많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서 반대급부로 신비주의를 극단적으로 활용해서 와패니즈들을 꼬시는 단체들도 존재한다(...). 한편, 미국 등에서는 미국 사범들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아예 중국무술과 검술 봉술까지 합쳐 짬뽕으로 수련하는가 하면, 익스트림 마샬아츠 계열로 묘기 전용(...)으로 수련하는등 다양한 도장들이 있다. 때문에 미국등지에서 가라테라고 하면 꽤나 높은 확률로 일본 현지에서 수련되는 가라테와 차원이 다른 이상한 무술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제대로 된 가라테를 수련하려면 해당 도장이 어떤 유파에 속해있는지, 그 유파가 제대로된 곳인지를 먼저 확인해야된다.

한편, 영화 가라데 키드가 미국 서브컬쳐계에서 매우 유명하다. 때문에 이 영화에 나오는 미야기 센세이(미야기 선생님)나 학의 자세에서 나가는 킥은 은근슬쩍 패러디도 많이 된다. [7]심지어 일본으로 역수입돼서 일본인들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패러디를 하기도...

4. 국내 전파

일제 시대 가라테는 본래 그 태생이 오키나와의 무술이었기 때문인지 일본 본토에 기원을 둔 검도나 유도, 스모에 비해 비주류에 가까웠다. 덕분에 비교적 일본내 식민지인들이 입문하고 뿌리를 잡기 쉬운 분위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최홍희최영의 같은 한국계 무술인들이 가라테를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패망 이후 이때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운 인물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가라테 수련을 계속하지만, 태권도 중심의 통합주의가 본격화 되자 가라테/당수도 계열 도장은 태권도로 흡수되었다. 그 후 상대적으로 일본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지역에서나 가라테의 명맥이 살아남는다.

상기 설명은 약간의 왜곡이 있어 부연한다. 태권도는 사실상 일제시대 가라테를 수련했던 한국인들이 해방 이후에 최홍희를 중심으로 통합 및 재창작한 무술이다. 가라테를 태권도가 흡수한게 아니라 태권도가 가라테를 기반으로 재창작되었다는게 정설이다. 일부 중국계 무술의 기법도 흡수되었다고 하지만 태권도의 거의 모든 기반은 가라테였고, 한국 전통 고유의 무술[8] 은 한톨도 섞인바가 없다. 택견연계설도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다만 한국인 기질상인지 아니면 가라테와 차별화를 위해서인지 겨루기에서 발차기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겨루기 발기술과 일본 가라테 카타를 몇몇 손본 태권도 품새가 서로 완전히 따로노는 상황이 된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본래 카타, 투로, 품새, 틀 등은 그 무술의 힘쓰기나 기술들을 몸에 익히게 하기 위해서 수련하는 것인데 태권도는 품새 수련으로는 태권도 겨루기 기술을 위한 그 무엇도 익힐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국내에는 태권도의 영향탓에 남은 공수도 도장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최영의 총재 사후 실전공수 유파들이 한국으로 진출해 들어왔다. 그밖에, 아시안 게임에서 공수도가 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전통 공수) 아시안 게임을 대비하는 단체나 도장들이 아직 명맥을 잇고 있다.

2009년 대한공수도협회 이종락 회장은 문무양도와 공수도의 고급화 등을 위해 한자 5급 이상의 자격증을 가져야 단증이 수여된다는 도무지 말도 안되는 방침을 정했다. 이제 외국말 모르면 하고 싶은 무술도 못하는 거냐 한문 공부하면 가라데 실력이 올라가냐???

결국 한국에서의 가라테는 태권도의 모체로써 흡수통합되고 명맥만 근근히 유지하는 상황이다. 뭐 어차피 태권도 자체가 가라테 기반으로 재창작된 무술인 만큼 그 근간은 살아 남았다고 봐도 무방할지도...

아무튼 국내에 남아있긴 한데 관심은 아주 초라하다. 전국체전에선 아예 빠져있기에 가라테 선수들은 벌어먹기 어렵다. 지원 정식 종목이 아니라 국대 선수들은 태릉 선수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국영 훈련장조차 없어 자비로 빌려서 훈련해야하는 실정. 이렇다보니 아시안 게임에서도 한국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까지 동메달만 8개 받았을 뿐이다. 그마저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 4개를 처음 받은 데 이어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4개 따냈다. 인천 대회에서 동메달을 받은 가라테 선수들은 태권도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일본 무술이라고 하여 무시당하는 가라테가 금메달을 받았더라면 조금은 더 지원도 받고 관심을 받을텐데 동메달을 받은 것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5. 해외 전파

물론 현재에는 엄연한 일본의 주류 무술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 국내에서 가라테는 다른 전통 무술과 비교하자면 뿌리가 약한 편이다. 이는 가라테가 유난히 분파가 많은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본래 일본 본토의 것이 아닌 가라테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원인으로 추측된다. 이렇다보니 5,60년대 일본 영화에선 유도 고단자는 좋게 나오고 가라테 고단자는 악당으로 나오는 게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라테는 유도의 도복과 승단체계를 도입하고, 이름까지 바꾸는 등 '일본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하여 한국인도 가라테에 입문한 사람이 많게 되었고, 일본에서 뿌리가 약하다 보니 오히려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라테는 해외에서는 "일본 무술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스포츠화로 방향을 잡은 태권도의 양적 성장에 주목하여 가라테를 올림픽 종목으로 하려는 시도가 있다(주로 전통유파). 실제로 2005년 IOC 올림픽 종목 투표에 도전 했으나 실패했고, 이미 격기종목이 몇가지 있기 때문에 가라데가 올림픽에 입성하려면 한종목을 밀어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많은 유파들 각자 자기들만의 룰과 조직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대표하는 그런 룰과 조직을 만드는것도 많이 힘든것이 사실.

가라데의 올림픽 종목화에 가장 적극적인 단체가 유럽이 주축이된 세계가라테연맹(WKF)으로 2005년과 2009년 IOC 총회에서 종목 신청도 이 단체가 주도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주축인 국제가라테연맹(ITKF)과의 알력 다툼은 심각한 상태로 2005년 IOC 총회 당시 세계가라테연맹(WKF)의 올림픽 종목 신청에 반발하여 로게 IOC 위원장에게 항의서신을 보낼 정도였다. 그 결과 IOC 측에서는 올림픽 종목 신청 이전에 가라데 내부 의견부터 통합하고 오라고 권고 했을 정도.

올림픽을 바라보는 가라데 유파들의 입장은 유파마다 제각각인데, 올림픽 진출을 환영하는 유파들은 양적 성장과 더불어 유파의 지명도를 올릴 수 있기에 의외로 전통유파들이 많이 원하는 편이다. 반면에 올림픽에 전혀 관심없는 유파들도 많은데, 올림픽에 나간다는 건 IOC의 요구에 맞춰 유파의 조직구성과 수련체계가 변해야함을 뜻하는데, 남의 간섭을 받기도 싫고 굳이 그렇게 해서 유파에 돌아오는 이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는 유파들이다. 이미 젊은층을 상대로 자체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은 실전 유파들이나, MMA식 격투기 무대에 적응하려는 유파들이 대체로 이런 쪽이다.

이런저런 까닭에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가라테 선수들은 태권도로 전향해 올림픽 태권도를 배우는 실정이다.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셰이카 마이타 알막툼 (Sheikha Maitha Bint Mohammad Bin Rashid Al Maktoum). 두바이 왕족으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가라테 은메달리스트이나 올림픽 출전을 위해 태권도로 전향,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나왔다.[9] 그래서인지 태권도와 가라테, 둘 다 잘하는 나라가 많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후보로 가라테가 도전했지만 최종후보조차 못 들어가고 일찍 탈락했다. 적어도 야구는 제치고 최종후보까진 들어가겠지 이러던 가라테 정식종목 추진회는 그 야구에게도 밀려 탈락하자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일본이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들어 강력해진 이란이 태권도와 더불어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아직은 일본이 압도적이지만 이란은 2000년대 와서 일본에 이어 가라테에서 금메달 10개를 넘긴 나라가 되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동메달 3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이란이 금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받으며 바싹 추격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역대 아시안 게임 가라테 총메달은 일본이 금 26개,은 10개, 동 7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금 12개, 은 8개, 동 7개인 이란이 추격 중이며 금 8개, 은 7개, 동 15개를 받은 말레이시아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6. 종합격투기에서의 가라테

80~90 년대 미국에서의 겐포[10] 가라테의 인기는 상당한 것이었고, 종합격투기 무대에도 많은 선수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오키나와나 일본 본토의 수련자가 아닌 미주의 겐포 선수들이었는데, 제랄드 고르쥬, 키스 해크니 등이 대표적인 겐포 파이터들이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믿기 어렵겠지만 프랭크 미어는 가라테로 격투기에 입문, 척 리델의 타격 역시 겐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여러 취약점들 때문에 그다지 강세를 보이진 못했다.[11] 9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겐포의 참여율은 크게 감소하고 MMA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후 Rings, PRIDE의 출범을 계기로 종합격투기의 중심이 일본으로 이동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이 인식은 료토 마치다가 UFC에 입성할 때까지 지속됐다. 2007년 옥타곤에 모습을 드러낸 쇼토칸의 마치다는 가라테와 스모가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로 기존의 강자들을 올킬하며 -93kg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 파이팅 스타일이 기존 MMA의 타격에 비해 상당히 독창적이고 특이해서 MMA에서의 가라테는 재조명을 받기에 이른다.

반면 일본의 선수들은 딱히 종합 무대에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극진을 비롯한 본토의 유파들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미 일본 내에서 그 입지를 탄탄히 다져, 자체적으로도 권위있는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K-1이라는 프로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합보다는 입식으로의 진출이 두드려졌다. 프란시스코 필리오, 앤디 훅, 사다케 마사아키, 모리 아키오(무사시), 세미 슐트, 에베르톤 테세이라 등이 이 방면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다만 일본에서 최강으로 불리던 극진가라데 출신 선수들이 KO당하는 모습도 보여 그 환상이 깨지기는 했다.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FEG가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일본의 유파들도 MMA 진출을 고려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극진가라테를 수련한 MMA 파이터 중 챔프에 오른 유명한 이들로는 바스 루턴과 조르주 생 피에르가 있다.[12] 일찍이 UFC헤비급 챔프와 판크라스 챔피언을 지냈던 바스 루틴은 극진 분파 중 하나인 극진무도회에서 2단까지 수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스 루틴은 MMA 트레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레슨에서도 극진가라테를 인용한 설명을 보이기도 한다. 웰터급 챔프인 생 피에르는 어릴 적 불량배들에게 괴롭힘 당하는게 싫어서 극진가라테를 시작해 격투기에 입문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타락하여 레슬게이가 되었다. 앙대

7. 명칭에 대하여

원래 오키나와에서의 명칭은 단순히 '테(手)'였다고 한다. 슈리 지방에서 성행하는 건 슈리테(首里手), 나하 지방에서 성행하는 건 나하테(那覇手), 하는 식으로 지방에 테(手)를 붙여 부르곤 했다.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오키나와테(沖縄手), 혹은 도테(唐手,당수)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당(唐) 이라는 말은 나라의 당자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내에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정이 강해지자, 당(唐)자를 '도'로도 읽을 수 있지만 '가라'로도 읽힌다는 점에 착안, 당(唐)자를 떼내고 불교의 공(空) 사상에서 따온 공(空) 자를 붙여서 가라데(空手,공수)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하여 70년대까진 국내에서도 당수도라는 명칭을 태권도와 혼용해서 쓰고 있었으며, 북미 등지에선 아직도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ITF.jpg
[JPG image (Unknown)]

(국제당수도협회 마크)

일본에서는 당수도(唐手道)라는 표기는 매우 마이너한데, 일본에서는 '당수술(唐手術)'에서 급격히 '공수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전통 당수를 한다는 몇몇 단체가 당수도 표기를 쓰고 있고, 가라테와는 별 상관 없는 대만국 무술 단체 중에 이런 표기를 쓰는 곳이 있다.

주연 영화 용호투[13]에서는 '당수니까 중국무술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동북공정을 펴기도.

유명인들 중엔 척 노리스시아 로스록이 당수도를 수련했다.

8. 가라테 유파

크게 스타일별로 슨도메, 풀컨택트로 나뉘며, MMA의 영향을 받아 그라운드나 업어치기, 메치기 등이 들어가는 유파들도 있다. 때리지만 살짝 때리는(?!?!?) 라이트 컨택트도 존재한다. 병을 집어던지는 유파도 있다. 스나이퍼(팀 포트리스 2)참조

9. 관련용어

11. 각종 매체의 가라테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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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근데 이 진원빈이라는 사람, 일본에 유술을 전파해서 유도의 기원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개인 항목을 찾아보면 무려 "문인"이라고 되어 있다. 대체 뭐냐 이 엄친아... 그러나 유술을 진원빈이 전파했다는 주장은 모순이 있는데, 일본에는 이미 1532년에 타케노우치류 유술이 있었기 때문.
  • [2] 가라데의 기본인 삼전(三戰)서기나 삼전카타는 남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형(步形)이다.
  • [3] 唐은 당나라 건국 이래로 2차대전 종전까지도 중국을 가리키는 별칭이었다.
  • [4]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무술 원형들은 타격기와 유술기가 혼합된 형태였다. 그러던 것들이 다른 무술과의 차별화를 위해 타격이나 유술 한 쪽으로만 발달하게 된 것.
  • [5] 이 표현이 당시 한국에 흘러들어와 일부에서 '맨손치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 고우영화백의 작품에서도 나온다
  • [6] 사실 단일단체로서 가장 규모가 거대한것은 극진회관이었다. 미디어를 잘 이용하고 위력과시를 제대로 한 덕택에 전성기에 수련자 숫자가 거의 1300만명 이었다고 하고, 전통유파중에서 가장 큰 쇼토칸은 수백만명 단위였다. 그러나 전통유파는 규모가 작은 자잘한 유파가 무수히 많은 관계로 굳이 따지면 여전히 전통유파 수련자가 실전유파보다는 몇배 많으리라 예상된다. 게다가 유파와 수련생 숫자를 제대로 정리하기도 힘들고... 태권도는 분파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수련생 숫자가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 수준으로 집계된다.
  • [7] 가장 대표적인 패러디는 매트릭스 1편의 초반부에 트리니티가 하던 발차기.
  • [8] 사실 한국 고유 전통 무술이라는 것도 현재로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국궁, 씨름, 택견 세가지 뿐이다. 나머지 상고시대나 삼국시대 역사 운운하는 무술들은 일본계나 중국계 무술의 한국 재창작 무술이다.
  • [9] World Taekwondo Federation는 야! 신난다~를 외치며 선전에 써먹고 있다(...)
  • [10] 전통 일본권법이 존재하지만, 미국의 겐포는 출처를 알수 없거나 변형된 유형의 가라테인 경우가 많다.
  • [11] 종합격투기에서는 유술기도 타격기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타격기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현재에는 유술기를 갖고있는 가라테 유파를 찾는게 더 힘들 정도
  • [12] 다만 생 피에르는 맷 세라와의 1차전 이후에 완전히 레슬링+복싱 스타일로 전환했다.
  • [13] 이소룡의 용쟁호투와는 제목만 비슷하지 전혀 무관
  • [14] 2012년 2월에 극진회관에서 3단 단증수여
  • [15] 극진공수도를 사용하는데, 사실 이미 무술의 영역이 아니다(…)
  • [16] 차력이 무려 최배달이다.
  • [17] 처음 만들어진 애니판을 제외하고는 전부 가라테를 한다.
  • [18] 정확히는 닌자 슬레이어 세계관에서는 모든 무술 전반을 가리켜 가라테라고 한다.그리고 작중에서는 카라테라고 표기.
  • [19]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에서는 태권도를 수련했다고 나오지만, 최배달은 극진공수도를 창시한 세계적인 공수가다.
  • [20] 참고로 둘 다 건물 기둥 주먹으로 쳐서 금 가게 만드는 실력자들이다(...)아니,교코쿠 마코토는 아예 부순다...
  • [21] 어인 공수도
  • [22] 병수도...
  • [23] 일판,영판,불어판,스페인어판,독어판,이태리어판에서는 가라데 포켓몬, 국내판에서는 태권도 포켓몬
  • [24] 폼만 잡는 수준이지만 여튼 꽤 자주 묘사된다.
  • [25] 보면 알겠지만 해당 속성의 프리큐어의 경우에는 각각의 작품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캐릭터로 꼽힌다.
  • [26] 물론 박진가라테도 가라테가 맞긴 맞지만...극진이 모티브인 것으로 보인다
  • [27] 이 만화에서는 특이하게도 전통공수를 다루고 있다.
  • [28] 송도관 가라테가 사용 무술 중 하나. 희안하게 서브제로는 중국인에 중국에 있는 용병집단 린 쿠에이 소속인데 중국 무술이 아닌 일본 무술을 쓴다. 라이벌 스콜피온아이키도가 아닌 합기도를 쓰는 일본인이다.
  • [29] 스파2 설정에서는 승도관(일본어로 쇼토칸)이라는 가라데 유파였다. 게다가 의 모티브가 극진회관의 1대 제자, 극진의 호랑이 소에노 요시지란 걸 감안하면...
  • [30] 미시마 류 켄카 가라테, 가전 류파긴 해도 엄연한 가라테다. 하지만 철권 4편 이후로 카자마 진은 극진가라테로 변경. 이후 진이 썼던 미시마식 가라데는 데빌진 쪽으로 계승된다.
  • [31]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전 공수도에 부메랑을 조합한 격투기 풍운권